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압이 암몬 자손의 왕성 랍바를 쳐서 취하게 되매
랍바 성(城) 정복
성 경: [삼하 12:26-31] 요압이 암몬 자손의 왕성 랍바를 쳐서 취하게 되매
27) 사자를 다윗에게 보내어 가로되 내가 랍바 곧 물들의 성을 쳐서 취하게 되었으니
28) 이제 왕은 남은 군사를 모아 진치고 이 성을 쳐서 취하소서 내가 이 성을 취하면 이 성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까 두려워하나이다
29) 다윗이 모든 군사를 모아 랍바로 가서 쳐서 취하고
30)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있는 면류관을 취하니 그 중량이 한 금 달란트라 다윗이 머리에 쓰니라 다윗이 또 그 성에서 노략한 물건을 무수히 내어오고
31) 그 가운데 백성들을 끌어내어 톱질과 써레질과 도끼질과 벽돌구이를 하게 하니라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을 이같이 하고 다윗과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
[삼하 12:26] 요압이 암몬 자손의 왕성 랍바를 쳐서 취하게 되매 -
랍바 성 함락 사건이 솔로몬의 출생보다
먼저 일어난 사건임은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이다.
(24 다윗이 자기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녀에게로 들어가 그녀와 함께 누우니 그녀가 아들을 낳으매 그가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주께서 그를 사랑하사).
한편, 여기서 '왕성'(the royal city)은 랍바 성을 이루고 있던
두 성중 하나의 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성은 카알(Keil)의 주장처럼
27절의 '물들의 성'(the city of waters)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 둘은 랍바 내의 각기 다른 두 성이다(Lange).
(11:1 그 해가 지나고 왕들이 싸움에 나갈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자기 신하들과 온 이스라엘을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더라. 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여전히 머물러 있었더라).
[삼하 12:27] 사자를 다윗에게 보내어 가로되 내가 랍바 곧 물들의 성을 쳐서 취하게 되었으니
▶ 물들의 성 - 이는 왕성(王城)과 더불어 랍바 성을 이루고 있던 또 하나의 성이다.
즉 이는 얍복 강에서 흘러 들어온 물을 가두어 두었던
랍바의 수원지(水源池)를 지키기 위한 또 하나의 성이었다.
랍바는 '큰 성'이란 뜻으로 암몬 족속의 수도이다.
(10:3 암몬 자손의 통치자들이 자기들의 주 하눈에게 이르되, 왕은 다윗이 왕의 아버지를 존경하기 때문에 왕에게 조문객들을 보낸 줄로 생각하시나이까? 다윗이 도시를 엿보고 탐지하여 정복하려고 자기 신하들을 왕에게 보내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니).
얍복 강, 곧 현재의 와디 암만(Wady Amman)의 상류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데,
요단 강에서부터 동쪽으로 약 37Km정도 떨어진 지점이다.
한편 이 도시는 두 견고한 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첫째는 물들의 성이다.
(12:27 요압이 사자들을 다윗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랍바와 싸워 물들의 도시를 점령하였사오니).
즉, 이 성은 이 도시에 물을 공급해 주는 큰 수원지(水源池)를 지키던 성이다.
다음으로
둘째는 왕성(王城)이다.
(12:26 요압이 암몬 자손의 랍바와 싸워 왕의 도시를 점령하니라).
이는 와디 암만의 북쪽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고원 지대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매우 가파른 곳으로서 그야말로 난공 불락의 요새를 이루었다.
한편 이같은 랍바(Rabbah)는 오늘날 요르단의 수도가 되어 있는데,
곧 현재의 암만(Amman)이다(Wycliffe).
[삼하 12:28] 이제 왕은 남은 군사를 모아 진치고 이 성을 쳐서 취하소서 내가 이 성을 취하면 이 성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까 두려워하나이다
▶ 이제 왕은 남은 군사를 모아 진치고 이 성을 쳐서 취하소서 - 랍바 성의
두 성 중 하나인 왕성(王城)을 탈취한 요압이
(26절 요압이 암몬 자손의 랍바와 싸워 왕의 도시를 점령하니라)
나머지 하나인 '물들의 성'을 탈취하기 전에
(27절 요압이 사자들을 다윗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랍바와 싸워 물들의 도시를 점령하였사오니)
예루살렘에 있던 다윗 왕을 모셔오는 장면이다(Lange).
그런데 이처럼 요압이 직접 랍바 성을 완전히 함락시키지 않고
다윗을 초치(招致), 그로 하여금 랍바 성을 정복케 한 까닭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다음과 같이 견해를 달리한다.
(1) 이러한 일은 그 당시 원정군(遠征軍)에게 흔히 있었던 일로서
이 일의 동기를 특별히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견해이다(The Interpreter's Bible).
(2) 암몬족의 재산을 사적으로 노략하지 않고 당시의
국제적 계약(契約)에 따라 합법적으로 인수하기 위해서라는 견해이다(Hertzberg).
(3) 그러나 이상의 제 견해는 본장의 전체 문맥과 전혀 조화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요압의 처신은 다분히
개인적인 소신이나 야망에서 나온 행위로 보아야 한다(Lange).
즉, 요압은 자기의 주인인 다윗 왕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에서
그렇게 했거나 아니면 군대 장관이라는 자신의 현 위치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다윗왕에게 아부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본서에서 자주 보여 지는 다윗왕에 대한
요압의 맹목적인 헌신과 자기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이중적인 성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삼하 11;17 그 도시의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싸울 때에 다윗의 신하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이 쓰러지고 헷 족속 우리야도 죽으니라)
▶ 다윗의 신복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 여기서 '다윗의 신복'이란
다윗의 군사 고문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의 죽음은 이스라엘 군의 막대한 손실이었다.
즉 우리아 한 사람을 죽이려던 다윗은 자신의 불의의 계략으로 말미암아
결국 유능한 많은 신하들을 잃고 만 것이다.
▶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 요압의 맹목적인 순종으로 말미암은 비극이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요압의 비정함을 볼 수 있다.
즉, 우리아는 다윗의 서른 일곱 용사 중 한 명이며
요압의 직속 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요압은 우리아가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오직 권력에 아부하는 자세로
다윗의 명령만을 준행했던 것이다.
사실, 만일에 요압에게 진정한 충성심과 또한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그는 일의 자초지종을 알아본 후,
최소한 아무런 죄 없는 우리아를 위해 다윗에게 탄원 정도는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요압은 하나님의 공의보다는
자기의 출세를 위해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기회주의적 행동을 하였으며
(10:12 크게 용기를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도시들을 위하여 남자답게 행하자. 주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을 행하시기 원하노라, 하고),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현실 타협적 행동을 한 것이다(Wycliffe, Matthew Henry).
[삼하 12:29] 다윗이 모든 군사를 모아 랍바로 가서 쳐서 취하고
▶ 다윗이 모든 군사를 모아 랍바로 가서 - 당시 다윗이 거처하던 예루살렘에서
암몬의 수도 랍바(Rabbah)까지는 약 70km 정도의 거리이다.
따라서 요압의 전갈을 받은 다윗은
(27-28절 요압이 사자들을 다윗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랍바와 싸워 물들의 도시를 점령하였사오니
28) 그러므로 이제 백성의 남은 자들을 함께 모아 도시를 향해 진을 치고 그것을 점령하소서. 내가 도시를 점령하면 그것이 내 이름으로 불릴까 염려하나이다, 하니라)
그다지 많은 시간을 소요(所要)하지 않고서도 랍바에 당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11:1 주석 참조.
[삼하 12:30]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있는 면류관을 취하니 그 중량이 한 금 달란트라 다윗이 머리에 쓰니라 다윗이 또 그 성에서 노략한 물건을 무수히 내어오고
▶ 그 왕의 머리에서 - 여기서 '그 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말캄'은
문법적으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즉 이는 암몬족의 왕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Keil),
또한 암몬 사람들의 우상인
'말감'(밀곰)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Lange, Wevers, Wellhausen, Pulpit Commentary, The Interpreter's Bible).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첫 번째 해석을 취할 경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난점에 봉착하게 된다.
(1) '그 왕'에서 '그'를 암몬 사람들을 지칭하는 인칭대명사로 보려면
그 앞절에 암몬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나와야 하는데 없다는 점이다(Wellhausen).
(2) 또한 본 구절에 나오는 '보석 있는 면류관'의 무게가 금 한 달란트에 달하는데
이는 사람이 오래 쓰고 앉아 있을 수없는 무게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 구절의 '그 왕'이란 당시 암몬인들이
자신들의 왕과 같은 존재로 섬기던 신(神)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금 한 달란트라 - 여기서 달란트(Talent)는 구약 시대 당시 히브리인들이
무게를 측정하던 도량형으로 1달란트는 34. 27kg에 해당된다.
▶ 다윗이 머리에 쓰니라 -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34kg이나 나가는 면류관은
다윗이 머리에 쓰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것이다.
따라서 다윗은 암몬족의 면류관에서 보석만을 빼어
자신의 면류관에 부착한 후 이를 머리에 썼을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행위는 헛된 우상을 섬긴 암몬 사람들의 실패와
다윗 왕이 이제 암몬의 정복자가 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행위였음이 분명하다.
[삼하 12:31] 그 가운데 백성들을 끌어내어 톱질과 써레질과 도끼질과 벽돌구이를 하게 하니라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을 이같이 하고 다윗과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
▶ 톱질과 써레질과 도끼질과 벽돌구이를 하게 하니라 – 본 구절은 학자들간에서
상당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왜냐하면 원문상 본 구절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해석이 다 가능하기 때문이다.
(1) 다윗이 암몬인들에게 톱질이나 써레질 등과 같은 고역(苦役)을
시켰다는 해석이다(Hertzberg, Wycliffe).
(2) 다윗이 톱이나 써레 등과 같은 도구로써
암몬인들을 무참히 살해했다는 해석이다(Keil, Lange, Pulpit Commentary).
이 중 어느 해석이 보다 타당한지는 섣불리 판단키 어렵다.
그러나 과거 암몬인들이 다윗의 신복에게 크나큰 수치를 안겨 주었던 점에
(10:4-5 그러므로 하눈이 다윗의 신하들을 붙잡아 그들의 수염 절반을 깎고 그들의 의복 한가운데를 도려내되 볼기가 있는 데까지 도려내고 그들을 내보내니라.
5) 그들이 그것을 다윗에게 고하니라. 그 사람들이 크게 부끄러워하므로 왕이 그들을 맞으러 사람을 보내며 이르기를,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서 머물다가 그 뒤에 돌아오라, 하니라)
비추어 볼 때 본 구절은 다윗이 어떤 식으로든 암몬인들에게도
잔인하게 복수한 것을 가리키는 구절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