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골 메시지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개별적으로 지체니라

거듭난 삶 2026. 8. 2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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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와 은사

 

고전 12:27-28 이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개별적으로 지체니라.

28)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몇을 세우셨는데 첫째는 사도들이요, 둘째는 대언자들이요, 셋째는 교사들이요, 그 다음은 기적들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선물들과 돕는 것들과 다스리는 것들과 여러 가지 타언어들이니라.

29) 모두 사도이겠느냐? 모두 대언자이겠느냐? 모두 교사이겠느냐? 모두 기적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모두 병 고치는 선물들을 가지겠느냐? 모두 타언어들로 말하겠느냐? 모두 통역하겠느냐?

31) 오직 가장 좋은 선물들을 간절히 사모하라. 그럼에도 내가 너희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이노라.

 

딤전 3:15.....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목회자로서 어떠한 교회상을 가져야 바른 목회가 될 것인가를 간략히 명시한 말씀입니다. 목회자는 물론 온 성도들이 자기가 속한 교회가 어떤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알고 바른 교회상 정립에 힘쓸 때 그 교회는 든든히 서고 성장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1. 교회는 모두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어느 장로교 노회 장로고시에 응시한 분들에게

 

"교회의 주인은 누구냐?" 고 물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먼저 말하기를

 

"교회의 주인은 당회장이십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당회장은 교회의 모든 업무에 책임을 지고 있으며, 헌당식 때 열쇠를 당회장께 드리는 뜻도 주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교회 주인은 장로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목사들은 큰 교회에서 오라면 떠나는 나그네요, 장로는 괴로우나 즐거우나 한 교회에 봉직하니 교회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아마 더 나갔으면 "교회의 주인은 교인입니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목사 청빙도, 장로 장립도, 모두 세례 교인 모임인 공동의회 결의를 거치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눈에 보이는 조직과 운영을 볼 때 으레 나올 수 있는 견해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교회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신 백성, 곧 하나님의 백성된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또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사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도록 선택하신 하나님의 자녀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사람의 교회인 줄 알고 주도권을 누가 장악할 것인가를 서로 다투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분열된 교회가 교회당을 서로 차지하려고 폭력을 행사하는 추태도 보인 일이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5절에는,

 

"천하에 있는 가장 순결한 개 교회들도 때로 혼탁하고 과오를 범한다. 심지어 어떤 교회들은 너무나 타락하여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상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가 항상 실존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었다면 2000년 역사 속에 그 무서운 핍박을 받으면서 견뎌낼 수가 없었을 것이며, 온갖 유혹과 시련들로 말미암아 종적을 감출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외견상으로는 사람들이 교회를 세우고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것 같지만, 교회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따라 역사하고 계십니다.

 

2.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여기서 `'이라 함은 주택이 아니라 `가족'을 뜻합니다.

 

성도들 중에는 교회가 무엇인가 물으면 예배당 건물인 줄 알고 있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요,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의 모임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대가족인 것입니다. 가족은 혈연으로 묶어지듯,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량 되어서 한 피 받아 한 몸을 이룬 형제요, 자매들입니다.

 

하나님의 집 교회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한 사랑의 가족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며 섬기는 것을 훈련하고 실천해 나가는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한 식구끼리 누가 크냐는 다툼을 갖거나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모두 철없고 부질없는 소치입니다.

 

많은 식구가 모여 살려면 성격 차이나 지식 차이, 소유의 차이 같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하나되는 데 어려움을 주지만 한 핏줄이라는 대명제로 다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나이든 사람이 젊은이를 이해하고 포용해주듯 고참 성도들이 갓 입교한 성도들을 감싸주고 붙들어주는 것이 교회 생활의 원리입니다.

 

9 남매를 길러내신 미국의 교포 교회 목사님에게 어느 날 한 목사님이 찾아가

 

"어떻게 그 힘든 일을 감내하셨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 사모님이 말씀하기를

 

"별로 힘들지 않았습니다. 처음 한 두 아이가 어려웠지 그 다음은 갈수록 쉬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언니가 동생을, 형이 아우를 돌보고 살펴주기 때문에 갈수록 쉬웠다는 것입니다.

 

3.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당시 디모데가 목회하고 있던 에베소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 여신의 신전이 웅장하게 서 있었고, 그 신전에는 127개의 기둥들이 있었습니다. 이 기둥들이 지붕을 받친 것이 아니고 기둥만 세워졌는데 대리석에 보석이나 금으로 장식한 것으로 임금들마다 한 개씩 세웠다고 합니다.

 

이 기둥들은 신전에 그 임금이 늘 서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또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벧엘에 돌기둥을 세웠듯이 신이 임재하는 곳의 상징으로 기둥을 세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진리의 기둥이라 함에도 깊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여기서 진리란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일컫는 것입니다. 또한 영원히 멸망 받을 죄인들을 십자가의 속죄로 구속하여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포괄하는 말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드러내는 증거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임재 하시는 거룩한 장소인 것입니다.

 

기둥의 생명은 똑바로 세워지는 데 있습니다. 아무리 웅장한 것도 기울어지면 곧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교회의 생명은 부패하고 타락된 세상 속에서도 어느 편에 기울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로 무장하여 굳게 서는 데 있습니다. 때로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 권력에 기울고 재물 쌓기에 기울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셔서 이 기둥을 바로 세우는 교회 개혁을 이루셨습니다.

 

교회는 사람의 교회가 아닌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같은 목적과 뜻을 가진 회중의 모임 공동체로서 빛으로, 소금으로, 썩어지는 밀알로, 세상 속에 존재하는 그리스도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이 영광스런 교회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고전 12:27-31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1.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잊지 않는 것.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하신 것은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분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는다"고 하셨고,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지 않으면 "버리워지며", "말라지고", "불살라진다"고 하셨습니다.

 

그 포도나무, 곧 예수 그리스도에 붙어 있어야 영양을 수급받고 자랄 수 있으며, 열매 맺는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붙어 있어야 합니까? 주의 말씀을 결코 놓치지 않고 그 약속의 말씀에 매달려서 일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는 나 자신의 삶이라기보다 주께 속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2. '주신 은사'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

 

자기가 받은 달란트, 살아오는 동안 습득한 기술과 경험을 활용하며 사는 지혜있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각기 다른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를 따라서 목사도 되고 예술가도 됩니다. 또한 영적으로도 예언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영 분별의 은사 등 다양한 은사를 주셔서 모두 받은 소임따라 일하는 것입니다. 주신 분의 뜻을 따라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활용하는 것이 제일 좋은 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섬기는 직분'을 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기보다도 '섬기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것처럼 그를 섬긴 여호수아와 갈렙도 훌륭합니다. 기회를 따라 주신 사명, 주신 달란트를 잘 사용하는 것이 제일 좋은 길입니다.

 

3. '성령이 부어주시는 사랑'으로 일하는 것.

 

본문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하신 다음에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이 전개되며, 마지막으로는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이 "부어주신 사랑"(5:5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입니다.

이 사랑으로 목회하고, 이 사랑으로 교사도 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일 좋은 길입니다. 그것이 일하면서 기쁨이 오게 하고, 일할수록 힘이 나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피곤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는 제일 좋은 길입니다. 사랑이 없이 일하는 것은 광야 같은 길이고, 사랑 안에서 일하는 것이 제일 좋은 길입니다.

 

사랑은 성령께서 부어주시며, 그 은혜 안에서 성령이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일하면서도 내가 한다는 느낌보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감사하면서 일하게 됩니다. 이것이 제일 좋은 길입니다.

 

길을 잘못 들면 고생합니다. 제일 좋은 길을 찾아서 가야 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좋은 길을 찾아갑시다. 그 길은 주와 더불어 가는 길이요, 보람과 감사와 기쁨이 있는 길입니다.

 

베드로전서 4:10-11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와 같이 봉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육체의 남은 때를 이와 같이 살면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첫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은사는 모든 성도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은사'란 말은 "은혜로운 선물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우리에게 가져오시는 분이 성령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성령의 은사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이 은사를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다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라고 하였습니다. 이 편지가 어떤 특징인 몇 사람에게 보내진 것이 아니라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따라서 각각이라고 말할 때 거기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이미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셨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말하고 있는 로마서 12장이나 고린도전서 12장에서도 한결같이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은사를 주셨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할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가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성령의 은사가 주어졌다면 도대체 나에게는 어떤 은사가 주어졌을까? 우리는 각자 자기의 은사를 찾아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성령의 은사가 없었다고 생각해 온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를 찾아내지 못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은사를 모르면 바르게 봉사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어느 은사를 받았느냐 또는 어느 은사를 받지 못했느냐 하는 것을 바로 아는 것은 내게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가령 내게 없는 성령의 은사를 행사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여러 면에서 비효과적인 일일 것입니다.

음악적 은사를 받지 못한 성도가 성가대에 끼어서 봉사할 경우 성가대에 도움도 되지 않거니와 정말 그가 받은 은사를 활용하여야 할 자리를 비우기에 또한 손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 자기의 성령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발견하여 그것을 개발하고 그것을 적절히 활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123절 이하에 보면 일곱 가지 은사가 나옵니다.

 

예언하는 일,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권면하는 일, 남에게 주는 일, 구제하는 일, 긍휼을 베푸는 일 등입니다.

 

그 외에도 성령의 은사를 따라 맡은 직분들을 볼 수 있는데,

 

본문 고전 1228절 이하에 사도, 예언자, 교사, 기적을 행하는 자, 병 고치는 자, 남을 도와주는 자, 다스리는 자, 방언하는 자가 있고, 에베소 411절에는 사도, 예언자, 전도자, 목사, 교사 등이 나옵니다.

 

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함이라.

 

피터 와그너 교수는, 교회의 기독교 교육의 근본적인 목적 가운데 하나는 교인들 각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성령의 은사를 발견하고 이해하도록 만드는데 있다고 주장합니다.

 

장년의 경우에 있어서는 믿은지 1년 이내에, 그리고 젊은이들은 25세 이전에 각자 성령의 은사가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그 은사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도록 만드는데 기독교 교육의 한 목적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될 때 그 교회는 건강하고 또 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은사를 활용하지 않는 교인은 한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 둔 종과 같아서 주님 앞에 설 때 '착하고 진실된 종'이란 칭찬을 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은사를 발견하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받은 성령의 은사는 무엇입니까? 속히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우리가 할 일은 은사를 활용하여 봉사하는 일입니다.

봉사하되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청지기는 종과 다릅니다. 청지기는 주인에게 권한을 위임받아 그 집을 관리하여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누가 시켜서 일하는 종과는 다릅니다.

자기 스스로 주인을 위하여 충성되게 일하여야 할 사람인 것입니다. 은사를 따라 봉사하되 주인 의식을 가지고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우리로 그것을 활용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려 하심에서 인것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봉사하시기 위하여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가르치고 있는 성경은 로마서 12장과 고린도전서 127절에 "각 사람에게 성령이 나타나 주신 것은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고 하였고,

 

에베소서 412절에는 "성도들을 준비시켜 섬기는 일을 하게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고전 1412절에서 고린도 교인에게 간곡히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성령의 은사를 열심히 사모하는 사람들인 만큼 무엇보다도 먼저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하여 더욱 풍성한 은혜를 구하시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키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는 이 몸의 각 지체가 되어 각각 받은 은사를 따라 자기 직분을 감당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길은 구체적으로 받은 은사를 따라 교회에 봉사하는 길인 것입니다. 은사를 따라 봉사할 때에는 언제나 거기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억지로 하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할 때 그것은 은사인 것입니다.

재능과 은사가 다른 것은 그것으로 봉사할 때 즐거움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아무리 재능이 많아도 즐거움으로 봉사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은사가 아닙니다.

은사는 또한 반드시 재능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할텐데 어떻게 그렇게 하겠습니까? 이미 주어진 성령의 은사를 찾아내어 선한 청지기와 같이 열심과 즐거움으로 봉사할 때 거기에 바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은사를 통한 봉사로 말미암아 교회가 더욱 성장하고 또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올바르게 보여주며 살아가 여러분의 생활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며 살아가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