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거듭난 삶 2022. 4. 2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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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할 메시아의 통치

 

성 경: [32:1-8]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2)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3)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의 귀가 기울어질 것이며

4)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5)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칭하지 아니하겠고 궤휼한 자를 다시 정대하다 말하지 아니하리니

6)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리며 주린 자의 심령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의 마시는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7) 궤휼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베풀어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빈핍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어니와

8)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

 

 

 

[32:1]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그 도성을 공격하려던 대적들(앗수르)은 몰살되는 반면

그 도성은 영속성을 보장받게 되는데,

 

(31:4-9 주께서 이같이 내게 말씀하시되, 사자 곧 젊은 사자가 자기 먹이를 움켜쥐고 으르렁거릴 때에 사람들이 그것을 치려고 목자의 무리를 불러왔다 할지라도 사자는 그들이 소리쳐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그들이 떠들어도 굴복하지 아니하리라. 이와 같이 만군의 주가 내려와서 시온 산과 그것의 언덕을 위하여 싸우리라.

5) 새들이 날 듯 만군의 주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요, 또 그것을 보호하고 건지며 넘어가서 그것을 보존하리라, 하셨느니라.

6) 이스라엘 자손이 그분을 떠나 심히 반역하였거니와 너희는 그분께로 돌아올지니라.

7) 그 날에 모든 사람이 자기의 은 우상들과 자기의 금 우상들 곧 너희가 죄를 지으려고 너희를 위하여 손으로 만든 것들을 던져 버리리라.

8) 또 그때에 그 아시리아 사람이 칼에 쓰러지되 강한 자로 말미암지도 아니하고 천한 자로 말미암지도 아니하며 칼이 그를 삼키리니 그가 칼을 피해 도망하고 그의 청년들은 패주하리라.

9) 그가 두려움으로 인하여 자기 요새로 물러가고 그의 통치자들도 그 기로 말미암아 무서워하리라. 시온에 불을 두고 예루살렘에 용광로를 설치한 주가 말하노라),

 

선지자는 계속해서 장차 그 도성에서 시행될 참되고 의로운 통치에 대해서 서술한다.

그 통치는 새로운 왕과 방백들,

즉 새로운 정부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된다.

 

이제 동참할 '한 왕과 방백들'은 두려워서 도망가는

'앗수르의 왕(반석)과 그 방백들'과 대비된다.

 

(31:9 그가 두려움으로 인하여 자기 요새로 물러가고 그의 통치자들도 그 기로 말미암아 무서워하리라. 시온에 불을 두고 예루살렘에 용광로를 설치한 주가 말하노라).

 

저들은 역사의 무대에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는 엑스트라에들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 언급된 ''은 아마도 종교 개혁을 통해서

여호와 신앙을 부흥시킨 히스기야 왕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장차 오실 메시야의 모형이다.

선지자의 시선은 당대를 넘어 먼 미래에 미치며

그의 예언은 메시야 시대에 이르러 궁극적으로 성취되어진다.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 ''(체데크)

'공평'(미쉬파트)은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통치 규범이다.

 

(1:21 신실하던 도시가 어찌하여 창녀가 되었는가! 공의가 거기에 충만하고 의가 거기에 거하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27 시온은 공의로 구속을 받으며 시온의 회심하는 자들은 의로 구속을 받으리라).

 

''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통제된 올바른 행동의 원리라면,

'공평'은 그 원리의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선지자는 전자를 왕의 덕목에,

후자를 방백들의 덕목에 각각 적용시킨다.

 

 

 

[32:2]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

 

악한 정부의 통치가 백성을 괴롭히는 '광풍''폭우',

그리고 '마른 땅''곤비한 땅'과 같다면,

 

선한 정부의 통치는 그것들로부터의 백성을 보호해주는

'가리는 것'(마하베), '덮는 것'(세테르), '시냇물'(펠레그),

'무거운 바위의 그늘'(첼 셀라-카베그)과 같을 것이다.

 

'광풍-폭우''마른 땅-곤비한 땅'은 팔레스틴 땅의 여행객들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자연 재해들로서,

전자는 큰 비를 동반한 폭풍을,

후자는 뜨거운 햇볕으로 사람의 목을 타게 만드는 무서움을 가리킨다.

 

이와 유사한 말씀들은

 

(4:6 또 장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이 되며 폭풍우와 비를 피하는 피난처와 은신처가 되리라;

 

25:4 무서운 자들의 공격이 성벽을 치는 폭풍 같을 때에 주께서 가난한 자들에게 힘이 되시며 고난에 빠져 궁핍한 자에게 힘이 되시고 폭풍을 피하는 피난처가 되시며 열기를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32:3]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의 귀가 기울어질 것이며 -

 

공의로운 통치가 가져오는 유익은 비단 외적인 측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내면적인 변화까지도 유발된다.

선지자는 이것을 육체적인 질병의 치유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소경 같고 귀머거리 같았던 자들이

다시 시력과 청력을 회복하게 된다.

 

(29:18-19 그 날에 귀먹은 자들이 그 책의 말씀들을 듣고 눈먼 자들의 눈이 어둡고 캄캄한 데서 보며

19) 온유한 자들도 스스로 더 많이 주를 기뻐하고 사람들 가운데 가난한 자들도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기뻐하리니).

 

이 약속은 전에 선지자가 들었던 것이고

 

(6:9-10 그분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말하기를, 참으로 너희가 듣되 깨닫지 못하고 참으로 너희가 보되 알지 못하느니라, 하며

10) 이 백성의 마음을 우둔하게 하고 그들의 귀를 둔하게 하며 그들의 눈을 닫을지니 이것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기에)

 

백성들에게 주어졌던 경고와 대조된 것이다.

 

(29:10 주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 눈을 닫으셨으며 그분께서 대언자들과 너희의 치리자들과 선견자들을 덮으셨느니라)

 

'듣는자의 귀가 기울어진다'는 말은 '주의 깊게 경청한다'(카솨브)는 뜻이다.

 

 

 

[32:4]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

 

급하게 서두르며 초조하고 분주하여 헛된 일에 집착하던

'조급한 자'(님하람)의 마음이 사물의 본성을 파악하는

참된 지식과 통찰력을 갖게 된다.

 

또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는 '어눌한 자'(일김)가 되어

혀를 잘 놀릴지 못하던 자들이 이제는 세련되고 적절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일김'은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종교를 경멸하는 자'를 빗된 말(Knobel, Drechsler)이라기보다는

영적인 세계에 대하여 무지한 자들을 가리킨다.(Delitzsch, Alexander).

 

(28:11 그분께서 더듬는 입술과 다른 언어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32:5]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칭하지 아니하겠고 궤휼한 자를 다시 정대하다 말하지 아니하리니 -

 

이와 같은 영적인 명징(明澄)함의 결과로,

가치가 전도되어 참과 거짓이 뒤바뀌고

악덕과 미덕이 혼동되던 시대에 상습적으로 자행되어졌던 잘못된 일들이

바로잡아질 것이며 모든 일이 올바른 질서 위에서 시행되어짐을 의미한다.

 

'어리석은 자'(나발)'사악한 자'로도 번역 가능하다.

'궤휼한 자'라 번역된 '킬라''간교하다'는 뜻을 가진 '네킬라'의 단축형 (Gesenius)

 

혹은, '낭비하다'는 뜻을 가진 '칼라'에서 파생된 말(Hitzig)

설명되기도 하니 확실하지는 않다.

 

 

 

[32:6-7]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리며 주린 자의 심령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의 마시는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7) 궤휼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베풀어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빈핍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어니와

 

본문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선지자는 '어리석은 자''궤휼한 자'가 전에 그들에게 부여되었던

명예로운 칭호(관직)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들의 본성과 관련하여 설명한다.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리며 주린 자의 심령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의 마시는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

 

성경에서 '어리석음'은 머리의 둔함에 관련된 말이 아니라

마음의 완악함에 관계되는 말이다.

 

(32:6 오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한 백성이여, 너희가 주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분은 너를 사신 네 아버지가 아니냐? 그분께서 너를 만들고 굳게 세우지 아니하셨느냐?;

 

14:1 어리석은 자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였도다. 그들은 부패하여 가증한 일들을 행하였으니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74:22 오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주의 주장을 변호하시고 어리석은 사람이 날마다 주를 모욕하는 것을 기억하소서).

 

어리석은 자는 먼저 하나님을 거스려 죄악을 범하고

다음에는 동료 인간들에 대하여 악행을 저지른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관계에서

옳지 못한 인간관계가 배태(胚胎)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린 자의 '심령(네페쉬)을 비게 한다"는 말은,

굶주린 자를 먹이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그의 양식을 빼앗아

생존할 수조차 없게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죄악을 밥먹듯 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어느 정도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궤휼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베풀어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빈핍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어니와 -

 

'궤휼한 자'는 재물과 이권을 획득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 하여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주된 먹이는 스스로를 보호할 줄 모르는

'가련한 자'(아니윔)'빈핍한 자'(에브욘)이다.

 

 

 

[32:8]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 -

 

'고명한 자'(나디브)는 외부적인 요인에서가 아니라

그 내면에서 우러나는 자발적인 동기에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힘쓰는, 천성적으로 성품이 너그럽고 관대한 사람이다.

 

그는 궤휼한 자가 끊임없이 악한 계책을 도모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항상 고귀하고 덕스러운 일을 생각하고,

또한 생각한 그것을 반드시 실천으로 옮기려고 애쓴다.

 

이러한 그의 덕행은 시간이 지난다 하여도 변하지 않으며

어떤 장애가 가로막을지라도 중단되지 않는다.

 

'서리라'()는 말은 '자라나다', '견고히 서다'는 뜻이다.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서리라,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