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부활하신 예수
성 경: [눅 24:5-12]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눅 24: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 갑작스런 천사의 출현에 나타나 여인들의 반응은 놀랍고 '두려운'(엡포보스) 것이었다.
이 같은 두려움은 경이로운 사건에 대한 놀라움의 표시로서 초자연적 신비감을 강조한다.
(37절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행 10: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계 11;13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그 놀라움의 표시로 여인들이 얼굴을 땅에 대었다고 묘사되는데 이는 누가만의 표현이다.
마 28:4에서는 '놀라서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묘사함으로 초자연적 사건에 대한 종말적 두려움을 부각시킨다.
(마 28: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그러나 마가와 누가는 경이롭고 신비로운 사건에 대한 경이감(驚異感)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누가는 마태와 마가가 언급하는 '두려워', '놀라지 말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 않는데, 역시 두려움에 대한 강조를 약화시키는 반면
하나님의 초자연적 권능을 부각시키려는 누가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 두 명의 천사가 동시에 말한 것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마태와 마가가 '한 사람의 천사'혹은 '한 사람의 청년'을 언급한 것이 누가의 '두 사람'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두 사람이 동시에 말한 것은 한 사람이 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어찌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티'는 의문 대명사 '누구'(who)라는 뜻과 의문 부사 '왜'(why) 또는 '무엇'(what), '어느 것'(which) 등의 다양한 의미로 쓰여 지며 여기서는 '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자의 무덤에서 찾고 있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의미와 함께 부활의 당연함과 그것이 예정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 격언조의 이 구절은 상징적 의미를 시사해 준다.
즉 '죽은 자 가운데'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타 톤 네크론'은 '죽은 자들 가운데'라는 뜻이다. 이는 예수의 무덤 안에 여러 '시체들'이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죽음'과 '무덤' 그 자체를 상징한다.
다시 말해서 무덤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게 국한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 구절은 예수가 부활하여 살아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누가는 2,3절에 이어 세 번째로 예수의 부활을 단계적이면서 간접적으로 시시하고 있는 바, 그 자신 특유의 치밀한 구성력(構成力)을 보여준다.
(2-3절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눅 24: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 세 번에 걸친 부활에 대한 예비적 언급이 있은 다음 비로소 두 천사의 말에 의해 부활이 직접적으로 선언된다.
그런데 누가는 먼저 무덤 안에 예수가 없음을 전제하고 나서 부활을 먼저 이야기하고 무덤 안에 예수가 없음을 말하였다.
(16: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즉 마가는 부활을 강조하고 그 증거로 빈 무덤을 제시하는 반면 누가는 예수 부활의 산증거로서 빈 무덤을 강조하였다.
누가의 이 같은 표현은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않은 데 대한 여인들의 반응에 초점을 맞추어 예수의 부활 사건을 묘사한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즉 여인들이 발견한 바대로 시체가 없다는 점을 먼저 확인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
▶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이 갈릴리 여인들이었음을 23:55에 이어 두 번째 언급하고 있는데,
(23:55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10절에 따르면 여인들의 수는 최소한 5명 이상임을 알 수 있다.
(10절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누가는 예수의 부활이 믿을 수 없는 돌발 사태가 아니라 이미 예견된 일이었음을 평소 예수를 따랐던 여인들, 그리고 예수의 죽음을 확인했던 여인들을 통해서 확증하고자 한다.
(23:55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여기서 '기억하다'(므네스데테)고 요청하는 내용은 9:22에서 예수 자신이 언급하셨던 바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예언이다.
(9: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마태와 마가는 빈 무덤만을 이야기할 뿐 다른 언급이 없는 데 비해 누가는 치밀한 설득을 통해 부활 사건의 역사성과 하나님의 계시(啓示)의 성취 측면을 확연히 드러낸다.
[눅 24:7-8]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 두 명의 천사가 예수께서 생전에 직접 하셨던 말을 여인들에게 상기시켜주자 여인들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두 천사가 직접 언급한 내용은 9:22의 에언 이었다.
(9: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다른 복음서와 달리 예수의 예언을 천사들의 입을 통해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이라는 것을 다시 기억해 내는 누가의 표현 의도는 예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이 총제적인 예언의 성취라는 맥락을 나타내고자 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누가의 이 같은 표현 의도는 예수의 부활 사건을 중심한 대적들의 묵살 음모라는 당시의 정황을 염두에 둘 때 보다 더 분명하게 이해된다.
즉 마 28:13에 따르면 예수의 대적들은 당시 예수의 부활이 그 추종자들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고 날조(捏造)하며 이를 소문으로 퍼뜨렸던 것이 분명하다.
(마 28:13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누가는 대적들의 이같은 음해적(陰害的) 행위와 소문에 대한 치밀한 반론으로서 이같은 상세한 묘사를 시도하였던 것이다.
어쨌든 누가는 예수의 부활이 조금도 의심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임과 그 사실이 이미 예언되었던 사실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사건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누가는 예수의 말씀을 두 천사가 직접 들려주었을 때 여인들이 비로서 기억했다는 언급을 통해 9:22나 18:33에서와 같이 평소 예수의 말씀을 제자들도 이해하지 못하였고
(9: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18: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제자들 이외의 사람들도 그 말씀을 들었으나 믿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눅 24: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 부활을 확인한 여인들은 성안으로 돌아가 열 한 사도와 성내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보고 확인한 바를 전하였는데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갖고 전달한 것인지 아니면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건 즉 시체가 없어진 사실과 천사를 만났던 사실만을 전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막16:8에서는 '아무에게 아무 말도 못했다'고 묘사하고 있는데 마가의 표현은 놀라움에 강조를 둔 것으로 보인다.
(막16: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한편 마태(마 28:8)와 누가는 여인들이 이야기를 전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특히 누가는 마태와 마가가 공통되게 언급하고 있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마 28: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즉 마태와 마가는 '예수께서 부활한 후 갈릴리로 갔다'는 사실을 천사가 일러 준 것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마 28: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막 16: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누가는 이를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또한 마태는 여인들이 제자들에게 달려간 것으로만 언급하는 반면
누가는 제자들과 다른 모든 사람들로 확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마태에 따르면 예수를 팔았던 가룟 유다는 이미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된 직후 죄책감으로 목매여 자살하였다.
(마 27:3-5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누가는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여기서 열한 명의 제자만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눅 24: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 이 여자들은 - 누가는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고 확인한 갈릴리 여인들의 이름을 이제야 밝히고 있는데,
마가는 무덤으로 가기 전에 이 여인들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름에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막 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 막달라 마리아 - 이 여인은 누가 이외에도 마태와(마 28:1) 마가(막 16:1) 그리고 요한(요 20:1)에 의해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으로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며 일곱 귀신이 들렸다가 예수에 의해서 나음을 받은 여인이다.
(마 28: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막 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요 20: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눅 8: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 요안나 -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로서 예수와 제자들을 섬겼던 여인이며 마가복음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8: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마리아 헤 야코부)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직역하면 '야고보의 마리아'가 된다. 이는 곧 야고보의 아내를 의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는 마가가 언급한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는 다른 인물이 된다.
그러나 막 15:40절과 47절을 본다면 '야고보의 마리아'를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로 해석하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막 15:40절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47절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 저희와 함께 한 다른 여자들 - 앞에서 언급한 사람들과 더불어 무덤에 따라갔던 갈릴리 여인들이며
(23:55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24: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이로써 부활의 증인이 이름을 밝힌 세 명의 여인 외에 더 있음을 말하고 있다.
마가가 언급한 세 명보다 확대된 숫자이다.
(막 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눅 24: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 여인들로부터 부활 사건을 전해들은 사도들의 반응은 믿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나타낼 수 있는 것처럼 의심과 불신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즉 그들은 여인들의 증언을 얼토당토 않는 것으로 여겼다.
즉 너무 뜻밖의 일이었기 때문에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제자들의 반응은 이제까지 보여 왔던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반응과도 동일한 것이었다.
즉 평소에 가르쳤던 예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9:45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18: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정작 예수의 부활이 그들의 눈앞에서 실현되었어도 이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제자들 역시 여인들처럼 예수의 부활 예언을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
(6절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눅 24: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니 - 누가는 앞 구절에서 언급된 사도들의 불신에 대비되게 베드로는 무덤으로 달려갔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베드로의 권위를 높이려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나 본문은 많은 사본들에서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요 20:3-10에 근거한 삽입구로 이해되기도 했으나(Metzger)
(요 20:3-10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많은 학자들은 이 구절을 본래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Lagrange, Jeremias, Gundmann, Ellis, danker, Morris 등).
▶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 무덤에 도착한 베드로는 빈 무덤 속에 남아 있는 세마포만 발견하고 '이상히 여겨' 집으로 돌아간 것으로 묘사되는데, 여기서 '그 된 일'은 여인들과 베드로가 직접 확인한 빈 무덤을 뜻한다.
한편 요 20:1-10에 언급된 평행 본문은 누가의 것과 많은 차이가 있다.
(요 20:1-10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요한에 의하면 베드로 혼자 무덤에 간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 한 명이 함께 갔고 그가 베드로보다 빨리 무덤에 도착하였으며, 베드로가 본 것은 세마포뿐만 아니라 머리 수건도 있었다.
그리고 나서 무덤에 먼저 와 있던 다른 제자도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고 믿었다고 언급된다.
즉 요한복음에서는 베드로 이외에 익명의 사랑받는 제자를 예수 부활 사건의 목격자로 언급함으로써 열 한 사도 외의 다른 제자들도 빈 무덤을 확인한 것으로 언급한다.
이렇듯 예수의 부활은 일부의 몇몇 여인들만 목격한 것이 아니요 평소 그분께 관심을 가졌던 제자라면 누가나 가보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객관적, 실체적 사건이었으니 이로써 하나님 계시의 확실성과 역사성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