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
에베소 교회
성 경: [계 2:1-4]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 2: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에베소'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상업상으로는 매우 중요한 교역의 중심지로서
소아시아에서 제일 부유한 도시이며 유프라테스에서 라오디게아를 경유하여
에베소까지 이르면서 동방의 산물이 종착하는 곳이었다.
(2) 종교적으로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Artemis) 여신상이 있어서
미신이 성행하였으며 황제 숭배가 행해지던 부도덕한 곳이었다.
(3) 정치적으로는 로마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아 '스트라테고이'(Strategoi)라는
독자적 행정관이 있었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통치 기관으로서
'불레'(Boule)라는 민회관과 순회 재판소가 있었다.
따라서 명목상 '버가모'가 소아시아의 수도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에베소가 소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Mounce, Kraft, Kiddle).
이러한 에베소에 기독교 신앙이 전파된 것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또한 바울이 이 에베소 지역에
2년 간 머무르며 목회하였고 후에 디모데가 바울의 열심을 본받아
목회 활동을 함으로 예루살렘과 안디옥에 이어 기독교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다(Ironside).
* 참조 : (행19장;
딤전 1:3 내가 마케도니아로 갈 때에 에베소에 머물 것을 네게 간청하였나니 이것은 네가 어떤 사람들에게 명하여 그들이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며),
한편 '사자'는 그리스도에 의해 책임을 갖고 교회를 수호하는
하늘의 천사들을 가리킨다(Johnson, 1:20주석 참조).
▶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 본문은
에베소 교회에 계시된 그리스도의 모습에 대한 묘사이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에서 '붙잡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톤'은
단순히 '잡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요동할 수 없도록
확실하게 움켜쥐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호하시고 통치하시며 지배하고 계심을 시사한다.
(1:13 그 일곱 등잔대의 한가운데에 사람의 아들 같으신 분께서 발까지 내려온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두르고 계시더라,
16 그분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이 있으며 그분의 입에서는 양날 달린 날카로운 칼이 나오고 그분의 용모는 해가 세차게 빛나는 것 같더라,
20 곧 네가 본, 내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과 일곱 금 등잔대의 신비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들이요 네가 본 일곱 등잔대는 일곱 교회니라).
한편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 역시 그리스도께서 교회들을 사랑하고,
능력 가운데 교회에 임재하고 계심을 암시한다(Mounce, Johnson, Clarke).
[계 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 '행위'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가'는
포괄적인 의미로 전체적인 삶의 모습을 말하며,
(요 3:19-20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이는 악을 행하는 자마다 자기 행위를 책망 받을까 염려하여 빛을 미워하고 또 빛으로 나아오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5:36 그러나 내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나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끝마치게 하시는 일들 곧 내가 행하는 바로 그 일들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해 증언하느니라;
요일 3:8 죄를 범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죄를 짓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이것이니 곧 그분께서 마귀의 일들을 멸하시려는 것이라),
'수고'의 헬라어 '코폰'은 단순한 노력의 차원이 아니라
고통스런 노동을 동반할 최선의 삶을 가리키고,
(롬 16:12 주 안에서 수고하는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한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고전 15:10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그들 모두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인내'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모넨'은 '아래'를 의미하는 '휘포'와
'머물다'를 의미하는 '메노'의 합성어로
어떤 어려움도 개의치 않고 적극적으로 극복해 나가는 확보 부동함을 나타낸다.(Lenski, Morris)
(약 1:3 너희 믿음의 단련이 인내를 이루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이러한 '행위'와 '수고'와 '인내'의 항목에 대해 혹자는 살전 1장과 연결시켜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로 해석하여
각각 독립적인 덕목이라고 주장하며(Rist),
혹자는 '수고'와 '인내'를 '행위'의 내용으로 해석한다.
(Mounce, Johnson, Charles, Moffatt, Plummer).
두 가지 견해 중 헬라어 구문상 후자가 더 타당하다.
한편 '알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다'는 단순히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나타내는
'기노스코'('알다')와는 달리 직관적으로 아는 생득적(生得的) 지식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가 행하는 수고와 인내를 모두 알고 계심을 나타내므로
그리스도의 전능성을 시사한다.(Sweete)
(9 내가 네 행위와 환난과 궁핍을 알며 (그러나 네가 부유하도다) 또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인 자들의 신성모독을 아노라,
13 내가 네 행위를 알고 또 네가 거하는 곳을 아노니 즉 사탄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붙잡고 안디바가 나의 신실한 순교자가 되어 너희 가운데서 곧 사탄이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한 그때에도 나의 믿음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
3:1 사데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아 있다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죽었도다,
8 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그것을 닫지 못하리라. 네가 적은 힘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 본문은 에베소 교회가 가졌던 고상한 영적 분별력을 말한다.
여기서 '악한 자들'(카쿠스)은 관사 없는 복수 명사로 문자적으로 '악한 것들'을 뜻한다.
이 말이 정확하게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으나 대체적으로 에베소에 있던
거짓 사도 혹은 거짓 교사들을 가리키는 듯하다(Mounce, Johnson, Ladd, Greijdanus).
이들은 자칭 사도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가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주의자들로 본다(고후11:13-23, Spitta).
(2) 바울의 제자들로 간주한다(Holtzmann).
(3) '니골라당'으로 본다(Bousset, Charles),
이 중 세 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6절에 에베소 교회가 미워하던 거짓된 자들인
니골라당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행 20:28-30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모든 양 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이것을 아노니 곧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와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요,
30) 또 너희 가운데서도 제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고 왜곡된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리라;
고후 11:13 그러한 자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며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갈 1:8-9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한 것 같이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가 받아들인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은 예수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주장하는 교리나 확신을 통해서 이익을 추구하였다.
(고후 11:13 그러한 자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며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5 그러므로 그의 사역자들 또한 의의 사역자로 가장한다 하여도 그것은 결코 큰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들의 행위대로 되리라;
12:11 내가 자랑함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었거니와 너희가 억지로 나를 시켰느니라. 내가 너희에게서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노니 내가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무슨 일에서나 가장 으뜸가는 사도들보다 결코 뒤지지 아니하노라).
교회는 자칭 사도라 하는 이러한 거짓된 자들의 거짓을 구별할 필요성이 있었고,
에베소 교회는 훌륭한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의 열매'를 통해
(마 7:20 그러므로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거짓을 분별하고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그들의 거짓을 드러냈다(Johnson, Mounce).
(고전 14:29 대언자들은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말하고 다른 사람은 판단할 것이요;
살전 5:21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선한 것을 굳게 붙들라;
요일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그것들을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대언자들이 나와서 세상에 들어왔기 때문이라)
[계 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 본절은
앞절에 나타난 사실을 반복하여 더욱 강조함과 동시에
에베소 교회의 신앙의 정절을 나타낸다.
당시 교회는 황제 숭배 강요 때문에 심한 박해 가운데 있었고,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이단들의 내적 도전들이 많았으나
에베소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고 복음에 확고히 서서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을 굳게 지켰다.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 본절은
에베소 교회에 대한 책망을 나타낸다.
'처음 사랑'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 이다.
(1) 에베소 교인들이 가졌던 기독교적인 사랑,
즉 형제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Vincent, Plummer, Charles, Moffatt, Rist, Kiddle).
(행 20:35 내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보여 주되 곧 너희가 마땅히 이렇게 수고하여 약한 자들을 지원하고 또 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즉,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도다,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였느니라;
엡 1:15 이러므로 주 예수님을 믿는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에 대해 들은 뒤에 나도),
(2) 처음 그리스도를 영접하면서 가졌던 그리스도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cott).
에베소 교인들은 자신들의 교회에 있던 거짓 사도들을 분별하느라고 형제를 의심하고
엄격하게 구별함으로 형제에 대한 사랑이 식어졌다(Barclay, Mounce, Ladd).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형제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Beasley-Murray, Johnson).
(막 12:29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모든 명령 중에서 첫째 명령은,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형제 사랑을 동반하기 때문에
진정한 기독교적 사랑은 어느 하나라도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한편 '버렸느니라'에 해당하는 '아페카스'는 부정 과거로
단회적 행동을 나타내어 에베소 교인들이 그들이 가졌던 처음 사랑과
완전히 단절되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본문은 에베소 교회가 교리적(敎理的)으로 칭찬할 사실이 있다 할지라도
생명 없는 형식주의로 전락하여
사랑을 상실했음을 단호하게 책망하고 있다(Alford, John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