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는 바울의 긍정적 사랑
(여정 변경에 대한 답변)
성 경: [고후 1:15-20]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16)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에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보내줌으로 유대로 가기를 경영하였으니
17) 이렇게 경영할 때에 어찌 경홀히 하였으리요 혹 경영하기를 육체를 좇아 경영하여 예 예 하고 아니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후 1:15]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 이 확신을 가지고 - 바울은 자신의 여행계획이 변경되었다고 하여 그의 신실성을 비난하였던 고린도인들에게 먼저 자신과 고린도 교인들 사이의 존경과 애정의 관계성을 확인시키고 있다.
바울과 고린도 교인 사이에 생겨난 모든 오해들은 이 전제를 토대로 하여 풀어져야 했다.
▶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 바울은 마게도냐를 다녀가는 길과 오는 길에 두 번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여 그들과 은혜와 기쁨을 나누고자 했다.
[고후 1:16]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에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보내줌으로 유대로 가기를 경영하였으니
▶ 너희가 보내줌으로 - 여기에는 배에 승선하는 곳까지 동행해 준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듯하다.
바울은 이방인 교회에서 모금한 구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에 가는 길에 고린도 교회의 대표단이 자기와 함께 동행 해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Martin).
▶ 유대로 가기를 경영하였으니 - '경영하였으니'는 '계획을 했다'는 뜻이다.
최종 목적지가 유대로 되어 있는데 이는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구제하기 위한 헌금을 가지고 가려고 계획했음을 보여준다.
(롬 15: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고전 16:3-4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4)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저희가 나와 함께 가리라)
[고후 1:17] 이렇게 경영할 때에 어찌 경홀히 하였으리요 혹 경영하기를 육체를 좇아 경영하여 예 예 하고 아니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
▶ 경홀히 있었겠느냐 - 앞 절에 언급된 바울의 여행 계획이 변경된 것에 대해 고린도 교회의 바울 적대자들은 그것을 바울을 비난하는 빌미로 삼았다.
아마 그들은 바울이 진실되지 못하고 경솔하며 이랬다저랬다 한다고 사람들을 선동했을 것이다.
(12절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바울은 그의 적대자들이 자기에 대하여 그와 같이 비난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며 이는 대적들의 비난과 중상(中傷) 가운데서 바울이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 '경홀히'란 말과 두 번 거듭 언급된 '예', '아니'라는 말에서 잘 나타난다.
한편 적대자들의 비난에 대한 바울의 반박은 반어법적인 수사법으로 되어 있다.
바울의 어조를 살려 본문을 재해석하면,
"내가 이런 계획을 세운 것이 경솔한 일이었습니까?
또는 인간적인 동기로 계획을 세워 편리할대로 이랬다 저랬다 하려는 줄 압니까?"가 된다.
바울은 '육체', 곧 자기 이익을 따라 임의로 계획을 변경하기 보다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했고 성도들의 유익을 구하였다.
(2:1-3 내가 다시 근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단하였노니
2)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의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하는 자가 누구냐
3)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무리를 대하여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행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고전 16:7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유하기를 바람이라).
[고후 1: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 '미쁘시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πιστός 피스토스'는 사업의 거래나 공적 의무의 수행에 있어서 '신실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미쁘시니라'는 표현은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란 뜻이다.
구약에서 '신실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하는 하나님의 명칭이기도 하다.
(신 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사 49:7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너를 보고 열왕이 일어서며 방백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너를 택한 바 신실한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신실함을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의거하여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사 2:2-4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눅 1:68-79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
72)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라
74)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76)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고전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이것이 바울의 신실함의 근거가 된다면 그의 신실함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바울은 매우 효과적이고도 담대(膽大)하게 자신을 변증하고 있다.
▶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한 말은 그의 여행 계획뿐만 아니라 그의 사역까지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
(13절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끝까지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이렇게 볼 때 바울은 그의 사역을 수행함에 있어 매사에 하나님의 종 된 자로서 신실함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고후 1: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 실루아노 - 이는 '실라'의 로마식 이름이다.
(살전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유력자 중 한 사람이었고,
(행 15: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에 동참했던 동역자이자 친구였다.
(행 15:36-41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예수 그리스도 - 바울, 실루아노, 디모데가 고린도에 복음을 증거한 것은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기간이었는데 먼저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고,
(행 18:1-4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나중에 합세하였다.
(행 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이들 세 사람은 고린도에 1년 6개월간 머물면서 교회를 세우고 침례를 베풀었다.
(행 18:7-11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 바울과 실루아노, 디모데 세 사람의 삼중 증거에 의해 전해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는 결코 모순과 우유부단함과 이중성이 없음을 단언하고 있다.
여기서 '되었느니라'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은 영원한 현실로서 동일한 효력을 나타냄을 보여준다(Harris).
[고후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이나 당신의 종들을 통해 주신 약속의 성취자이고,
(롬 1: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갈 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이스라엘의 전역사가 지향해 온 목적을 완성하신 분으로 모두의 의롭다함을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
(롬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이러한 사실은 구체적으로 예수의 인격과 사역 속에서 실현되었고,
(눅 5:17-26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 각 촌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 놓고자 하였으나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20)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가로되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2) 예수께서 그 의논을 아시고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마음에 무슨 의논을 하느냐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25) 그 사람이 저희 앞에서 곧 일어나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 하니라;
7:18-23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고하니
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가로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20) 저희가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침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말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21) 마침 그 시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소경을 보게 하신지라
2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23)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치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성도들과 교회는 그것의 증거이다.
▶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 '아멘'은 '진실로 그렇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이루어 주소서'라는 의미를 갖는 말로,
구약성경에서도 사용되었고,
(신 27:15-16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 할지니라
16)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렘 11:5 내가 또 너희 열조에게 한 맹세 곧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언약을 이루리라 한 것인데 오늘날이 그것을 증거하느니라 하라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아멘 여호와여 하였노라;
시 41:13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할지로다 아멘 아멘)
유대교를 거쳐 기독교에서도 예배시에 사용되었으며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성도들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된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의미가 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예'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을 의미하는 것처럼,
성도들의 '아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을 표시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된다.
바울의 헌신적인 사도적 수행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아멘'의 한 전형(典型)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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