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거듭난 삶 2021. 11. 2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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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으로 인한 다툼

 

성 경: [삼하 19:40-43] 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을 호행하니라

41)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서 고하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적하여 왕과 왕의 권속과 왕을 좇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네었나이까 하매

42) 유다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지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내느냐 우리가 왕의 물건을 조금이라도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 주신 것이 있느냐

43)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십분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삼하 19:40] 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을 호행하니라

 

길갈로 건너오고 - '길갈'(Gilgal)은 여리고 근처이며 요단 강변에 위치했다.

 

(19:15 이에 왕이 돌아와서 요르단에 이르매 유다가 왕을 맞이하여 요르단을 건너도록 안내하려고 길갈로 오니라).

 

이곳은 역사적 유적지일 뿐만 아니라,

강변이었으므로 많은 무리의 집합이 가능하였다.

 

(4:19 백성이 첫째 달 십일에 요르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 경계에 있는 길갈에 진을 치매;

 

5:10-12 이스라엘 자손이 길갈에 진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 여리고 평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11) 유월절 다음 날에 그 땅의 묵은 곡식을 먹되 바로 그 날에 누룩 없는 납작한 빵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12) 그들이 그 땅의 묵은 곡식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치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더 이상 만나를 얻지 못하였으나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9:6 그들이 길갈에 있던 진영으로 나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와 동맹을 맺으소서, 하매;

 

10:6 기브온 사람들이 길갈의 진영에 있던 여호수아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의 손을 늦추어 당신의 종들을 버려두지 마시고 속히 우리에게 올라와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를 도우소서. 산지에 거하는 아모리 족속의 왕들이 우리를 치려고 함께 모였나이다, 하매;

 

14:6 그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나스 족속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주께서 가데스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 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말씀하신 일을 당신이 아시나이다;

 

삼상 7:16 그가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며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재판하고;

 

11:14-15 그때에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거기서 왕국을 새롭게 하자, 하니

15) 온 백성이 길갈로 가니라. 거기서 그들이 길갈에서 주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거기서 주 앞에 화평 헌물의 희생물을 희생시켜 드리며 거기서 사울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크게 기뻐하니라;

 

13:7-9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르단을 건너서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갔으나 사울로 말하건대 그는 아직 길갈에 있었고 그를 따르던 온 백성은 벌벌 떨더라.

8) 그가 사무엘이 정해 준 때를 따라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자기를 떠나 흩어지므로

9) 사울이 이르되,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을 이리로 내게로 가져오라, 하고 그가 번제 헌물을 드렸더라).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 - 여기서 유다 백성은

모두 모인 반면 이스라엘 백성은 절반 밖에 모이지 못한 까닭은,

유다 백성이 다윗 왕의 예루살렘 귀환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다윗 왕이 요단 건널 때에 그 황궁 행사의 주도권은

유다 지파가 행사하였다.

 

반면,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는 단지 그 주변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모일 수 있었던 것이다(Pulpit Commentary, Lange).

 

 

왕을 호행하니라 - 여기서 `호행하니라'는 말은

`건너다', `통과하다'란 뜻의 동사 `아바르'이다.

 

따라서 이 말은 온 유대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

왕을 호위하여 요단강을 건넜다는 사실을 묘사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백성'이란 표현은 `백성의 대표자들'을 가리킨다).

 

 

 

[삼하 19:41]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서 고하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적하여 왕과 왕의 권속과 왕을 좇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네었나이까 하매

 

온 이스라엘 사람 - 이는 뒤늦게 왕의 귀환 소식을 듣고,

급히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과 합류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Clericus).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적하여 - 뒤늦게 길갈에 도착한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들은 유다 지파 단독으로 왕의 귀환을 주도했음을 알게 된다.

이처럼 유다 지파의 단독적인 행사가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의 분노를 산 것이다.

 

왜냐하면 왕의 환궁(還宮) 문제는 온 나라의 협의하에 이루어져야 했으며.

이미 이스라엘 각 지파는 이 문제를 놓고 의논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9-10절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서 두루 온 백성이 논쟁하여 이르되, 왕이 우리를 우리의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 내셨으나 이제 압살롬으로 인해 이 땅에서 도피하셨도다.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으니 그런즉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관해 한 마디도 하지 아니하느냐? 하니라),

 

유다 지파는 그 결정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들의 불평은

유다 지파와의 경쟁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지파는

사사 시대 때부터 주도권을 장악했던 지파로서,

다윗 시대에 나라의 주도권이 유다 지파에게로 넘어가는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8:1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 족속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우리를 이같이 대우하였느냐? 하고 그와 심하게 다투므로;

 

12:1 에브라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너와 네 집을 불태우리라, 하매).

 

또한 이들이 유다 지파소속인 다윗 왕 앞에서

유다 지파를 정면으로 불평한 것으로 보아,

유다 지파를 특별히 배려하고 있는

 

(11-15절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의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온 이스라엘의 말이 왕에게 이르고 왕의 집에까지 이른 것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왕의 집으로 도로 모셔 오는 일에서 나중이 되려 하느냐?

12)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오는 일에서 나중이 되려 하느냐? 하고

13)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대 대장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라, 하니라.

14) 그가 유다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한 사람의 마음같이 돌리매 그들이 왕에게 이 말을 보내어 이르되, 왕과 왕의 모든 신하들은 돌아오소서, 하므로

15) 이에 왕이 돌아와서 요르단에 이르매 유다가 왕을 맞이하여 요르단을 건너도록 안내하려고 길갈로 오니라)

 

다윗 왕에 대한 불만도 가진듯하다(The Interpreter's Bible).

 

결국 이러한 이스라엘 지파의 불평은 수그러들지 아니하고,

곧 세바의 반란에 동참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20:1-2 마침 거기에 세바라는 이름의 벨리알의 사람 하나가 있었는데 그는 베냐민 족속 비그리의 아들이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에게는 다윗 안에서 얻을 몫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 안에서 얻을 상속 재산이 없도다. 오 이스라엘아, 각각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2) 이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각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서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랐으나 유다 사람들은 요르단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자기들의 왕에게 굳게 붙으니라).

 

 

왕을 좇는 모든 사람 - 이는 다윗 왕이 압살롬에게 쫓기어

예루살렘으로부터 도망갈 때, 왕과 함께 동행했던 무리들을 의미한다.

 

(15:17-18 왕이 나가매 온 백성이 그의 뒤를 따르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머무니

18)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옆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족속과 모든 블렛 족속과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육백 명의 가드 사람들이 왕 앞으로 지나가니라).

 

 

 

[삼하 19:42] 유다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지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내느냐 우리가 왕의 물건을 조금이라도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 주신 것이 있느냐

 

유다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 여기서 `대답하되'란 말은

유다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단순히 답변한 것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말에는 `대적하여'라는 뜻의

전치사 `'이 첨가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 이 구절은 유다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대적하는 감정 섞인 말투로 그들에게 답변했음을 보여 준다.

여기서 우리는 양 지파간의 갈등이

심각한 정도로 발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실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연합된 공동체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동체 안에 존재한다.

 

즉 공동체의 연합을 깨뜨리고, 결국에 모든 인격들을 함몰시키는

질투심과 불건전한 경쟁심 및 이기심은

외부에서 도전해오는 악한 세력보다 더 위험하다.

 

(고전 1:10-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다 같은 것을 말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생각과 같은 판단 안에서 완전히 함께 결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안사람들 편으로 너희에 관한 일 곧 너희 가운데 다툼이 있음을 내가 밝히 알게 되었노라.

12) 이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너희가 각각 이르기를,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께 속하였다, 하는도다.

13) 그리스도께서 나뉘셨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 혹은 너희가 바울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느냐?

14) 내가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가운데 아무에게도 침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15) 이것은 아무도 내가 내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의 집안사람들에게 침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침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지 아니하시고 복음을 선포하라고 보내셨나니 이 일을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효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5:20 우상 숭배와 마술과 증오와 불화와 경쟁과 진노와 다툼과 폭동과 이단 파당과).

 

이스라엘은 이러한 내부의 적에 의해 또 한번의 분열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즉 왕의 환궁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공동으로 추진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도권을 유다가 가지고 이 일을 진행한 것에 불만을 품고

이스라엘 10지파가 유다를 공박함으로 분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윗 환궁에 관련된 사건은 드러난 이유에 불과하며,

분규의 근본원인은 이스라엘과 유다 사이에 계속적으로 팽배해 있던

시기심과 경쟁심이 고조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긴장은 솔로몬 사후(死後) 남북이 분열하게 된

주요 원인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왕은 우리의 지친인 까닭이라 - 여기서 `지친'(至親)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로브'`가까운', 또는 `같은 혈족인'이란 뜻이다.

 

, 이 말은 다윗 왕이 자기들과 같은 유다 지파에 소속해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러한 유다 지파 사람들의 말은 사실이지만,

당시로서는 이스라엘 지파 사람들의 지역감정을 촉발시키는

촉진제(促進劑) 역할만을 할 뿐이었다.

 

 

왕의 물건을 조금이라도 먹었느냐 - 이는 유다 지파가 다윗 왕으로부터

아무런 특혜(特惠)도 받지 않았다고 강변하는 말이다.

이와같은 유다 지파 사람들의 말은 아마도 이전에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베냐민 지파 출신의 사울왕으로부터 어떤 특혜를 입은 사실을

간접적로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 (Keil, The Interpreter's Bible).

 

(삼상 22:7 그때에 사울이 자기 주위에 선 자기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족속들아, 이제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 모든 사람에게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 모두를 천인 대장과 백인 대장으로 삼겠느냐?)

 

 

 

[삼하 19:43]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십분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우리는 왕에 대하여 십분을 가졌으니 - 다윗 왕이

자기 지파 소속이라고 주장한 유다 지파의 말(42)을 반박하기 위해

이스라엘지파 사람들은 자기 지파의 숫자의 우월성(優越性)을 강조한다.

 

, 다윗 왕은 다른 모든 왕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의 왕이며 어떤 특정한 지파의 왕이 아니므로,

다윗왕은 유다 지파보다 훨씬 많은 열 지파나 되는

자기들과 더욱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Lange).

 

따라서 자신들은 다윗 왕의 귀환 계획에

마땅히 참여했어야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런데 여기서 이스라엘 사람은 자기들이 열 지파라고 강조하면서

자연스럽게 자기들로부터 두 지파를 제외시켰다.

 

이에 대해 혹자는

이 두 지파가 유다 지파와 레위 지파라고 주장한다(The Interpreter's Bible, Keil).

 

그러나 본 문맥의 내용상 레위 지파가 유다 지파와 더불어

이스라엘 열 지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을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이 주장은 애매하다.

 

혹자는 이 두 지파가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라고 주장한다(Smith).

그 이유로서 스미드 박사는 시므온 지파의 미미한 영향력과

유다 지파에 복속된 그 지파의 지역적 특수성을 든다.

그러나 다윗 왕의 귀환 문제라는 첨예한 문제를 놓고

혈연의 우위성을 주장하는 유다 지파에 대해

숫적 우위성의 공동전선을 펴야 할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기서 구태여 약한 지파라고 해서 시므온 지파를 제외시킬 리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지파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라고 보아야 한다(Lange, Thenius).

왜냐하면 이스라엘 열 한지파 중 유일하게 베냐민 지파가

유다 지파의 단독적인 행사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 베냐민 지파의 실력자인 시므이는

일천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제일 먼저 왕 앞에 배알(拜謁)했던 것이다.

 

(16-20절 바후림에 있던 베냐민 족속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들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려 내려올 때에

17)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하고 사울의 집의 종 시바도 자기 아들 열다섯 명과 종 스무 명과 함께 요르단을 지나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18) 왕의 집안사람들을 건너가게 하며 또 왕이 선하게 여기는 것을 행하게 하려고 나룻배가 건너가니라. 왕이 요르단을 건너려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19) 왕께 이르되, 내 주께서는 불법을 내게로 돌리지 마옵소서. 또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왕의 종이 그릇되게 행한 것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20) 내가 죄를 지은 줄을 왕의 종이 아나이다. 그러므로, 보소서, 이 날 요셉의 온 집에서 내가 가장 먼저 와서 내려가 내 주 왕을 맞이하나이다, 하였으나).

 

따라서 이러한 베냐민 지파의 움직임은

분명히 다른 열 지파에게 불쾌감을 주었을 것이다.

결국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왕국이 여로보암에 의해

돌로 쪼개질 때 유다 왕국에 속하게 된다.

 

(왕상 12:21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의 온 집과 베냐민 지파를 모았는데 선정된 자들 곧 용사들이 십팔만 명이더라. 이들이 이스라엘의 집과 싸워 왕국을 다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가져오려 하였으나).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 이스라옐 열 지파는 다윗 왕의 귀환 계획에

자신들이 참여하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긴 것이다.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여기서

`강경하였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솨'

`완강하다', `거칠다'. `격렬하다'. `날카롭다',`쓰리다', `고집이 세다'는 뜻이다.

 

(49:7 그들의 분노가 맹렬하므로 그것이 저주를 받고 그들의 진노가 잔인하므로 그것이 저주를 받으리라. 내가 그들을 야곱 가운데서 나누며 이스라엘 가운데서 흩으리로다;

 

13:15 그때에 파라오가 우리를 가게 하려 하지 아니하매 주께서 이집트 땅의 처음 난 것은 사람에게서 처음 난 자든지 짐승에게서 처음 난 것이든지 다 죽이셨으므로 수컷으로서 태를 여는 것은 다 내가 주께 희생물로 드리되 내 자손들 가운데 처음 난 자는 다 대속하나니;

 

32:9 주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아 왔는데, 보라, 그들은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33:3 너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네 한가운데서 올라가지 아니하리라. 너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므로 내가 길에서 너를 소멸시킬까 염려하노라, 하시니라).

 

따라서 이 구절은 유다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욱 큰 목소리로 감정을 섞어 격렬하게 말하였음을 보여 준다.

우리는 이러한 감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스라엘 지파들에 의해 저질러질

새로운 반역의 조짐을 느낄 수 있다(Hertzbe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