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그가 오던 길 곧 그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거듭난 삶 2022. 5. 15.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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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의 기도 3

 

성 경: [37:31-38]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는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히리니

32) 이는 남는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3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 대하여 가라사대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한 살도 이리로 쏘지 못하며 방패를 가지고 성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며 흉벽을 쌓고 치지도 못할 것이요

34) 그가 오던 길 곧 그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35)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36)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 중에서 십팔만 오천 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37) 이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하더니

38) 자기 신 니스록의 묘에서 경배할 때에 그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한고로 그 아들 에살핫돈이 이어 왕이 되니라.

 

 

 

[37:31-32]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는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히리니

32) 이는 남는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남는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히리니

32) 이는 남는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

 

앞절의 농사 비유를 확대하여

선지자는 그것을 유다가 예루살렘의 구원에 적용한다.

 

, 전쟁으로 황폐해진 땅이 온전히 회복되듯이

포위된 성읍으로부터 '남은 자'가 나와 다시 번성하게 될 것이다.

'남은 자'의 주체가 다시 등장한다.

 

(4:3 시온에 남은 자,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살아 있는 자들 중에서 기록된 모든 자는 거룩하다고 불리리니;

 

6:13 그러나 그 땅 안에 여전히 십분의 일이 남을 것이요, 그것이 돌아와서 먹을 것이 되리라. 보리수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자기 잎을 떨어뜨려도 그것들의 본체는 그것들 안에 남아 있는 것 같이 그 거룩한 씨가 그것의 본체가 되리라, 하시더라;

 

10:21-22 남은 자들 곧 야곱의 남은 자들이 강하신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리라.

22) 비록 네 백성 이스라엘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그들 가운데 남은 자만 돌아오리라. 정해진 멸망이 의와 더불어 넘쳐흐르리니;

 

11:11 그 날에 다시 주께서 두 번째 자신의 손을 세우사 자신의 백성 가운데 남은 자들 곧 남게 될 자들을 되찾되 아시리아와 이집트와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의 여러 섬으로부터 되찾으실 것이요,

 

16 아시리아를 떠난 그분의 백성 가운데 남은 자들 즉 남아 있을 자들을 위하여 큰길이 생기리니 그것은 곧 이스라엘이 이집트 땅에서 나오던 날에 그에게 있었던 것과 같으리라).

 

'남은 자'와 동의어로 쓰이는 '피하는 자'(펠레타)

문자적인 뜻은 '피난', '구출'인데,

여기서는 '피신한 사람들'이라는 집합 명사로 사용되고 있다(Alexander, Calvin).

 

'여호와의 열심'은 이 모든 일의 절대적 확실성을 보증하는 근거로서 덧붙여진다.

 

(9:7 그의 정권과 화평이 번창하여 끝이 없으며 그가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 위에 군림하여 그것을 정비하고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공의와 정의로 그것을 굳게 세우리라. 만군의 주의 열심이 이것을 이루리라).

 

 

 

[37:33-3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 대하여 가라사대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한 살도 이리로 쏘지 못하며 방패를 가지고 성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며 흉벽을 쌓고 치지도 못할 것이요

34) 그가 오던 길 곧 그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한 살도 이리로 쏘지 못하며 방패를 가지고 성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며 흉벽을 쌓고 치지도 못할 것이요

34) 그가 오던 길 곧 그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니라 -

 

앞에서 대체적으로 말해졌던 앗수르 왕의 장래가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보다 명확하게 예언된다.

 

그 요지는 '그 왕이 이 성에 결코 이르지 못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본문에서 2번 반복되고 있다.

 

'방패'(마겐)는 화살과 창을 막을 뿐 아니라 성벽에 접근했을 때,

위에서 떨어지는 돌이나 역청을 막는데도 사용되었다.

 

'흉벽'으로 번역된 '솔렐라'는 돌을 들어 던지는 전쟁 무기(Calvin)가 아니라

언덕 위에 있는 도성을 공략하거나 포위할 목적으로 쌓아 올린

작은 토성을 가리킨다(Delitzsch, Oswalt).

 

(32:24 쌓아 올린 산들을 보소서. 그들이 그 도시에 이르러 그것을 취하려 하오며 그 도시가 칼과 기근과 역병으로 인해 그것을 대적하여 싸우는 갈대아 사람들의 손에 넘어갔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졌나이다. 보소서, 주께서 그것을 보시나이다)

 

 

 

[37:35]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

 

예루살렘이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받은 것은,

 

첫째로, 산헤립에 의해서 모욕되고 더럽혀진 당신의 이름(23)을 보존하고

그 영광을 천하만국에 증거(20)하시려는

하나님 자신의 명예를 위한 것이며,

 

둘째로, 하나님께서 그 종 다윗과 맺은 언약을 지키시기 위한 것이다.

 

다윗 언약의 핵심은 '다윗의 나라와 그 위가 그의 자손들로 더불어

견고케 되며 영원히 보존 된다'는 것이다.

 

(삼하 7:12-13 네 날들이 차서 네가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배 속에서 나올 자 곧 네 뒤를 이을 네 씨를 세우고 그의 왕국을 굳게 세우리니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해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왕국의 왕좌를 영원토록 굳게 세우리라,

 

16 네 집과 네 왕국이 네 앞에서 영원히 굳게 서고 네 왕좌가 영원히 굳게 서리라, 하라).

 

이 약속은 후에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써

영적으로 참되고 온전하게 성취되었다(Oswalt, Calvin).

 

(9:7 그의 정권과 화평이 번창하여 끝이 없으며 그가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 위에 군림하여 그것을 정비하고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공의와 정의로 그것을 굳게 세우리라. 만군의 주의 열심이 이것을 이루리라;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막대기가 나며 그의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자랄 것이요;

 

55: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 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와 영존하는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긍휼이니라;

 

30:9 오히려 그들이 주 곧 그들의 하나님과 내가 그들을 위해 일으킬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리라;

 

37:24 내 종 다윗이 그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으리라. 그들이 또한 내 법도 안에서 걸으며 내 법규를 지켜 행하리라;

 

3:5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 주 자기들의 하나님과 자기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들에 주와 그분의 선하심을 두려워할 것이기 때문이라).

 

 

 

[37:36]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 중에서 십팔만 오천 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 선지자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하룻밤 사이에

185,000명의 대군을 잃고 비참한 모습으로

고국으로 퇴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상황을 보도한다.

 

이러한 패배는 그가 하나님과 더불어 대적하고 싸운 데서 연유한 것이다.

이것은 본문에서 두 가지로 지적될 수 있다.

 

첫째로, 앗수르 군대의 몰살은 단 하룻밤 사이에 기적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기적적인 성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이들은 헤로도투스(Herodotus)의 기록에 근거해서,

여기서 하나님의 사자가 사용한 치명적인 살육의 도구는

쥐가 옮기는 페스트 전염병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나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만한 결정적인 단서는 없다.

 

설혹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하룻밤 사이에 전염병으로 인해

엄청난 숫자의 대군이 몰살당한것 역시 기적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로 이 기적의 주체는 '여호와의 사자'였다.

'여호와의 사자'는 유월절의 밤에 애굽의 장자들을 단번에 살육하였던

'죽음의 천사'를 연상시킨다.

 

(12:12 내가 이 밤에 이집트 땅을 두루 지나가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이집트 땅의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또 이집트의 모든 신에게 심판을 집행하리라. 나는 주니라).

 

 

 

[37:37] 이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하더니

 

떠나 돌아가서 직역하면

'(야영지를) 해체하고(이사), 떠나서(옐레크) 돌아왔다(야솨브)'이다.

 

연속적으로 배치된 이들 세 동사는

그들이 혼란 중에 서둘러 퇴각하였음을 보여준다.

 

 

 

[37:38] 자기 신 니스록의 묘에서 경배할 때에 그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한고로 그 아들 에살핫돈이 이어 왕이 되니라.

 

자기 신 니스록의 묘에서 경배할 때에 그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

 

산헤립의 최후는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되었다.

 

(7절 보라, 내가 그에게 돌풍을 보내리니 그가 풍문을 듣고 자기 땅으로 돌아갈 것이요, 내가 그를 그의 땅에서 칼에 쓰러지게 하리라, 하였더라).

 

그는 그의 두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에 의해서 암살되었다.

암살은 그가 신전에서 '니스록'신에게 경배할 때에 일어났다.

 

'니스록''결합자'라는 뜻인데 아마도 산헤립의 개인 수호신인 듯하다.

앗수르의 대표적인 신들 이름에는 '니스록'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그는 대적의 손에서 구원받는 놀라운 은총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헤립의 개인 이름에는 '니스록'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그는 대적의 손에서 구원받는 놀라운 은총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헤립이 그의 신에게 기도했을 때,

그에게 주어진 것은 구원이 아니라 아들들의 손에 의한 비참한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