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말씀

스데반의 설교와 순교

거듭난 삶 2014. 5. 24.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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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데반의 설교와 순교

 

              아브라함의 교훈

 

 

 

[사도행전 7:1-7 대제사장이 가로되 이것이 사실이냐

2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5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6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7 또 가라사대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저희가 나와서 이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행7:1 대제사장이 가로되 이것이 사실이냐]

 

 

이것이 사실이냐 - 스데반은 성전과 율법을 거스렸다는 죄목으로 고소되었다.

 

(6: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당시의 재판 관례에 따르면 피고에게는 고소한 내용에 대해 변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래서 재판장인 대제사장은 스데반에게 고소 내용에 대한 사실성 여부를 공식적으로 물었다.

 

 

 

 

[행7:2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여러분 부형들이여 - 어떤 학자들(Alford, Hervey)에 따르면 스데반이 이 설교를 70인역(LXX)을 바탕으로 하여 헬라어로 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 지방에서도 헬라어는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식자층(識者層)에서는 대부분 헬라어를 사용하였고 스데반 자신도 헬라파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산헤드린 공회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유대인이며 종교지도자들이었고 또 스데반 자신이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설교하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그는 히브리어로 설교했을 가능성이 높다(Meyer). 이 설교가 어떤 언어로 행해졌던 간에 본문에 드러나 이 설교의 내용의 독창성과 특이성 또는 그 의미의 심오함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한편 여기서 '여러분 부형들이여'라는 말은 공회에 모인 사람들을 겸손하고 공손하게 부른 호칭이다. 공회원들이나 고소자들은 스데반을 배교자로 몰아붙였으나 스데반은 분을 내거나 욕설로 맞서지 않고 정중히 예의를 갖추고 있다.

 

아브라함이....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 본구절에서는 아브라함이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고 했는데(이는 갈대아 우르를 말함,

 

창 11: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창 12:1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으로 언급된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 같은 차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즉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두 번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란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갈대아 우르에서 처음 베푸신 약속을 거듭 되풀이 하신것으로 이해된다(Lenski).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필로(Philo)나 요세푸스(Josephus)도 동의하고 있다.

 

여기서 '영광'은 히브리어로 '쉐키나'로 표현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현현을 나타내는 말이다.

 

(출 16:7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

 

10;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양과 소는 머물러두고 너희 어린 것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16-17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서 이르되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득죄하였으니

17 청컨대 나의 죄를 이번만 용서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을 내게서 떠나게 하라;

33:18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22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40:34-35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레 9:6 모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하라고 명하신 것이니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23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이 표현은 시 29:3에서 인용된 것으로 스데반은 이말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말하는 하나님과 구약성경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이 서로 동일한 분이심을 시사하였다.

 

(시 29:3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뇌성을 발하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

 

그리고 영광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성전에 제약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행7:3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네 고향과 친척과 친척을 떠나....땅으로 가라 - 여기서 '내가 네게 보일 땅'이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말한다.

 

스데반의 논지(論旨)는 이 땅 자체는 '영원한 도성'의 예표로서 의의를 지닐 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라는 것이다. 즉 스데반은 보다 핵심적인 하나님의 언약에 관해서는 둔감하면서 외형적 성지 숭배 의식에 젖어 있었던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을 경책하고 있는 셈이다.

 

 

 

 

[행7: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 창 12:4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나이 75세에 그의 아버지 데라가 죽고 하란을 떠났다.

 

유대 신학자 필로(Philo)도 동일한 진술을 했다. 그런데 여기에 연대기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버지 데라가 70세때 출생했으며 데라가 하란에서 죽었을 때의 나이는 205세였으며 구약 성경에 따르면 이 때 아브라함은 75세였다.

 

그러나 실제로 데라가 죽을때 아브라함은 145세가 되어야 하므로 결국 아브라함은 그의 아버지 데라가 죽기 전에 하란을 떠난 것으로 진술되어야 한다. 그래서 P문서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아브라함이 데라가 죽기 60년 전에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향했다고 가정한다.

 

그렇지만 성경 내.외적 증거 자료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그의 아버지 데라가 죽은 후에 하란을 떠난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데라의 나이에 따른 연대기적 차이는 여전히 남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라가 아브라함을 낳은 나이를 130세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즉 데라가 70세에 첫아들을 낳기 시작해서 아브라함을 낳은 나이를 130세에 낳았다고 가정하면 연대기적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행7:5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여기서 발 붙일 만큼도....이 땅을...약속하셨으며 - 혹자에 따르면 스데반이 여기서 아브라함이 매입한 막벨라의 밭과 굴을(창23:16-17) 고려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Haenchen).

 

(창23:16-17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좇아 에브론이 헷 족속의 듣는데서 말한 대로 상고의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17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을 바꾸어 그 속의 굴과 그 사방에 둘린 수목을 )

 

그래서 '여기서 발 붙일 만큼도 유업(遺業)을 주지 않았다'는 말은 모순된다고 한다. 그러나 막벨라의 밭과 굴은 매장지로서의 목적을 가진 것이지 유업의 목적으로서 소유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 간과 되어서는 안 된다.

 

그때까지 아브라함에게는 모든 것이 약속으로 주어졌고 그에게 실제로 주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은 그의 자식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땅을 유업으로 주고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창 12:2-3)는 말씀은 75세가 넘도록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에게는 믿기 어려운 약속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으로 믿기 어려운 약속을 믿었다는 이 사실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롬 4:16-22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행7:6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그 씨가....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 스데반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종살이 한 기간을 400년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출 12:40은 430년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 400년이라는 기간을 스데반은 창 15:13에 근거하여 말했을 것이다. 이 400년과 430년의 차이는 유대인들의 수자 개념에서 찾아야 되는데, 그들은 정확한 수자를 말해야 할 때를 제외하고 주로 개략적으로 말한다.

 

(삿 11:26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향촌들과 아로엘과 그 향촌들과 아르논 연안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한지 삼백 년이어늘 그 동안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

 

즉 430년은 400년보다 정확히 표현한 것이며 400년은 개략적인 연대를 나타낸 것이다.

 

 

 

 

[행7:7 또 가라사대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저희가 나와서 이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저희가....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당신의 계획과 섭리가 나타난다.

 

이 구절은 출 3:12에서 인용된 것으로 출애굽기에서는 '이곳'이 '시내산'이나 '호렙산'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약속의 땅'이나 혹은 '예루살렘'을 뜻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출 3: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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