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부활론(3)
고린도전서 15장 35-58절 :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뿐이로되
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한글개역)
사람은 혹 물을 것이다. 죽은 자, 어떻게 하여 다시 살아나는가? 어떠한 신체로 오는가고?(35)
사람이란 과학적 지식으로서 자랑하는 어떤 사람이다.
그들의 질문은 언제나 두 가지 점에 있다.
왈, 어떠한 법칙에 의해서 다시 살아나는가?
왈, 어떠한 상태로서 다시 살아나는가?
그리고 오늘날 이 질문을 말하는 자는 거의 조소적 태도로서 온다.
바울 시대의 과학은 결코 유치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질질문자의 태도는 거의 동양이었으리라. 이는 그가 먼저 어리석은 자여 하고서 대답하는 이유이다.
어리석은 자여 네가 심는 씨앗 먼저 죽지 않으면 나지(돋아나지)못한다.(36)
바울의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즉 너희를 부활에 반대하는 자여 너희는 초목의 씨앗의 발아를 본 일 없는가?
이것을 해득하는 자는 부활을 해득한다고.
학자 이에 대하여 혹은 말하리라.
씨앗은 죽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씨를 뿌리는 때는 그 중에 미소한 배자만을 남기고 다른 대부분은 모두 분해되는 것이다. 그리고 분해는 곧 죽음이다.
씨앗은 모두 분해되고 다만 그중 미소한 어떤 것만 분해되지 않고서 날아 거기서 초목이 발행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여 밀은 돋아나는가?
어떻게 하여 개자입 속에서 3척 유여의 풀이 생겨나는가?
어떻게 하여 한 알갱이의 겨자씨에서 공중의 새를 깃들게 할 만큼의 커다란 식물이 생겨나는가?
또 어떻게 하여 일개의 세포 중에서 칸트, 세익스피어, 나폴레옹 등 세계를 삼킬 듯한 대인물이 나는가?
누가 이것을 기적 아니라고 할 자 있는가?
신자의 부활도 역시 그 같은 것이다. 신자 속에는 어떤 죽지 않는 생명이 있다.
하나님은 신자의 죽음으로 그의 신체를 심고, 그리고 그 중에서 새 생명을 발생케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한다. 밀이 돋아남과 다름없다고.
이것을 근세 과학에 비추어볼 때 이 해답은 과연 오류인가?
하버드 대학 교수 셰러씨, 일찍이 일서(一書)를 저술하여 말했다.
생명의 보존을 위해서는 결코 대물질을 요하지 않는다. 극히 미소한 것으로서 족하다. 어떤 벌레의 알 같은 것은 그 형상 극소한데 더구나 시베리아의 들에서 영하 70도의 한기 아래서 겨울을 보내고 봄이 오면 곧 아름다운 나비를 발생한다.
만약 우리 5척의 몸속에 현미경으로서도 볼 수 없는 소세포 가운데 우리들의 전인격, 전영성을 넣을 수 있는 것이 남는다면 거기서 새로운 생명은 발생할 것이라고.
이 설 같은 것은 바울의 설명을 돕는 일 지대한 것이다.
생각컨대 부활의 과학적 증명은 이 정도(부근)에 있는 것이리라.
과학은 결코 신앙의 적(敵)은 아니다. 이자는 서로 커다란 원조자이다.
우리들은 힘써 신앙과 지식과의 화합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또 너희가 심는 것, 뒤에 생겨날 몸을 심는 것 아니다. 밀에 있어서도 다른 곡식에 있어서도 다만 알갱이 뿐, 그런것을 하나님은 자기 마음에 따라 이에 몸을 주시고 씨 마다 그 각각의 형상을 주신다. 모든 육 같은 육이 아니다. 사람이 육 있다. 짐승의 육 있다. 새의 육 있다. 고기의 육 있다. 하늘에 속한 자의 형체 있다. 땅에 속한 자의 형체있다.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은 땅에 속한 자의 영광과 다르다. 해의 영광 있다. 달의 영광 있다. 별의 영광 있다. 이 별과 저별과 그 영광 또한 각각 다르다.(37-41).
다음에 어떠한 상태로서 부활하는 가의 물음에 대하여 바울의 박물학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말한다. 같은 물질을 가지고서 다른 것이 만들어지는 실례는 아주 많다.
하나님은 같은 육으로서 갖가지 육을 만드시고, 같은 물체로서 갖가지 형체를 만드시며 같은 별로서 갖가지 영광을 드러내신다.
그렇다면 또 같은 물질로서 영구히 죽지 않는 것을 만들 수 있지 않으랴고.
이 설명도 또한 대체에 있어서 진리임을 잃지 않는다.
하나님은 같은 탄소로서 혹은 목탄을 만드시고 혹은 왕관을 장식할 수백만원의 다이아몬드를 만드신다.
또 같은 세포로서 흑인을 만드시고 혹은 백철인종을 만드신다.
인체의 가장 추한데서부터 가장 귀한곳에 이르기까지 모두 같은 세포의 조직이다.
투명하고도 광휘있는 안구의 수정체도 검은 모발도 같은 세포로서 만들어진다.
기타 혹은 같은 무쇠로서 저렴한 선철있다.시계의 태엽같은 고가인 강철있다.
뿐만 아니라 철 가운데 있는 대에네르기는 이것을 화하여 혹은 금(金) 혹은 백금되게 한다는 것이다.
또 소두대(팥 크기)의 라듐은 만약 그 힘을 모두 이용한다면 긴 열차로 하여금 지구를 일주케 하기에 족하고 그리고 우리들이 발아래 밟는 돌덩이(석괴)도 언젠가는 라듐으로 화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간직하신 힘은 실로 무한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힘(능력)으로서 하나님은 우리 위해 영구히 죽지 않을 몸을 예비하신 일에 무슨 의심할 바 있으랴?
바울의 소론은 대체에 있어서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그가 쓴 재료는 낡았다 해도 이것으로서 증명된 진리는 결코 틀리지 않는다.
전체로 성서 중 근세과학과 근본적으로 배치되거나 사람의 이성과 전연 서로 용납되지 못하는 것 같은 기사는 이것을 발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성서의 1장 중, 사람의 신앙과 지식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이 고린도전서 15장 같은 것은 없다.
여기서 바울은 처음은 대역사가였다. 그는 역사가로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감능에 현저이 부해 있었다.
즉 함부로 사실을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중심적 사실을 제공하고 그 위에 의론을 건설했던 것이다.
위대한 역사가 또는 어진 변호사의 태도는 언제나 이것이다.
진리의 중심을 파악하여 그것을 사람에게 맡긴다. 그러므로 이것을 어떻게도 할 수가 없다.
바울의 부활의 실증으로서는 6개의 경우는 모두 든든한 사실로서 이것을 부정할 것인가?
그리스도교를 파괴치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제1류의 역사가로서의 소질을 가졌다.
다음으로 그는 예언자로 되어 세상의 종말을 예언하고 만물의 귀취는 하나님,
작자에 있어서 전부가 되심에 있다고 외쳤다.
다시 돌아가 그는 위대한 과학자로 되었다.
씨앗의 발아를 보라. 천연의 물체를 보라고 하여 부활의 원리를 과학의 입장에서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42절 이하는 그가 희유한 인류학자였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그는 인류가 어떻게 지어졌는지를 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그의 말은 종종 커다란 시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역사가로서 예언자, 철학자로서 신앙가, 과학자로서 시인, 세상에 그만큼 위대한 사람은 없었다. 한 사람이서 3, 4위의 위인성을 겸비했던 이는 실로 다소의 바울이었다.
죽은 사람의 다시 살아남도 이와 같다. 썩을 것으로 심겨지고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리신 바 되고 존귀하지 않은 것으로 심겨지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리신 바 되고 약한 것으로 심겨지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리신 바 되고 혈기의 몸으로 심기시고 영의 몸으로 다시 살려진다.(42-44)
어떠한 신체로 오느냐는 물음에 대한 해답인데 동시에 또 두 구(句)씩으로 된 시이다.
현재의 몸은 썩을 것, 약한 것, 존귀하지 않은 것, 혈기의 것이다.
이에 반하여 부활의 몸은 썩지 않을 것, 영광스러운 것, 강한 것, 영의 것이다.
혈기의 몸 있다. 영의 몸 있다. 기록하여 첫 사람 아담은 생명 있는 혼이 되고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다고 있는 대로이다. 영의 것은 먼저가 아니라 도리어 혈기의 것이 먼저 있고 영의 것, 후에 있다. 첫째 사람은 땅에서 나서 흙에 속하고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온 주시다. 저 하늘에 속한 것에 모든 하늘에 속한 것은 닮는다.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가진다. 이같이 뒤에 또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가질 것이다. (44-49).
성서심리학은 사람의 삼분구조를 말한다. 즉 육과 심과 영이다.
이 삼자 완전치 못하면 참된 생명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혈기이다.
또 기록하여 처음 사람 아담은 생명 있는 혼(한글역 산 영 또는 산 존재)이 되었다. 는 오역이다.
기록하여 처음 사람 아담은 생명있는 혈기로 되었다고 있는 대로이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으로 되었다.로 개역해야 할 것이다.(마지막 아담.은 구약의 인용이 아니다).
처음 아담은 생명 있는 혈기로 되고,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된다고 한다.
여기에 바울의 깊은 인류학이 있다.
그가 보는 바에 의하면 처음으로 하나님께 만들어진 아담은 혈기를 중심한 사람으로서 아직 영을 가지지 못했다.
그에게는 물론 육체 및 5감과 갖가지 욕이 있었다.
또 수리학, 철학등을 아는 힘과 도덕의 관념이 있었다.
그러므로 혈기의 사람 반드시 하열 아니다. 그도 역시 철학자 또는 도덕가 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드디어 크리스천 될 수는 없다.
천연성의 사람, 즉 아담의 성을 가진 자는 특별한 창조를 거치지 않고서는 절대로 영의 사람으로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혈기에 관한 것 없지 않다해도 이는 인류에게 특유한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는 있대도 원숭이도 말도 모두 이것을 구비한다.
어떤 말은 5까지의 수를 계수할 수 있는데 백치는 20 이상을 셀 수가 없다.
그 차 불과 오십보 백보일 뿐 아담은 원숭이 또는 말이 가지는 성질을 가지는데 지나지 않았다. 그는 동물이 가진 것을 발달시킨 자에 지나지 않았다.
즉 바울의 설에 의하면 천연성의 사람과 동물과는 그 사이에 특별한 차별이 없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그의 견해는 도리어 훨씬 근세과학적이다.
이에 반하여 나중에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으로 되셨다.고 한다.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혈기의 사람이 아니라 영의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를 믿는 자에게 한 없는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를 믿어 비로소 아담적 상태를 벗어나 그리스도적 상태를 돌아가는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들은 아담 같이 생명있는 혈기 임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산다는 것 뿐, 음식하고 수면하고 욕구하고 사색한다.
그렇지만 그것 뿐이다. 아무리 큰 사업을 한다 해도 이로써 새 생명을 제공할 수는 없다.
그 생애는 죽음과 함께 소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그리스도의 영을 받을 것인가?
대활력은 우리에게 가해져 스스로 생명을 주는 영으로 되는 것이다.
참된 크리스천은 단지 사는 자일 뿐 아니라 생명을 주는 자이다.
그에게 접하는 자는 그 몸에서 생명의 유출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때에 이르러 다시 대 활력은 현저히 그에 의해 임하고 그 몸도 화하여 영체로 되게 하는 것이다. 실로 위대한 바울의 인류학이다.
혈기의 몸 있다. 영의 몸 있다. 고 한다.
혈기 또는 영으로서 이룩됨을 말함이 아니다. 혈기에 알맞은 몸과 영에 적합한 몸과의 뜻이다.
미약한 혈기에 마저 그것에 적응해야 할 몸 있다면 더욱 우수한 영에는 그것에 적응할 영광의 몸이 없어서는 안 된다.
형제여 나는 이것을 말한다. 혈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다. 또 썩을 것은 썩지 않을 것을 이어받을 수 없다. 보라. 나는 너희에게 비밀을 말한다. 우리가 다 잠잘 것 아니다. 우리 모두 마지막 나팔이 울려울 때 곧 순식간에 변화될 것이다. 그것은 나팔이 울려울 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 썩지 않고 우리들도 또 변화될 것이기 때문이다.(50-52).
비밀이란 종래 해득되지 못한 일로서 새로이 그리스도에게서 보여주신 진리를 말한다.
바울은 50절에 이르기까지 주로서 사자의 부활에 대하여 말했는데 최후에 다시 일언치 않을 수 없었다. 사자의 부활에 대해서는 구약성서 중 그 암시가 적지 않다 해도 살아있는 신자의 운명여하는 전혀 오의에 속했던 것이다.
이러므로 그는 말했다.
어느 때 이르면 주는 부활체로서 하늘에서 내려 오신다. 그때 크신 힘(능력)에 의해 천지는 일변하고 죽은 신자는 부활케 됨과 동시에 산 신자는 죽음을 거치지 않고서 그대로 영화되어 그리고 함께 주께로 휴거되는 것이다.라고.
이는 그가 종종 명백하게 가르친 진리이다.
이 썩어야할 것은 반드시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이 죽어야 할 것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것이다. 죽어야 할 것은 죽지 않을 것을 입은 때 성서에 기록된 죽음은 이김에 삼켜버릴 것이라고 있음에 응할 것이다. 죽음아 네 가시는 어디에 있는가? 음부여 네 이김은 어디에 있는가? 죽음의 가시는 죄이다. 죄의 힘은 율법이다. 우리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이김을 얻게 하는 하나님께 감사한다.(53-57).
썩을 것이란 썩은 사자(死者)이다. 죽을 자란 죽어야 할 생자이다.
썩은 사자는 썩지 않을 몸으로 부활케 되고 죽어야 할 생자는 죽지 않을 몸으로 영화케 된다. 그때 죽음은 이김(승리)에 삼킬 것이라는 예언자 이사야의 예언은 성취하는 것이다.
죽음은 이김에 삼킨다. 란 죽음이 그 적인 생에 삼킨 바 됨이다.
즉 안다. 죽음은 최후에 이르러 다만 무효로 될 뿐 아니라 영원불변의 생명으로 삼킨 바로 되어 후자가 전자에 대신하여 우리들의 운명으로 되는 것을.
그러므로 죽음은 이미 그 검으로서 산 신자를 찌르고자 해도 할 수 없다.
무덤은 그 가운데 갇혀 있는 죽은 신자를 잡고서 놓치지 않으려 해도 할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썩지 않을 영광의 몸으로 변화되어 하늘로 휴거되고 주 밑에 모이는 것이다.
죽음아 네 가시는 어디에 있느냐? 음부여 네 이김은 어디 있느냐? 우리로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고.
아아 어떠한 승리가 또 이것 같으랴? 이것이야말로 승리의 승리, 감사의 감사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음의 결과는 실로 여기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이 놀라운 은혜에 비하여 구구한 사회의 개선 같은 것은 참으로 말할 바 못된다.
일인의 전도자 바울로 하여금 전세계를 움직이게 한 것은 이 위대한 복음의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여 너희는 든든히 하여 동함 없이 항상 힘써 주의 일을 하도록 하라. 그것은 너희가 주 안에서 그 행하는 바 일이 헛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58).
믿지 않은 자는 말한다. 부활, 재림 등의 신앙은 우리들의 영적 활동에 아무런 소용 없다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자는 스스로 영적 활동의 실험을 가지지 못한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재림있고 부활있어 비로소 개인의 영원한 생명 있고,
사랑하는 자와의 재회있고, 우주 만물의 구원이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했다.
너희는 이 신앙 위에 자리를 차지하고 남으로 하여금 이것을 요동치 못하게 하라. 그리하면 주의 일로서 너치리라. 고.
부활의 신앙은 냉담한 죽은 신앙은 아니다. 활력에 찬 산 신앙이다.
이 신앙을 굳게 지킴으로서 만이 사랑의 사업으로서 넘치지 않을 수 없기에 이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끝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주의 일이란 특히 전도이다.
그리고 사람의 눈에 무익한 듯이 보이는 것으로서 전도 같은 것은 없다.
분주 40년, 몇천 명의 청년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남은 것 과연 몇 사람인가?
이 한 가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전도의 무효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물며 조소, 박해 기타 온갖 환난에 조우함에 있어서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주의 일로서 넘칠 수 있는 것은, 하나로 이 신앙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생명은 이것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그 손 안에 미래 영원한 생명을 쥐고 계시다.
드디어 그가 다시 오시는 때 우리들의 사업을 모두 드러내어 금관으로서 우리에게 갚아주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많은 사람에게 배척된대도 무슨 상관 있으랴?
조소되고 침밷은 바 되고 국적으로 불리고 위선자로서 질책된대도 무슨 상관 있으랴?
우리들도 바울 같이 만만한 희망과 늠름한 용기로서 활동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전도의 정신은 전혀 이에 있다. 부활 재림의 신앙을 재외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영적 활동에 부하게 하고 능률있는 사업에 넘치게 하는 것은 달리 없는 것이다.
약설
부활은 육체의 부활이다. 그리스도 육체의 부활을 부정할 때 신약성서의 그리스도교는 그 근저에서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부활은 이론이 아니다. 사실이다. 역사적 사실이다. 충분한 증인에 의해 증명된 사실이다. 기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하나님에 있어서 능치못한 일은 없다. 기적이다.
그러나 천연계에 유사한 것이 없는 것 아니다. 씨앗이 발생하는 것도 기적이다.
어떠한 학자도 겨자씨가 어떻게 하여 발생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다.
또 하나님께 있어서는 능력은 무한하지만 자원도 무한 하시다.
같은 탄소로서 검은 석탄과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는 하나님은 같은 물질로서 썩을 몸과 썩지 않을 몸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다.
철학이 귀착하는 바는 일론론이라고 한다.그리고 이 일원에서 천자만태의 천지만물이 이룩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 사람이 영혼을 입히는데 있어서 이에 적응하는 영광의 몸으로서 하신다는데 무엇 믿기 어려운 바가 있는가?
또 인류학상에서 말한대로 아담을 산생명으로서 볼 수 있고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시는 영으로서 볼 수가 있다.
사는 것은 스스로에 의한다. 즉 단순히(그냥) 사는 것이다.
생명을 주는 것은 무궁하게 사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죽을 육체를 살릴 수 있으시고 또 생명을 달리 분여할 수가 있다.
그리스도 제2의 아담으로서 사람 사이에 임하시어 생은 사에 승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승리의 실현 시기가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신자는 굳게 이 희망을 가고서 구원되는 것이다.
*내촌감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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