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롯데사태를 통해 다시보는 재일교포

거듭난 삶 2015. 8. 12.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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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사태를 바라보는 재일동포의 시선

 

 

박소영 중앙일보 국제부장

박소영의 지구촌 별별뉴스 http://blog.joins.com/olive88

 

 입력 2015-08-11 02:13:24

 

 

#그를 만난 건 몇 해전 여름 가족과 함께 여행한 홋카이도에서였다. 렌터카 회사 직원인 그는 차를 반납한 나와 가족을 아사히카와(旭川) 공항까지 데려다 줬다. 가족들과 한국어로 나누는 이야기를 듣더니 그는 “한국분이냐”고 물었다. 그는 “나도 한국 사람이다. 한국말은 못하지만, 3대째 이곳에 사는 한국인 3세”라고 했다. 한 번도 한국에 가보지 못했다는 그의 한국 이름은 도회태(都會泰). 그의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아사히카와 공항 건설을 위해 일본으로 끌려온 징용자였다고 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조선인이라는 멸시를 받는 게 걱정돼 일본인으로 귀화했다고 한다. 집에서도 한국어를 쓰지 못하게 했을 정도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한국사람이지만 그는 철저히 일본인으로 자랐다. 그는 “예전엔 몰랐는데, 한국어를 배워두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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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특파원 시절 도쿄에서 만난 50대 택시 기사 요시이케(吉池)씨도 그랬다. 재일 한국인 2세인 그의 고향은 부산이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는 부모님을 대신해 가끔 친척들을 만나러 부산에 간다고 했다. 자식 된 도리로 부모를 대신해 친척 모임에 참석은 하지만 그는 부산에서의 경험이 늘 서먹했다. “말이 안 통하다보니 부산에 가면 오히려 외톨이가 된 느낌”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재일동포들이 그렇듯이 그의 부모 역시 먹고 살기 빠듯한 형편 때문에 자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지 못했다. 그는 “어릴 때는 내 뿌리가 어디로부터 비롯한 것인지, 또 조국이 무엇인지 관심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부모가 왜 내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지 않았는지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고 했다
 
  


일본 민단에서 열린 재일동포 3세들의 성인식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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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반 동안의 도쿄 특파원 시절 다양한 계층의 재일동포들을 만났다.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사장과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회장처럼 성공한 기업인들도 있지만 대부분 빠찡코점 종업원이나 부모의 가게를 물려받아 장사를 하는 이가 많다
 
일본사회는 이들을 ‘자이니치(在日)’라 부른다. 자이니치는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했기 때문에 일본에 살게 된 조선인과 그 자손들이다. 일본은 식민지배가 끝나자 자이니치의 일본 국적을 박탈하고 연금과 의료보험, 참정권 등에서 제외시켰다. 취업에서도 이들은 차별을 받아야 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에 따르면 현재 한국 국적자 55만명, 일본 국적 취득 동포 34만명 등 공식 통계로 90만명의 재일동포가 있고 통계에 잡히지 않는 동포가 3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한일 국교수교 50년을 맞아 도쿄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참석한 한-일 어린이 합창단.

 
자이니치는 일본어밖에 못하고 한국에 가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이름을 쓰고 일본학교를 다녔다. 정서적으로, 문화적으로는 일본인이지만 스스로 일본인이 되기를 거부해 왔다.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가인 정의신씨도 한국어를 말하지 못한다. 어릴적엔 데이(鄭의 일본어 발음)라는 성을 사용했다. 고등학교 시절 “너의 한국이름을 찾고, 당당하게 살라”는 한 연극반 선배의 조언에 따라 ‘정의신’이라는 한국 이름을 되찾았다. 그의 가족은 지금도 통성(通姓)이라고 하는 일본 성과  ‘데이’, 그리고 ‘정’의 3가지 성을 제각각 쓰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재일동포들은 녹록지 않은 현실에 맞서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이번 롯데 사태를 이들 재일동포들은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한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는 기업의 총수가 자녀들과 일본어로 대화하고, 일본이름으로 부르는 모습에 한국사회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민족기업’ 쯤으로 생각했던 롯데가 알고보니 일본에서 창업한 기업이며,한국에서 벌어들이는 적잖은 자금이 일본으로 건너간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끼는 한국인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롯데가 장남의 일본어 인터뷰, 차남의 일본어 억양이 남아있는 한국어 기자회견에 냉소적인 한국 여론이 전체 재일동포 사회를 향한 배척과 비웃음으로 비쳐질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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