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거듭난 삶 2017. 12. 3.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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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찬가

 

: [ 1:46-56] 마리아가 이르되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마음이 하나님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49) 능하신 이가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손으로 보내셨도다

54)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56) 마리아가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본문의 46-55절까지는 '마리아의 찬가'라고 이미 알려져 있다.

 

이는 '매그니피캣'(Magnificat)이라고 불리 우기도 하는데 이유는 라틴어역 성경에서 시의 앞부분 단어로서 말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시는 삼상 2:1-10 한나의 기도를 올리게 한다.

 

(삼상 2:1-10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입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4)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5)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자는 쇠약하도다

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9)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플루머(Plummer) 시를 한나의 시와 외에 다른 12개의 구약성경 구절들과 서로 비교하고 있다.

 

찬양하며 - '위대하게 만들다', '찬양하다'라는 뜻으로, 원문에서는 문장 제일 서두에 놓인다.

 

 

[ 1:47] 마음이 하나님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마음 - '마음'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 46절의 '프쉬케'(영혼) 구분해 있다.

이들은 공히 인간의 지적, 정서적, 의지적 생의 중심부를 말하며 때로는 '영혼' 혹은 '마음'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굳이 의미를 구분하자면 '프쉬케' 개인의 생리적이고 감정적인 측면을 강조할 사용된 반면에

 

(벧전 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프뉴마' 프쉬케보다 고등한 면을 나타냈 사용되었다.

 

( 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여기서는 용어가 별다른 의미의 구별없이 반복적으로 사용된 , 이는 반복을 통해 강조를 꾀하는 히브리식 관용법에 해당한다.

 

하나님 구주 - 마리아는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함으로써 자신의 노래를 시작하고 있다.

 

이는, 시련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구주이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리라고 고백했던 하박국 선지자의 노래에 비교될 있다.

 

( 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던 순간부터 원죄(Original Sin) 모든 영향에서 벗어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본문을 통해 분명히 드러나듯이 마리아 또한 하나님의 구원을 절실히 요청할 밖에 없는 죄인일 따름이다.

 

 

[ 1: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노래한 마리아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에 대해 겸허한 태도를 표명하였다.

 

여기 '계집종의 비천함'이라는 표현은 실제로 목수의 아내라는 낮은 사회적 신분에 대한 인식과 겸손에서 나온 고백이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입을 만한 별다른 조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야의 모친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데 대한 감격과 겸손을 표시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심령이 겸손한 자에게 임하시는 것이다.

 

( 57:15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통하여 '복이 있다' 소리를 이미 들었다.

 

(42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그리고 후에도 여인에게서 '복이 있다' 말을 들었다.

 

(11:27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또한 마리아는 성도들을 통해 대대로 복있는 여인으로 칭송받게 것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이 살아있는 그녀의 영광은 지속될 것이다.

 

여기서 주의 것은 구절의 의미가 로마 카톨릭의 마리아 숭배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마리아가 비천한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메시야의 모친이 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며, 따라서 마리아에게 소원을 간구하고 축복을 부탁하는 행위는 잘못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 1:49] 능하신 이가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능하신 - '능하신 ' 구약성경에서 ' 쇄다이' 표현되어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 17:1 아브람이 구십구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5;17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8:3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야훼는 권능의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성도는 곤궁에 처할 때에 도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아야만 한다.

 

( 8:17-18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능력과 손의 힘으로 내가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도움이시라;

 

86:16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의 능력은 변덕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은 일관된 당신의 뜻과 공의로운 계획에 따라 행사되기 때문이다.

 

( 5:16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

 

거룩하시며 - 구약성경에서 거룩이란 개념이 하나님께 적용되면 그것은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나시고 모든 피조물로부터 분리된 그분의 초월성을 뜻하며

 

( 3:4-5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곳은 거룩한 땅이니 발에서 신을 벗으라)

 

또한 윤리적으로 무흠하신 성품을 뜻한다.

 

( 11:44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벧전 1: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그리고 말이 사람에게 적용되면 의식상의 존엄성과 관련되어 쓰인다.

 

( 29:1 네가 그들에게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그들을 거룩하게 일은 이러하니 어린 수소 하나와 없는 숫양 둘을 택하고).

 

특히 신약성경에서 '거룩하다' 뜻인 혤라어 '하기오스'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써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전가(轉嫁)받은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뜻하거나

 

(고전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또는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예하는 성도들의 윤리적 특성을 묘사하는 말이기도 하다.

 

(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마지막은 영생이라;

 

고후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 1: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 ''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토스' '', '권능', 또는 '권능의 표현', '전능한 행위'등을 나타낸다.

 

단어는 인간의

 

( 8:17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능력과 손의 힘으로 내가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활의

 

( 76:3 거기에서 그가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없이하셨도다),

 

심지어 바다의 힘에까지도 관련되지만

 

( 89:9 주께서 바다의 파도를 다스리시며 파도가 일어날 때에 잔잔하게 하시나이다)

 

대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에 사용된다.

 

( 62:11 하나님이 한두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1:19-20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6:10 끝으로 너희가 안에서와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1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딤전 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특히 여기서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권능을 강조한다.

 

한편 '그의 '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가리키는 구약적 표현이다.

 

( 26:8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팔과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89:13 주의 팔에 능력이 있사오며 주의 손은 강하고 주의 오른손은 높이 들리우셨나이다;

 

118:15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여기서 마리아는 과거에 하나님이 교만하게 당신을 반대했던 권세가들을 물리치시며,

 

( 15:1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4:24-27 왕이여 해석은 이러하니이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명령하신 것이 왕에게 미칠 것이라

25)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26) 그들이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27)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

 

겸손한 자들에게 축복을 허락하셨던 사실을 언급하면서

 

( 41: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1:8-21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0)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가 보게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때문에 머리가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 하니라

11) 환관장이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후에

13)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하매

14) 그가 그들의 말을 따라 열흘 동안 시험하더니

15)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좋아 보인지라

16) 그리하여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17) 하나님이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18) 왕이 말한 대로 그들을 불러들일 기한이 찼으므로 환관장이 그들을 느부갓네살 앞으로 데리고 가니

19)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가 없으므로 그들을 앞에 서게 하고

20)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지혜와 총명이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21) 다니엘은 고레스 원년까지 있으니라)

 

하나님의 공평하신 심판을 찬양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삶의 상황과 무관하게 천상(天上)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시며,

또한 모든 불의하고 왜곡된 상황이 하나님의 개입으로 바로 잡히게 되리라는 사상이 노래 속에 강렬하게 함축되어 있다.

 

흩으셨고 - '흩다', '낭비하다', '탕진하다' 뜻이다.

구약에서 말은 원수들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사용되었다.

 

(삼하 22:15 화살을 날려 그들을 흩으시며 번개로 무찌르셨도다).

 

 

[ 1:52] 권세 있는 자를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

 

원어상 '권세 있는 ' '주권자', '통치자' 뜻하며

''() '왕좌', '보좌' 뜻한다.

 

따라서 본절은 '압제자들을 그들의 보좌에서 쫓아내셨으며'라고 옮겨질 있다.

 

마리아는 본절과 다음절에서 약자와 강자 사이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공변된 보응을 대조시키고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징계하신 사건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예컨대 바로 - (5:1-11),

고라와 그의 동료 - ( 16),

하만 - (6:6-14),

느부갓네살 - ( 4:24-37),

벧사살 - ( 5),

아마샤 - (왕하 14:1)

그리고 웃시야 - (대하 26:16) 등의 경우가 그러하다.

 

물론 성경은 권세나 () 자체를 나쁜 것이라 규정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그것들을 하나님의 축복의 산물로 간주한다.

 

그러나 여기서 거론된 것은 하나님을 떠난 잘못된 권력과 부의 행사를 말한다.

교만하고 강한 자는 낮아지고 비천한 자가 높아지며 굶주린 자가 배부르게 되리라는 사상은 예수의 산상 수훈 가운데 표출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 5:3-6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 1: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손으로 보내셨도다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 누가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과 멸시받는 자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었으며(15:1-32),

 

당시의 특권층과 기득권자들에로의 부의 집중으로 인해 빈민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다수 백성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예컨대, 가난한 자에게 임할 축복과 부자들에게 미칠 화에 관한 설교(6:20-26),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12:13-21) 등이 그러하며

 

본절 또한 예에 속한다.

 

'배불리셨으며'에는 '가득 채우다', '만족케 하다' 뜻이다.

동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포괄할 있을 만큼 넒은 용어이며 그릇에 이상 담을 없을 만큼 가득 채웠음을 의미한다.

부자는 손으로 보내셨도다 - 본문에서 부자는 자기중심적이며 자신들의 이익과 결부된 데에만 관심을 가지는 자들을 일컫는다.

 

하나님은 사리사욕에만 급급하는 자들에게는 결코 은혜를 내리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랑하는 부를 많이 가질수록 그들의 속은 만큼 비게 된다.

더욱이 그들의 부가 완전한 절망으로 바뀔 수도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어느 누구도 부유해질 없다는 사실은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면뿐만 아니라 영적인 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한편, 모든 공의의 실현이 앞으로 오실 메시야를 통해 실현되리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확실하기에 마리아는 찬송시(讚頌詩)에서 계속 과거 시상을 사용하고 있다.

 

 

[ 1:54]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이스라엘을 도우사 - '' 해당하는 '파이도스' 원형 '파이스' '어린아이'(소년, 소녀) 뜻이며 혈통과 관련하여서는 '아들', 사회적 신분과 관련하여서는 '' 의미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도록 택하심 받은 언약 공동체이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존재 의의를 지닐 있었으며, 이방인들은 이러한 언약 공동체에 속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과의 신령한 관계에 들어갈 있었다.

 

구약 시대에는 '긍휼' '도움' 원칙적으로는 이스라엘에게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말라기 이후 400 동안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선지자가 끊김으로써 소위 암혹기가 진행되었다.

그러던 암흑을 뚫고서 구원의 새로운 빛이 임하고, 조상에게 약속하신 바를 이루실 메시야가 마침내 도래하셨다.

 

그리고 약속의 대상은 이제 민족과 혈통의 구별을 초월한 영적 이스라엘로 확대된 것이다.

 

( 9: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그들이 이스라엘이 아니요;

 

3:16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사람을 가리켜 자손이라 하셨으니 그리스도라;

 

6:16 무릇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사실상 이방인 구원은 구약 속에 이미 태동되어 있던 구속사의 주제였다.

 

( 43:5-6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아들들을 곳에서 이끌며 딸들을 끝에서 오게 하며;

 

49:12 어떤 사람은 곳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과 서쪽에서, 어떤 사람은 시님 땅에서 오리라;

 

59:19 서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돋는 쪽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강물 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1: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뜨는 곳에서부터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이름이 크게 것이라 각처에서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것임이니라).

 

기억하시되 - 말의 헬라어 원형 '밈네스코' '기억하다', '마음에 간직하다' 등의 뜻으로서 언약하신 바를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신실성과 관련하여 주로 언급된다.

 

( 9:15이하 내가 나와 너희와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2: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 1: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

 

마리아의 찬양은 선민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감사하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그녀는,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

 

아브라함과

 

(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삭과

 

( 26:3-4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모든 땅을 너와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모든 땅을 자손에게 주리니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야곱에게 맺으신 약속대로

 

( 28:14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언약 백성을 도우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들어 장래에도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함께 하시리라는 강한 확신(確信) 표명하고 있다.

 

 

[ 1:56] 마리아가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

 

36절에 의하면 엘리사벳은 이미 임신 6개월의 몸이었다.

이후에 마리아가 방문하여 3개월을 함께 보내었으니 엘리사벳은 임신 9개월이 되어 해산할 시기가 임박하였다.

 

마리아가 3개월이나 함께 있다가 엘리사벳의 해산을 보지 않고 돌연 집으로 돌아간 것인지 아니면 해산을 보고 돌아갔는지에 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엘리사벳의 해산 이전에 돌아갔을 경우, 이유 또한 확실히 제시할 없다.

 

여하튼 마리아는 집으로 돌아간 이후에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 명령으로 요셉 함께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여행하게 된다.

 

(2:4 요셉도 다윗의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