오늘의 말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거듭난 삶 2017. 8. 2.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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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라는

 

( 10:1-15) 형제들아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입에 있으며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우리 앞에는 이제 반드시 떨어져야 하는 한계 상황인 절벽이 있었지만 절벽을 건너 있는 방법 또한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다리 위로 걸어 가능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지 믿음이라는 눈을 가질 때만 다리는 보였습니다.

어떤 조건도 어떤 노력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시지 않았습니다.

단지 모든 구속의 사건이 일어난 것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런데수많은 사람들은 믿음의 눈으로 다리를 보지 않았고

절벽에 서서 자기의 힘으로 공력으로 물질로 다리를 놓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음 외에 우리가 절벽을 건너갈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믿음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의 지식이나 신학의 굴레를 벗기고 그 분이 하시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1.우리가 구원을 얻는데는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무엇입니까?

 

(10:9) 네가 만일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는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말을 수없이 많이 들어왔다.

 

( 16:31) 가로되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나 막상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 주위에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분명한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본절은 바로 그러한 문제에 정확한 해답을 제공해 주고 있다.

말씀을 통해서 당신은 분명한 구원의 확신을 갖게 것이다.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인가?

 

첫째,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자인데 에수를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 자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는 자이다. 부활의 사실이야말로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며 믿음의 요체이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열매가 되셨도다

 

(벧전 1:21) 너희는 저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오늘 우리는 주님의 부활의 사실을 얼마나 믿고 있는가?

 

1982 사회학자가 미국의 목사들의 신앙 앙케이트 가운데 부활에 대한 교리를 믿지 못하겠다고 자들이

감리교51%,장로교35%,침례교33%, 나타났다고 한다.

구원여부를 분멸하는 시금석이 부활에 대한 교리인 것을 알아야 한다.

 

2.모세에 의하면 율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을 율법이 우리에게 올무가 되지 않음은 믿을 우리는 어떤 상태에 이르기 때문입니까?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마침이라는 의미는 종료라는 의미보다는 성취라는 의미이다.

율법의 목표는 사랑을 실천하는데 있다.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 22:37-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라고 하였는데

 

이는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마음속에 모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것이 아니요 오직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미 율법을 지킨 것과 같이 되어 의를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기를 거절함으로써 의롭게 기회를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바울이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지적하고 있는 핵심이다.

 

3.우리가 믿을 우리 앞에 있던 죽음의 문제는 어떻게 됩니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말을 듣고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4.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이상 죄에 묶임이 없다는 말입니다. 심지어는 하나님 앞에서 조차 우리는 다른 태도를 가질 있습니다.

어떤 태도입니까?

( 3:12) 우리가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1.믿음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응답입니다. 분이 하신 모든 일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는 우리는 행위에 의지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온전히 믿고 계십니까?

 

( 9:32)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 28:1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8:14)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집에는 거치는 ,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는 거리끼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그것은 축복과 은혜가 도리어 진노와 고난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2.이상하게도 우리는 구원의 기준을 세웁니다.

십일조하고, 주일성수, 새벽기도하고.. 이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이면 구원을 받습니다.

혹시 당신이 세우거나 보아왔던 구원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3.그렇다면 행위는 필요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행위는 구원받은 우리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이후에 우리의 바르지 못한 행동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2:26)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열매가 되셨도다

(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야고보와 바울이 말한 의에 대한 논란은 많이 나타나는데

야고보는 칭의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의롭게 사실을 보여 주고 입증해 주는 것으로 설명을 반면,

 

(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자체가 죽은 것이라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바울은 하나님 편에서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한 사실을 의미하였다.

 

(2:8 너희가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것은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는 그의 순종에서 완성된 의를 말하는 반면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인정된 의를 말했다.

 

결국 바울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야고보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각각 강조하는 의였음을

우리는 발견해야 한다.

 

아브라함과 라합의 행함으로 인한 구원의 사실 :

뿌리는 나무의 근원이자 생명이며 ,열매는 나무에 생명이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마땅히 열매인 행함으로 입증되어야 것을 야고보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온전한 신앙은 경건과 구제의 생활이 균형을 이루는데 있다.

 

(살전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4.우리가 바르게 서서 살며 땅에서 승리할 있는 유일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요일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그리스도를 발견한 자들은 이세상의 것에 연연하지를 않는다.

세상의 욕심, ,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으로부터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자신을 지킬 있는 능력을 얻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일 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되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과 기쁜 마음으로 지켜야 한다.

 

마음을 새롭게 합시다.

 

믿음이라는 요소는 굳이 우리의 신앙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삶의 전영역에서 필요한 요소입니다.

물론 의미와 질적인 면에서는 다르지만 믿음이라는 요소는 우리들과 같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의 동생과 함께 캐나다 국경의 장엄한 나이아가라 폭포 밑을 흐르는 위험스런 급류를 향해 배를 타고 건너가고 있습니다.

 

물결이 너무 거세게 보트를 흔들기 때문에 그의 동생은 잔뜩 겁이 났습니다.

그것을 바라본 형은 노를 젓고 있는 사공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은 얼마나 자주 이곳을 횡단하였습니까?

12 동안 줄곧 일을 계속 했지요

 

그럼 번이라도 사고가 난적이 있습니까?

번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배가 뒤집히거나 인명의 피해가 전혀 없었단 말입니까?

 

선생님 그런 일은 번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람은 무서워하고 있는 동생을 보고 말하기를,

 

사공이 하는 말을 들었지?

네가 사공보다 노를 저을 없다면 나처럼 조용히 앉아서

사공을 믿고 여행을 즐겨라

 

라고 지혜롭게 안심을 시켜 주었습니다.

 

 

신앙생활을 때에도 이런 지혜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영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자들이

의심과 불안의 파도 속에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이아가라 파도 속에 배를 타고 가는 형제처럼

염려하거나 내가 대신 배의 노를 저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내가 노를 젖는다 해도 사공보다 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서

 

예수님이 하시는대로 순종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