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후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거듭난 삶 2025. 10. 2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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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 두건(頭巾)을 쓰는 문제

 

성 경: [고전 11:1-16]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6)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

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3)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

16)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

 

본절을 10장에 속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1) 2절에서부터 새로운 주제, 즉 교회의 예배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2) 문맥상 본절은 10:3과 상관성(相關性)을 갖는다.

 

(10:3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바울은 10장에서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와 우상의 제물을 먹고 마시는 문제에 대해서 권면하고 있으며 그 권면의 모델로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즉 바울은 8장의 경고와 권면에 대한 결론으로 본절에서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본받는 그리스도는 유일하고도 완벽한 모델로서 그분의 삶은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이타적인 삶이었다.

 

(2:4-5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러나 그리스도나 바울의 삶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이타적인 삶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이타적인 삶이었다.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고전 11: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

 

바울은 본절에서 부터 새로운 주제를 논하고 있다.

 

유전 - '유전'(παράδοσις 파라도시스), 곧 전통은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가르침으로서, 관습과 교훈은 물론 교리를 포함한다.

 

(1: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살후 2:15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3: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이것은 바울 자신의 교훈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진 복음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바울이 말한 '유전'은 교리보다는 구전(口傳)으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해준 교회의 관습을 의미한다(Godet, Meyer).

 

왜냐하면 이후의 본문들이 여자가 공동(共同) 예배(禮拜) 때에 두건(頭巾)을 써야 한다는 관습에 대해서 논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를 칭찬하노라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경고와 질책의 말을 하기에 앞서 먼저 그들이 바울의 가르침과 교훈을 잘 지킨 것에 대해 칭찬의 말을 하여 그들로 하여금 마음에 깊은 상처 없이 자신의 권면을 받아들일 수 일도록 하였다.

 

이것은 바울서신의 영감성과 신적 권위를 증거하며 아울러 양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목회자로서의 바울의 세심한 배려를 잘 보여준다.

 

 

[고전 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 본절은 고린도 교인들 모두가 바울이 전한 유전을 지킨 것은 아님을 시사한다. 그들은 바울에게서 비판받을 점이 있었다.

그것은 여자들이 공예배 때에 남자와 동등하게 두건을 쓰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여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워졌다 할지라도 이 관습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창조 원리를 통해서 논증한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 바울은 교회에서 공예배시 여자들이 머리에 두건을 써야 한다는 관습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그 논증의 근거를 제시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세 단계의 질서이다.

 

본절에서 '머리''권위'를 의미하며, '유기체적인 복종'을 암시한다.(Edwards, Morris, Meyer).

 

그리고 각 질서는 연합(union)에 의한 관계성을 나타내는데, 그 관계성은 교회의 질서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첫째 질서는, 그리스도와 남자의 관계인데, 그리스도는 믿음을 통한 연합에 의해서 남자의 머리가 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그리스도와 남자의 연합 관계의 근거이다.

 

둘째 질서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인데, 남자는 결혼이라는 연합을 통해서 여자의 머리가 된다.

그리스도인의 결혼 사상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 즉 그리스도가 죽기까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사랑과 복종'의 관계로 설명되고 있다.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3:18-19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비록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이 남편과 아내가 동등하며, 아내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결속이 남편과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차이가 없다 할지라도,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지상의 다른 관계들, 즉 주인과 종의 차이와 마찬가지로 복음의 섭리 아래에서도 여자의 복종의 위치는 지속된다(Godet, Meyer).

 

그러나 이러한 질서는 존재 자체의 우열이 아니라 사랑과 화합과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창조 질서에 있어서 남녀 관계는,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지금도 존속(存續)하나 두 개체는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인격체이다.

 

그러나 남녀 간의 성()의 구별이 완전히 사라지는 때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이다.

 

(20:34-36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36)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셋째 질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인데, 하나님은 자신의 부성(Fatherhood)과 그리스도의 아들됨(Sonship)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신인(神人)이며 중보자(14:28;고전 3:23;15:24ff.)라는 사실에 근거해서 그리스도의 머리가 된다.

 

(14: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고전 3: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15: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하셨다.

 

(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고전 3: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15:28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특히 본절에서는 세 가지 질서 중 그리스도와 남자와의 관계가 제일 먼저 나타난다.

이는 그리스도의 주권을 가능케 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서로의 관계를 형성시키는 요체가 되기 때문이다.

 

 

[고전 11: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 - 본절에 나타난 기도나 예언이 행해지는 장소가 어디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혹자는 가정 예배라고 하며(Bachmann, Hofmann), 혹자는 교회의 공적인 예배라고도 한다.(Grosheide, Meyer).

 

이 두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전자는 그 견해의 근거로서 8:1-11:1에서 가정 문제를 다루었으며 별다른 주제의 전환이 없으므로 2절 이후에도 가정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미루어 기도나 예언도 가정 예배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본절의 기도와 예언은 전체 교회를 위한 활동으로 공적인 예배에서 행해진 것이다.

 

(12: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4:3-4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더욱이 5절 이하에 나타난 본장 내용에서도 공적인 예배를 전제로 바울의 권면이 전개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본절의 공간적 배경은 공적인 교회의 예배로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기도와 예언'은 본서 14장에서도 함께 나타나고 있는데, 거기서 기도는 방언을 말하는 것과 동일시되고 있다.

 

(14:14-17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그래서 혹자는 본절에서 말하는 기도를 방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Baur,Edwards).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 본절에서 '머리'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신체적인 머리'로 해석하는 것이다(Erasmus, Beza, Bengel, Meyer).

 

본절의 앞에서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라고 말함으로 신체적인 머리를 말하며, 5절에서도 같은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은유적인 표현으로서 '그리스도'로 해석한다(Hofmann, Maier, Osiander, Ruckert).

 

3절에서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라고 한 것은 본절에서 머리를 그리스도로 해석하기 위한 선언이었다고 본다.

 

이 두 견해는 모두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이렇게 볼 때 본절은 머리에 수건을 쓰는 상징을 헬라 관습처럼 이중적인 알레고리(allegory)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교회 질서 속에서 남자에게 여자에 대한 주권을 부여했는데, 만약 남자가 여자에 대한 순종의 상징인 수건을 머리에 쓴다면, 그것은 자신의 신체적인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또한 신체적인 머리를 부끄럽게 한 남자는 여자에 대한 남자의 주권을 부여한 영적인 머리 즉 그리스도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고전 11: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

 

바울은 본절에서 여자가 공예배시에 수건을 써야 하는 이유를 당시 관습을 통해서 논증하고 있다.

 

여자가 공예배에서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지 않으면 머리를 민 것과 같다는 것은 당시 헬라 여인들이나 유대 여인들에게 있어서 긴 머리는 여성다움을 표현하는 장식과 같은 것이었으며 짧은 머리는 매춘부와 같은 부도덕한 사람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Grosheide, Meyer)

 

여기서 긴 머리는 머리에 무엇을 쓰는 것과 동일시된다고 본다.

 

(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