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골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거듭난 삶 2016. 7. 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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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요한복음 1 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말씀은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것이 없느니라.

4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우리가 살아가는 목표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서를 살펴보는 일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확실하게 정하는데 유익이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우리가 특별히 눈여겨보아야 것이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으로 땅에 오셨지만 인간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자신이셨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복음서에서 보다 많은 기적들에 대한 기록이 요한복음에 기록된 것도 이유에서입니다.

 

번째로는 오늘 설교의 주제인 말씀,

 

우리는 "말씀"으로 살아서 하나님 되시는 주님을 보아야합니다.

 

제일 기적인 포도주사건에서도 보면

 

"말씀으로" 물이 포도주로 변합니다.

 

번째 기적의 사건도 왕의 신하를 "말씀으로" 고치셨습니다.

 

"가라 아들이 살았다"

 

4: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 신하가 가로되 주여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 내려가는 길에서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52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칠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아비가 예수께서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인줄 알고 자기와 집이 믿으니라.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행하신 번째 표적이니라.

 

 

그리고 다음으로는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체험할 없습니다.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구약의 사건을 소개 합니다.

 

아람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게 되었습니다. 아람 왕이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이끌고 와서 예루살렘 성을 에워싸게 되었습니다.

 

엘리사의 종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수많은 군사가 성을 포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종이 엘리사를 깨웁니다.

 

(왕하6:14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저희가 밤에 가서 성을 에워쌌더라.

15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찌기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아아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라고.

 

엘리사가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자가 저와 함께 자보다 많으니라."

 

말을 줬지만 사환은 엘리사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엘리사가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왕하 6:17) 라고 기도하자

 

사환의 눈이 열렸습니다.

 

눈이 열리자 사환의 눈에 말과 병거가 산에 가득한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믿음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되신 그리스도를 만날 있습니다.

 

눈만 있다고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눈이 열리면 우리 주위에 허다한 주님의 증인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믿음의 눈이 열려야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말씀은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것이 없느니라"(1)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은 하나님이시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역사적인 인물에 불과합니까?

 

만일 인간이라면 우리처럼 처음과 끝이 분명할 것입니다. 마디로 말씀드린다면

 

예수는 우리처럼 유한한 존재, 정해진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간이냐?

 

아니면 우리가 믿고 따를 신앙의 대상이신 영원한 하나님이시냐?

 

질문에 정확하게 답할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뿌리가 얕은, 그래서 금방 뽑혀버리고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대한 선언은 신앙의 기초를 점검하는 중요한 선언문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이 전도해서 그리스도인이 분을 만났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사람에게 탕수육이 배달되어 와서 그것을 매우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집사님은 속으로 내가 전도한 분이 탕수육을 드시니까 내게는 최소한 저것보다는 좋은 음식이 배달되어 오겠지...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옆으로 오시더니 집사님을 보고

 

" 사람에게 짜장면 하나 시켜주시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집사님은 마음이 상해서

 

"아니 예수님, 믿고 분에게 탕수육 주셨으면 저에게는 최소한 팔보채정도는 주어야하지 않겠습니까?"하며 불평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서 되물었더니 예수님 말씀이

 

"잔소리 마라. 장로는 저기 짜장면 배달 중이다!"

 

이번에는 주변을 둘러보니 목사님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예수님, 그럼 목사님은 어디 계세요?"

 

"목사는 하도 말도 많고 불평이 많아서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중이다!"

 

세상의 교회에서도 목사님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이어야 함을 가르쳐 주는 우수게 같지만 중요한 스토리 하나를 소개했습니다.

 

 

먼저 말씀이 있었습니다.

 

땅이 창조되기 전에 이미 말씀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주가 형성되기 전에 이미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창세기 1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처음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다른 어떤 무엇을 가지고 창조한 것이 아니라, 말씀만으로 모든 것을 창조한 것입니다.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말씀 하시매" 빛이 생겨난 것입니다.

 

천지 창조 계셨던 말씀,

우주가 생성되던 말씀,

말씀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사도 요한은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몸을 가지고 땅에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가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말씀으로 우주가 창조되었습니다.

말씀으로 우리 모두가 만들어 것입니다.

 

말씀이 여러분 안에도 있습니까?

말씀이 여러분 안에 거하고 있습니까?

 

그래야 여러분과 안에 말씀의 생명이 살아있을 있는 것입니다.

 

말씀하나만 가지고도 전진할 있어야 합니다.

말씀 하나만으로도 만족할 있어야 합니다.

 

말씀, 그리스도 분으로 우리는 만족한다고 고백할 있어야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것입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십니까?

말씀을 여러분 안에 두고 사십니까?

만일 아니라면 지금부터 시작하십시오.

 

아기를 가지면 가장 쉽게 일어나는 증세가 빈혈증이랍니다.

빈혈증세는 적혈구가 모자라서 생기는 증상이랍니다. 빈혈이 생기면 힘이 없고, 어지럽고, 두통이 생기며, 쉽게 피로가 찾아오면서 사소한 일에 화를 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빈혈증세가 자주 찾아오는 같습니다.

영적 빈혈, 적혈구가 모자라는 것이라거나, 헤모글로빈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 능력이 되는 말씀이 사라지면 바로 영적 빈혈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 이겨낼 있는 힘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박해를 당하던 그때에 86세의 나이로 화형을 받게 폴리갑 감독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도 요한의 제자였지요.

 

처형을 집행하는 총독이 머리의 폴리갑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그를 회유시키려고 했습니다.

 

"폴리갑, 지금이라도 좋으니 예수를 모른다고 번만 부인하시라. 그러면 당신을 살려주겠소." 그러나 폴리갑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내가 86년을 사는 동안 번도 나를 외면하거나 배반하신 적이 없는데 어찌 내가 지금 어렵다고 주님을 배반할 있겠습니까? 총독님 당신의 계획대로 행하십시오."

 

말을 마치고 그는 장작더미 위에서 불타면서

 

" 예수여, 영원히 영광을 받으소서" 라는 찬송어린 독백으로 그의 일생을 마감했습니다.

 

능력이신 말씀이 속에 살아있기만 하면 뜨거운 장작더미도 사람을 사를 없는 것입니다.

 

독일의 나치 포악상을 폭로하는 "Hiding Place"에는 코리 텐 붐 이야기가 적혀있습니다.

 

금요일마다 감옥에 갇힌 자들은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완전히 벌거벗고 줄지어 서서 검사관 앞에 서야만 했습니다. 여자들의 벌거벗은 행렬 속에서 아내를 발견한 코리 소리쳤습니다.

 

"베시!? 예수님께서도 벌거벗기시고 십자가를 지셨소!"

 

아내도 남편을 보고 소리 쳤습니다.

 

"그래요! 예수님을 따라 가는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벌거벗은 행렬 속에서 모욕과 부끄러움과 절망의 고통을 품고 있던 사람들도 부부의 대화를 듣고 새로운 용기를 얻었습니다.

 

말씀을 우리들의 마음속에 거하게 하십시다. 그러면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힘을 있습니다.

 

시편의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하여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나이다....

마음을 주의 말씀으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있으면 힘이 생겨서 우리의 영혼이 소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 안에만 거하면 수치도 당하지 않게 것입니다.

 

"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라"(시편 119:50)

 

그렇습니다. 말씀은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해 줍니다.

그리고 말씀이 우리를 살게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안에 함께 섰느니라." (15-17)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실제로 보여주는 분입니다.

모든 것이 말씀이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생겨났습니다. 그가 없이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지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에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를 지으셨으니 여러분을 바꾸고 나도 바꿀 있는 능력이 속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난 성품이 주님의 말씀을 통해 바뀌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들어가면 자녀들의 마음도 녹아질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주를 만드신 말씀, 바로 하나님이신 말씀이 태초부터 우리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보내어 에베소의 장로들을 청하고 마지막 말을 이렇게 전하였습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 20:32)

 

은혜를 주시는 말씀에게 그들을 부탁했습니다.

말씀이 도대체 어떻게 있기 때문입니까? 말씀만이 우리를 능히 든든히 세울 있기 때문입니다.

 

대서양에서 거대한 여객선 런던호가 조난을 당했습니다.

3백여명을 태운 배는 폭풍에 밀리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암초에 부딪쳐 선창이 부서지고 물이 배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구원을 요청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이 배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울고불고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고함을 지르면서 서로 구명조끼를 차지하기위해 서로 엉켜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쪽 선실 한쪽 구석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만세반석 열린 곳에 내가 숨어 있으니 원수마귀 대고 환난 풍파 없도다..."

 

노래의 주인공은 앳되 보이지만 평화스러운 얼굴을 소녀였습니다.

찬송을 들으며 사람, 사람씩 정신으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그녀와 함께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무서운 절망과 공포가 서서히 물러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마음의 평온을 회복했습니다. 그리고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최후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이날 살아남은 사람은 몇십명 밖에 되지 않았고 대부분의 여객들이 찬송소리와 함께 파도와 함께 잠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살아있는 자는 어쩔 없는 무서운 공포와 죽음에도 평안으로 감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생명입니다.

말씀이 들어가면 죽어가던 영혼이 살아납니다.

말씀이 들어가는 순간 살아있는 자들은 행동이 바뀌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막힌 인격의 문을 두드려 인격이 새로워집니다.

 

오늘 본문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 죽어 꼼짝할 없는 곳에 생명을 던져 넣는 것이 말씀입니다.

생명의 말씀이 있어야 우리 삶에 빛이 있을 있습니다.

밝은 삶을 살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어두움에 거닐 않게 됩니다.

기쁨을 누리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은 이상합니다. 말씀을 받기가 싫습니다.

어두움에 계속 머물러 있기를 좋아합니다.

빛이 환하게 비치는 것이 불편합니다.

심지어 말씀의 빛이 비춰지지만 어두움에서 빠져나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는 믿음과 불신앙이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받으십시오. 말씀 속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십니다.

말씀이 없으면 불신과 의심이 물결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없는 만큼, 대신 어두움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매일 받아드리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날마다 거하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치의 오차도 없이 우주를 운행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능력으로 살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도와의 관계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8-9).

 

우리의 믿음의 식구들이 일상생활에서 주의해야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또한 하나님 앞에 상을 받는 성도가 되는가를 마지막으로 알아보십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고전 3:9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하나님이 쓰시는 사역자임\입니다.

 

(고전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가운데서 다시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자가 되어야 합나다.

 

( 4:1-3 그러므로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3:12-13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13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오직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 2:7-10 범사에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8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9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10 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밭인 우리는 옥토가 되어야 합니다.

 

( 13: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백배, 육십배, 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각각 한대로 상을 받습니다.

 

(고전 3:8 심는 이와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하나님 나라를 유업을 받습니다.

 

(벧후 1:10-11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3:26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거하실 처소로 지어져 갑니다.

 

( 2:22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실 성령의 (殿)입니다.

 

(고전 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값으로 입니다.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1-3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모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비교할 없는 능력의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동역자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임을 약속하시는 말씀을 명심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에 합당한 자로서,

 

말씀의 권능을 믿고 사랑하고 의지하는, 그래서 충성하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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