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애굽에 대한 심판 선언
성 경: [사 19:1-5]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2) 그가 애굽인을 격동하사 애굽인을 치게 하시리니 그들이 각기 형제를 치며 각기 이웃을 칠 것이요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
3) 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그 도모는 그의 파하신 바가 되리니 그들이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
4) 그가 애굽인을 잔인한 군주의 손에 붙이시리니 포학한 왕이 그들을 치리하리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5) 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
[사 19:1]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 애굽에 관한 경고라 - `애굽'의 히브리어 음역 `미츠라임'은 본래
그들의 조상에서 따온 이름이다.
(창 10:6 함의 아들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이 말은 하애굽의 명칭이었으나, 여기서는 애굽 전체를 대표하는 뜻으로 쓰였다.
▶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 여호와께서 임하심은
애굽을 재판하시기 위함이다.
(시 96:13 주 앞에서 기뻐하리니 이는 그분께서 오시되 친히 땅을 심판하러 오시기 때문이로다. 그분께서 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며 자신의 진리로 만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그가 구름을 타고 임하심은 그의 재판이 신속히 이루어질 것을 가리키는 것이요,
동시에 그의 주권이 온 자연에 미침을 나타내는 것이다.
(시 18:10 그분께서 그룹을 타고 나셨으니 참으로 바람의 날개들을 타고 나셨도다;
68:33 옛적부터 있던 하늘들의 하늘들을 타신 분에게 찬송할지어다. 보라, 그분께서 자신의 음성을 보내시니 곧 웅장한 음성이로다;
104:3 물들 속에 자신의 방들의 들보들을 얹으시며 구름들로 자신의 병거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들 위에서 거니시며).
성경에서 하나님은 종종
하늘 구름과 바람 날개를 타고 다니시는 것으로 묘사된다.
(신 33:26 내가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구석구석으로 흩어 사람들 가운데서 그들에 대한 기억이 끊어지게 하리라, 하였다마는;
삼하 22:11 그분께서 그룹을 타고 나시매 바람의 날개들 위에서 보이셨도다).
▶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
하나님의 신속하고 거룩한 임재 앞에서
애굽의 우상들(얼릴레)은 두려움으로 떨 수밖에 없으니,
출애굽사건에서 그들은 이미 결정적으로 심판을 받았으며
(출 12:12 내가 이 밤에 이집트 땅을 두루 지나가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이집트 땅의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또 이집트의 모든 신에게 심판을 집행하리라. 나는 주니라;
렘 46:25 만군의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노의 무리와 파라오와 이집트와 그들의 신들과 왕들 곧 파라오와 그를 신뢰하는 자들을 다 벌하리라),
그때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 `아무것도 아님'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참조 : (2:18 그분께서 우상들을 철저히 제거하시리라)
따라서 한번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을 맛본 저들이 두려움에 떠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앞에서 떠는 것은 우상들만이 아니다.
용감무쌍하던 애굽인들의 마음(레바브)조차 절로 녹아내린다고 선지자는 말한다.
*참조 : (7:2 어떤 이가 다윗의 집에 고하여 이르되, 시리아가 에브라임과 동맹을 맺었다, 하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의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이 흔들리니라).
고대의 전쟁에서는 적에게 두려움을 주는 그 자체가 곧 승리의 선취라고 여겨졌다.
[사 19:2] 그가 애굽인을 격동하사 애굽인을 치게 하시리니 그들이 각기 형제를 치며 각기 이웃을 칠 것이요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
▶ 그가 애굽인을 격동하사 애굽인을 치게 하시리니 - 히브리어 원문에는
주어가 3인칭(그가)이 아니라 1인칭(내가)으로 되어 있다.
여호와의 말씀은 4절까지 이어진다.
애굽에 내려진 심판의 형태는 내란이다.
(3:5 백성이 학대를 받되 각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각 사람이 자기 이웃에게 학대를 받으며 아이가 원로들에게 교만히 행하고 천한 자도 존귀한 자에게 그리하리라;
삿 7: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주께서 그 온 군대에서 두루 각 사람의 칼이 그의 동료를 치게 하시므로 군대가 도망하여 스레랏의 벧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과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삼상 14:20 사울과 그와 함께 있던 온 백성이 모인 뒤 그들이 싸우러 갔는데, 보라, 각 사람의 칼이 자기 동료를 치매 거기에 크게 쳐부수는 일이 있더라;
왕하 3:23 이르되, 이것은 피라. 분명히 그 왕들이 서로를 쳐서 죽였도다. 그러므로 이제 모압아, 노략하러 가자, 하고;
겔 38:21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칼을 불러 내 모든 산에서 두루 그를 치게 하리니 각 사람의 칼이 자기 형제를 치리라;
슥 14:13 또 그 날에 주께서 그들 가운데 큰 소동을 내리시므로 그들이 각각 자기 이웃의 손을 붙잡으며 각 사람의 손이 일어나 자기 이웃의 손을 치리라).
`격동하다'(시크사크)는 말은 `무장하다', `공격하다'는 뜻이다.
▶ 그들이 각기 형제를 치며 각기 이웃을 칠 것이요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 - 동족 상간(同族相姦)의 비극은
`형제'에서 `이읏'으로, `성읍'에서 `나라' 로 그 범위와 강도를 더해간다.
여기서 `나라'는 수십 개로 나뉘어진 고대 애굽의 지방들(nomes, 노메스)을 가리킨다.
어떤 의미에서 애굽의 역사는 끝없는 자기 소모의 역사라고 할 만하다.
처음 여섯 왕조(B.C. 3,000 - 2,200년경)가 변하는 동안
강력한 연합을 유지하였던 애굽은
그 뒤 약 42개의 노메스(지방정부)로 갈리어 난립하는 혼란기를 맞게 된다.
이 같은 혼란은 제12왕조하(B.C. 1990-1785년경)에서 잠시 주춤거렸을 뿐,
이후 애굽은 거듭되는 분열과 내란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특히 에디오피아 왕조(제25왕조, B.C. 715-664년)가
들어서기 직전과 직후(B.C. 715년경).
그리고 삼메티쿠스에 의한 애굽 왕조의 회복(B.C. 664년경)을 전후하여
혼란은 극에 달한 둣하다.
[사 19:3] 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그 도모는 그의 파하신 바가 되리니 그들이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
▶ 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 극심한 혼란 가운데서
애굽인의 `정신(루아흐)이 쇠약해질 것이다.
여기서 `정신'은 병행하는 뒷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일을 계획하고 처리해나가는 `지혜' 혹은 `분별력'을 의미한다.
'쇠약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베카'는 `바카크'동사의 나팔형으로서,
`공허하게 되다', `쏟아버림을 당하다'는 뜻이다.
애굽인들의 절망 상태는 어쩌다 그들이 입안한 계획들조차
하나님에 의해 못쓰게 된다는 말에서 더욱 심화된다.
▶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 - 사람들의 마음이
두려움에 녹고(1절)
지역마다 분열되어 골육상쟁(骨肉相爭)하며(2절)
판단력마저 고갈된(3a절), 이런 상황에서
애굽 사람들이 의지할 데라곤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판명된 우상들과 죽은 자들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의 비참함은 점강법으로 서술된
‘우상-마술사-신접한 자-요술객'의 어순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즉 그들이 가장 신뢰하던 우상에게 도음을 구하나 불만족한 고로
그보다 낮은 마술사에게 도움을 구하고,
그래도 안 되자 신접한자, 요술객들에게까지 미래를 의탁한다는 것이다(Calvin).
여기서 두 가지 교훈을 추론할 수 있다.
(1) 사회가 불안할수록 허탄한 미신이 판치고 광신적인 종교 집단이 활개친다.
(2)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는
그 어느 것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재한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할 수 없다.
[사 19:4] 그가 애굽인을 잔인한 군주의 손에 붙이시리니 포학한 왕이 그들을 치리하리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그가 애굽인을 잔인한 군주의 손에 붙이시리니 - 본문을 직역하면
`내가 애굽인들을 잔인한 군주의 손에 가둘 것이니...'이다.
새로운 군주에 의한 이 압제의 과중함이 두 개의 형용사,
즉 `카쉐'(단단하고 무겁다)와 `아즈'(강하고 견고하다)로 강조되어 묘사되고 있다.
여기서 `잔인한 군주'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
학자들간에 이견(異見)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그가 애굽의 삼페티쿠스라 하기도 하고(Grotius, Gesenius, Delitzsch),
혹은 앗수르의 사르곤(Hitzig, Hendelwerk) 혹은 에살핫돈(G.W. Rawlinson),
혹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Clericus), 페르시아의 캄비세스(Vitringa)라고도 한다.
그러나 본문에는 잔인한 군주가
애굽 본토인인지 아니면 외국인인지 조차도 분명하게 나와 있지 않다.
따라서 이것을 역사상의 특정한 인물과 결부시키기보다는
`군주들'(아도님)이란 복수 명사에서 알 수 있듯이,
애굽의 여러 군주들에게
지속적으로 압제를 당할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하게 여겨진다(Calvin, Alexander).
[사 19:5] 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 -
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을 `바다'(얌)라고 불렀다.
(18:2 그 땅이 갈대배를 물 위에 띄우고 바다를 따라 대사들을 보내며 이르기를, 민첩한 사자들아, 너희는 흩어지고 벗겨진 민족 곧 그들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두려움을 주는 백성에게로 가되 분량대로 측량되고 짓밟힌 민족 즉 강들이 땅을 못 쓰게 만든 민족에게로 가라! 하는도다).
차고 넘치고 범람하여서 주변 땅들을 적셔주는 나일 강은
예로부터 애굽의 자랑이며 풍요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바다처럼 풍부한 이 강물도 필경은 말라 없어질 날이 이를 것이다.
선지자는 여기서 동일한 의미를 지닌 세가지 동사를 연속적으로 사용하여
나일 강에 임할 기근의 심각성을 강조해서 보여준다 :
`니솨트'(타다, 마르다), `하레브'(메마르다, 말라지다), `야베쉬' (말라지다).
본문을 비유적으로 이해하는 학자들은
애굽의 무질서와 재난이 예기되고 있다고 단언한다(Vitringa, Knobel).
반면에 칼빈(Kalvin)은 나일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
스스로 무적이라고 자부하던 애굽의 군사력이 붕괴됨올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구절들이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선지자는 나일 강의 기근을 통해서 애굽의 기대와 자랑이 무너지고
그로 인해 애굽의 전사업이 일시에 몰락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Gesenius, Delitzsch, Alexander).
본문의 전체적인 묘사는 욥 14:11과 거의 흡사하다.
(욥 14:11 물이 바다에서 없어지고 홍수가 줄어들어 마름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