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위하여 삼 일 내로 유다 사람을 소집하고 너도 여기 있으라

거듭난 삶 2021. 11. 23.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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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를 추격하는 아비새 일행

 

성 경: [삼하 20:4-7]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위하여 삼 일 내로 유다 사람을 소집하고 너도 여기 있으라

5) 아마사가 유다 사람을 소집하러 가더니 왕의 정한 기한에 지체된지라

6) 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왕의 신복들을 거느리고 쫓아가라 저가 견고한 성에 들어가서 우리들을 피할까 염려하노라 하매

7) 요압을 좇는 자들과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과 모든 용사들이 다 아비새를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쫓으려고 예루살렘에서 나와서

 

 

 

[삼하 20:4]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위하여 삼 일 내로 유다 사람을 소집하고 너도 여기 있으라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위하여 삼 일 내로 유다 사람을 소집하고 -

 

다윗 왕은 세바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아마사를 국민병 모집의 책임자로 임명한다.

이러한 조치는 지난번 아마사에게 제의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예비 조치였다.

 

(19:13 또 너희는 아마사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 뼈가 아니며 내 살이 아니냐? 만일 네가 요압 밑에서 계속해서 내 앞에 군대 대장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벌을 주시고 더 주시기를 바라노라.' 하라." 한지라)

 

즉 아마사의 등용 기회를 찾고 있던 다윗은

세바 반란 진압을 아마사에게 맡김으로써,

반란군을 진압하고 요압의 기()를 꺾는 동시에

아마사와의 약속을 이행하는 3중 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너도 여기 있으라 - 이는 국민병을 소집하고 아마사도 그곳에 함께 있으라는 말이다.

다윗 왕이 이러한 명령을 내린 것은 세바의 난을 진압할

군대의 사령관으로 아마사를 임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다윗의 이와 같은 조치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

(1) 다윗은 무엇보다도 아마사를 군대의 총사령관에 임명함으로써,

거칠고 반항적인 요압의 세력을 꺾으려 했으며,

 

(2) 또한 압살롬 반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아마사를 내세움으로써,

압살롬의 난에 선봉장(先鋒長) 역할을 한 유다 지파의 사기를

북돋아 주려 했던 것이다.

 

(19:13 또 너희는 아마사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 뼈가 아니며 내 살이 아니냐? 만일 네가 요압 밑에서 계속해서 내 앞에 군대 대장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벌을 주시고 더 주시기를 바라노라.' 하라." 한지라).

 

그러나 이와 같은 다윗 왕의 의도는

군대 소집의 지체와 요압의 반발로 인하여 실패하고 만다.

 

 

 

[삼하 20:5] 아마사가 유다 사람을 소집하러 가더니 왕의 정한 기한에 지체된지라 -

 

아마사가 군대의 소집을 기한내에 완료하지 못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아마사의 무능력에 있었던 것 같다(Payne).

, 다윗 왕은 요압에게 하듯이 아마사에게 명령을 내렸으나,

아마사는 경험많고 노련한 요압에 비해 실무(實務) 능력이

현저하게 뒤떨어졌던 것이다.

그러기에 아마사는 마하나임 전투에서 압살롬의 대군을 이끌고도

요압의 소수 정예병력에 의해 격파당했던 것이다.

 

(17:25 압살롬이 요압 대신 아마사를 군대 대장으로 삼았으니, 아마사는 이드라라 하는 한 이스라엘인의 아들로, 이드라는 나하스의 딸, 요압의 어머니 스루야의 자매 아비가일에게 들어갔더라;

 

18:6-8 그리하여 백성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들로 나갔더라. 그때 싸움이 에프라임 숲에서 있었는데

7)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의 신하들 앞에서 죽임을 당한 그 곳에서 그 날 이만 명의 대살륙이 있었더라.

8) 전쟁이 나라의 온 지면에 퍼졌으니, 그 날 숲에서 죽은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더 많더라).

 

(2) 유다 사람들의 비협조(非協調)에 었었다고 볼 수 있다(Keil, Lange).

다시 말해서 아마사는 반군의 지도자였다는 이유로

유다 백성들로부터 의혹과 불신임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유다 백성들은 아마사의 모병(募兵)에 응하지 아니한 것이다.

이것은 결국 다윗의 아마사 등용 정책(19:13)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즉 다윗의 아마사 등용 정책을 탐탁치 않게 여겨왔던 유다 사람들은

반역자요 변절자인 아마사 휘하에 들어가기롤 꺼려함으로써,

아마사의 등용을 방해하였다.

 

이에 다윗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고

아비새에게 반란군 진압을 명함으로써 사태를 일단 수습하였다.

 

(6절 다윗이 아비새에게 말하기를 "비크리의 아들 시바는 압살롬이 하였던 것보다 더 우리를 해치나니, 너는 네 주의 신하들을 데리고 그를 추격하여 그가 견고한 성읍으로 들어가서 우리를 피하지 못하게 하라." 하니).

 

그러나 다윗의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백성들과 측근을 무시한 행동으로,

특히 그의 측근들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안기는 일이었다.

 

결국 과격하고 정치욕이 강했던 요압은

 

(3:27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왔을 때 요압이 그와 조용히 말하고자 하여 성문으로 그를 데리고 가서, 거기서 그의 다섯 번째 갈비뼈 아래를 찌르니 그가 죽으니라. 이는 그의 동생 아사헬의 피 때문이더라;

 

18:14 요압이 말하기를 "내가 너와 함께 이렇게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세 개를 가지고 아직 상수리나무 중간에 살아 있는 압살롬의 가슴에 던지더라)

 

질투심과 원한에 의해 반역자 아마사를 살해하고 말았다.

 

(10절 아마사는 요압의 손에 있는 칼에 주의하지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의 다섯 번째 갈비뼈를 찌르니 그의 창자가 땅에 쏟아져 나와 다시 찌르지 아니하여도 그가 죽으니라. 그리하여 요압과 그의 아우 아비새가 비크리의 아들 시바를 추격하더라).

 

 

 

[삼하 20:6] 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왕의 신복들을 거느리고 쫓아가라 저가 견고한 성에 들어가서 우리들을 피할까 염려하노라 하매

 

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 - 아마사의 지체에 불안을 느낀 다윗 왕이

아비새에게 기습적인 군사 행동을 명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다윗 왕이 아비새를 세바 진압의 지휘자로 임명하는 것이 흥미롭다.

다시 말해서 평소 같으면 그동안 이스라엘의 군장(軍長)으로 계속 활약해 왔던

요압에게 명령했을 것이나 이례적으로 동생인 아비새에게 지휘권(指揮權)을 준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보아, 다윗 왕은 자신의 명을 어기고

압살롬을 죽인

 

(18:14 요압이 말하기를 "내가 너와 함께 이렇게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세 개를 가지고 아직 상수리나무 중간에 살아 있는 압살롬의 가슴에 던지더라)

 

난폭한 성미의 요압을 상당히 못마땅해 했음을 알 수 있다.

(Wycliffe Bible Commentary, Lange).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 세바의 난이 압살롬의 난보다 더욱

심각할 것이라는 다윗 왕의 예상이다.

그 근거로서 다윗 왕은 세바의 난과 압살롬의 난 사이의

근본적인 성격 차이를 생각한 듯하다.

 

, 압살롬의 난은 압살롬 개인의 야욕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세바의 난은 오래 묵은 지파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이번 세바의 난을 초기에 진압하지 못할 경우,

그 피해는 압살롬의 난 보다도 더욱 심각하게 온 나라에

미치게 될 것이라고 다윗은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다윗의 판단은 매우 정확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지파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결국 그 세()가 약화된 르호보암 때에는 세바의 주창과 같은

구호를 내건 여로보암에 의해 나라가 둘로 나뉘어졌기 때문이다.

 

(왕상 12:16-17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은 왕이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않음을 보자, 백성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다윗 안에 무슨 분깃을 가지랴? 우리가 이새의 아들 안에서 가질 유업이 없도다. 오 이스라엘아, 너희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아, 이제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더라. 그리고 이스라엘이 그들의 장막으로 가니라.

17)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거하는 이스라엘 자손은 르호보암이 치리하였더라).

 

 

네 주의 신복들을 거느리고 - 여기서 '네 주의 신복들'이란

예루살렘에 있는 다윗왕의 시위병들과 정예 군사들을 가리킨다.

 

(7절 요압의 사람들과 크렛인들과 플렛인들과 모든 용사들이 그를 쫓아 나섰으며,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나가 비크리의 아들 시바를 쫓더라).

 

한편 여기서 다윗 왕은 지난번 압살롬을 피하여 도망갔을 때

아히도벨이 베푼 모략과 똑같은 지시를 여기서 내리고 있다.

 

(17:1-3 또 아히도펠이 압살롬에게 말하기를 "이제 나로 일만 이천 명을 선정하게 하소서. 내가 오늘밤 일어나서 다윗을 추격하리이다.

2) 그가 피곤하고 약해졌을 때 내가 그에게 가서 그를 무섭게 한 후,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이 도망하면 내가 왕만을 치고

3) 온 백성을 왕께로 데려오리이다. 왕께서 찾는 그 사람은 마치 돌아온 모든 자와 같으리니 온 백성이 편안하리이다." 하니).

 

 

, 일단 반기의 기치를 든 세바가 자기의 세력을 키워

대항해 오지 못하도록 그에게 시간적인 여유를 전혀 주지 않고

즉각적인 공격을 가할 것을 지시하였던 것이다.

 

 

우리들을 피할까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칠 에네누'를 직역하면,

'우리의 눈을 빼앗을까'란 뜻이다.

 

, 여기서 '히칠'의 기본형 '나찰''빼앗다', '찾다'는 뜻이며

 

(31:16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신 모든 재물은 우리의 것이며 우리 자식들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신 것은 무엇이나 행하소서." 하니라;

 

삼상 7:14 필리스티아인들이 이스라엘로부터 빼앗은 성읍들이 이스라엘에게 회복되었으니, 에크론으로부터 가드까지며 그 지경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에게로 넘어갔더라. 이스라엘과 아모리인 사이에는 화평이 있더라;

 

삼상 30:8 그러자 다윗이 주께 물어 말하기를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리이까? 내가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겠나이까?" 하니, 주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기를 "추격하라. 네가 그들을 반드시 따라잡을 것이며, 틀림없이 모두 다시 찾아오리라." 하시더라,

 

18 다윗은 아말렉인들이 끌고 갔던 모든 것을 다시 찾고, 그의 두 아내도 구하니라;

 

2:9 그러므로 내가 돌아가서 그때에 내 곡식을, 그 시기에 내 포도주를 제하여 버리고 그녀의 벌거벗음을 가리기 위해 주었던 내 양모와 내 아마를 회수하리라),

 

그리고 ''(아인)은 신 32:10, 2:10에 관련시켜 볼 때

 

(32:10 주께서 그를 사막과 황폐하고 삭막한 광야에서 발견하셔서 그를 인도하시고 그를 가르치셔서 그 분께서 그를 자기의 눈동자처럼 지키셨도다,

 

2:10 오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보라, 내가 왔고 내가 네 가운데 거할 것이기 때문이라. 주가 말하노라)

 

'가장 가치있는 것' 또는 '중요한 소유물'을 상징하는 말이다.

(Thenius, Bottcher, Keil).

 

따라서 본 구절은 다윗 왕국의 중요한 소유물들,

그것이 백성이든 아니면 토지이든 성읍이든,

그러한 것들을 세바가 빼앗아 가지는 않을까를 염려하는

다윗 왕의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삼하 20:7] 요압을 좇는 자들과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과 모든 용사들이 다 아비새를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쫓으려고 예루살렘에서 나와서

 

요압을 좇는 자들 - 그동안 요압의 통솔을 받아왔던 요압의

정예 군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 - 이들은 왕의 근위병들이었다.

 

(8:18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크렛인들과 플렛인들을 다스리고, 다윗의 아들들은 최고 치리자가 되니라).

 

다윗 왕이 이들을 파견할 경우 다윗 궁은

완전히 무방비(無防備)상태가 될 것이었지만,

다윗은 사태의 긴박성을 깨닫고 이들까지 파송하였다.

 

 

모든 용사들 - 여기서 '용사들'이란 히브리어로 '깁보림'인데,

이들은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유랑 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다윗 왕을 추종한 다윗의 용사들을 의미한다.

 

(삼상 23:13 그러자 다윗과 그의 사람 약 육백 명이 일어나 크일라를 떠나서 그들이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더라. 사울은 다윗이 크일라에서 피하였다는 것을 전해 듣고 더 가는 것을 그만 두더라;

 

27:2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육백 명과 함께 마옥의 아들 가드 왕 아키스에게로 건너가니라).

 

이들은 압살롬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도

한결같이 다윗 왕을 보좌하였던 충성된 일꾼들이었다.

 

(15:18 그의 온 신하들이 그의 곁을 지나가고 모든 크렛인과 모든 플렛인과 모든 가드인과 가드에서부터 그를 따라 나온 육백 명이 왕의 앞에서 지나가더라).

 

다윗 왕은 이들까지 파견함으로써,

성중에 있는 모든 병력을 세바의 반란 진압에 투입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