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나자 男子들은 영웅인 척 으스댔다
신동흔 기자
조선일보
입력 : 2016.01.30
증언·소설·일기·회고록 등 미시사 통해 보는 2차 대전
"勝戰은 정의의 얼굴 하지 않아" 혼돈과 수모 그대로 재현
야만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
이안 부루마 지음|신보영 옮김
글항아리 | 464쪽|2만3000원
2차 대전 종전(終戰) 무렵, 3만7000명 이상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숨진 독일 베르겐-벨젠의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영국군은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안네 프랑크 등 여성 수용자가 많았던 이곳에 느닷없이 주홍색 립스틱이 구호품으로 대량 공급된 것. 그러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시트도 없는 침대에 널브러져 있던 여성들, 어깨 위로 담요 한 장 겨우 걸치고 돌아다니던 앙상한 처녀들이 립스틱을 하나씩 챙겨 들고 입술을 칠하기 시작했다. 수용소에 돌연 생기가 돌았다. 한 영국 장교가 남긴 독백. "수용소 사람들은 더 이상 팔 위에 새겨진 숫자가 아닌 인간이 됐다. 외모에 관심을 갖게 됐고…, 립스틱은 그들에게 인간성을 돌려줬다."
1945년이라는 한 해를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정밀하게 써내려간 역사서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전후 유럽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중국과 일본에서 공부한 저자는 유럽과 아시아, 중동을 넘나들며 파시즘과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대결 같은 거대 서사로만 설명했던 전쟁에 대해 전혀 다른 서술을 감행한다. 마치 처음 현미경 속 세상을 본 것처럼 상상도 못했던 세계의 모습이 펼쳐진다.
우리는 전후(戰後) 독일 시인들이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이 가능한가' 물으며 괴로워했다는 것만 알았지, 여러 수용소를 경험해본 유대인들 사이에선 차라리 "아우슈비츠에서의 죽음은 (화장실과 난방 및 적십자 구호활동이 있었기에) 다른 어떤 곳보다 인도적"인 곳으로 통했다는 것은 몰랐다. 책에는 "강제수용소에선 수천 명이 죽어갔지만, 동시에 과열된 성행위가 이뤄졌다. 이는 멸종에 맞서는 일종의 저항 행위였다"는 진술마저 나온다. 저자는 전후 수용소의 출산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다는 수치를 근거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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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이 아직 한창이던 1944년 2월 태평양의 섬 중 하나인 콰잘레인 환초에서 붙잡힌 일본인 병사가 미군의 포로가 되어 벌거벗은 채 앉아 있다. 아래 사진은 나치가 지배하던 시절 자발적 부역 혐의로 기소된 프랑스 여성들이 머리를 삭발당한 모습.
태평양 전쟁이 아직 한창이던 1944년 2월 태평양의 섬 중 하나인 콰잘레인 환초에서 붙잡힌 일본인 병사가 미군의 포로가 되어 벌거벗은 채 앉아 있다. 아래 사진은 나치가 지배하던 시절 자발적 부역 혐의로 기소된 프랑스 여성들이 머리를 삭발당한 모습. /글항아리 제공
승전(勝戰)은 결코 정의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러시아 병사들은 만주와 동유럽에서 패전국 여성들을 유린했고, 귀향(歸鄕)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집을 차지한 과거의 이웃들에게 쫓겨났다. 전쟁이 끝난 해 여름 폴란드에서만 1000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살해됐다. 동족 간 보복 살해도 이어졌다. 그러나 "보복에 가장 열성적인 사람들이 모두 전시에 용기 있게 행동한 자들은 아니었다"는 것이 비극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해방되자 모든 남자는 자신이 레지스탕스의 일원이었다고 주장하거나, 새로 획득한 완장을 차고 배신자와 나쁜 여자들을 사냥하는 영웅인 척 으스대며 걸어 다녔다. 복수는 위험한 시절에 떨쳐 일어나지 못했던 데 대한 죄책감을 덮는 일종의 방편이었다." 우리라고 이런 일이 없었을까.
1945년을 '0년(Year Zero)'으로 규정한 이 책은 '현대의 탄생, 1945년의 세계사'라는 부제를 달았다. 방대한 사료와 사병 및 일반인들의 증언, '베를린의 한 여인'이라는 익명 여성의 체험기, 소설, 일기, 회고록 등을 총동원해 일종의 미시사를 그려낸다. 지금 우리가 평화로운 휴양지로만 알고 있는 인도차이나에선 전시 점령국 일본이 아닌, 과거 식민 지배국 프랑스와 네덜란드 민간인에 대한 보복과 학살이 이어졌다. 현지에서 태어나 유럽 땅은 밟아보지도 못한 프랑스인 네덜란드인 자녀들도 희생됐다.
'모두 죽이고 모두 불사르고 모두 약탈하라'는 이른바 '삼광(三光) 작전'으로 200만 명 이상의 중국인을 살해하고, 한국 여성들을 납치해 성노예로 삼은 일본인 오카무라 야스지가 중국 국민당 정부의 군사고문으로 활동하다 1966년 편안하게 집에서 죽었다는 것도 우리로선 분통 터지는 일이다.
1951년 생인 저자는 아버지가 베를린의 군수공장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하던 시절의 흑백 사진을 우연히 본 것이 기억에 남아 이 책을 쓰게 됐다. 책장을 덮으면, 그 광기(狂氣)로 가득 찬 세계가 지금은 사라졌는지 궁금하다. 인공위성이 머리 위를 돌고 있고, 스마트폰은 전 세계를 연결하고, 인공지능은 인류와 대결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도 세상의 어느 부분은 바뀌지 않았다. 유럽에는 여전히 난민수용소가 필요하고, 전후 체제의 결과 탄생한 한반도의 분단 역시 치유되지 않았다. 야만의 흔적은 깊게 남았다. 저자 역시 "전쟁은 정말 1945년에 끝났는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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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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