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밧세바의 초생자(初生子)의 죽음
성 경: [삼하 12:15-23]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17)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곁에 이르러 다윗을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저희로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18) 이레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복들이 아이의 죽은 것을 왕에게 고하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의 죽은 것을 고할 수 있으랴 왕이 훼상하시리로다
19) 다윗이 그 신복들의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깨닫고 그 신복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
21) 신복들이 왕께 묻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찜이니이까
22) 가로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23)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삼하 12: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 14절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징계가
(14 그러나 이 행동으로 인하여 왕이 주의 원수들에게 신성 모독의 큰 기회를 주었으니 왕에게 태어난 아이 또한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니라)
이제 임하였음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그런데 이는 보다 광의적(廣義的)으로 이해할 때
10-13절에서 예고된 다윗가의 재난이 이제 시작되고 있음을
암시해 주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10-13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족속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이제 그런 까닭에 칼이 네 집에서 결코 떠나지 아니하리라.
11)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네 집에서 너를 대적하는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아내들을 네 눈앞에서 가져다가 네 이웃에게 주리니 이 해가 보는 데서 그가 네 아내들과 함께 누우리라.
12) 너는 그 일을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앞에서 해 앞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 하매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주께 죄를 지었노라, 하거늘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주께서도 왕의 죄를 치우셨으므로 왕이 죽지 아니하리이다)
[삼하 12: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
여기서 '안에 들어가서'란 말은
다윗이 성소(sanctuary)에 들어갔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 철저한 기도를 드리기 위해 조그마한
골방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Lange, Keil, Pulpit Commentary).
(마 6:6 오직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으로 들어가 네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리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그런데 이처럼 다윗이 골방에서 7일 동안 금식 기도를 드린 것은
(18절 일곱째 날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고하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보라, 아이가 아직 살아 있을 때에 우리가 왕에게 말하여도 왕이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아니하셨거늘 아이가 죽은 것을 우리가 고하면 그분께서 얼마나 자신을 괴롭게 하리요? 하였기 때문이라)
자기의 죄 때문에 죽어가는 아이를
(14-15절 그러나 이 행동으로 인하여 왕이 주의 원수들에게 신성 모독의 큰 기회를 주었으니 왕에게 태어난 아이 또한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니라.
15) 나단이 떠나서 자기 집으로 가니라. 우리야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주께서 치시매 아이가 심히 앓더라)
하나님의 은총에 호소하여 살리기 위함이었다.
(22절 그가 이르되, 아이가 아직 살아 있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내가 말하기를, 혹시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리요? 하였기 때문이거니와).
특히 본 구절에서 다윗이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 있었다'는 표현은
그가 하나님께 구할 자격이 없으므로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신 은총만을
기다린 애절한 형편을 잘 보여 준다.
[삼하 12:17]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곁에 이르러 다윗을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저희로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 그 집의 늙은 자들 - 이에 대해 혹자는 이들이 다윗의 숙부들과
나이 많은 형들이었다고 주장한다(Ewald).
그러나 이는 확실한 근거없는 추측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여기서 '늙은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자켄'은
성경에서 '장로'로도 번역된 말로서
(창 50:7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묻으러 올라가니 파라오의 모든 신하들과 파라오의 집 장로들과 이집트 땅의 모든 장로들과;
삼상 4:3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이르되,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치셨느냐? 우리가 실로에서 주의 언약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오고 그것이 우리 가운데 올 때에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게 하자, 하니라;
왕상 8:1 그때에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지파들의 모든 우두머리들 곧 이스라엘 자손의 아버지들의 우두머리들을 예루살렘에 있던 솔로몬 왕에게로 모으니 이것은 그들이 주의 언약 궤를 다윗의 도시 곧 시온에서 가져오게 하려 함이더라,
3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이르매 제사장들이 궤를 들어 올리니라)
'가장 나이 많고 신뢰받는 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창 24:2 아브라함이 자기 집에서 가장 나이 많은 종 곧 자기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는 종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네 손을 내 넓적다리 밑에 넣으라).
따라서 여기서 이 말은 다윗의 신하 중 다윗에게 가장 신뢰받는
원로급(元老級) 인사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Lange, Clerius, Keil).
[삼하 12:18] 이레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복들이 아이의 죽은 것을 왕에게 고하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의 죽은 것을 고할 수 있으랴 왕이 훼상하시리로다
▶ 왕이 훼상하시리로다 - '훼상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사 라아' 는
직역하면, '악을 행하다'이다. 따라서 이 말은 단순히 다윗 왕이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Lange),
한걸음 더 나아가 그가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어떤 행동을 하는 것까지도 의미한다(Keil, Hertberg).
[삼하 12:19-20] 다윗이 그 신복들의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깨닫고 그 신복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
▶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 -
다윗의 신복들의 염려와는
(17-18절 그의 집 장로들이 일어나 그에게 가서 땅에서 그를 일으키려 하되 그가 원치 아니하고 그들과 함께 빵도 먹지 아니하더라.
18) 일곱째 날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고하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보라, 아이가 아직 살아 있을 때에 우리가 왕에게 말하여도 왕이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아니하셨거늘 아이가 죽은 것을 우리가 고하면 그분께서 얼마나 자신을 괴롭게 하리요? 하였기 때문이라)
정반대로 다윗이 아이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동요도 없이
오히려 기운을 차리는 장면이다.
따라서 이러한 다윗 왕의 의외적인 행동은
학자들간에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한데 대체로
다음과 같은 주장들이 제시되고 있다.
(1) 혹자는 다윗왕이 애초부터 아이를 위해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참회하기 위해 기도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이 주장은 다윗 왕이 아이를 위해
기도했다고 한 본장의 분명한 기록과 대치된다.
(16 그러므로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청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더니,
22절 그가 이르되, 아이가 아직 살아 있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내가 말하기를, 혹시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리요? 하였기 때문이거니와).
(2) 또한 혹자는 다윗 왕이 그의 불행을
불굴의 의지로 딛고 일어선 것이라고 해석한다(Hertzberg, Schulz, Buddle).
그러나 이 해석은 다윗왕이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식음(食飮)을 전폐한 채
하나님께 매달린 사실의 의미를 분명하게 보여주지 못한다.
(3) 다윗 왕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겸손하게 그대로 받아들인 신앙적 행동이라고 보는 견해이다(Lange).
즉, 다윗은 지금까지 아이를 위해 금식하고 기도했으나
이제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드러났으니 만큼
죽은 아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주장이다.
이는 본장의 기록과 일치할뿐더러
(22-23절 그가 이르되, 아이가 아직 살아 있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내가 말하기를, 혹시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리요? 하였기 때문이거니와
23) 지금은 그가 죽었으니 어찌 내가 금식하리요? 내가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이후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죽은 아이 대신
솔로몬을 허락하신 사실과도 부합되므로 타당한 견해라 할 수 있다.
(24-25절 다윗이 자기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녀에게로 들어가 그녀와 함께 누우니 그녀가 아들을 낳으매 그가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주께서 그를 사랑하사
25) 대언자 나단의 손으로 보내시매 그가 주로 인하여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니라)
[삼하 12:21-22] 신복들이 왕께 묻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찜이니이까
22) 가로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 다윗이 지금껏
금식 기도한 것은
(16-17절 그러므로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청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더니
17) 그의 집 장로들이 일어나 그에게 가서 땅에서 그를 일으키려 하되 그가 원치 아니하고 그들과 함께 빵도 먹지 아니하더라)
아이를 살리기 위해, 좀 더 정확하게는 아이의 생명을
거두어 가리라 하셨던 하나님의 뜻을
(14절 그러나 이 행동으로 인하여 왕이 주의 원수들에게 신성 모독의 큰 기회를 주었으니 왕에게 태어난 아이 또한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니라)
돌이키고자 하였음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즉 다윗은 자신의 죄 때문에
고통 중에 신음하며 죽어가고 있는 아이를 보고선
(15절 나단이 떠나서 자기 집으로 가니라. 우리야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주께서 치시매 아이가 심히 앓더라)
견딜 수 없는 안타까움과 아픔에 젖어
하나님께 자비를 간구치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삼하 12:23]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 시방은 죽었으니 - 한번 떠난 인간의 생명은 돌이킬 수 없으며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다윗은 죽은 아이에 대해 계속적으로 미련을 가지는 대신
하나님의 최종적 결정에 스스로를 복종시키므로
세상적 욕심을 버린 것이다.
이처럼 비록 범죄하였지만 회개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다윗의 자세는 매우 모범적이다.
즉 다윗은 인간의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음을
확신하므로 이제 자신의 아이의 죽음에 직면하여서도
평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욥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또한 벌거벗은 채 그리로 돌아가리라. 주신 분도 주시요 가져가신 분도 주시니 주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어다, 하고;
시 36:9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으므로 우리가 주의 빛 안에서 빛을 보리이다;
42:8 그러할지라도 주께서 낮에는 자신의 인자하심을 명령하시며 밤에는 그분의 노래가 내게 있으므로 내가 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 이는 자신의 아이가
이제 죽어 행복한 곳에 갔을 것이라고 하는 다윗의 확신이 아니다.
대신 이는 단지 아이가 죽은 자들의 거처인 스올(Sheol)에 들어갔으므로
이제 다윗 자신은 생전에 아이를 만날 수 없고
자신의 사후에나 만날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을 피력한 말이다.
(Lange, Rust, Keil, Clericus).
즉, 구약 시대 당시 히브리인들은 자신들이 죽어서
곧장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세계인 스올로 내려가 거주하게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의 이러한 생각은 천국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가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발전되지 못한 까닭에 형성된 것이었다.
(삼상 2:1-10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주를 기뻐하며 내 뿔이 주 안에서 높여졌도다. 내가 주의 구원을 기뻐하므로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해 크게 열렸나이다.
2) 주와 같이 거룩한 분이 없으니 주 외에는 다른 분이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나이다.
3) 다시는 그와 같이 심히 교만하게 말하지 말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주께서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므로 친히 사람의 행동을 다시는도다.
4) 용사들의 활은 꺾였고 넘어진 자들은 힘으로 띠를 둘렀도다.
5) 풍족하던 자들은 빵을 위해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주리지 않게 되었은즉 이로써 수태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여자는 쇠약하게 되었도다.
6) 주께서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무덤으로 내려가게도 하시고 올라오게도 하시는도다.
7) 주께서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8) 그분께서 가난한 자를 먼지에서 일으키시며 거지를 거름더미에서 들어 올리사 통치자들 중에 앉게 하시고 또 그들이 영광의 왕좌를 상속받게 하시나니 이는 땅의 기둥들이 주의 것이요, 또 그분께서 그것들 위에 세상을 세우셨기 때문이라.
9) 그분께서 자신의 성도들의 발을 지키실 터인즉 사악한 자들은 어둠 속에서 잠잠하게 되리니 이는 아무도 힘으로 이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로다.
10) 주의 대적들은 산산조각 나리로다. 그분께서 하늘에서부터 천둥으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주께서 땅의 끝들을 심판하시고 자신의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신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