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말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가르쳐 줌

거듭난 삶 2014. 6. 2.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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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의 만남

 

 

성 경: [행8:26-40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 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아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31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37 (없 음)

38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주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혼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행8:26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주의 사자 - 사마리아 선교 이야기는 일단락되고 새로운 선교 활동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초자연적 능력이 가시적으로 개입되었다.

 

여기서 언급된 '주의 사자'란 표현은 '하나님의 사자' 또는 간략히 '천사'와 동일한 의미이며 하나님의 임재와 직접적인 개입을 강조할 때 사용되는 용어로서 누가가 즐겨 사용했다.

 

(7: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35 저희 말이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을 의탁하여 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보내셨으니,

 

38 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10: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22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 대;

 

11:13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12:7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줄 알겠노라 하여, 23;27:23;눅 1:11;2:9).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시사하는 이 표현을 통해 누가는 이방지역에 대한 선교 활동이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암시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남으로 향하여 - 이 말은 빌립이 당시 사마리아에 있음을 암시한다. 이를 볼 때 빌립은 사마리아 선교를 시작했던 장본인임을 알 수 있다.

 

가사로 -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라고 명령했지만 정확한 지점을 지칭하지 않고 다만 가사를 향해 가라고 방향만 지시했다. 가사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서남쪽으로 약 70여km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서 창 10:19에 따르면 가나안의 도시였던 것으로 보이며, 유다 지파가 그곳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하여 그 이후 계속 블레셋의 성읍으로 남아 있었다.

 

또 이곳은 삼손이 성문짝을 메었던 곳이었다.(삿 16:1-5). 이 도시는 B.C. 96년경 마카비 가(家) 출신인 알렉산더 얀네우스(Alexander Jannaeus)에 의해 멸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B.C. 약57년경 폼페이의 칙령으로 '가비니우스'(Gabinius)에 의해 재건되었으나 A.D. 66년경에 멸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행8: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에디오피아 사람....내시 - 빌립의 선교대상으로 언급된 이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름이 아니라 출신지와 직책이다. '검은 피부'라는 의미를 지닌 '에디오피아'는 애굽의 남쪽 지역으로서, 나일강 유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구스 족속(사 11:11)의 후예로 구성되어 있다.

 

에디오피아에서는 당시 모계(母系) 왕통을 갖고 있었으며 '간다게'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왕조를 나타내는 명칭으로서 로마의 '가이사' 또는 애굽의 '바로'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국고'라는 말은 본래 페르시아어에서 유래된 말로서 왕실의 보물 또는 국가의 재산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된 내시는 왕실 또는 국가의 재무 관리를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 성회에 참가할 자격이 없는 고자(鼓子, 신 23:1)이면서 이방인인 그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었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될 수 없다.

 

(신 23:1 신낭이 상한 자나 신을 베인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아마 그는 유대인의 총회에 들 수는 없었으나 유대교를 독실하게 믿었으므로 유대인의 3대 절기 중 한 절기 기간을 택하여 예루살렘에 왔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예루살렘 방문이 총회는 상관없이 단지 성지 순례만이 주목적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고자됨을 감추고 절기 중 거행되는 성회에 참석하려는 것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한편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의 먼길을 찾아왔다는 사실은 그가 유대교를 신실하게 믿고 있었음을 입증해 준다.

 

 

 

[행8:28 돌아 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아사야의 글을 읽더라]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 32, 33절에 인용된 구절이 70인역(LXX)의 사 53:7, 8과 같다.

 

(사 53:7-8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중에 누가 생각 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행8: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 빌립에게 지시하는 자가 '주의 사자'에서(26절) '성령'으로 바뀌어 언급되었다. 빌립에게 '내려가라' 지시한 사자나 본문의 성령은 동일한 분으로 이해될 수 있다.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 빌립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가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언급되어 하나님의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묘사는 이방인 선교에 대한 당위성 및 필연성을 강조하려는 것 같다.

 

 

 

[행8: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달려가서....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 빌립은 내시의 읽는 소리를 통해 성경의 내용이 자신이 전하려 하는 복음의 내용과 어떻게 일치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큰 소리를 내어 성경을 읽었다.

 

그리고 이 내시도 유대인들의 습관을 따라 마차 속에서 큰 소리로 성경을 읽었을 것이며 이를 빌립은 들었을 것이다.

 

 

 

[행8:31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 '지도하는' 이란 표현을 직역하면 '지도해 주게 될' 이란 의미를 나타내므로 내시의 소망을 담고 있다. 즉 지금까지 지도해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자신을 지도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나타내기 위해 미래형 동사를 사용한 것이다.

 

이는 그 내시가 성경을 깨닫는 것에 매우 관심이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므로 빌립이 자연스럽게 그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었다.

 

빌립을 청하여 - 갑자기 나타난 빌립으로부터 도전적인 질문을 받은 내시는 의외로 빌립에게 자신의 마차에 오를 것을 권유하고 있다. 이처럼 내시가 배타적인 태도가 아니라 호의적으로 빌립을 맞아들였다는 사실은 두 가지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1) 내시가 자신의 체면에 관계없이 성경을 깨닫지 못한다고 대답함으로써 자신의 겸손과 주의 말씀을 깨달아 알고자 하는 열망이 높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2) 선교자를 맞아들이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시사하고 있는데 영접하는 자의 구원을 암시하고 있다.

 

(막 6: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행8:32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양....어린 양 - 사 53:7의 인용구로 그곳에서 표현은 메시야의 수난과 관련된 예언이다. 메시야의 수난에서 비유적으로 ''을 언급한 것은 메시야가 순종의 제물임과 동시에 희생 제물임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사 53:7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행8:33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 이 말은 메시야가 이 땅에서 사역하는 동안 그 사역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자기 백성들로부터 받지 못했다는 의미일 수 있으며 또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의 재판 과정에서 공의로운 재판을 받지 못했다는 것도 의미할 수 있다.

 

 

 

[행8:34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 예언서에 예언된 고난의 종이 누군지를 묻는 내시의 질문에는 매우 진지하고 정중한 문장이 사용되고 있다.

즉 '청컨대'라는 말을 부탁을 하기 전 붙이는 '죄송하지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Haenchen).

 

한편 내시는 예언된 고난의 종이 이사야 선지자일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이사야는 므낫세 왕에 의해 고난을 받고 죽었다는 전설 때문에 그러한 추측이 가능했으리라고 본다. 또는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고난의 종으로 상징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여기에서 선지자에 대해 내시가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두 가지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당시에 두 세 가지의 해석들이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행8: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켜 - 아마도 빌립은 이사야의 예언을 예수의 고난과 결부시켜 가르쳤던 것 같다. 다시말해 빌립은 사 53:7, 8이 메시야의 고난임을 설명하고 그 메시야가 예수임도 밝혔다.

그리고 예수의 가르치심과 수난 및 부활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게 그 내시에게 가르쳤을 것이다.

 

 

 

[행8: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물 있는 곳....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 내시가 '무슨 거리낌이라도 있는가?'라고 반문한 것으로 보아 그가 이미 침례에 관해 알고 있었거나 아니면 빌립이 예수에 대한 설명을 하던 중 침례에 대해 이야기했을 것이다.

 

아마 빌립은 내시로 하여금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침례를 받음으로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제안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내시는 자신이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는 고백을 하는 대신 침례를 받는데 거리낌이 전혀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 반문 형식의 의문문을 사용했다.

 

 

 

[행8:38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주고 ]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주고 - 이는 두 사람 모두 물에 들어가 빌립이 내시에게 침례(浸禮)를 베풀었음을 암시한다.

 

 

 

[행8:39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혼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 빌립을 이끌어 주는 자가 '주의 사자'에 이어(26절) '성령'으로 언급된 후(29절) 여기서는 또 다른 표현인 '주의 영'으로 언급되고 있다. 누가는 서로 같은 의미를 조금씩 다르게 표현했을 뿐이다.

 

한편 '이끌어 간지라'에는 재빨리 어떤 것을 채어가는 모습을 나타낸다.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빌립을 내시의 눈앞에서 금방 사라지도록 하심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단어는 이 기적이 실제로 시공간(視空間)에서 발생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누가는 이 기적에 대해 묘사함으로써 빌립의 전도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을 강조해 주며 또한 이방인 전도의 정당성을 부각시켜준다.

 

내시는 흔연(欣然)히 길을 가므로 - 내시가 기뻐하며 걷는 모습은 그가 본국으로 돌아가 복음을 증거하며 이방인의 선교사가 되었으리라는 추측을 충분히 가능하게 한다.

 

 

 

[행8: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 빌립이 세번째로 찾아간 선교지 아소도는 가사에서 동북쪽으로 약 40km, 지중해 연안 4.8km 대륙 지방으로서, 삼상 6:17에서는 블레셋 성읍인 '아스돗'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 도시는 처음에는 번창한 항구 도시였으나 암 1:8에 예언된 바대로 멸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암 1:8)

 

한편 빌립의 선교 활동이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을 두루 포함한다는 본절의 진술은 그곳의 기독교 공동체들이 빌립에 의해 시작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는 베드로가 룻다와 욥바를 방문하였을 때(9:32, 36) 그곳에 이미 기독교인이 있었다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다.

 

(9:32-36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병으로 상 위에 누운지 팔년이라

34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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