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모든 레위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거듭난 삶 2021. 10. 2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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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궤 보존을 위한 조처

 

성 경: [삼하 15:24-29]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더니

25)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얻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26) 그러나 저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27) 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는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으로 돌아가라

28) 너희에게서 내게 고하는 기별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룻터에서 기다리리라

29) 사독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도로 메어다 놓고 거기 유하니라.

 

 

[삼하 15:24]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더니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이처럼

사독과 그와 함께한 레위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언약궤를 메고 나와,

 

(6:12-19 어떤 이가 다윗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주께서 하나님의 궤로 인해 오벳에돔의 집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에 복을 주셨나이다, 하므로 이에 다윗이 가서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궤를 오벳에돔의 집에서 다윗의 도시로 가져갈 때에

13) 주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그가 소와 살진 것들로 희생물을 드리고

14) 주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니 그때에 다윗이 아마 에봇을 입었더라.

15) 다윗과 이스라엘의 온 집이 이같이 크게 소리를 내며 나팔 소리와 함께 주의 궤를 가져오니라.

16) 주의 궤가 다윗의 도시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주 앞에서 뛰며 춤추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그를 업신여겼더라.

17) 그들이 주의 궤를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성막의 한가운데 곧 그것을 놓을 자리에 두매 다윗이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을 주 앞에 드리니라.

18) 다윗이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 드리기를 마치고 곧바로 만군의 주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하였으며

19) 온 백성 곧 이스라엘 온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각 사람에게 빵 한 덩이와 좋은 고기 한 조각과 포도즙 한 잔씩을 나누어 주매 이에 온 백성이 각각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다윗과 동행하려 한 사실은, 그들 전체가

다윗 왕을 지지하고 나섰음을 의미하는 것이다(Payne, Matthew Hhenry).

 

즉 그들은 단지 내란 중에

 

(6;10-12) 이에 주의 궤를 옮겨 자기에게로 곧 다윗의 도시 안으로 가져가려 하지 아니하고 궤를 옆으로 돌려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으로 가져갔으므로

11) 주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에 석 달 동안 머물렀고 주께서 오벳에돔과 그의 온 집안에게 복을 주셨더라.

12) 어떤 이가 다윗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주께서 하나님의 궤로 인해 오벳에돔의 집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에 복을 주셨나이다, 하므로 이에 다윗이 가서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궤를 오벳에돔의 집에서 다윗의 도시로 가져갈 때에)

 

언약궤를 안전히 보호해야겠다는 의도보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장물인 언약궤를 다윗 편에 둠으로써

장차의 전투에서 다윗 왕에게

유리하게 하고픈 심사(心思)에서 그리하였던 것이다.

 

한편 사독(Zadok)은 아론의 셋째 아들인 엘르아살(Eleazar)의 후손으로서,

다윗 치하에서 아비아달 가문과 더불어 제사장작을 수행하던 자이다.

 

(8:17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며).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더니 -

 

레위인들이 언약궤를 내려놓은 장소는

 

기드론 시내

 

(23절 온 땅이 큰 소리로 울며 온 백성이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고 온 백성이 건너서 광야 길로 향하니라)

 

건너편에 위치한 감람 산이다.

 

(30절 다윗이 감람 산의 오르막길로 올라갈 때에 올라가면서 울고 머리를 덮고 맨발로 가며 그와 함께한 온 백성도 각각 자기 머리를 덮고 올라가되 울며 올라가니라).

 

, 사독과 레위인들은 예루살렘 성내의 사람들이 미처 다 빠져 나오지 못하자

그들과 합류하기 위해 감람 산에 언약궤를 잠시 안치해 놓고서 기다렸던 것이다.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 여기서 '올라오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알라'

'밑에서 위로 올라간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아비아달이 예루살렘에서 감람 산으로 나아간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성경에서 '알라''제물을 드리다'는 뜻으로 사용된

 

극히 제한된 경우를 들어,

 

(24:22 아라우나가 다윗에게 이르되, 내 주 왕께서는 친히 좋게 보시는 것을 취하여 드리소서. 보소서, 태우는 희생물로는 여기 소들이 있으며 나무로는 타작하는 기구와 소들을 부리기 위한 기구가 있나이다, 하니라;

 

삼상 2:28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내 제사장으로 삼아 내 제단 위에 헌물을 드리며 분향하고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이 불로 예비하여 드리는 모든 헌물을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었느냐?;

 

왕상 3:15 솔로몬이 깨어 보니, 보라, 꿈이더라. 그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주의 언약 궤 앞에 서서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을 드리고 자기의 모든 신하를 위해 잔치를 베풀었더라)

 

혹자는 이 말이 아비아달의 제사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Michaelis, Bottcher).

 

그러나 그들이 증거 구절로 제시한 본문들에서는

제사와 관련된 제물이나 기구 등이 언급되어 있는 반면

본문에는 그러한 언급이 없으므로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피신 길에 어른 다윗 일행과 합류하려고

예루살렘을 빠져나온 아비아달이

그 와중에서 제사를 드릴 시간적인 여유를

가졌다는 것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한편 아비아달(Abiather)은 놉의 제사장 아하멜렉의 아들로,

 

(8:17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며;

 

삼상 21:1 그때에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다윗을 만나 두려워하며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아무도 너와 함께하지 아니하느냐? 하매;

 

22:20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들 중에서 하나가 도피하였는데 그의 이름은 아비아달이더라. 그가 다윗의 뒤를 따라 도망하니라)

 

아론의 넷째 아들 이다말의 후손이다.

이 가문 역시 다윗 치하에서 제사장직을 수행하였으니,

다윗 시대에는 사독과 아비아달이란

양대 제사장 가문(家門)이 존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8:17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며).

 

 

 

[삼하 15:25]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얻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 가라 - 이처럼 다윗 왕이 언약궤를

예루살렐 성내로 다시 반환시킨 이유는 복합적이다.

 

그 중 우선 표면적(表面的)인 이유로서,

예루살렘 성내의 정보를 입수하기 위함이었음을 들 수 있다.

즉 다윗은 효과적인 전투를 위해 연락원(連絡員)이 필요하였는데,

이에 적합한 인물로서 제사장들을 지목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압살롬에게 언약궤를 지키는 자로만 보여질 것이므로,

비교적 행동이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28절 보라, 너희로부터 내게 알리는 말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의 평야에서 머무르리라, 하니).

 

다음으로 다윗이 이처럼 행동한 내면적인 이유는,

그가 지금의 곤경을 하나님의 징계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26절 그러나 그분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보라, 내가 여기 있으니 그분께서 보시기에 선한 대로 내게 행하실지로다).

 

, 다윗은 자신이 현재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는 한

언약궤를 모신다 해도 과거의 죄에 대한 징계를

 

(12:10-12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족속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이제 그런 까닭에 칼이 네 집에서 결코 떠나지 아니하리라.

11)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네 집에서 너를 대적하는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아내들을 네 눈앞에서 가져다가 네 이웃에게 주리니 이 해가 보는 데서 그가 네 아내들과 함께 누우리라.

12) 너는 그 일을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앞에서 해 앞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 하매)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Keil & Delitzsch).

 

그렇지만 다윗이 하나님의 회복의 은총을 의심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오히려 예루살렘 성을 떠날 때 하나님의 회복의 은총을 확신하였다.

 

(14절 다윗이 자기와 함께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신하에게 이르되, 일어나 우리가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가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떠나가자. 그가 갑자기 우리를 따라잡고 우리에게 해를 가져오며 칼날로 도시를 칠까 염려하노라, 하니).

 

따라서 그가 언약궤를 반환한 것은,

비록 하나님의 임재의 가견적(可見的)인 상징물이 곁에 없다 할지라도

자신의 나라를 영원히 지속시켜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믿은 까닭임이 분명하다(The Interpretre's Bible, Lange).

 

(7:16 네 집과 네 왕국이 네 앞에서 영원히 굳게 서고 네 왕좌가 영원히 굳게 서리라, 하라)

 

또한 다윗이 언약궤를 반환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가

현재 피신(避身) 길에 오른 자신과 더불어 정처없이 유리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였다(Schulz).

 

즉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이 손상되는 것을 염려하였기에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되돌려 보낸 것이다.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얻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

 

이는 다윗 왕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미신적(迷信的)으로 섬기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 그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그의 곁에 있는 것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과 함께 함을 더욱 중요시 여겼던 것이다.

(Lange, The Interpreter's Bible).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다윗의 신앙 고백이며,

그토록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에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겠다고 하는 순전(純全)한 신앙의 표현이라 하겠다(Lange).

 

 

 

[삼하 15:26] 그러나 저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언약궤 보존을 위한 조처 선히 여기시는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 본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있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기뻐하지 않으실지라도

하나님의 처사에 자기 자신을 모두 맡기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자신의 무가치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복하겠다고 하는

다윗의 진정한 겸손과 순종의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삼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주께서 주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만큼 번제 헌물과 희생물을 크게 기뻐하시나이까? 보소서, 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하 15:27] 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는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으로 돌아가라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 여기서 '선견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로에'

'보다', '감찰하다'는 뜻의 동사 '라아'에서

파생된 말로서 관찰자(觀察者)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다윗 왕이 사독을 가리켜 선견자라고 부른 것은

대제사장의 관찰 기능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 당시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리는 임무뿐만 아니라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관찰하여

왕이 나아갈 바를 가르쳐 주는 임무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삼상 22:10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주께 묻고 그에게 양식을 주며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을 주었나이다, 하니라;

 

23:6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로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자기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더라).

 

따라서 본절은 다윗이 사독 제사장에게 이스라엘 왕인 자신을 위하여

그가 모든 일을 관찰해야 할 임무가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즉 다윗은 이로써 사독으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남아 압살롬의 동태를 살펴

자신에게 나아갈 바를 가르쳐 주도록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삼상 9:9 예전에 이스라엘에서는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여쭈려 할 때에 이같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더라. 지금 대언자라 부르는 사람을 예전에는 선견자라 불렀더라).

 

 

 

[삼하 15:28] 너희에게서 내게 고하는 기별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룻터에서 기다리리라

 

광야 나룻터 - 이는 요단 강 나루터로서 사해 입구에서

4.5km 떨어진 지점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은 여차하면 요단강을 건너 먼 곳으로 도망칠 수 있는

매우 훌륭한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다윗 왕은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예루살렘으로부터의 보고를 기다렸던 것이다.

 

(17:16 그러므로 이제 빨리 사람을 보내어 다윗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이 밤에 광야의 평원에서 머무르지 마시고 빨리 건너가소서, 하라. 왕과 그분과 함께 있는 온 백성이 삼켜질까 염려하노라, 하니라,

 

21-22 그들이 떠나간 뒤에 그들이 우물에서 올라와 가서 다윗 왕에게 고하고 다윗에게 이르되, 일어나 빨리 물을 건너가소서. 아히도벨이 당신들을 치려고 이같이 계략을 베풀었나이다, 하매

22) 이에 다윗이 일어나서 자기와 함께 있던 온 백성과 함께 요르단을 건넜더니 동틀 때까지 그들 중에서 요르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하나도 없었더라).

 

 

 

[삼하 15:29] 사독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도로 메어다 놓고 거기 유하니라. -

 

사독과 아비아달이 다윗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하였음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즉 그들은 이제 압살롬의 동정 파악이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띠고서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27절 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희와 함께한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도시로 돌아가라).

 

그런데 이와 같은 순종의 자세는 뒤이어 후새에게도 발견된다.

 

(32-37절 다윗이 산의 꼭대기 곧 그가 하나님께 경배하던 곳에 이를 때에, 보라, 아렉 사람 후새가 자기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다윗을 맞으러 오므로

33)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만일 나와 함께 나아가면 내게 짐이 되리라.

34) 그러나 네가 만일 도시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이르기를, 오 왕이여, 내가 왕의 종이 되리이다. 지금까지 내가 왕의 아버지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이제는 또한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계략을 꺾으리라.

35)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들이 너와 함께 거기 있지 아니하냐? 그러므로 네가 왕의 집에서 무슨 일을 듣든지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들에게 그것을 고할지니라.

36) 보라, 그들의 두 아들 곧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그들과 함께 거기 있나니 너희가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들 편으로 내게 보낼지니라, 하매

37) 이에 다윗의 친구 후새가 도시로 들어가고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