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너희가 즐거이 순종하면 땅의 좋은 것을 먹을 것이로되

거듭난 삶 2022. 1. 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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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소멸

 

이사야서 118-19: 주가 말하노라. 이제 오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희 죄들이 주홍 같을지라도 눈같이 희게 될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19) 너희가 즐거이 순종하면 땅의 좋은 것을 먹을 것이로되,(한글 KJV)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그를 떠나고, 그에게 거역(배반)하고,

그에 대하여 불효의 죄를 범했다.

 

그것이 죄의 원인이다.

죄라는 죄는 모두 여기서 비롯한다.

그리고 죄의 결과로서 여러 가지 고난이 일신에 임하면,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하고(비위를 맞추려),

그에게 제사하며, 희생(제물)을 드리고,

노래로써 그의 이름(거룩하신 성호)를 찬미하며, 손을 펴서 기도하고,

그리하여 다시 그의 은혜를 입고자 한다.

 

이것이 소위 종교인 것으로,

이것을 수행(주장)하는데 제사장이 있고, 승려가 있다.

미신이라 알면서도, 이것을 폐지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하나님 자신은 제사를 좋아하지 않으셔서,

그를 섬기려고 한다면,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베풀 것이라고 선지자로써 말씀하셨다.

 

하지만 사실 어떤가하면,

사람은 여전히 제사를 좋아하고,

자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종교가 번창한데 비하여,

정의는 행해지지 않는다.

 

그 반대로,

많은 경우에 있어서,

종교는 명백한 불의와 함께 행해진다.

교회 내에 있어서,

구한, 쟁투, 투기, 분노, 결당, 창질(승려의 일본 특수어)은 끊임없이 행해진다.

 

하나님은 정의, 연민을 요구하시는데,

사람은 의식과 교의와 열광으로써 이에 대신하고자 한다.

 

이래서 참된 예배는 지금에도 행해지는 일없이,

거짓된 예배, 즉 거짓종교가 성히 행해진다.

 

로마천주교회가 유대교회의 뒤를 따르듯이,

프로테스탄트교회가 천주교회의 뒤를 따랐다.

 

정의에 대신함에 제사로써 하는 점에 있어서,

교회는 사원과 다름없고,

신교는 구교와 다름없다.

 

하지만, 문제는 다시 생기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정의를 완전하게 행할 수 있는가고.

정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유일한 길임이 분명하다고해도,

이를 행하고자하면,

그 어려움을 깨닫는 것이다.

 

사람이 정의보다도 제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는, 확실히 여기 있다.

죄가 단지 죄의 행위가 아니듯,

정의는 단지 올바른 외면의 행위가 아니다.

정의가 참으로 정의답기 위해 올바른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께 정의를 요구받아, 여기까지 추궁되는 것이다.

마음이 거룩하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정의는 이를 행할 수 없다고.

 

이렇게 자각할 때,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거룩하게 할 수 없음을 아는 것이다.

즉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24 한글 개역).

 

예리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바울과 함께 외치지 않을 수 없다.

여호와께서 선지자(예언자)로써

이스라엘에 대하여 일으키신 대소송에 있어서,

결론은 마침내 이에 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고인인 이스라엘이 변호하는 말에 궁하여

입을 다무는 것을 보고, 여호와는 말씀하셨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1:18 한글 개역).

 

대답할 말 있으면 대답하라든가,

여기서 쟁론을 그치자는 의미이리라.

 

정세히는 알 수 없다.

어느 것이든,

18. 19의 두절은 소송의 결과를 보여주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정죄되었다.

그는 하나님께 대답할 수 없기에 이르렀다.

그가 율법으로 국문되어, 처벌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처벌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구원의 도를 마련하신다.

이스라엘을 사형으로 정하고, 구원의 길이 있음을 선고하셨다.

 

‘(가령)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1:18 한글 개역).

 

놀라운 의외의 선고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사형을 선고받은 죄인이

완전한 사면과 다시 죄를 범치 않을 보증이 선고된 것이다.

 

어떻게 하여 죄의 소멸이 행해질 것인가의 길에 대하여,

선지자는 여기서 말하지 않았다.

다만 주홍 같은 죄는 눈같이 희어질 것이라고 언명했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수단방법이 무엇인지를 물을 것 없이 믿어야 할 것이다.

이사야보다도 더 3천 년 전의 아브라함은,

이것을 믿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한복음 8:56)

예수는 유대인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마침내 인류의 죄를 소멸시키셨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그것은 단지 약속으로써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분명히 말한 것이

로마서 81절 이하에 있어서의 바울의 말이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하심이라.

 

죄는 그리스도 안에서 소멸되어,

의는 완전히 그를 믿는 자에 의해 행해지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죄의 소멸은,

사람을 떠나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류의 대표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행해졌다.

그리고 사람은 신앙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에 참여할 수가 있다.

 

이사야는 그것을 진술하여 말했다.

 

만약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좋은 것(소산)을 먹을 수 있느리라’(1:19 일역).

 

즐겨 순종한다는 것,

그것이 신앙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죄의 사유를 우리 위해 하는 것으로 믿어 받는 일,

 

그로 말미암아 우리 죄는 깨끗해지고,

우리는 완전히 정의를 행할 수 있어,

그 보상인 땅의 좋은(아름다운) 것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죄의 본원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죄는 소멸된다.

 

하지만, 다만 순종하는 것만으로 사죄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먼저 그 아들에 있어서 이것을 없는 것으로 하시고,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의 그 한없는 자애를 믿을 때, 사유된다.

 

이사야는 특히 사죄(죄의 사면)의 복음의 예언자이다.

 

그리고 그 첫째의 예언을,

권두에 서둘러 한 것이다.

 

 

*내촌감삼의 (19282성서지연구’)참조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