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거듭난 삶 2023. 4. 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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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아디라 교회

 

성 경: [2:18-21]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2: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두아디라'의 옛 이름은

'펠로피아'(Pel- pia) 혹은 '유힙피아'(Euhiooia)이며,

현재는 '아킷살'(Akhissar)로 불리운다.

 

이곳은 버가모와 서머나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공업 도시로 유명한 곳이었다.

주전 190년 경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고

태양신 '아폴로'(Apollo)'아데미'(Diana), '삼바다'(Sambatha) 등의 신전이 있었으며,

공업이 발달하게 된 동업 조합이 유명하였다.

 

빌립보에서 개종한 자주 장사 루디아가 이곳 출신의 여인이었다(Johnson).

 

(16:14 두아디라 시 출신의 자주색 옷감 장수로서 하나님께 경배하던 루디아라 하는 어떤 여자가 우리의 말을 들으매 주께서 그녀의 마음을 여시므로 그녀가 바울이 말하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니라),

 

한편 두아디라 교회가 어떻게 설립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 때 전도하였거나

루디아가 전달하여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그리스도의 모습은

두아디라에서 숭배하던 태양신 '아폴로'와 거짓 예언자 '이세벨'(20)

 

(20절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염두에 두고 경고하시는 것으로 그들의 우상 숭배와 행음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시리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당시 청동업이 발달한 두아디라에 사는 교인들에게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모습은

생생한 화면처럼 느껴지는 계시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Johnson, Ramsay).

 

(1:14-15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양털같이 희고 눈같이 희며 그분의 두 눈은 불꽃 같고

15) 그분의 두 발은 용광로에서 달군 듯한 정제된 놋 같으며 그분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한편 '하나님의 아들'이란 언급은 일곱 교회 서신의 서두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 중에서 본절에만 나타난다.

이는 시2:7을 반영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품성의 위엄을 강조하며(Charles)

 

(2:7 내가 칙령을 밝히 보이리라.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이 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두아디라 지방의 우상이면서 제우스의 아들로 여겼던 아폴로나 황제와 대조를 이루어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사한다(Mounce, Lenski).

 

 

 

[2: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버가모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칭찬은 버가모 교회가 지닌 성숙함에 대한 것이었다.

본절에는 다섯 가지 칭찬 덕목이 나타난다.

 

사업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가'는 에베소 교회의 '행위'와 같은 것으로

연이어 언급되는 '사랑', '믿음', '섬김', '인내' 등의 제반 덕목을 포괄한다.

 

사랑 - 이것은 에베소 교회가 부족했던 덕목으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마땅히 지녀야 할 삶의 규범이다.

 

(22:37-40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38) 이것이 첫째가는 큰 명령이요,

39) 둘째 명령은 그것과 같은 것으로서,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니라.

40) 모든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이 이 두 명령에 매달려 있느니라, 하시니라;

 

고전 12:31- 오직 가장 좋은 선물들을 간절히 사모하라. 그럼에도 내가 너희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이노라

 

13:1-3 내가 사람들의 언어들과 천사들의 언어들로 말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징과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대언하는 선물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이해하며 또 모든 믿음이 있어 산을 옮길 수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3) 내가 모든 재산을 바쳐 가난한 자들을 먹이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이 내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느니라).

 

믿음 -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되는 삶을 가리킨다. 그런데 '믿음'보다 '사랑'의 덕목이 먼저 언급된 것은 두아디라 교회가 믿음보다 '사랑'을 강조한 듯하다. 그래서 말씀과 믿음의 바탕이 없는 사람들이 '이세벨'같은 이단을 수용한 듯하다.

 

섬김과 인내 - 이는 '사랑'의 외적 표현으로 칭찬받을 만한 훌륭한 덕목이다.

 

(15:25 그러나 지금은 내가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노니;

 

고전 16: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이 아가야의 첫 열매인 것과 또 그들이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전념해 온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 이것은 에베소 교회와는 정반대되는 현상으로,

 

(4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조금 있나니 이는 네가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라)

 

두아디라 교회의 신앙 상태가 현저하게 진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에베소 교회가 믿는 도리를 강조하다 사랑을 잃었으나

두아디라는 사랑이 식지 않았고 계속해서 그 사랑의 사업이

처음보다 더 많아졌음을 나타낸다.

 

 

 

[2: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

 

구약성경에서 '이세벨'은 시돈의 왕녀였으나,

 

(왕상 16:31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들 가운데서 걷는 것을 가벼운 일로 여기고 시돈 사람들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으며 또 가서 바알을 섬겨 그에게 경배하고;

 

왕하 9:7 너는 네 주인 아합의 집을 치라. 이로써 내가 내 종들 곧 대언자들의 피와 주의 모든 종들의 피에 대한 원수를 이세벨의 손에 갚으려 하노라)

 

이스라엘 왕 '아합'의 왕비가 되어 바알신을 이스라엘에 가져와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 숭배를 하게 함으로 영적 간음을 행하게 하였다.

 

두아디라 교회에도 거짓 선지자인 이세벨이 있었다.

두아디라 교회에 있던 '이세벨'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다른 사본에 '이세벨' 앞에 '너의'()가 있어 당시 두아디라 교회 교역자의 아내라 주장한다.

 

(2) 특정 인물이기보다는 상징적인 인물로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세벨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이단자라고 주장한다(Alford, Charles, Barclay, Walvoord).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당시 두아디라에 성행했던 조합(組合)과 관련하여

우상의 제물을 먹고 성적 부도덕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그 거짓 선지자의 정체를 폭로하기 위해 구약성경의 이세벨이란 명칭을

상징적으로 사용한 듯하다(Alford,Johnson).

 

사실상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의 정체를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를 교회 내에서 활동하도록 용납함으로 범죄하였다.

그들은 분명히 이세벨을 징계했어야만 하나 하지 않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편 이세벨이 저지른 죄악은 두아디라 교인들을 유혹하여 행음케 하고

우상 제물을 먹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세벨의 행위는

에베소와 버가모 교회의 니골라당이나 발람의 가르침과 유사하다.

 

(14-15절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몇 가지 있나니 이는 거기에 발람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네게 있기 때문이로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들을 먹게 하고 또 음행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있거니와 내가 그것을 미워하노라).

 

 

 

[2: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

 

'주었으되...아니하는도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도카...우 델레이'에서

'에도카'는 부정 과거형으로 결정적인 경고의 기회가 주어졌음을 나타내며,

'우 델레이'는 현재의 시상으로 지금도 계속하여 회개하기를 원치 않음을 나타낸다.

 

거짓 선지자인 이세벨에게도 회개의 기회는 주어졌다.

그러나 '이세벨'은 주어진 회개의 기회조차도 거부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되었다.

 

(22-23절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