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흘린 발자취 18

후 기 (後 記)

후 기 (後 記) 1. 암흑시대의 기간에도 가톨릭과는 하등의 관계도 맺지 않았던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그리고 독립된 여러 교회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사도들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교회들도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카톨릭과 그 교리를 전적으로 부인하고 배척하였다. 2.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던 잔악하고 무서운 핍박의 대상이 되었다. 이 역사는 A.D 426년부터 시작되었던 약 12세기 동안의 암흑시대에 무려 5천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순교자로서 죽음을 당하였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암흑시대 이전과 이후에도 수십만 명의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잔악한 박해의 손길 아래 죽어갔던 것이다. 3.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세기 동안 계속되었던 이 암흑시대를 통하여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렸던 ..

피흘린 발자취 2023.03.02

미국의 교회사 3

미국에 있어서 신앙의 자유에 가장 큰 장애가 되었던 것은 (아마 이에 대해서는 온 세계가 다 그렇겠지만) 지나간 여러 세기를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라난 확신, 즉 종교라는 것은 정부의 지지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어떤 교파라 할지라도 교인들이 자진하여 바치는 헌금만으로는 유지되고 번성해 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버어지니아에서 영국교회의 폐지 문제를 에워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을 때나 또한 그 후 신앙의 자유가 의회에서 논의되었을 때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오랜 세월을 두고 침례교도들은 단독으로 이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오드 아일랜드는 1638년에 식민지가 성립되기 시작하였으나 1663년 까지는 합법적으로 인정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

피흘린 발자취 2023.03.01

미국의 교회사 2

미국의 교회사 2 이 식민지가 합법적으로 설립되기 이전에도 이곳에는 두 개의 침례교회가 조직되어 있었다. 이중 하나는 언제 조직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로저 윌리암스가 프로비던스에 교회를 조직한 날짜가 1639년이라는 데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일치하고 있다. 뉴포트에 존클라크가 세운 또 다른 교회의 날짜는 후에 알려진 모든 증거에 의하면 1638년이거나 혹은 그보다 수 년 후이다. 로저 윌리암스가 프로비던스에 조직한 교회는 겨우 몇 달간 존속한 것같이 보이나, 존 클라크가 뉴포트에 세운 교회는 지금까지 남아있다. 이제 미국의 몇몇 주에서 일 났던 박해에 대하여 그 실례를 몇 가지 들어보기로 하자. 이는 존 클라크 교회의 한 사람이 병들었을 때의 기록이다. 그들 가족은 메사츄세츠 베이 식민지의..

피흘린 발자취 2023.02.28

미국의 교회사

제 5 강 : 미 합중국의 교회사 종교적으로는 가톨릭을 믿는 스페인 사람들과 그 외의 다른 라틴 족속들은 남부 및 중부 아메리카의 교회들을 대표하는 최초의 사람들이 되었다. 그러나 멕시코를 제외한 북부 아메리카에서 그들의 세력이 강대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현재 미국에서는 한때 멕시코의 영토가 되어 있었던 지역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종교적인 견해가 법으로써 제정되었던 적은 없었고 식민지 시절에도 결코 강력했던 적은 없었다. 식민지 시대가 시작된 17세기의 초기에 최초의 정착지가 버지니아에, 그리고 조금 후에는 오늘날 뉴잉글랜드 주로 알려진 지역에 지정되었다. 영국이나 유럽대륙에 있었던 신앙상의 박해,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비인간적인 박해는 적어도 미국이라는 나라에 정착지를 설치케 한 중요한 원인중 하나..

피흘린 발자취 2023.02.27

17, 18, 19 세기의 교회사 2

13. 영국의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 국가교회의 가혹하고 잔악한 박해가 점차로 완화되어 가고 있었던 것에 주목하기 바란다. ① 그 교회가 시작된 지 154년 후인 1688년에 최초의 관용령이 선포되었는데, 이 법령은 두 교파, 즉 가톨릭과 유니테리안을 제외한 영국에 있는 모든 교파를 믿어도 좋다는 것이었다. ② 두 번째의 관용령은 89년 후 즉 1778년에 내려졌다. 이 법령은 가톨릭을 믿는 것을 허락하였으나, 여전히 유니테리안의 신앙은 허락되지 않았다. ③ 세 번째의 관용령은 35년 후 곧 1813년에 내려졌다. 이 법령에서는 유니테리안도 허용했다. ④ 1828년과 1829년에 이르러 소위 선서조령(宣誓條令)이라는 것이 발표되었다. 이 법령은 비국교화(즉 영국 국교와 의견이 상반되는 신앙을 갖고 있는 ..

피흘린 발자취 2023.02.26

17,18,19 세기의 교회사

제 5 강: 17,18,19 세기의 교회사 1. 이 강의는 17세기 (AD 1601년)의 초엽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이 중요한 교회들의 역사를 너무 바삐 지나 버린 감이 있지만, 이는 부득이한 사정이었다. 2. A.D.17-19의 삼세기에 동안에 전혀 새로운 교파가 설립되었다. 어떤 교회사가들이 회중교회(처음에는 독립파라 불렀음)의 시작된 연대를 1602년 이라 말하고 있음은 정확한 것이다. 그러나 쉐프 - 헬조그는 그들이 저술한 백과사전에서 회중교회의 기원을 그보다 훨씬 앞서 16세기, 즉 루터교회나 장로교회와 같은 시대로 잡고 있다. 종교개혁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카톨릭을 떠났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은 루터나 칼빈이 주도하였던 종교개혁의 범주에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던 사람들로서 성직자가 ..

피흘린 발자취 2023.02.25

A.D. 1400-1600년의 교회사 2

A.D. 1400-1600년의 교회사 2 이렇게 오랜동안을 시달려 온 침례교도들의 운명은 슬프고도 두려운 것이었다. 이제 세상은 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지 않았고, 개혁자들까지 포함한 잔악한 박해자들 또한 아나 - 밥티스트(재 침례교도)의 뒤를 쫓고 있었다. 실로 그들이 남긴 것은 피 흘린 발자취뿐이었다. 13. 장로교도들 보다 몇 년 앞서 대륙에서가 아닌 영국에서 또 하나의 교파가 일어났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형식으로 일어났다기보다는(종교개혁을 도운 것은 확실하지만) 가톨릭으로부터의 실제적 분리 또는 분열의 형식으로 나타났다. 이는 마치 869년에 동방 카톨릭이 서방으로부터 분리하여, 희랍 정교회와 로마 카톨릭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지게 된 그러한 분리와 비슷한 것이었다. 이 새로운 분리는 대체로 다음과 ..

피흘린 발자취 2023.02.24

A.D 1400~1600년의 교회사

제 4 강(講) : A.D 1400~1600년의 교회사 1. 다음의 3세기 동안 즉 15, 16,17세기는 세계 역사상 가장 다사다난(多事多難)하였던 시기였으며 특히 교회 역사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였다. 가톨릭 교회(로마와 희랍파 둘 다)의 내부에서는 일종의 종교개혁을 모색하는 혁명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잠잠하고 있었던 정의의 양심들은 드디어 각성되었고 순수한 종교개혁의 요구는 바로 13세기에 또는 그보다 조금 먼저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는 그것을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2. 조금 전 시대로 돌아가 보기로 하자. 신약성경의 가르침에서 아주 분리되었으며 기이하고 잔악한 많은 법령과 말할 수 없이 부패된 도덕적 상태, 그리고 그 손과 옷이 수백만의 순교자들의 뜨거운 피..

피흘린 발자취 2023.02.23

A.D 600-1300년의 교회사 3

A.D 600-1300년의 교회사 3 11. 여러 세기에 걸쳐 신약성경의 교훈 안에 들어온 많은 새로운 변화 중 그 몇 가지를 살펴보자. 아마 이러한 변화는 언제나 정식으로 공표되여 실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변화 중 어떠한 것은 그 변화의 시점을 정확히 밝히기가 불가능할 것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는 가톨릭의 체계 전체와 비슷한 것으로써 갑작스런 변화라기 보다는 오랜기간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옛날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현재의 가톨릭(천주교)는 이미 신약의 교회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순결한 기관이 아니라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새 법을 만들어 성경을 변경하기도 하고 삭제시키기도 하는 입법기관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12. 이 당시..

피흘린 발자취 2023.02.21

A.D 600-1300년의 교회사 2

A.D 600-1300년의 교회사 2 4. 한편 필자(J.M. Carrol)가 주의하여 오지 않았던 한 가지 새로운 교리가 있는데, 그 외에도 더러 있겠지만 특히 유아 성찬이라는 것이다.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에 받아들여 교회의 회원이 되게 하였고 그들도 역시 주의 만찬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의 만찬을 베푸는 방법이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빵을 포도주에 적셔서 주는 것으로써 해결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또 하나의 새로운 교리가 첨가되었으니 이러한 유아 성찬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가르치게 된 것이다. 또 하나의 교리가 첨가되어진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이 강의의 후편에서 다시 말씀드리기로 한다. 5. 제 5세기..

피흘린 발자취 2023.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