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침례 문제
고린도전서 1장 14-16절
나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 너희 중 한 사람에게도 밥티스마(침례)를 준 일이 없다. 이는 내 이름으로 밥티스마(침례) 받았다고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나는 또 스데바나의 가족에게 밥티스마를 주었다. 이 밖에는 나는 밥티스마를 준 일이 있는지 없는지를 모른다.(일본어역)
*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침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침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침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한글개역개정)
바울은 밥티스마(침례)를 천시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아나니아라는 사람(그는 평신도였던 듯 하다)에게서 밥티스마를 받았다.
(사도행전 9: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침례를 받고).
그러면 바울이 밥티스마를 구원의 필요조건으로 보았던가? 그것이 문제이다.
만약 밥티스마가 사람의 구원에 필요하면,
어찌하여 열신 바울 같은 이가 할 수 있는 대로 이것을 피하려 했을까 이상하기 그지없다.
이 밖에는 나는 사람에게 침례를 준 일이 있는지 없는지를 모른다고 하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밥티스마를 주게 하렴에서가 아니라, 복음을 전파케 하려 하심에서 이다 라고 한다(17).
그는 사람에게 침례를 주는 자라고 말해지는 것을 매우 싫어하듯이 보인다.
그는 종시 일관하여 사람의 의롭다함을 입는 것은 행위로서가 아니라 신앙에 의한다고 했는데 밥티스마(침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한 일은 한 번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리하여 바울 같은 성질의 사람이 밥티스마의 식에 구령적 필요조건을 인정했다고는 아무리 해도 생각되지 않는다.
그는 어떻게 보더라도 의식을 중요시하는 교회자는 아니었다. 그는 영의 사람이었다.
그것 보이는 바의 것은 잠시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린도 후서4:18)고 한 사람이었다.
그러한 사람이 로마 천주교회라든가 영국 교회의 교직이 말하듯 밥티스마 의식으로 구령상 필요조건이라 믿었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관찰하여 불가능하다.
밥티스마를 받는 것은 좋다. 받는 것은 받지 않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하지만 받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나 자신은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서 만족하고, 굳이 나아가서 침례를 주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바울의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환언하면 바울은 밥티스마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그는 그것보다 더한 중요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그것만 믿을 수 있다면 밥티스마는 받아도 가한 것이다.
받지 않아도 굳이 묻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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