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환상을 보기는 을래 강변에서이니라
수양과 수염소의 환상
(단 8:1-14) 나 다니엘에게 처음에 나타난 환상 후 벨사살 왕 제삼년에 다시 한 환상이 나타나니라
2) 내가 환상을 보았는데 내가 그것을 볼 때에 내 몸은 엘람 지방 수산 성에 있었고 내가 환상을 보기는 을래 강변에서이니라
3) 내가 눈을 들어 본즉 강 가에 두 뿔 가진 숫양이 섰는데 그 두 뿔이 다 길었으며 그 중 한 뿔은 다른 뿔보다 길었고 그 긴 것은 나중에 난 것이더라
4) 내가 본즉 그 숫양이 서쪽과 북쪽과 남쪽을 향하여 받으나 그것을 당할 짐승이 하나도 없고 그 손에서 구할 자가 없으므로 그것이 원하는 대로 행하고 강하여졌더라
5) 내가 생각할 때에 한 숫염소가 서쪽에서부터 와서 온 지면에 두루 다니되 땅에 닿지 아니하며 그 염소의 두 눈 사이에는 현저한 뿔이 있더라
6) 그것이 두 뿔 가진 숫양 곧 내가 본 바 강 가에 섰던 양에게로 나아가되 분노한 힘으로 그것에게로 달려가더니
7) 내가 본즉 그것이 숫양에게로 가까이 나아가서는 더욱 성내어 그 숫양을 쳐서 그 두 뿔을 꺾으나 숫양에게는 그것을 대적할 힘이 없으므로 그것이 숫양을 땅에 엎드러뜨리고 짓밟았으나 숫양을 그 손에서 벗어나게 할 자가 없었더라
8) 숫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
9) 그 중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남쪽과 동쪽과 또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10) 그것이 하늘 군대에 미칠 만큼 커져서 그 군대와 별들 중의 몇을 땅에 떨어뜨리고 그것들을 짓밟고
11)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없애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12) 그의 악으로 말미암아 백성이 매일 드리는 제사가 넘긴 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13) 내가 들은즉 한 거룩한 이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이가 그 말하는 이에게 묻되 환상에 나타난 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준 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14)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하였느니라.
Ⅰ. 이 환상을 본 시기가 나와 있다.
(1절 나 다니엘에게 처음에 나타난 환상 후 벨사살 왕 제삼년에 다시 한 환상이 나타나니라).
이 환상은 "벨사살 왕의 통치 3년에"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아마도 그것은 벨사살의 통치 마지막 해라고 추측된다.
그러므로 제 8장은 시간의 순서상, 제 5장 이전에 놓여져야 할 것이다.
다니엘이 바벨론 왕국의 멸망을 보고도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바벨론 왕국만큼이나, 힘이 세었던 다른 왕국들의 멸망의 모습을 미리 보여 주신다.
"다니엘에게 환상이 나타난 것" 은 그 후이다.
우리가 이후에 올 변천을 미리 내다볼 수 있다면, 그것이 닥쳐왔을 때에도 별로 놀라거나 영향을 입지 않을 것이다.
"이미 있었던 일이 후에 다시 올 것이기" 때문이다.
(전 1: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여기에서 다니엘은 이 환상의 진실성을 엄숙하게 증언한다.
그 환상이 보여진 것은 "내게로다" 고 말한다. 말하자면 다니엘은 그 환상의 목격자였다.
또 이 환상은 "처음에 다니엘에게 나타났던," 곧 벨사살 제위 1년에 나타났던 그 이전의 환상을 회상시켜 주었다.
이런 말을 함은, 이 환상이 그것을 설명 확증해 주고, 또 같은 여러 사건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잠들었을 때에 꿈에 본 환상이었지만,
지금의 환상은 그가 깨어 있었을 때에 본 환상인 것 같다.
Ⅱ. 이 환상의 무대가 나와있다. 이 일이 있던 곳은 "수산 궁" 이었다.
수산 궁은 바사 왕들의 한 궁성이요, 그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울래(Ulai) 강변에 위치했었다. 또 그 곳은 바벨론 다음에 있었던 바사의 일부였던, 엘람 지방에 속하는 곳이었다.
다니엘이 거기에 직접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포로로서 바벨론에서, 벨사살 아래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그와 같이 멀리 있는 적국에까지 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환상에서는 다니엘이 거기에 가 있었다. 이것은 에스겔이 바벨론에 포로로 있으면서도, 영으로는 이스라엘 땅을 종종 찾아갔던 것과 같다.
몸은 비록 갇혀 있을지라도, 영혼은 자유하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속박되었을 때에도, 여호와의 영은 속박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환상은 바사 나라에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마치 그가 바사에 직접 있었던 것처럼 강렬하게 환상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Ⅲ. 환상의 내용과 그 과정.
1. 다니엘은 "두 개의 뿔" 을 가진 "수양" 을 보았다.
(3절 내가 눈을 들어 본즉 강 가에 두 뿔 가진 숫양이 섰는데 그 두 뿔이 다 길었으며 그 중 한 뿔은 다른 뿔보다 길었고 그 긴 것은 나중에 난 것이더라).
그것은 두 번째 왕국이었다. 그리고 그 두 개의 뿔은 메데와 바사 왕국이 었다.
그 뿔은 "대단히 길" 었다. 그러나 나중에 나온 뿔이 더 길었다. 그리고 나중의 뿔이 그 전의 뿔의 기선을 제압하였다.
그래서 나중의 것이 첫째가 되었고, 첫째의 것이 나중 것이 되었다. 늦게 일어난 고레스의 나라 바사가 메데보다도 더 강한 왕국이 되었다.
2. 다니엘은 이 수양이 그 주위의 모든 것을 뿔로 들이받는 것을 보았다.
(4절 내가 본즉 그 숫양이 서쪽과 북쪽과 남쪽을 향하여 받으나 그것을 당할 짐승이 하나도 없고 그 손에서 구할 자가 없으므로 그것이 원하는 대로 행하고 강하여졌더라).
그 수양은 "서쪽" (바벨론, 수리아, 희랍 그리고 아시아의 일부쪽)과
"북쪽" (루디아, 아르메니아, 스키티아쪽),
그리고 "남쪽" (아라비아, 에티오피아, 애굽)을 향하여 받았다.
이 모든 나라들은 모두 바사 제국의 지배아래 들어갔다. 결국 바사 제국은 아주 강국이 되었고, "어떤 짐승도 그 앞에 설 수 없었다.".
이 "양" 은 비록 먹이가 되기 쉬운 짐승이지만, 짐승을 잡아먹는 맹수처럼 무서운 짐승이 되었고, 그래서 아무도 그 앞에 "설 수 없었고," 그를 피할 수 없으며," 그의 손에서 능히 구할 이가 없었다".
바사의 왕들은 "그들의 임의대로" 행동하였고, 번영하였으며, "강대하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를 강하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그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을 행하는 것이 인간을 참으로 위대하게 하는 법이다.
3. 다니엘은 이 수양이 수염소에 의해서 정복당하는 것을 보았다.
다니엘은 "수양" 을 생각하고 있었다(그렇게 약한 짐승이 어떻게 그렇게 강력해졌는지에 놀라면서). 그리고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염소 한 마리가 왔다".
(5절 내가 생각할 때에 한 숫염소가 서쪽에서부터 와서 온 지면에 두루 다니되 땅에 닿지 아니하며 그 염소의 두 눈 사이에는 현저한 뿔이 있더라).
이 수염소는 마케도니아의 필립 왕의 아들인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그는 "서편에서 왔다." 즉 바사의 서편에 놓여있는 희랍에서 온 것이다. 그는 그의 군대로 거대한 영토를 획득했다. 그는 "온 세상의 지면에 두루 다녔다." 그는 사실상 세계를 정복하였고, 그리고 나서 앉아 울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그가 정복해야 할 땅이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이었다.
Unus Pellao juveninon sufficit orbis - 즉 펠라(알렉산더 대왕 출생지)의 젊은이에게는 하나의 세계로는 너무나 작았다.
아름답다고 소문이 자자한 이 숫염소는
(잠 30:31 사냥개와 숫염소와 및 당할 수 없는 왕이니라)
놀랄 만큼 신속히 다녔기 때문에,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그 수양은 땅 위를 다녔다기 보다 오히려 날아다녔던 것처럼 보인다. 아무도 "그를 이 땅 위에서 만질 수 없었다.".
즉 적대자가 없었다. 이 "숫염소" 또는 수사슴은 마치 외뿔 들소처럼 "두 눈 사이에 현저한 뿔" 을 가지고 있었다.
그 숫염소는 힘이 세었고, 그 자신의 강함을 알고 있었다. 그 숫염소는 자신을 모든 그의 이웃 나라들의 호적수라고 생각하였다. 알렉산더 대왕은 너무도 빨리, 그리고 불같이 정복했기 때문에, 어뗜 왕국도 그를 대적할 용기가 없었고, 승리에 들뜬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의 진군을 막을수 없었다. 6년만에 알렉산더 는 당시에 알려진 온 세계의 가장 큰 부분을 점령했다.
그를 "현저한 뿔" 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알렉산더의 이름은 이
세계가 체험했던 전쟁 중에서 가장 위대한 지휘관의 하나로서 역사에 지금까지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승리와 업적은 여전히 독창적인 것이다.
이 "숫염소" 는 "두 개의 뿔을 가지고 있는 수양에게로" 왔다.
(6절 그것이 두 뿔 가진 숫양 곧 내가 본 바 강 가에 섰던 양에게로 나아가되 분노한 힘으로 그것에게로 달려가더니).
알렉산더 대왕은 불과 3만 명의 군대와 5천 마리의 말로 구성된 바사를 공격하였다. 그가 "쏜살같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바사는 놀랐다.
그는 "그 수양에게로 다가갔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의 군대를 이끌고 바사의 황제 다리오 코도만누스(Darius Coolomannus)에게 갔다.
그는 "더욱 성내어 그 수양을 쳤다".
(7절 내가 본즉 그것이 숫양에게로 가까이 나아가서는 더욱 성내어 그 숫양을 쳐서 그 두 뿔을 꺾으나 숫양에게는 그것을 대적할 힘이 없으므로 그것이 숫양을 땅에 엎드러뜨리고 짓밟았으나 숫양을 그 손에서 벗어나게 할 자가 없었더라).
알렉산더 대왕이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다리오를 대항하여 전쟁을 한 것은 가장 잔인한 폭력이었다.
다리오가 대군을 끌어왔지만, 그들은 숙련되지 않았던 고로, 상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알렉산더는 다리오에게 너무 힘겨운 상대였다. 그는 "그를 쳐, 땅에 엎드러지게 하고, 짓 밟았다". (우리 성경과 다소 다름).
혹자는 이 말이 알렉산더가 다리오와의 전투에서 세 번씩이나 승리를 거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즉 그라니쿠스(Granicus)와 이수스(Issus) 그리고 아르벨라(Arbela)에서의 전투에서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마침내 전멸시키라 했다. 마지막 전투에서는 60만 명의 적군을 살해하였다. 그래서 알렉산더는 전바사 제국의 절대군주가 되었다.
알렉산더는 "두 개의 뿔," 즉 메데와 바사 제국을 전멸시킨 것이다.
"자기 앞에 있던 모든 것" (4절)을 파괴했던 수양 자신이 이제는 똑 같이 파괴되었다.
다리오는 알렉산더 앞에 "설 힘도" 가지지 못했으며 알렉산더의 "손에서 그를 구원해 줄 "우방이나 동맹군도 없었다.
국력을 악용하는 나라들, 또 그들을 대적할 수 있는 나라가 아무도 없다하여 나쁜 일을 행하는 나라들은 결국 세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사 33:1 너 학대를 당하지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이고도 속임을 당하지 아니하는 자여 화 있을진저 네가 학대하기를 그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
4. 다니엘은 숫염소가 이로 인하여 대단히 강대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일을 수행한 그 "큰 뿔이 꺾였다".
(8절 숫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
알렉산더는 그가 전쟁을 시작했을 때, 약 20세 가량의 청년이었다. 알렉산더가 26세 때, 다리오를 정복하였고, 전 바사 제국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32세 혹은 33세가 되었을 때, 가장 강했을 때에, 갑자기 쓰러졌다.
알렉산더는 명예스럽게 전투하다가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나친 술 때문에, 혹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독살당해 죽은 것이다.
알렉산더는 자기가 그토록 애써 얻은 바를 물려 줄 자식 하나 남기지 않았다. 다만 세계적인 권력의 헛된 기념비만 남겼을 뿐이다.
그런 것은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없었다.
5. 다니엘은 이 나라가 네 부분으로 나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커다란 한 개의 뿔 대신에 "네 개의 현저한 뿔들,", 즉 알렉산더가 그의 정부지를 나누어 준 네 명의 장군들이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그가 너무도 많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던 고로, 넷이 나누어도 각각 충분했다.
이 "네 개의 현저한 뿔들" 은 "하늘의 네 방향" 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표범(7:6) "네 머리" 와 같았다.
(7: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권세를 받았더라)
즉 수리아와 애굽, 소아시아와 희랍이다. 수리아는 "동편" 에 있었고, 희랍은 "서편" 에 소아시아는 "북쪽" 에 그리고 "애굽" 은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부요함을 쌓아 올리는 사람들은 누가 그 부를 거둘는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 낸 부가 누구의 것이 될 것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6. 다니엘은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에 대한 박해자가 되는 하나의 "작은 뿔" 을 보았고, 그리고 이 작은 뿔은 다니엘에게 주어진 환상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이었다.
이후에서도 마찬가지다(Antiochus Epiphanes 그 자신이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 곧 "유명한 자" 였다는 사실에 의견을 같이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안티오커스 에파마네스(Anitochus Epimanes) - 즉 "광포한 자" 라 불렀다.
그가 본문에서는(7:8 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작은 뿔" 이라고 불리운다. 왜냐하면 그는 본래가 미천한 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왕좌와는 거리가 먼 자였다. 노예의 기질의 사람이었으며, 제왕으로서의 자질을 갖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때 로마의 포로로서 인질당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탈출한 후, 형님들이 살아 있었으나 막내인 그가 나라를 차지했다. 그는 놀랄 만큼 멀리 "남쪽을 향해" 세력을 넓혔으며, 애굽을 정복하였다.
또한 "동편으로도" 세력 확대, 바사와 아르메니아를 침략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유대인들에게 행했던 악한 행동이다.
어떤 피해인지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서적 용어를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이전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겐 그들 자신과 자녀들을 고통이 닥쳐오기 전에 지킬 수 있도록 일깨워졌으리라.
(1) 그는 "영화로운 땅" 에 대적하였다.
그 영화로운 땅은 이스라엘 땅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모든 나라들의 영광" 이었으며, 인간의 삶의 모든 기쁨과 열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그 땅은 하나님의 현존의 상징이며, 하나님의 계시로 축복받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 땅은 "땅의 기쁨" 이며 "터가 아름다운" 시온산이었다.
(시 48:2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
그 땅의 영화는 이스라엘의 영광과 위로를 가져올 메시야가 거기에서 태어나기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있다.
하나님이 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곳이 영화로운 땅임을 명심하자. 참으로 그곳은 "여기가 좋사오니" 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다.
(2) 그는 "하늘 군대," 즉 하나님의 백성, 하늘의 왕국인 교회에 대적하여 싸웠다.
위로부터 태어난 하늘의 시민인 성도들, 즉 어느 면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천사처럼 행하는 성도들이 "하늘 군대" 라고 불리움은 당연지사이다.
혹은 성막에서 봉사하기 위해 고용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바로 이 "하늘 군대" 였으리라.
안티오커스는 이 하늘 군대들에게 대적하였다. 그는 "하늘 군대에 미칠 만큼 커졌다".
그들을 무시하고 대적한 것이다.
(3) 그는 "그 하늘 군대와 별들 가운데 얼마를 땅에 떨어뜨리고 짓밟았다".
교회와 국가 안에서 가장 탁월한 사람들과 당대의 타오르는 빛이었던 사람들 중 얼마에게 그는 자기 우상들에게 순응할 것을 강요하였고, 또 살해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그들을 끌어와서 유린하였다.
마치 선량한 늙은 엘르아살과 그 "7 형제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려고 잔인한 고문을 당해 죽은 것과 같다(마카비하 6:7). 이로써 그는 하늘을 모욕하고, "그의 왕좌를 하나님의 별들보다 높이 올렸다".
(사 14: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4) 그는 "그 군대의 방백(주재)까지도 대적하였다".
그는 대제사장 오니아스( onias)를 대적하여 그의 직위를 빼앗았다. 또는 차라리 하나님 자신을 대적하였다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옛부터 계신 이스라엘의 왕이시요, 영원토록 시온의 왕을 다스리며, 자기의 군대를 거스리고 친히 전쟁하시는 분이시다.
안티오커스는 바로 그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었다. 바로 왕처럼 안티오커스도 "누가 여호와이냐?고 말했다.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는 자는 하나님 자신을 박해하는 것임을 주목하자.
(5) 안티오커스는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제하여 버렸다".
하나님이 그의 영광을 위해서 바치도록 지정한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양도 안티오커스는 금지하였다. 분명히 그는 다른 모든 희생 제사도 금하여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만 "매일의 희생 제사" 만이 언급되어 있다. 그것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큰 손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의 희생 제사를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과 끊임없는 영적 교제를 지켰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의 매일의 희생제사, 그리고 아침과 저녁의 예배가 그들의 매일의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6) 안티오커스는 "그의 성소를 헐어 버렸다".
그는 성전을 태우거나 없애버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헐고, 모독하였다. 그 자리를 올림프스의 쥬피터 성전으로 만들어, 그의 신상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진리를 땅에 던져 버렸다." 율법책, 즉 진리의 말씀을 유린하였고, 찢어 태워버린 것이다.
이런 행동이 저 사악한 왕의 행적이었다. 그는 이런 일에 아주 숙련되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일에 성공했던 것이다(누가 생각이나 했으랴?).
안티오커스는 하나님의 오른손이 일으켜 세운 거룩한 종교를 전멸시키는 지경에까지 사태를 밀고 나갔다.
그러나 안티오커스나 어떤 다른 사람들이 이 일로 마치 자기들이 하나님에 대적하여 승리를 얻은 것처럼 자랑스레 생각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이 여기에 지적되어 있다.
[1] 만일 하나님의 안티오커스에게 그런 짓을 허락하시지 않으셨다면, 그는 그 일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위로부터 오는 능력이 아니었으면, 그는 이스라엘을 대적할 힘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능력을 주셨고, 매일의 희생을 제할 수 있는 군대를 주셨다. 하나님의 섭리가 안티오커스 앞에 있는 모든 것을 굴복시킬 힘을 가진 칼을 그의 손에 주셨던 것이다.
교회를 대적하는 교회의 적들의 모든 성공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채찍에 불과한 것이다.
[2]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와 같은 행동을 하도록 분노하게 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범죄 때문이다. 그들의 범죄를 바로잡기 위해서 안티오커스가 이스라엘에게 고통을 주는 일에 고용된 것이다.
영화로운 땅과 모든 거룩한 것들이 황폐하게 될 때, 죄가 바로 그러한 모든 슬픔의 초래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이 인식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주목하자.
"야곱으로 탈취를 당케 하신 자가 누구냐?
우리가 범죄한 여호와가 아니시나?".
(사 42:24 야곱이 탈취를 당하게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약탈자들에게 넘기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그들이 그의 길로 다니기를 원하지 아니하며 그의 교훈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포로(이때 그들은 우상 숭배의 죄를 돌이켰다)이후의 유대인이 범한 가장 큰 죄는 성물(聖物) 모독이었다.
마치 여호와의 전이 더러운 것인 것처럼 그들은 희생 제물로서 "불구가 된 것" 과 "찢어진 것" 을 드렸다.
(말 1:7,8 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볼 수 있다. 또한 말 2:1,8 에서 타락한 제사장들도 볼 수 있다).
(말 1:7-8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말 2:1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8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은 매일의 제사를 제하여 버리고, 거룩한 곳을 짓밟아버리기 위해서 안티오커스를 보내셨던 것이다.
7. 다니엘은 이 재난의 때가 "언제" 올 것인지에 대해서가 아니라, "얼마나" 그 재난이 계속도리 것인지에 대해서 들었다.
그들에게는 "얼마나 오래일지를 말해 줄 예언자들" 이 더 이상 없었다
(시 74:9 은 이 비극스런 날을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이 예언을 통해 그들은 때가 오면 자기들이 구제받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그 때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
(13절 내가 들은즉 한 거룩한 이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이가 그 말하는 이에게 묻되 환상에 나타난 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준 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1] 누가 그 질문을 제기하는가?
"나는 한 거룩한 자가 이런 취지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때 "또 다른 한 거룩한 자" 가 그를 뒤따랐다.
"오! 이 재난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천사들이 여기서는 "거룩한 자" (성도)라고 불리운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룩한 자들".
(4:13 내가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 가운데에 또 본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곧 "거룩한 무리들"이기 때문이다.
(유 14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천사들도 교회의 일에 관심을 기울인다. 또 교회의 일을 묻는다.
여기서도 한 천사는 그 사건에 대해서 말했고, 또 다른 천사는 그것에 대해서 질문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품에 기대어 있던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물어보라는 질문을 베드로에게서 받았다.
(요 13:23-24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24)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2] 누구에게 그 질문이 던져졌는가?
그는 "그 말을 한 팔모니(Palmoni "어떤 성도" 란 듯)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어떤 성도" (한글 성경에는 그저 "다른 성도")가 다른 천사보다 더 이해력이 좋은 우월한 천사라고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영원한 말씀,"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도 한다. 그는 "알려지지 않은 자" 였다.
팔모니(Palmoni)란 말은 아마도 펠론 알모니(Pelon Almoni)의 결합어인 것 같다. 이 단어는 "어떤 사람" "어떤 장소" 를 의미하는 것이다.
(룻 4:1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왕하 6:8 그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며 그의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그리스도는 아직 "이름이 없는 분" 이시었다. "그러므로 너는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이 비밀(기묘자)인 것을 모르느냐?".
(삿 13:18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많은 사람들은 그는 "비밀들의 숫자" 이라고 번역한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아무 것도 숨겨질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들을 그의 이름은 "놀라운 숫자" 라고 번역한다. 그는 "놀라운 자" (기본자)이시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자 한다면,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지식과 지혜의 모든 보고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들로부터 감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3)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되었다.
"매일의 희생 제사에 대한 이 환상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즉 금지령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그와 같은 혹독한 금지령에 의해서 언제까지 영화로운 땅이 영화롭지 못한 땅으로 있게 될 것인가?
"망하게 하는 죄악" 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모든 거룩한 것을 타락시키는 그 엄청난 범죄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얼마나 오랫동안 쥬피터의 신상이 성전 안에 세워져 있을 것인가?
얼마나 오랫동안 거룩한 사람과 거룩한 곳이 압제자의 "발 아래에 짓밟힐 것인가?".
천사들도 지상에 있는 교회의 번영에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그리고 천사들은 교회의 황폐가 종지부를 찍게 되기를 열망한다.
천사들은 다니엘을 만족케 하기 위해서, 이 재난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를 물었다. 이 질문은 그 재난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을 것임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악인들의 막대기(권세)가" 비록 의인들의 땅에 올지라도, "의인들의 땅에서 행세하지는 못할 것이다".
(시 125:3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은 말로써 그의 고통을 위로할 수 있었다. "내게 관한 일이 끝나가도다.".
(눅 22: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교회도 고난을 당하면 이렇게 위로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아는 일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대비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2)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주어진다.
(14절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거룩한 천사들에게 지시하신다. 왜냐하면 그들 천사들은 우리들의 동역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답변이 다니엘에게 주어졌다.
그 이유는 다니엘을 위해서 질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내게 말하였다. "하나님은 때때로 그의 백성들에게 그들의 질문에 답변하심으로써 은혜를 베푸신다.
어떻게 응답하심으로써 은혜를 베푸시는지 이제 살펴보자!
[1] 그리스도는 고난이 끝날 것을 그에게 확신시킨다.
그 고난은 "2천 3백 주야" 계속될 것이다.
2천 3백 일은 6년 3개월하고 약 18일이 된다.
그것은 셀류코스 왕국의 142년째, 6월 6일(조세푸스의 연대 추정에 따른다)에 대제사장이었던 메델라우스(Menelaus)에 의해서 초래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으로부터, 성전 숙청과 종교 재흥이 있었던 148년 9월 25일 (마카비상 4:52)까지가 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고난의 시간을 날수로 계산하신다. 그것은 그들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은 고난 받으시기 때문이다.
(계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너희가 십 일동안 환난을 당하리라".
(2) 그리스도는 다니엘에게 앞으로 다가올 좋은 날을 확신시키신다.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성소의 정결함은 어떤 백성에게나 행복한 상징이라는 점을 주목하자.
사람이 개혁되기 시작한 때면, 곧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비록 하나님이 그의 백성의 타락 때문에 징계로써 잠시 동안 그의 성소를 더럽히도록 허락하지만, 질투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곧바로 성소를 청결케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교회를 청결케 하시기 위해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교회가 자신에게 흠 없이 나타나게 하실 것이다.
*메튜헨리의 주석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