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안 인사 2
성 경: [롬 16:6-11]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8)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11)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롬 16:6]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 마리아 - 헬라어는 '마리안'으로 이름의 뜻은 '높여진 자'이다.
어떤 사본(D, F, G)에는 히브리어형인 '마리암'으로 나온다.
이 이름은 로마에 있는 유대인 출신의 기독교인을 나타낸다(Robertson, Dunn).
신약성경에는 마리아라는 동일한 이름을 가진 7명의 여인이 나온다.
(1) 예수의 어머니 - (마 1:16;막 6:3;눅 1:41),
(2) 막달라 마리아 - (마 27:56;막 15:40;눅 8:2),
(3) 야고보의 어머니 - (마 27:56;막 15:40),
(4) 글로바의 아내 - (요 19:25),
(5) 마르다의 동생 - (눅 10:39;요 11:1),
(6) 마가 요한의 어머니 - (행 12:12),
마지막으로 본절에 나타난 마리아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에 나타난 이들은 한결같이 신앙이 훌륭한 여인들이었다.
본절에 소개된 마리아에 대해서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이란 표현 이외에 자세한 언급을 하고 있지 않지만, 이 간단한 소개로도 우리는,
(1) 그녀가 로마 교회 초창기(草創期)의 한 회원이라는 것과
(2) 로마 교회가 그녀의 수고와 헌신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사실과(Murray)
(3) 뵈뵈나 브리스가와 아굴라처럼 활동적으로 바울의 사역에 참여해 왔을 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사람처럼 바울의 배후에서 그의 선교 사역을 헌신적으로 지원해 왔음을 알 수 있다(Godet).
[롬 16: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 '친척'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문자 그대로 친척을 의미하기보다는 9:3에서 처럼 '골육'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동료 이스라엘 사람을 의미한다.
(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그러나 다 같은 유대인이라도 누구에게든지 친척이라 부르지 않은 것을 보면, 특별히 친척이라 호칭된 사람들은 바울과 보다 긴밀한 관련을 맺은 사람들이었음이 틀림없다(Lenski, Murray).
또한 이들은 바울과 함께 옥에 갇힌 적도 있었다고 소개한다.
(고후 6:5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11: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여기서 '함께 갇혔던'으로 번역된 헬라어 '쉬나이크말로투스'는 직역하면 '전쟁에서 함께 포로된 자'란 뜻이다.
그들이 바울과 함께 언제 감옥에 갇혔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마 그들은 바울이 당한 여러 번의 투옥 사건 중 한 사건에서 함께 감옥에 갇혔을 것이다. 브루스(Bruce)는 그곳이 에베소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 '사도에게'를 가리키는 이 말의 일차적인 뜻은 그들이 사도들에게 잘 알려졌다는 의미도 있지만(Kasemann), 넓은 의미로 보면 주님이 직접 세운 사도를 제외한 다른 사도들에게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사도를 지칭하는 '아포스톨로스'는 일차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선택하셔서 세우신 열두 사도를 지칭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그리스도를 따르며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으로 주님께서 직접 세우신 12제자 이외의 제자들도 포괄하여 의미하기 때문이다. (Dunn, Bruce).
(고후 8: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빌 2: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또한 칼빈(Calvin) 역시 여기서는 제자들의 개념을 확대 적용해서 사도들처럼 여러 곳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하는 교회 지도자들을 일반적으로 가리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유명히 여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세모이'는 '에피 세마'('도장을 찍은')에서 파생된 단어로 신약성경에서 본절과 마 27:16에서만 사용되었다.
(마 27:16 그 때에 바라바라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본절에서는 좋은 의미로 '유명한', 혹은 '뛰어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마태복음에서는 나쁜 의미로 '소문난', '이름난'이라는 뜻을 가진다.
따라서 본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이 두 사람(안드로니고와 유니고)이 그들의 믿음과 봉사로 인해서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의 인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복음 사역을 돕는 사도들에게도 잘 알려졌을 정도로 특별히 다른 사람과 구별되었다는 것이다(Murray).
▶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 두 사람이 사도들 가운데서 왜 높이 평가받고 있는지를 말해준다(Lenski).
그들은 기독교 역사 초기에서부터 일찍 회심(回心)하였기에 지도자로서 알려질 시간상의 여유가 충분히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예루살렘이나 그 주변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알려졌으며 또한 사도들의 무리와도 쉽게 연합될 수 있었을 것이다(Murray).
[롬 16:8]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 - 이 이름의 뜻은 '큰' 또는 '많은'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런 이름은 당시 로마에서는 흔했으며 특히 황제의 가문에 많이 사용되었다(Bruce).
초기 기독교 묘지나 카타콤의 비문에도 이런 이름이 발견된다.
바울은 암블리아에 대해 '내 사랑하는' 자라고 매우 다정한 수식어를 사용하여 특별히 개인적인 애정을 고백하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적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서로의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으로서 바울과 그의 사이에 그리스도인의 진실한 우정이 깃든 교제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관계가 '주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밝히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모든 아름다운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은혜를 통해 한 형제가 되었다는 인식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롬 16: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 - '우르바노'(우르바노스)는 '세련된', '우아한'의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이름은 일반적으로 로마 노예의 이름이다(Godet, Hendriksen, Murray).
바울이 그를 가리켜 '우리의 동역자'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과거에 바울을 도와 복음 사역에 동참하였고, 주의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도 도와주었음을 알 수 있다.
▶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스타퀸) - 신약성경에는 그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으나 '나의 사랑하는'이란 표현을 쓴 것을 보면 그도 역시 바울 사도와 개인적인 친분 관계가 있던 자로서 암블리아와 같이 바울의 사랑을 받은 로마의 성도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이름이 귀족의 비문(碑文)에 나타난 것을 볼 때, 황제의 가족에 속한 자라고 여겨진다(Gifford).
[롬 16: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 - '특색'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름은 로마의 유대인들 사이에 흔한 이름이었으며 또한 황제 가문이나 로마인들 사이에도 종종 발견되는 이름이다.
그를 가리켜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헬라어로는 '톤 도키몬 엔 크리스토'로 여기서 '도키몬'은 아벨레가 어떤 극심한 시련을 통해 신앙의 연단을 단단히 받았음을 시사한다(Lenski, Murray).
이것으로 보아 그가 자기에게 임한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아 교회에서 많은 봉사를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교회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아리스도불로의 권속 - 아리스도불로는 헤롯 왕의 손자였으며, 아그립바(Agrippa)와 형제였다(Dunn).
당시 그는 로마에 오랫동안 살고 있었으며 또한 로마 황제 클라우디오의 친구요 추종자였으며(Josephus), 그 자신은 기독교인이 아니었다(Meyer).
그가 죽은 다음 그의 집안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다른 황제의 집안에 귀속(歸屬)되어 그들의 신분이 유지되었고 그의 집안의 노예들과 자유인은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Dunn).
혹자는 그들 가족 중의 일부가 기독교인이 된 것이라고 추론한다(Lightfoot).
즉 바울은 그의 권속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아리스도불로 아래 있었던 노예들과 일꾼들이었을 것이다.
[롬 16:11]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 헤로디온 - 바울은 7절에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처럼 '헤로디온'도 자기의 '친척'이라고 부른다.
'친척'에 해당하는 헬라어 '슁게네'는 7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바울의 가까운 '유대인 동료', '동족', '이스라엘 사람'을 뜻한다.
윌리암 람세이(William Ramsay)는 '헤로디온'은 문자 그대로 바울의 친척이 아니라 다만 바울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유대인 동역자라고 말하고 있다.
헬로디온은 아리스도 불로의 권속처럼 헤롯의 가계에 속한 유대계 그리스도인일 것으로 추정된다(Lightfoot, Murray).
바울은 주로 이방인을 향한 선교 활동을 폈지만 항상 그의 동족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동족 중 대부분이 현재는 비록 복음을 거절하고 있지만, 장래에 하나님께서 그들도 구원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1:1-6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3)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 나깃수의 권속 중 주 안에 있는 자들 -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나깃수(나르킷수)를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나르킷수스(Tiberius Claudius Narcissus)라고 하였다(Calvin, Lenski, Bruce, Murray).
이 사람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Tiberius)의 노예의 신분으로 있다가 해방된 자유민으로서 권모술수(權謀術數)에 능한 부자였다고 한다(Gifford).
그는 클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 치하에서 권력을 휘둘렀던 자로 A.D. 54년에 네로(Nero)가 즉위한 직후 네로의 모친 아그리피나(Agrippina)의 미움을 사서 그녀의 명령에 의하여 처형되었다고 한다(Lightfoot).
그의 죽음 후 그의 재산은 몰수되었고 그의 노예들은 황제의 소유로 예속 되었는데, 황제 가문의 다른 노예와 구별하기 위하여 나깃수에게 속한 모든 노예들에게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처럼 '나르키시아니'(Narcissiani)라는 명칭을 붙였다(Bruce).
권모술수에 능하고 극악 무도한 나깃수는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았지만, 그 권속들 중의 일부와 노예와 가족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은혜가 온갖 종류의 사악으로 들끓는 나깃수의 집에까지 들어간 것은 의미가 깊은 일이며 놀랍고 대단히 경이로운 일이다'라고 하였다.
어쨌든 바울은 나깃수의 권속에 속한 종들로서 그리스도인된 자들에게 문안하라고 하고 있다. 이는 나깃수의 권속 중 '주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는 어구가 지지해 준다.
이렇듯 바울 사도는 그 신분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갖고 기회 있을 때마다 그들에게 문안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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