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네가 어찌하여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거듭난 삶 2022. 5. 24.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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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능력과 절대적 주권

 

성 경: [40:12-31] 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으랴

13)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14) 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주었느뇨

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16)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17)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 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18)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

19)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위하여 은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20) 궁핍하여 이런 것을 드리지 못하는 자는 썩지 않는 나무를 택하고 공교한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서 흔들리지 않도록 세우느니라

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2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 같이 베푸셨고

23)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24) 그들은 겨우 심기웠고 겨우 뿌리웠고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의 부심을 받고 말라 회리바람에 불려가는 초개 같도다

25) 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40:12] 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으랴

 

손바닥.........명칭...간칭 - 이들은 모두 당시의 측량 도구를 가리키는데,

본절에서 이것들을 가지고 달고 재어보는 대상은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이다.

 

당시보다 오늘날은 측량 도구가 발달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것이든 오늘날의 것이든 간에

그것들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헤아릴 수 없다.

 

이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창조적 권능이

위대하다는 사실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40:13]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 '모사''이쉬 아차토'로서

그 문자적인 뜻은 '그의 조언의 사람'이다.

 

본문은 당시 군왕들이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

정치 전문가들에 의존하였던 사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본절은 하나님을 조언할 책략가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자기 충족성(自己 充足性)과 초월성을 가르친다.

 

 

 

[40:14]14) 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주었느뇨 -

 

하나님의 피조 세계조차 헤아릴 자가 없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영에 통달하고

하나님을 유일 무이성, 초월성 및 무한성을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이 모든 세상 존재와 구별되는 거룩하신 분임을 밝히고 있다.

 

 

 

[40: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저울의 적은 티끌 - 원문 직역은 '저울 위에 살짝 놓인 먼지'이다.

 

본절은 물동이의 물 한 방울, 저울 위에 살짝 놓인 먼지 등과 같은

이미지를 사용하여 눈에 보이는 가시적 물리 집단인 당시의 국가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40:16]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

 

표면상으로 본절은,

하나님이 비교할 상대가 없는 위대한 분이라면

그분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셔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러나 핵심적인 의미는,

그 유명한 레바논의 울창한 삼림이나 짐승들로도

그분께 합당한 제사를 드리기에는 오히려 부족하다는 점이다.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땔감용 나무와 희생 제사용 짐승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당시 이스라엘과 그 이웃 나라들은 그들이 살고 있던

팔레스틴이 가장 울창한 삼림과 가장 풍성한 동물들을 소유하고 있다고 자신했었다.

 

 

 

[40:17]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 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 이에 해당하는 세 히브리어

'아인', '메에페스', '토후'

우상과 관련한 묘사에서 자주 언급된다.

 

(41:24 보라,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고 너희 일은 헛것이며 너희를 택하는 자는 가증한 자니라,

 

29 보라, 그들은 다 헛것이며 그들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니 그들이 부어 만든 우상들은 바람이요, 혼동일 뿐이니라;

 

44:9-11 새긴 형상을 만드는 자들은 다 헛되며 그들이 기뻐하는 것들은 유익을 끼치지 못하리니 그것들이 그들의 증인이로다. 그것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한즉 그들이 부끄러움을 당하리라.

10) 누가 신을 만들거나 새긴 형상 곧 아무것에도 유익을 끼치지 못하는 형상을 부어 만들었느냐?

11) 보라, 그의 모든 동료들이 부끄러움을 당하리라. 그 장인들 곧 그들은 사람일 뿐이라. 그들이 함께 모여 서 있게 하라. 그리할지라도 그들은 두려워하며 함께 부끄러움을 당하리로다;

 

46:1-2 벨은 쓰러지고 느보는 몸을 구부리는도다. 그들의 우상들이 짐승과 가축 위에 실렸으며 너희 수레들이 무겁게 짐을 실었은즉 그것들이 피곤한 짐승에게 짐이 되었도다.

2) 그들이 몸을 구부리고 함께 숙이므로 그 짐을 건져 내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들이 포로가 되어 갔느니라).

 

물론 여기서는 제 힘만 믿고 제국주의적 야심에 불탔던 열방들에 대한

풍자적 표현으로 사용되었지만,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주권 앞에서

그들의 존재란 무기력하고 미미하기 짝이 없다는 점에서

허탄하고 허무한 우상(18절 이하 참조)에 비교될 수 있겠다(Watts).

 

 

 

[40:18]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

 

인간이 가진 특징 중에 하나는 경험한 세계를 토대로

경험치 못한 세계를 상상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 같은 특징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유용하다.

그러나 그 같은 기능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피조 세계에 보이는 어떤 사물이나 인간을 연관시키는 목적에 사용할 때는

우상 숭배라고 하는

극악한 죄에 빠지게 되는데 바로 이점을 본절은 지적하고 있다.

 

 

 

[40:19]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위하여 은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본절은, 우상이 인간의 고안물임을 밝히고 있다.

앞부분에서(17) 열국을 말하고 나란히 우상을 말하는 까닭은

고대 세계에서 한 나라와 우상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전쟁을 단지 전쟁 당사국간의 싸움이 아니라

나라마다 섬기던 신들 간의 싸움으로 믿었다.

따라서 싸움 후 진 편의 신은 없어지든지

이긴 편의 신에게 종속적 존재가 되곤 하였다.

 

이러한 경향에 따라 당시 이방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을 바벨론의 말둑(Marduk) 신에 의한

하나님의 패배로 이해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18절에서부터 저자는

우상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고안한 물건에 불과하며

따라서 이스라엘의 패배는 하나님의 패배가 아니라

그 원인은 다른 곳에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40:20] 궁핍하여 이런 것을 드리지 못하는 자는 썩지 않는 나무를 택하고 공교한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서 흔들리지 않도록 세우느니라

 

흔들리지 않도록 세우느니라 - 우상을 세운 사람이 그 마음대로 옮기거나

고정시킬 수 있음을 암시함을 통하여

하나님만이 인간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분임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표현이다.

 

 

 

[40: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

 

본절은 지난 시간에 배운 것을 복습하기 위해 질문하는 교사를 연상케 한다.

이스라엘은 어려서부터 만물의 기원을 배웠다.

 

저자는 하나님이 피조 세계와 초월해 계시는 분임을

강조하기 위해 의문법을 사용하고 있다.

 

 

 

[40:2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 같이 베푸셨고

 

메뚜기 같으니라 - 땅과 하늘 사이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사람이 지극히 자그마하게 보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으나,

문맥상 하나님과 비교조차 되지 못하는

인간의 무력함과 미미함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40:23]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

 

인간의 눈에 방백이나 재판관들은 힘있는 자들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무력한 존재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권세를 주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언제든지 그 권세를 폐하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40:24] 그들은 겨우 심기웠고 겨우 뿌리웠고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의 부심을 받고 말라 회리바람에 불려가는 초개 같도다

 

37:31과 뚜렷이 대조되는 구절이다.

 

(37:31 유다의 집에서 피하여 남은 자들은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

 

견고하게 뿌리내려 과실을 맺는 의인과는 반대로,

악인은 열매는 커녕 뿌리조차 내리지 못하는 식물에 비유되고 있다.

 

 

 

[40:25] 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 이에 해당하는 '에쉬에'

문자적으로 '내가 같아지겠느냐'는 뜻이다.

 

하나님의 유일 무이성이 이번엔 하나님 자신의 말로써 다시 한번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이하에서는 이러한 강조의 근거가 이어지고 있다.

 

 

 

[40: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 하늘 영역을 보라고 말한다.

25절까지에서는 땅의 영역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하늘 영역에까지 확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의 크심, 완전성, 절대성을 증명하고 있다.

 

 

 

[40: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

 

본절에서는 야곱, 곧 이스라엘이

자신은 정당한데 그 정당한 사정이 하나님께 외면당하고 있다고

원망한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

 

우리는 26절까지에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절대성, 초월성, 무한성, 무비성(無比性)이 강조된 것을 보아왔는데

본절부터 31절까지에서 그 강조한 바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40: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

 

하나님으로부터 그 사정이 외면당했다고 생각하여

절망, 좌절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먼저 자신을 영원하신 분,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 그리고 한번 시작한 일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일관성 있는 분, 신실한 분, 아무도 깨달을 수 없는

무한한 지혜를 가지신 분임을 선포하신다.

 

 

 

[40: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계속해서 본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긍휼에 풍성하신 분임을 첨가하고 계신데,

영원, 무한, 신실, 전지하신 분이

힘없고 능력없는 자에게 힘주신다는 사실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만든다.

 

 

 

[40: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 '장정'에 해당하는 '바후림'의 문자적인 뜻은

'선발된 자'인데 이들은 긴박한 사업, 위험한 일 등을 수행하기 위하여

피택된 자들을 가리킨다.

 

여기서 이들이 특별히 뽑힌 장정들이라고 할지라도

질병이나 피로, 사고 등에 의하여

그 힘이 쇠약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

 

인간은 하나님을 의존하고

하나님을 바랄 수밖에 없는 의존적 존재이므로,

그의 은혜를 받기 위하여 그를 바라보고 의지하라는 강한 권고의 말씀이다.

 

본서 1장은 이스라엘의 당면된 현실을 바라보면

소망이 없음을 강변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 하나님으로 인한 소망과 가능성을

조금씩 비치기 시작하는데 그 절정은 53장에서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