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말씀

두 사도의 사마리아 방문

거듭난 삶 2014. 6. 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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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도의 사마리아 방문

 

 

 

성 경: [사도행전 8:14-25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만 받을 뿐이러라

17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

24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

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행8: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 1절에서 언급된 바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도들은 빌립의 사마리아 선교 활동의 성공적 보고를 듣고 두 사도를 파송하기에 이른다.

 

사도들 중에서 기둥같이 쓰임 받던 두 사도가 빌립의 전도지를 방문한 것은 두 가지의 큰 의미가 내포되고 있다.

 

(1) 빌립의 선교 활동에 대한 확인이다. 즉 빌립의 선교 활동이 정당한 것이고 사마리아인들이 기독교인으로 인정됨을 확인하는 것이다.

 

(2) 복음은 어떠한 벽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준 것이다. 즉 사도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유대인들에 의해 경멸받는 이방인과 특히 사마리아인에 대한 편견의 벽을 허물고 모든 사람의 기쁨을 위해(8절) 사마리아를 찾아감으로 전정한 복음의 정신을 실천한 것이다.

(8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성 경: [행8:15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 이로 보아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지방으로 내려간 목적은 빌립의 선교 활동으로 나타난 성과를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이들에게는 유대와 사마리아간의 벽이(마 10:5;눅 9:51-53) 없어졌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한 예수님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다.

 

(마 10:5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눅 9:51-53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저희가 가서 예수를 위하여 예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고로 저희가 받아 들이지 아니하는지라)

 

 

 

[행8: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만 받을 뿐이러라]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 빌립의 선교 활동에 의해 그들이 믿고 침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성령을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볼 수 있다.

 

(1) 유대인에 대해 나쁜 감정을 지닌 사마리아인들에게 두 사도가 와서 안수하여 성령이 임하게 됨으로 예루살렘 교회와 사마리아인들을 한데 묶어주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2) 사도들에 의해 성령이 임함으로써 사도적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3) 빌립이 능력을 행하면서 전도하기에 바빴으므로 안수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어떤 것이 정확한 추정인지는 알 수 없다.

 

 

 

 

[행8:17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함으로써 성령을 받고 참된 기독교인이 되었음을 확인하는 이 구절은 성령을 받기위한 안수의 필연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안수를 통해 성령을 체험하기도 하였지만(9: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이 임하는 경우도 있고 (10:44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여럿이 모인 곳에 임하기도 한다(2:1-4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러므로 본문을 이해함에 있어서 안수를 통해서만 성령을 받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또한 사도에게만 성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도에 의해 성령이 강림한 것은 다음 두 가지 의의를 지닌다.

 

첫째는, 지방 교회는 사도들에 의해 인정을 받아야 됨을 암시한다.

 

둘째는, 사도권에 따라 사마리아인들이 기독교인임이 최종적으로 확인되고 선포됨을 강조한다.

 

 

 

 

[행8: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성령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 본절에는 시몬이 어떻게 성령받는 것을 보았는지에 대해서 언급되지 않았다. 아마 방언이나(Wendt) 예언을 통해 성령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성령 강림으로 인해 외적 현상이 나타났음이 분명하며 이 현상을 시몬이 목격했을 것이다. 그리고 성령 강림의 현장에 있었던 시몬이 그 체험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가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을 어느 정도 시사해 준다.

 

이러한 암시는 다음과 같은 내용에도 잘 나타나 있다. 즉 성령받는 것을 목격한 시몬은 두 사도에게 돈을 건네주고 그 권능을 팔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마도 성령받은 사람에게서 어떤 신비한 현상을 시몬이 발견하고 마술을 전수(傳授)하듯이 성령도 전수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13절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시몬이 빌립을 추종한 것이 표적과 권능을 보게된 때문이라는 점과 시몬이 마술사였다는 점에서 아마도 성령을 주는 능력을 갖는다면 무엇이나 자신의 마술 능력을 능가하는 어떤 것을 행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아마도 성령을 모든 기적을 일으키게 하는 원천이 되는 것으로 이해하였을 것이다(Bauernfeind). 즉 그는 자신이 돈을 주고 마술을 전수받은 것처럼 성령을 강림케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고자 했을 것이다.

 

 

 

[행8:19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이 표현도 18절에서와 같이 사마리아인들이 두 사도의 안수를 받으면서 성령 체험을 하는 그 장소에 시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 체험을 하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여기서 '권능'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여수시아'로 1:8에서 '권능'으로 번역된 '뒤나미스'와 의미상 차이가 있다.

 

즉 '뒤나미스'는 성령을 통해 나타나는 외적 현상을 강조하는 반면 '여수시아'는 내적 현상을 강조하는 용어다. 여기서 시몬이 외적 현상을 의미하는 '뒤나미스'를 나타낼 수 있는 '권세'를 요구했음을 암시한다.

 

 

 

[행8:20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 베드로가 말한 성령은 하나님이 주는 선물이다. 따라서 선물이 한쪽에서 다른 한쪽에게 무상(無償)으로 주어지듯이 성령 역시 하나님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은 돈주고 거래할 수 있는 성격이 전혀 아니다. 또한 받은 선물에 대해 돈을 지불하는 것도 선물을 준 자에 대한 모독 행위가 된다. 따라서 성령을 돈으로 거래하려는 발상 자체는 곧 신성 모독이다.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 성령을 돈으로 얻겠다는 신성 모독적인 발상에 대해 베드로는 가차없는 저주 선언으로 대용하고 있다.

 

한편 베드로의 저주에는 재물이 지닌 위험성을 지적하여 종교 타락의 원인이 되는 재물을 멀리 할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즉 종교는 돈이 개입된 흥정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신앙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다. 이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내린 멸망의 저주를 연상하게 한다(5:1-10).

 

따라서 본문은 성령 은혜가 돈이나 인간의 욕심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행8: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것도 없느니라]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 이 말을 혹자는 시몬에게 베드로가 출교(黜敎)를 선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Haenchen, Neil).

 

그러나 이는 시몬이 기독교인이 된 사실(13절)을 부정하고 내어 쫓으려는 것이 아니라(13절시몬도 믿고 침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

 

첫째, 시몬을 책망하여 올바른 기독교인이 되게 하려는 의도와(22절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둘째, 시몬과 같이 불순한 의도와 잘못된 신앙을 갖는 사람들은 기독교인으로서 용납될 수 없음을 선언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두 사도의 행위는 17절에서와 같이 온전한 기독교인을 인정하고 보증하며 거짓된 기독교인을 구별함으로써 예루살렘교회와 사도의 권위를 강화하고 있다.

 

 

 

[행8: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 회개를 촉구하는 베드로의 이 말은 20절의 저주와 21절의 냉혹한 책망이 단순한 공격적 발언이 아니라 시몬으로 하여금 참된 기독교인이 되도록 하기 위한 말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몬의 불경건하고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한 마음을 '악하다'고 다시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부패된 심적 상태뿐 아니라 도덕적인 악행도 포함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시몬의 부패된 심적 상태에만 국한되어 사용되었다. 이는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 의해 입증되었다.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 이는 시몬이 행동으로보다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범죄했음을 보여주면서 마음에 지닌 사악함을 회개해야 함을 강조한다.

 

시몬은 빌립이 행하는 표적을 보고 예수를 믿고 침례를 받았을지라도 불순한 동기로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듯하다.

 

한편 ''으로 번역된 '에이 아라'는 조건절을 강조적으로 이끄는 표현으로 회개하고 기도해야만 용서받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개역성경은 그 강조적 의미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오히려 그 의미를 불명확하게 번역했다.

 

 

 

[행8: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

 

악독이 가득하며 - 이 말은 헬라어로 직역하면 '쓰디쓴 쓸개를 향하여'란 의미를 지닌다. 이에 혹자는 시몬이 미신과 마술의 쓴 뿌리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거나 불의에 대한 벌을 받게 될 쓴 쓸개즙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F.F. Bruce).

 

이와 유사하게 마샬(I.H. Marshall)은 시몬이 쓰디쓴 심판을 재촉하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한다. 따라서 본절에서는 시몬이 예수를 받아들였으나 옛날의 사악한 습성을 버리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불의에 매인 바 - 불의에 속하여 있는 시몬의 실존(實存)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 이 구절은 사 58:6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사 58:6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래서 회개가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회개는 악으로부터의 확실한 해방이며 또한 악으로부터의 분리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인간 실존 상태는 시몬에게만 국한되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행8:24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 베드로의 신랄한 비판에 대한 시몬의 반응은 자신을 위한 기도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베자 사본은 '울음을 멈추지 않고 통곡하였다'라는 구절을 삽입시켜 시몬이 베드로의 책망을 듣고 깊이 회개했음을 나타내었다.

 

그래서 몇몇 학자들은 베자 사본의 첨가를 따라 시몬의 회개를 기정 사실화했다(Blass, Wendt).

 

그러나 시몬은 베드로의 저주가 자신에게 내려질 것을 두려워했을뿐 진실한 회개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Meyer, Bengel, Alford, Knowling, Lenski).

 

22절에서 베드로가 그에게 회개하고 기도하라는 권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회개하지 않고 베드로에게 기도를 요청한 것은 여전히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갖고 있거나 아니면 불신앙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본 구절을 시몬의 회개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행8: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두 사도가....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 이 표현은 선교의 중심이 예루살렘 교회라는 점을 암시하는 말이다. 즉 모든 지방교회는 교회의 중심인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확인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교회의 정통성과 관계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상은 바울에 의해 이방 지역 선교가 본격화되면서 퇴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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