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이 만일 여호와께 패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두 지파 반의 해명
성 경: [수 22:20-23] 세라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에 대하여 범죄하므로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였었느냐 그 죄악으로 망한 자가 그 사람뿐이 아니었느니라
21)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이스라엘 천만인의 두령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22)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께 패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는 오늘날 우리를 구원치 마시옵소서
23) 우리가 단을 쌓은 것이 돌이켜 여호와를 좇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혹시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혹시 화목제물을 드리려 함이어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
[수 22:20] 세라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에 대하여 범죄하므로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였었느냐 그 죄악으로 망한 자가 그 사람뿐이 아니었느니라
▶ 제단으로 인한 분쟁 아간이 바친 물건에 대하여 범죄하므로 - 가나안 땅의 첫 열매로 여리고 성은 완전 진멸되어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져야만 했다.
그런데 '아간'(Achan)은 여호와의 지엄하신 이 명령을 무시하고
여리고 성의 전리품을 취함으로써, 아이 성 전투의 패배라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이 사건은 한 개인의 범죄가 전체 이스라엘 공동체에 미치는 엄청난 결과를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 바친 물건 - (레 27:28 오직 여호와께 아주 바친 그 물건은 사람이든지 생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7:1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 문구는 2절부터 전개되는 아이(Ai) 성 공격이 실패한 원인에 대한 설명으로서, 곧 그 원인이 하나님께 '바친 물건'(헤렘)으로 인한 범죄임을 밝혀주고 있다.
여리고 성은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가나안의 첫 열매 된 성으로서,
(6:17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
그 바친 물건을 취하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화를 당하게 된다는 경고도 이미 주어져 있었다.
(6:18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하나님의 엄한 경고를 무시한 것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 패역한 하나님께 범죄한 행위였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범죄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알'은 대체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하는 범죄 행위를 뜻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Hamilton, Keil),
따라서 이 문구에서 '하나님'이란 말이 나오지 않아도 아간의 범죄가 곧 하나님께 대한 범죄임을 알게 해준다. (Woudstra).
(11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20절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여차 여차히 행하였나이다)
▶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였었느냐 - 이는 아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으로, 이스라엘이 아이 성 공격에 실패하고 오히려 36명이 목숨을 잃게 된 사건을 가리키는 말이다.
(7:5 아이 사람이 그들의 삼십육 인쯤 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와서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마시우스(Masius)는 이 비느하스의 논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즉 "아간이 혼자서 범죄했는데도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무섭게 임했는데,
이제 이처럼 두 지파 반이란 다수가 범죄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과연 어떠하리라는 것을
너희는 생각해 보았는가"(keil & Delitzsch, vol. 2,p. 220).
진상 조사단이 예로 든 브올의 사건 및 아간의 사건은 둘 다 범죄의 결과가
범죄한 자신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미쳤다는 의미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수 22:21]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이스라엘 천만인의 두령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
두 지파 반의 답변은 매우 논리 정연하고 유순했으며 차분했다.
그들은 조금도 당황하거나 아홉 지파 반의 충고 및 경고에 대하여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입장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Matthew Henry).
▶ 천만인의 두령 - 여기서 '천만인'(千萬人)에 해당하는 '알레프'는
'1000'을 의미하는 '앨레프'의 복수형으로, 문자 그대로 '천'을 뜻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굉장히 많은 숫자'를 뜻한다.
그리고 '두령'에 해당하는 '로쉬'는 대부분 '족장'으로 변역되는데,
이들은 곧 각 지파 장로들의 모임을 대표하는 자를 가리킨다.
(14:1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취한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 아래와 같으니라;
19:51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실로에서 회막 문 여호와 앞에서 제비 뽑아 나눈 기업이 이러하니라 이에 땅 나누는 일이 마쳤더라;
21:1 때에 레위 사람의 족장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처럼 각 지파의 방백들이 이스라엘 천만인의 두령이라는 사실은 그들이 이스라엘 내에서 여러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족장들임을 시사해 준다.
[수 22:22]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께 패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는 오늘날 우리를 구원치 마시옵소서
▶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 여기에는 하나님을 일컫는
세 다른 명칭 곧
'엘'(전능하신 자),
'엘로힘'(하나님),
'여호와'가 사용되고 있다.
흔히 '엘'은 능력이 많고 강하신 하나님을 뜻하며,
'엘로힘'은 구약에서 약2000회 가량 사용된 하나님에 대한 이름으로
전능하시고 경외하여야 할 하나님을 뜻하며,
'여호와'는 영원토록 자존(自存)하사 언약에 신실하신 구속주 하나님을 뜻한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세 가지 신(神) 명칭을 결합시키고,
또한 그것을 두 번 씩이나 반복한 것은 아홉 지파반이 생각하는 것처럼
두 지파 반 이 결코 하나님외에 다른 우상을 섬기려고
단(壇)을 쌓은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 아시나니(요데아) - 히브리 현재형으로서, 곧 자신들의 순수한 의도를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 그분께서는 '지금 알고 계신다'는 뜻이다.
따라서 두 지파 반은 지금 여호와를 증인(證人)으로 채택한 셈이다(Pulpit Commentary).
▶ 주는 오늘날 우리를 구원치 마시옵소서 - 혹자는 두 지파 반의 이 말을 비느하스에게 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Rosenmuller).
그러나 두 지파 반의 이 말은 하나님께 대하여한 말로 이해하여야 한다.
즉 자신들이 지금 하나님 여호와를 증인으로 채택한 만큼,
만일 추호의 거짓말이라도 개입된다면 자신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면할 길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두 지파 반의 경건한 신전 의식(神前意識)을 반영한 말인데,
이어 나오는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23절)란 말과
대구(對句)가 된다고 볼 수 있다(Lias).
한편 역설적으로 이 말은 만일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서 파멸당하고 말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Knobel).
[수 22:23] 우리가 단을 쌓은 것이 돌이켜 여호와를 좇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혹시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혹시 화목제물을 드리려 함이어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
▶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혹시 화목 제물을 드리려 함이거든 - 즉 '실로(Shiloh, )에 안치된 여호아의 제단을 무시하고,
(18: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 회막을 세웠으니 그 땅이 이미 그들의 앞에 돌아와 복종하였음이나)
또 다른 제사용 제단을 쌓아 그곳에서 자신들끼리 제사를 드리려고 계획했다면
질투의 하나님 여호와, 그분께서 진노하사 친히 벌을 내리실 것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