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 성령 강림 2
[행2:4-13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 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
성령의 충만함은 성령 침례와는 다른 것이다. 성령의 충만은 여러 번 되풀이 될 수 있어서 구원의 때 뿐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 일어날 수 있다.
(4: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6:3-5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9: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3: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그러나 성령의 침례는 구원의 순간에 모든 믿는 자들에게 단회적(one for all)으로 일어난다. 그러면 성령의 충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울의 경우 그의 서신에서 성령의 충만에 대해 꼭 한 번만(엡5:18) 언급하고 있다. 심지어 그가 성령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다루는, 이른 바 성령장이라고 할 수 있는 롬 8장에서도 성령 충만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특이한 현상이라 할 수 있는데 바울은 오히려 성령의 인도나 지배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롬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게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따라서 그는 성령의 인도나 지배를 받는상태를 성령의 충만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내주하신 성령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의
지배와 인도함을 받는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공간적으로 성령이 채워지거나 다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하나님은 바벨탑의 사건을 통해서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그들을 흩어버리셨다.
(창11:1-9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제자들이 성령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게 된 이 사건은 혼잡케 되었던 언어가 다시 회복된 것으로서 새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주님의 부활의 소식이 우주적 로 확산(擴散)될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메이어(Meyer)외에 많은 비평학자들은 오순절 체험이 비역사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본절과 같은 이적을 저자가 미화시킨 것으로 주장한다(Bauer, Schnekenburger. De Wette).
이러한 주장은 근본적으로 본서의 역사성을 부정하고 누가의 의도적 편집에 의한 것으로 보았던 편견에서 비롯되었다.
이 견해를 따르게 되면 결국 본서가 바울이라는 인물을 부각시키고 미화시키기 위한 전기(biography)에 불과하며 결코 영감받은 책이 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비평주의자들의 견해는 이런 면에서 배격되어야 한다.
한편 이 구절에서 성령의 침례를 말하지 않고 오히려 성령의 충만을 말하지만 이미 1:5(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에서 성령의 침례를 예언했고
또 11:15-16(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침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에서는
성령 침례가 오순절에 일어났다고 회고하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오순절에 성령 침례와 성령 충만의 사건이 거의 동시적으로 발생했음을 암시한다. 우리는 이 사건이 교회가 세워지기 위한 처음의 특수한 상황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제자들에게 성령침례의 증거는 방언이었다. 그들은 성령을 받고 자신들이 아직 배운 바가 없는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고, 다른 여러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했다.
이것들은 성령이 그의 경륜에 찬 사역을 이루시기 위하여 강림한 증거들일 뿐 일반적이며 영속적인 은사는 아니다.
[행2: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 그 때에 - 이 시점은
(1)유대인의 명절인 오순절을 지칭할 수 있고
(2)성령 강림의 때를 의미할 수 있다. 여기서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경건한 유대인이 - 누가가 '경건한'이란 뜻으로 사용한 이 말은 신약에서 유대인들에게만 사용되고 있다.
(8: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22:12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눅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유대인들은 본래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경건하게 살아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경건한 유대인'이란 표현은 이방인들을 가리켜 경건하다고 할 때
(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사용되었던 말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본절에서 이 표현은 오순절과 그 규례
(민 28:26-31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27 수송아지 둘과 수양 하나와 일 년 된 수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28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매 수송아지에는 에바 십분지 삼이요 수양 하나에는 에바 십분지 이요
29 어린 양 일곱에는 매 어린 양에 에바 십분지 일을 드릴 것이며
30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수염소 하나를 드리되
31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를 지키기 위해 모인 유대인 중에서 율법을 잘 준수(遵守)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
유대인 중 다수가 바벨론에 의해 남쪽 유다가 멸망당한 후(B. C. 586)각국에서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약 1:1; 벧전 1: 1)였다.
한편 '우거하다'는 말은 보통 한곳에 머물러 사는 것을 뜻한다. 특히 헬라어 본문의 9절에서 각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이 말이 사용된 것을 볼 때. 어떤 사람은 예루살렘에 거주했던 것으로 짐작할 수도 있다(De Wette).
그러나 8-11절의 내용이 외국에 거주하던 '디아스포라'를 암시하므로 오순절의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온 나그네였을 것이다(Meyer, Alfoed, Knowling, H. Marshall).
[행2: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 이 소리가 나매 - 이 소리는 방언으로 말하는 인간의 소리를 의미한다.
☞ 큰 무리가 모여 - 이는 4절의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소리를 듣고 큰 무리가 모여들었던 것을 뜻한다(Robertson).
이로 보아 제자들이 머물러 기도했던 장소가 예루살렘 성 안에서 많은 사람이 붐비는 장소에 위치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
'듣고' 란 미완료시상으로서 무리들이 소리를 들은 시각이 한참 방언하고 있을 때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제자들이 방언이 다락방에서 처음으로 일어났고 주변의 골목과 안뜰에서 계속 일어났으며 마지막에는 예루살렘 성전 경계 지역까지 퍼져 나갔던 것을 암시하여 주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제자들의 방언은 잠시 동안이 아니라 상당히 오랜 시간 지속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방언' 은 '자신들의 언어'(NIV, NASB)로서 고전 14장에 언급된 성령의 은사(恩賜)인 방언은 아니다.
각 사람은 자신들이 거주하던 나라의 언어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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