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고로 그들을 치사
벧세메스인들이 당한 재앙
성 경: [삼상 6:19-21]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고로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인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20) 벧세메스 사람들이 가로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뉘게로 가시게 할꼬 하고
21) 사자들을 기랏여아림 거민에게 보내어 가로되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
[삼상 6:19]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고로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인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고로 -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보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범하는 일이기 때문에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민 4:5-6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들어가서 간 막는 장을 걷어 증거궤를 덮고
6) 그 위에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15-20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지니 죽을까 하노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
16)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의 맡을 것은 등유와 분향할 향품과 항상 드리는 소제물과 관유며 또 장막의 전체와 그 중에 있는 모든 것과 성소와 그 모든 기구니라
17) 여호와께서 또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18) 너희는 고핫 족속의 지파를 레위인 중에서 끊어지게 말지니
19) 그들이 지성물에 접근할 때에 그 생명을 보존하고 죽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너희는 이같이 하여 아론과 그 아들들이 들어가서 각 사람에게 그 할 일과 그 멜 것을 지휘할지니라
20) 그들은 잠시라도 들어가서 성소를 보지 말 것은 죽을까 함이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벧세메스 사람들이 그것의 내부를 들여다 본 것은
사악한 세속적 호기심 때문이었으며, 그 같은 호기심은
결국 하나님을 만홀히 여긴 결과였다.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 궤를 전리품 취급한 블레셋을 징벌하셨듯이
(5:1-2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2)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당에 들어가서 다곤의 곁에 두었더니),
그 궤를 단순히 세속적 구경거리로 삼은 벧세메스 사람들도 엄히 징벌하신 것이다.
▶ (오만) 칠십 인을 죽이신지라 - 여기서 '오만'이라는 숫자는
필사자의 실수에서 기인한 듯하다.
즉 숫자 표기를 종종 상이한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내는
고대의 숫자 표기 방식에 따라
'칠십 명'(쉬베임 이쉬)을 달리 설명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생겨
'오만'이라는 말이 삽입된 것 같다.
어쩌면 '아인'(70)을 '눈'(50,000)으로 잘못 보았을지도 모른다(Kennicott).
아무튼 후일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의 인구가
최고로 번성했을 때에도 7만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여기의 '오만 칠십 인'은 그냥 '칠십 인'으로 봄이 타당하다(Keil, Smith, Fay).
이런 점에서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도
'칠십 인'으로 말하고 있다(Antiquities, vi, 1,4).
그리고 히브리 여러 사본들에서도 '오만'이란 숫자는 빠져 있다.
▶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 하나님의 징계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벧세메스 사람 '칠십 인'은 한 가정의 가장(家長) 등,
중요한 위치에 있던 인물들이었을 것이므로,
그 두려운 사건은 각 지역 주민들에게 큰 충격이 되고도 남았다.
그러나 이러한 징계를 통해 모든 사람들은
그 누구도 범할 수 없는 '여호와의 거룩성'을 깊이 깨달아야만 했다.
[삼상 6:20] 벧세메스 사람들이 가로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뉘게로 가시게 할꼬 하고
▶ 누가 능히 서리요 - 여기서 '서리요'(아마드)는
원래 '서다', '머물다', '시다' 등의 의미이다.
특별히 이 단어는 성경에서
'존경하는 자세로 어떤 특별한 대상 앞에 서있는 것',
곧 '경배' 혹은 '숭배'의 의미로 사용된다.
(왕상 1:2 그 신복들이 왕께 고하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저로 왕을 모셔 봉양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17: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18:15 엘리야가 이르되 내가 모시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오늘날 아합에게 보이리라;
왕하 3:14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렘 40:10 나는 미스바에 거하여 우리에게로 오는 갈대아인을 섬기리니 너희는 포도주와 여름 실과와 기름을 모아 그릇에 저축하고 너희의 얻은 성읍들에 거하라 하니라).
따라서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말은 감히 받들어 모실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적 거룩성과
인간의 철저한 부패성을 시인하는 말임에 틀림없다.
▶ 그를 우리에게서 뉘게로 가시게 할꼬 - 법궤를 경솔히 들여다 본 범죄의 대가로
하나님께로부터 엄청난 징계를 받은 벧세메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전과 같은 징계가 또 내려질까 두려워한 나머지
그 궤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려 했다.
따라서 이것은 벧세메스 사람들이
자신들이 징계를 당한 분명한 이유를 모르고 있었으며,
또한 그들에게 언약궤와 관련하여 미신적 신앙이 다분히 있었음을 보여준다.
(4:3 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5:8 이에 보내어 블레셋 사람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가로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할꼬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삼상 6:21] 사자들을 기랏여아림 거민에게 보내어 가로되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
▶ 기럇여아림 거민에게 보내어 - 여기의 '기럇여아림'(Kirjath-jearim)은
'숲의 성읍'이란 뜻으로서 오늘날의 위치는
'쿠르엣 엘 에납'(Kuryet el Enab)으로 추정된다(Robinson).
당시 이 성읍은 벧세메스 북동쪽 약 145km,
예루살렘 북서쪽 약 13km지점에 위치하였다.
그러면 벧세메스 사람들이 다른 성읍들을 제치고
하필이면 왜 기럇여아림으로 언약궤를 보내려 했을까?
그것은 그 당시 기럇여아림의 지정학적(地政學的) 위치를
살펴봄으로써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 당시 기럇여아림이나 벧세메스는 모두 블레셋의
정치적 영향권 아래 놓여 있었다(Blenkinsopp).
이 사실은 위의 두 성읍과 인근한 르바임 골짜기를 후에 다윗이
블레셋 족속들로부터 회복시켰다는 성경의 언급을 통해서 분명해진다.
(삼하 5:18-25 블레셋 사람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한지라
19)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저희를 내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단정코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20)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저희를 치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칭하니라
21)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 우상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 종자들이 치우니라
22) 블레셋 사람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한지라
23)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온대 가라사대 올라가지 말고 저희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저희를 엄습하되
24)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동작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25)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즉 다윗이 르바임 골짜기를 완전히 수복시키기 전까지 위의 두 성읍은
당시 르바임 골짜기를 점령하고 있었던 블레셋 사람들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같은 사실 때문에 블레셋의 영향권 아래 있었던 벧세메스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하여 마찬가지로 블레셋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던 기럇여아림으로 언약궤를 보내려 했던 것이다.
▶ 너희는 내려와서 - 여기서 '내려와서'라는 말은
벧세메스(Beth - Shemesh)가 해발 약 305m,
그리고 기럇여아림(Kirjath-jearim)이 해발 약 762m라는 점에서,
문자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