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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감을 입을지라도

거듭난 삶 2022. 7. 16.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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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성 경: [57:1-5]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감을 입을지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2) 그는 평안에 들어갔나니 무릇 정로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

3) 무녀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씨 너희는 가까이 오라

4) 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궤휼의 종류가 아니냐

5) 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 틈에서 자녀를 죽이는도다.

 

 

 

[57:1]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감을 입을지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지라도 -

 

여기 '의인'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자는

자신이 살던 당시에 무고한 자들의 희생이 일반적인 경향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죽을지라도'로 번역된 '아바드'

하반절에 '취하여 감'으로 번역된 '네에사핌'

모두 박해로 죽어가는 상황을 암시하는 용어들이다.

 

유다에도 무고한 피를 흘리게 하는 왕들이 많았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므낫세이다 :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유다로 범하게 한 그 죄 외에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가에서 저 가까지 가득차게 하였더라"(왕하 21:16).

 

유대 전승과 초대 교부들은 본서 저자 이사야가

바로 이 악명 높은 므낫세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화액(禍厄)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 - 원문 직역은

 

'다가올 악으로부터 취하여진 것

(is taken away from the evil to come, KJV)이다.

 

사방도처에 만연한 도덕적 악행으로부터,

이방 군대의 침입으로 나타날 민족적 죄악에 대한

징벌로부터 취하여 갔다는 뜻이다.

 

, 의인이 너무 이르게 죽은 이유는

그가 만연한 도덕적 악행을 더 이상 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또 이방 군대의 침입으로 인한 쓰라린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미리 데려가셨다는 것을

(are taken away to be spared from evil, NIV) 가리킨다.

 

의인 아비야의 죽음을 성경은 그를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이 그에게 내린 축복으로 묘사하고 있다.

 

(왕상 14:10-13 그러므로, 보라,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가져와 담에다 소변보는 자와 이스라엘 안에 갇힌 자나 남은 자를 여로보암에게서 끊어 버리되 사람이 거름을 제거하여 다 가지고 가듯이 여로보암의 집의 남은 자를 제거하리라.

11)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 중에 도시에서 죽는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는 자는 공중의 날짐승들이 먹으리니 주가 그것을 말하였느니라, 하시나니

12) 그러므로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도시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으리라.

13) 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하여 애곡하며 그를 묻으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 중에서 그만 무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에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향한 어떤 선한 일이 그에게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니라).

 

 

 

[57:2] 그는 평안에 들어갔나니 무릇 정로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

 

정로(正路)로 행하는 자 - 여기 '정로로'에 해당하는 '네코호'

'곧바른', '바른' 등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 용어는 악인이 걷는 '구부러진' 길과 대조할 때

자주 사용되는 형용사이다.

 

(59:8 그들이 화평의 길을 알지 못하고 그들이 가는 곳에는 공의가 없도다. 그들이 그것들을 굽은 길로 만들었으니 누구든지 그 안에서 가는 자는 화평을 알지 못하리로다;

 

125:5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에 관하여는 주께서 그들을 불법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이끄시리로다. 그러나 이스라엘 위에는 화평이 있으리로다;

 

2:15 그들의 길들은 구부러지고 그들은 자기 행로들에서 비뚤어진 자들이로다;

 

2:15 이것은 너희가 흠이 없고 무해한 자 곧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민족 가운데서 책망 받을 것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려 함이라. 그런 민족 가운데서 너희가 세상에서 빛들로 빛나며).

 

 

편히 쉬느니라 - 의인의 몸이 그의 무덤에서 안식을 취하는 듯이 묘사하고 있다.

신약 성경은 재림 때에 성도의 몸이 부활할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서

죽은 자를 '자는 자'로 부르기도 한다.

 

(살전 4:14 우리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일어나셨음을 믿을진대 그와 같이 예수님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데려오시리라).

 

 

 

[57:3] 무녀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씨 너희는 가까이 오라

 

무녀의 자식 - 문자적인 뜻은 '마술의 아들들',

참신이신 하나님보다 이방인이 추구하던

마술, 마법 등에 탐닉해 있던 이스라엘을 풍자하는 표현이다.

 

이스라엘은 동방의 이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마술, 마법 등에 빠져 있었는데 특히 므낫세 왕 때 아주 심하였다.

 

(왕하 21:6 또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때를 살피고 마술을 행하며 부리는 영들과 마술사들과 관계를 맺고 주의 눈앞에서 악을 많이 행하여 그분의 분노를 일으켰으며).

 

 

간음자와 음녀의 씨 - 1차적으로는 도덕적 기준이 문란해짐에 따른

성적 부패 현상 혹은 이방인과의 결혼 금지 규례가 무시되어

음란함이 이스라엘에 만연하였던 사실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아울러 이 말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좇는 영적 음란함에 대한 지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특히 므낫세 통치 때 만연하였던 악하고 부패한 모든 행실 가운데

가장 일반적이었던 것이 바로 음란함이었다.

 

*참조 : (황하 21).

 

어떤 경우에 있어,

이 음란함은 우상 숭배 예식에 필수적인 동반 요소였다.

 

예수님도 당대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함에 있어서

음란함에 대해 반복 언급하셨다.

 

(12:39 그분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대언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 표적도 그 세대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16: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대언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 표적도 그 세대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그들을 남겨 둔 채 떠나가시니라).

 

 

 

[57:4] 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궤휼의 종류가 아니냐

 

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 '희롱하느냐'에 해당하는 '티트아나구'

'장난치다', '조롱하다' 등을 뜻하는 '아나그'에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후자인 '조롱하다'가 문맥과 어울린다.

 

1절에서 '의인들'에 대한 언급이 나왔기 때문에

'조롱'의 대상은 그들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이스라엘 역사를 볼 때 우상 숭배자들이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하고 경멸적 제스처를 취한 경우는 많았다(Whybray).

 

우상 숭배자들의 그 같은 태도는 결국

의로운 자들이 섬기는 하나님 그분에 대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혀를 내미느냐 - '혀를 감느냐'로도 번역되는데

한마디로 순간적으로 혀를 밖으로 쭉 내밀었다가

안으로 끌어들이는 동작을 가리키며 이는 경멸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57:5] 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 틈에서 자녀를 죽이는도다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음욕을 피우며 - '상수리나무 사이'

'바엘림'인데,

 

'테레빈나무(팔레스틴에 서식하던 나무의 일종)의 숲 사이'로 보는 견해(Kimchi),

'우상의 형상들'로 보는 견해(70인역)가 있다.

 

그 어느 견해를 따르든 간에 분명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본 구절은 숲속에서 이방 신을 숭배하던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대상은 테레빈나무로 만든 우상일 수도 있다.

 

'푸른 나무 아래'란 표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기보다는

이방 우상 숭배 의식을 서술하는 대목에

대체로 수반되는 틀에 박힌, 상투적 표현의 의미가 있다.

 

(왕하 17:10 모든 산 속과 모든 푸른 나무 밑에 자기들을 위해 형상들과 작은 숲들을 세우며;

 

대하 28:4 또 여러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밑에서 희생물을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자녀를 죽이는도다 - 상반절의 우상 숭배 의식에 대한 언급과 유사한 내용으로

인신 희생 제사를 가리킨다.

 

특히 이는 몰록 신에 대한 제사를 연상시킨다.

 

(18:2 너는 결코 네 씨 가운데 하나라도 몰렉을 위하여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지 말고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주니라1;

 

왕하 23:10 또 왕이 힌놈의 자손들의 골짜기에 있는 도벳을 더럽게 하여 아무도 몰렉을 위하여 자기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지 못하게 하니라).

 

몰록 신 숭배했던 타락한 이스라엘 부모들은

그 자식을 죽여 불에 태워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

 

성경은 이 사실을 정확히 증명해주고 있는데

그 제사가 시행되던 곳은 그 악명 높은 힌놈의 골짜기였다.

 

(대하 28:3 또 그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분향하며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교도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자기 아이들을 불 속에서 태우고).

 

이 끔찍스러운 제사는 가나안 민족과 바벨론 민족에 의해서도 행하였으며

 

(왕하 17:31 아바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을 만들며 스발와임 사람들은 자기 아이들을 불에 태워 스발와임의 신들인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드렸더라),

 

역사가들에 따르면 페니키아 민족,

그리고 카르타고 민족에 의해서도 자행되었다고 한다(Eusevius, Diodorus Siculus).

 

이스라엘에서는 아합 때 처음 시작되었고

국가적 위기 때에 가끔씩 자행되다가

아하스와 므낫세 때 널리 유행되었으며 요시야 때 폐지되었다.

 

(왕하 23:10 또 왕이 힌놈의 자손들의 골짜기에 있는 도벳을 더럽게 하여 아무도 몰렉을 위하여 자기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지 못하게 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