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말씀

모세의 교훈

거듭난 삶 2014. 5. 26.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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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데반의 설교와 순교 3

 

                                                               모세의 교훈

 

 

 

[사도행전 7:17-36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19 그가 우리 족속에게 궤계를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

20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 부친의 집에서 석 달을 길리우더니

21 버리운 후에 바로의 딸이 가져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23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24 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25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

26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이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목시키려 하여 가로되 너희는 형제라 어찌 서로 해하느냐 하니

27 그 동무를 해하는 사람이 모세를 밀뜨려 가로되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28 네가 어제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29 모세가 이 말을 인하여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31 모세가 이 광경을 보고 기이히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 있어

3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알아보지 못하더라

33 주께서 가라사대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너 섰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34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정녕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저희를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시방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35 저희 말이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을 의탁하여 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보내셨으니

36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행7:17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약속하신 때....애굽에서 번성하여 - 야곱의 자손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그의 자손 수는 모두 70명에 불과했다.

 

(창46:27 애굽에서 요셉에게 낳은 아들이 두명이니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의 도합이 칠십명이었더라).

 

그러나 그 자손은 그곳에서 '생육이 중다(衆多)하고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어'(출 1:7) 출애굽 당시 보행(步行)하는 장정의 수가 60만에 달했다.

 

(출 12:37-38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38 중다한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생축이 그들과 함께하였으며)

 

이는 분명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창 12: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행7: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 애굽 18왕조의 첫 왕 :이 시기는 B.C. 1584년으로, 아모스(Ahmose)가 애굽을 다스렸다. 이 때는 야곱의 자손들이 번창했을 당시이므로 새 왕조의 첫 왕이 그 사람들을 당연히 견제했을 것이다.

 

 

 

[행7:19 그가 우리 족속에게 궤계를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

 

궤계를 써서....어린아이들을 내어버려 - 이는 출 1:10-22의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애굽 왕 바로의 박해는 이스라엘의 남자 아이들을 죽이는 것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출 1:10-22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

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13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 하여

14 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다 엄하였더라

15 애굽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자와 부아라 하는 자에게 일러

16 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18 애굽왕이 산파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 이같이 하여 남자를 살렸느냐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며

21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22 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

 

이러한 박해의 상황은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자 헤롯이 이스라엘의 유아를 살해하라고 하였던 것과 유사하다.

 

(마 2: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 로 다 죽이니)

 

또한 이러한 박해와 고난은 6절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기도 하다.

 

(6절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행7:20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 부친의 집에서 석 달을 길리우더니]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아름다운지라 - 이는 단순히 '아름답다' 또는 '좋다'라는 한 면만 지닌 용어가 아니라 피조물의 완벽한 모습을 나타낸다.

 

 

 

[행7:21 버리운 후에 바로의 딸이 가져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바로의 딸이....아들로 기르매 - 출 2:5-10에 기록된 내용이다. 그녀가 모세를 단순히 호기심이나 연민에 의해 키운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양육시켰음을 암시한다. 그녀가 애굽의 모든 학술을 모세로 하여금 익히도록 했던 것도 이 사실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전승(傳承)에 따르면 공주의 아버지 바로가 왕위를 이을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공주는 바로의 뒤를 이어 모세를 왕위에 앉히려고 계획했었다고 한다.

 

 

 

[행7:22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모세가....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 출 4:10-16에 따르면 모세는 '말에 능치 못한 자'였으므로 그의 대변자로서 아론이 지명되었다.

 

그러나 스데반은 그를 말에 능한 사람으로 묘사했으며 애굽의 제사장들이 과학, 수학, 천문학, 의학 등에 정통했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모세가 애굽 왕실 가족으로서 이러한 모든 학문을 습득했음을 알 수 있다.

 

1세기 유대인 사상가요 저술가인 필로(Philo)는 모세가 음악, 기하학, 수학, 과학, 예술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모세가 자신을 '말에 능치 못한 자'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辯明)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모세는 애굽 왕궁에 기거하면서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착실히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아 광야의 오랜 세월을 통해 연단 받았던 것이다.

 

 

 

[행7:23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

 

나이 사십이 되매....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 여기서 '돌아보다'는 뜻의 헬라어로는 ' 방문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찾아가시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으며 방문하는 자가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고 확인하여 돕고자 하는 뜻에서 찾아간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눅 7: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 보셨다 하더라)

 

아마 모세도 자기 동족이 고통당하는 사실을 미리 알고 그들을 도울 방도를 찾고자 동족들이 고통당하는 현장을 방문했을 것이다.

 

 

 

[행7:24 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애굽 사람을 쳐죽이니라 - 압제받고 고통당하는 자신의 민족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그의 마음은 높이 평가될 만하다. 인간적인 면에서 모세의 행동은 의와 사랑의 행위로 인정될수 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지시도 없이 행동함으로써 큰 실수를 범한 것이다. 그는 아무 때나 마음만 먹으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일은 모두 그 정한 시기가 있다. 그리고 성경에 나타난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서야 비로소 그의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다.

 

 

[행7:25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깨닫지 못하였더라 - 스데반의 이러한 진술에 따르면 모세는 스스로 히브리 민족의 지도자로서 자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절은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실제로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으나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의미로 봄이 무난하다.

 

 

 

[행7:26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이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목시키려 하여 가로되 너희는 형제라 어찌 서로 해하느냐 하니]

 

너희는 형제라 어찌 서로 해하느냐 - 모세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스스로 인식했으므로 히브리 민족 사이에 화해자 또는 중재자로 나섰으나 아무도 그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모세의 중재는 설득력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세가 바로 궁에서 호의호식(好衣好食)하는 동안 자신들은 죽을 고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므로 모세를 지도자나 중재자로 결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너희는 형제'라는 모세의 말은 고난 당하고 있는 히브리 민족을 하나로 결속시키고 응집시키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행7:27-28 그 동무를 해하는 사람이 모세를 밀뜨려 가로되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28 네가 어제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나를 죽이려느냐 - 싸우고 있는 이 두 사람을 집단적 개념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싸움은 곧 애굽내 이스라엘 민족의 갈등과 분열을 나타내는 것이다.

 

애굽내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노예 생활을 통하여 민족성 자체가 이기적으로 변해 서로에 대한 불만과 갈등이 심화되어 극단적 분열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이는 애굽 당국이 정책적으로 조장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모세에 대한 두 사람의 대답은 노예 생활로 인해 관원을 꺼리게 된 그들의 민감한 반응으로 볼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모세에 대해 강하게 배척함을 시사한다.

 

 

 

[행7:29 모세가 이 말을 인하여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모세가....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 출 2:15에 따르면 모세는 바로가 자기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도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모세는 자기의 살인에 대해 동족들이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쁜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으므로 그 사실이 바로에게 알려지기 전에 도망했을 것이며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바로가 그를 죽이려 했을 것이다.

 

아무튼 그의 미디안 광야로의 도망은 그를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행7: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

 

사십 년이 차매 -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는 소리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출 2:23-25) 본절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특히 본 구절의 표현은 모세의 미디안 생활이 하나님의 섭리에 있었음을 강조한다.

 

천사가....그에게 보이거늘 - 미디안 광야에서의 40년 생활은 모세를 히브리 민족의 지도자로서 성숙하게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여러 모양으로 단련하신 후 비로소 부르셨다. 출 3:1에서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곳이 '호렙 산'이라고 언급되고 있으나 본 구절에서는 '시내 산'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를 별개의 장소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아마도 '호렙'은 그 산맥의 이름이고 '시내'는 그 산맥 중 어느 특정한 산꼭대기의 명칭이었을 것이다. 한편

 

☞ '가시 나무떨기 불꽃' - 이 나무는 땔감으로나 목재로서 별로 소용이 없는 나무로 당시 학대받던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 같다.

 

 

 

[행7:31 모세가 이 광경을 보고 기이히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 있어]

 

모세가....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 있어 - 출 3:2에서는 '여호와의 사자'로 묘사되었고 30절에서는 단순히 '천사'로만 언급되었으나 본절에서는 '주'로 표현되고 있다.

 

사실 모세에게 나타나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지만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는 것으로 생각했으므로 단순히 '사자' 즉 '천사'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창 18:1-21에서 이와 유사한 장면이 나온다.

 

 

 

[행7:3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알아보지 못하더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 출 3:6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본 구절의 말씀은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1) 하나님 자신은 과거와 같이 현재에도 변함없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즉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은 지금까지 신실하게 지켜오셨고 지금도 그 약속을 시행하고 계신다는뜻이다.(시 102:27;말 3:6).

 

(2) 하나님은 영원토록 불변하시리라는 뜻이다.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며 모세가 죽더라도 그 하나님의 신실성은 변함없으리라는 뜻이다.(히 1:12;13:8;약 1:17).

 

 

 

[행7:33 주께서 가라사대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너 섰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거룩한 땅 - 출 3:5을 인용한 구절이다. 본 구절은 시내 산 자체가 거룩한 땅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시내 산 광야에 나타나셨기 때문에 그곳을 거룩한 땅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는 곳이면 어디든 그 장소는 거룩한 곳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 중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로 구분한 성막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었다.

 

 

 

[행7:34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정녕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저희를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시방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저희를 구원하려고....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 모세가 미디안으로 도망한지 4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부르심이 그에게 임했다.

 

이 부르심은 40년 전 모세가 스스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생각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이 부르심에 의해 모세는 자신이 이스라엘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이끄심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 '구원하려'의 헬라어 '여셀레스다이'는 '직접 끌어내기 위하여'라는 뜻으로 애굽에서 고통받고 압박받는 백성들을 해방시키겠다는 하나님 자신의 의지적인 표현이다. 이 말은 출애굽 사건에 대한 주도권을 하나님 자신이 가지고 있으며 모든 것을 이루어 가실 것임을 가리킨다.

 

 

 

[행7:35 저희 말이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을 의탁하여 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보내셨으니]

 

관원과 재판장으로....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 여기서부터는 문체가 전환되고 있다. 평온하게 사실적인 설명처럼 이어지던 설교는 이제 그의 청중들을 향한 논박(論駁)으로 바뀌었다.

 

이 설교의 요지는 모세에 대한 유대인들의 태도와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태도가 동일했다는 것이다. 즉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보낸 구속자인 모세를 거부했듯이 구세주이시며 생명주로 보내심을 받은 메시야 예수도 거부했다.

 

 

 

[행7:36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백성을 인도하여....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 스데반은 출 7:3의 '나의 표징과 나의 이적을 애굽 땅에 많이 행하리라'는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에서 성취되었음을 강조한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그의 백성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애굽의 바로 앞에서 많은 표적과 이적을 행하셨으며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광야 방랑 때에도 그 백성 가운데 임하셔서 수많은 능력을 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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