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의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 과장이 헛되도다
블레셋 멸망에 대한 예언
성 경: [사 16:2-6] 모압의 여자들은 아르논 나루에서 떠다니는 새 같고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 새끼 같을 것이라
3) 너는 모략을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오정 때에 밤 같이 그늘을 짓고 쫓겨난 자를 숨기며 도망한 자를 발각시키지 말며
4) 나의 쫓겨난 자들로 너와 함께 있게 하되 너 모압은 멸절하는 자 앞에서 그 피할 곳이 되라 대저 토색하는 자가 망하였고 멸절하는 자가 그쳤고 압제하는 자가 이 땅에서 멸절하였으며
5) 다윗의 장막에 왕위는 인자함으로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공평을 구하며 의를 신속히 행하리라
6)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의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 과장이 헛되도다.
[사 16:2] 모압의 여자들은 아르논 나루에서 떠다니는 새 같고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 새끼 같을 것이라 -
'모압의 여자들'(베노트 모압)은 모압 마을들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가리킨다.
(애 1:15 주께서 내 한가운데서 내 모든 용사를 발아래 밟으시며 나를 치려고 무리를 부르사 내 젊은이들을 짓밟으셨나니 주께서 처녀 곧 유다의 딸을 포도즙 틀에서 밟듯 밟으셨도다;
겔 16:55-57 네 자매들 곧 소돔과 그녀의 딸들이 그들의 이전 지위로 되돌아가고 사마리아와 그녀의 딸들도 그들의 이전 지위로 되돌아갈 때에 너와 네 딸들도 너희의 이전 지위로 되돌아가리니
56) 이는 너의 교만하던 날에 네가 네 입으로 네 자매 소돔을 언급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57) 그때는 네 사악함이 드러나기 전이요, 곧 시리아의 딸들과 그녀의 사방에 있는 모든 자들과 사방에서 너를 멸시하는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너를 모욕하던 때와 같던 때라).
고향을 떠나 이곳 저곳을 근심스레 방황하는 그들은
이미 '떠다니는 새'요,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나 다름없다.
이러한 그들의 정서가 아르논 강에 속한 나루터에서 가장 진하게 투영된다.
본절은 모압의 처지가 어느 정도로 위태로운가를 여실히 묘사해주고 있다.
[사 16:3] 너는 모략을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오정 때에 밤 같이 그늘을 짓고 쫓겨난 자를 숨기며 도망한 자를 발각시키지 말며
본문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을 따르는 사람들은
선지자가 유다의 입장에서 모압에게 말하고 있다고 본다.
즉, 유다의 피난민들을 모압인들이 친절히 대해 주도록 부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모압의 멸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다.
현대의 많은 주석가들은
본문을 유다에 대한 모압 사절들의 간청으로 해석한다(Gesenius, Delitzsch, Gary, Oswalt).
▶ 모략을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 직역하면 '모략을 자져오며 공의를 실행하며'이다.
그 뜻은 어려운 지경에 빠진 모압 사람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말고
은혜롭게 대우해 달라는 것,
다시 말해서 피난민들을 보호해 달라는 것이다.
▶ 정오 때에 밤같이 그늘을 짓고 - 성경에서 종종 '한낮의 뜨거움'은
억압과 고난을 표상하는 말로 쓰인다.
(4:6 또 장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이 되며 폭풍우와 비를 피하는 피난처와 은신처가 되리라;
25:4 무서운 자들의 공격이 성벽을 치는 폭풍 같을 때에 주께서 가난한 자들에게 힘이 되시며 고난에 빠져 궁핍한 자에게 힘이 되시고 폭풍을 피하는 피난처가 되시며 열기를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그럴진대 '그늘'이 고난으로부터의 구원을 함의함은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그 의미는 뒤따라 나오는 구절에서 명확히 해석되고 있다:
'쫓겨난 자를 숨기며 도망한 자를 발각시키지 말며.'
[사 16:4] 나의 쫓겨난 자들로 너와 함께 있게 하되 너 모압은 멸절하는 자 앞에서 그 피할 곳이 되라 대저 토색하는 자가 망하였고 멸절하는 자가 그쳤고 압제하는 자가 이 땅에서 멸절하였으며
▶ 나의 쫓겨난 자들로 너와 함께 있게 하되 너 모압은 멸절하는 자 앞에서 그 피할 곳이 되라 - 본문은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다:
'쫓겨난 모압인들로 너와 함께 머무르게 하라.
너는 약탈자의 얼굴로부터 그들을 숨기는 피난처가 되라'(NIV).
▶ 대저 토색하는 자가 망하였고 멸절하는 자가 그쳤고 압제하는 자가 이 땅에서 멸절하였으며 -
그러나 이러한 피난은 오래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착취자'(하메츠)가 끝장나고
'폭압'(쇼드)이 그쳤으며
'발로 짓밟는 자'(로메스)가 그 땅에서 멸절되었기 때문이다.
동사의 과거 시제는 미래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된 것이다.
이 압제의 종언(終焉)은 다윗 장막에서 출현할
미래의 완전한 통치자(왕)의 출현과 밀접히 관련된다.
[사 16:5] 다윗의 장막에 왕위는 인자함으로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공평을 구하며 의를 신속히 행하리라 -
폭력과 착취로 능사를 삼는 지상 제국이 멸절한 자리에
그와 대조적인 한 왕국이 돋아남을 본다.
이 왕국은 다윗 장막에서 나온 한 왕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왕은 '인자함'(헤세드)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충실함'(에메트)으로 옳고 그름을 판결할 것이며,
(시 89:24 나의 신실함과 긍휼이 그와 함께하리니 그의 뿔이 내 이름 안에서 높여지리라,
3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완전히 거두지 아니하고 나의 신실함도 없어지게 하지 아니하며),
또한 '공평'(미쉬파트)과
'의'(체데크)를 추구하고 실행할 것이다.
(9:7 그의 정권과 화평이 번창하여 끝이 없으며 그가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 위에 군림하여 그것을 정비하고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공의와 정의로 그것을 굳게 세우리라. 만군의 주의 열심이 이것을 이루리라;
11:4 오직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의롭게 재판하고 땅의 온유한 자를 위해 공평하게 꾸짖으며 자기 입의 막대기로 땅을 치고 자기 입술의 호흡으로 사악한 자를 죽이며).
이 모든 것들에서 메시야적 시대를 구별짓는 친숙한 특징들을 발견한다.
이 메시야적 소망에 모압도 열방의 하나로서 참여한다.
이는 모압이 시온의 그늘 아래서 피난처를 삼았다는 사실로 말미암는 것이다.
2:1-4에 기록된 예언을 연상시킨다.
(2:1-4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말씀이라.
2) 마지막 날들에 주의 집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세워지며 작은 산들 위로 높여지리니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흘러들리라.
3) 많은 백성들이 가며 이르기를, 너희는 오라. 우리가 주의 산에 오르고 야곱의 하나님의 집에 이르자. 그분께서 자신의 길들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터인즉 우리가 그분의 길들로 걸으리라, 하리니 이는 법이 시온에서부터 나가며 주의 말씀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나갈 것이기 때문이라.
4) 그가 민족들 가운데서 심판하며 많은 백성들을 꾸짖으리니 그들이 자기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자기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민족이 민족을 치려고 칼을 들지 아니하고 그들이 다시는 전쟁을 배우지 아니하리라)
[사 16:6]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의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 과장이 헛되도다
많은 사람들은 이 부분이
피난민들을 숨겨달라는 모압의 간청에 대한 시온의 부정적인 답변,
즉 거절을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문을 엄밀히 살펴볼진대, 명백한 거부 의사를 찾아볼 수 없으며,
또한 3,4절에서 2인칭 복수로 되어 있는 점이 위의 주장을 수용하기 어렵게 한다.
(3-4 너는 모략을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오정 때에 밤 같이 그늘을 짓고 쫓겨난 자를 숨기며 도망한 자를 발각시키지 말며
4) 나의 쫓겨난 자들로 너와 함께 있게 하되 너 모압은 멸절하는 자 앞에서 그 피할 곳이 되라 대저 토색하는 자가 망하였고 멸절하는 자가 그쳤고 압제하는 자가 이 땅에서 멸절하였으며)
따라서 그레이(Gray)의 제안을 따라 본문을
모압의 교만에 대한 독립된 서술로 간주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 선지자는 모압을 교만한 민족이라 단정짓는다.
짧은 본문에서 동일한 어근으로부터 파생된 '교만'이란 낱말이
4번이나 중언(重言)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모압의 교만에 대하여는 25:11;렘 48:42을 참조하라.
이러한 교만은 다른 사람을 쉽게 경멸하며 사소한 것도 참지 못하는
'격분'(에브라)과,
자신을 치켜세우기 좋아하는
'자랑'(바딤)으로 연결된다.
'바딤'은 '재잘거리다', '쓸데없이 말하다'는 뜻의
'바다드' 동사에서 파생한 말이다.
흠정역은 이 말을 '거짓말'로 번역하였다.
허영과 교만으로 가득 찬 그들의 자랑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허황된 거짓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교만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악들 중 으뜸가는 것이며,
(잠 6:16-17 주께서 이 여섯 가지를 미워하시며 참으로 일곱 가지가 그분께 가증한 것이니
17) 곧 교만한 눈빛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피를 흘리는 손과;
8:13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니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길과 비뚤어진 입을 미워하느니라),
그 최후는 필경 멸망과 넘어짐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잠 16:18 멸망에 앞서 교만이 나가며 넘어짐에 앞서 거만한 영이 있느니라).
따라서 다음절에서 모압의 교만은 통곡으로 바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