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기럇여아림에 안치된 언약궤
성 경: [삼상 7:1-2]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고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삼상 7: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고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 '블레셋에서 돌아온 법궤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성막이 있는 실로(Shiloh)로 옮겨가지 아니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을 고려해 볼 수 있다.
(1) 아벡 전투 결과,
(4:9-11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어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10)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
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블레셋 족속에 의해 당시 실로까지 철저히 파괴되었기 때문이다(Ewald).
(2) 실로성소가 여호와께 더럽혀진 결과 법궤를 빼앗긴 것으로 간주하고,
당시 백성들이 법궤 보관 장소로 실로성소를 기피하였기 때문이다(Keil).
(3) 되도록이면 큰 성읍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곳에
법궤를 보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Hengstenberg).
▶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 - 여기서 '아비나답'(Abinadab)은
레위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이 성읍이 레위인에게 할당된 성읍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렇게 봐야 할 까닭은 다음과 같다.
(1) 사사 시대에는 레위인들이 자신들의 성읍을 이탈하여
다른 지역에서 생활한 경우가 흔했으며
(삿 17:12 미가가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하매 소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거한지라),
(2) 후일 아비나답의 후손들이 언약궤를 옮기는 일에 공식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삼하 6:3 저희가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한편 '산에 사는'(바기아)이란 말은
직역하면 '산지에 있는'(in the hill, KJV) 또는
'산지 위에'(on the hill, NIV)란 뜻인데,
이는 곧 아비나답의 집이 기럇여아림 성읍의 교외
산지에 위치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 들여 놓고 - 아비나답의 집은 언약궤를 보관하기에 적당했던 것 같다.
그 까닭은 그의 집이 기럇여아림의 교외 고지에 위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 그 아들 엘리아살 - '엘리아살'(Eleazzr)은 '하나님은 도우시는 자'란 뜻으로,
이 사람은 아론의 아들로서 아론의 뒤를 이어
차기 대제사장이 된 엘르아살(Eleazzr)과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이다.
(출 6:23 아론이 암미나답의 딸 나손의 누이 엘리세바를 아내로 취하였고 그가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낳았으며;
민 20:25-28 너는 아론과 그 아들 엘르아살을 데리고 호르 산에 올라
26) 아론의 옷을 벗겨 그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라 아론은 거기서 죽어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라
27) 모세가 여호와의 명을 좇아 그들과 함께 회중의 목전에서 호르 산에 오르니라
28) 모세가 아론의 옷을 벗겨 그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매 아론이 그 산꼭대기에서 죽으니라 모세와 엘르아살이 산에서 내려오니)
그런데 이러한 이름의 소유자는 위의 두 사람이외에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아비나답의 아들 엘리아살이 레위 지파의 후예임을 은연중 시사한다.
▶ 거룩히 구별하여 - 이 말은 제사장을 임직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출 28:3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41 너는 그것들로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한 그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 그들로 제사장 직분을 내게 행하게 할지며).
따라서 이러한 표현은 엘리아살이 혈통적으로는
제사장 가문의 후예가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당시의 특별한 상황은 제사장적 직분을 감당할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따라서 그가 비록 제사장 가문의 후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레위 지파였으므로 그곳 주민들은 그를 제사장으로 세운 듯하다.
한편 성경은 엘리아살이 어떤 권위에 의해,
또한 어떤 방식에 따라 제사장으로 구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 제사장적 신분으로 거룩히 구별된 엘리아살이
구체적으로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지켰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런데 아벡 전투로 말미암은 실로 파괴 이후
공식적인 예배나 제사는 일단 중지된 듯하다.
따라서 엘리아살의 주임무는 예배나 제사 행위 보다도
법궤를 안전하고도 정결하게 잘 보관하고 건사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헹스텐베르그(Hengstenberg)의 언급은 퍽 인상적이다.
"장차 법궤가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다시 드러낼 때까지(마치 충실한 묘지기인 양)
지킨 것이다".(J.P. Lange, 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
[삼상 7: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 여기서
'이십 년 동안'은 다윗에 의하여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완전히 옮겨진 때까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궤를 빼앗겼던 아벡 전투(혹은 에벤에셀 전투)는
B.C. 1075년에 있었고,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간 때는
그가 예루살렘에서 통치를 시작한 직후인 적어도
B.C. 1003년 이후일 것이기 때문이다(Leon Wood).
따라서 여기의 '이십 년 동안'은
사무엘이 최초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회개를 촉구한 때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
(3절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비록 하나님의 언약궤는 일찍이 이스라엘로 돌아왔지만
(6:14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소를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20년이란 기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는 이스라엘이 블레셋 족속들에 의하여
정치적으로 여전히 압력을 받고 있었으며,
(4:10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
또한 언약궤는 비록 이스라엘 땅이긴 하지만 여전히 블레셋의
깊숙한 영향권 아래 있는 기럇여아림 땅에 보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6:21 사자들을 기랏여아림 거민에게 보내어 가로되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
▶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 여기서 '사모하다'(나하)란 말은
본래 '크게 울다', '부르짖다'란 뜻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이 말은 흔히 신세를 몹시 한탄하거나
과거의 잘못을 깊게 뉘우쳐 크게 울면서 부르짖는 행위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
(렘 9:10 내가 산들을 위하여 곡하며 부르짖으며 광야 목장을 위하여 슬퍼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불에 탔으므로 지나는 자가 없으며 거기서 가축의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며 공중의 새도 짐승도 다 도망하여 없어졌음이니라;
31:1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겔 32:18 인자야 애굽의 무리를 애곡하고 그와 유명한 나라 여자들을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에 던지며;
암 5:16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오호라 오호라 하겠으며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꾼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
미 2:4 그 때에 너희에게 대하여 풍사를 지으며 슬픈 애가를 불러 이르기를 우리가 온전히 망하게 되었도다 그가 내 백성의 산업을 옮겨 내게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 밭을 나누어 패역자에게 주시는도다 하리니).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 활동을
이방 족속 블레셋에 의해 오랜 기간 동안 강제로 억제 당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 나타날 수 밖에 없었던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 깃들어 있는 사무엘의
분투적인 노력과 활동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즉 일찍이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명망이 높았던 사무엘이
(3:19-20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20)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이 오랜 시기 동안 잠자코 있었다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다.
비록 성경은 이 점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러 일의 결과를 통해 다음과 같이 추측할 수 있다.
(1) 아벡 전투의 결과로 말미암은 실로 성소 파괴 이후,
아마도 사무엘은 성막을 놉(Nob)으로 이전하는 일에 깊이 관여 했을 것이다.
(21:1-9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며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2)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바와 네게 명한 바 일의 아무 것이라도 사람에게 알게 하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여차여차한 곳으로 약정하였나이다
3)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4)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항용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부녀를 가까이만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5)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부녀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나의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날 그들의 그릇이 성결치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6)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낸 것이더라
7)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8)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병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9) 제사장이 가로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 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다윗이 가로되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2) 대제사장 엘리와 그의 두 아들 사망 이후,
사무엘은 실질적인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 지도자로서
사회 질서를 바로 잡고 타락된 제사 예식의 기강을 수립하는 일에 매진하였을 것이다.
(3) 블레셋의 위협을 무릅쓰고 사무엘은
이스라엘 곳곳을 돌며 여호와 신앙을 고취시키고
죄의 회개를 부르짖는 등 신앙각성 운동을 전개하였을 것이다.
(4) 또한 사무엘은 종교 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제사장과 레위인을 모세 율법으로 바로 세우고,
아울러 선지 학교를 창설하여 젊은 인재들을 육성했던 것 같다.
(Leon Wood, A Survey of Israel's History; Pulpit Comment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