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포퓰리즘 정치가 빚어낸 결과물

거듭난 삶 2016. 8. 2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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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독 묻은 사과

입력 : 2016.08.25 06:45

오윤희 국제부 기자
최근 폐막한 브라질 리우올림픽에 참가한 선수 전원에게 집을 한 채씩 주겠다는 나라가 있다. 요즘 경제난 때문에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베네수엘라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선수 전원(87명)은 새 아파트를 얻게 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선수들 애국심이 고취될 것"이라고 밝혔다.
파격적인 대우만큼이나 놀라운 것은 이 국가가 지금 처해 있는 경제 상황과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보상 간의 커다란 괴리다. 현재 베네수엘라 정부는 현금이 바닥나 설탕, 밀가루, 달걀 등 생필품 수입 대금마저 치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의약품 부족으로 신생아 사망률이 급증하고, 국민은 두루마리 휴지를 사기 위해 안데스 산맥을 넘어 이웃 나라 콜롬비아까지 원정 쇼핑을 간다. 식량난 때문에 시민들이 동물원을 습격해 희귀 동물을 잡아먹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극심한 경제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브라질 등으로 난민 신청을 하는 베네수엘라 국민이 올해에만 1000명 넘는다.
나라가 이 지경까지 간 데는 국제 유가 폭락이라는 외부적 요인도 작용했지만, 그보다는 내부적인 원인이 더 컸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1918년부터 석유를 생산해 온 남미 대표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오일 머니'를 펑펑 쓰며 선심성 공약을 남발했다. 마두로 대통령의 전임자였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은 14년간 집권하면서 무상 복지, 무상교육, 무상 주택 등에 돈을 퍼부었을 뿐 석유 없는 미래에 대비하는 데는 무관심했다. 그사이 정부 재정은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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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현지시각)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대통령궁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선수단 귀국 환영식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오른쪽)이 복싱 동메달리스트인 요엘 세군도 피놀의 손을 들어 올리며 축하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리우올림픽에 나선 87명의 선수 전원에게 대회 성적과 관계없이 아파트 한 채씩을 공짜로 주기로 했다. /AFP 연합뉴스
그런 베네수엘라에 국제 유가 하락이라는 악재에 맞서 버틸 체력이 있을 리 없다. 지난 10여년간 사회간접자본이나 기타 산업 분야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한 탓에 수출의 95%를 차지하는 석유 산업이 휘청거리자 그 충격은 완충장치 없이 고스란히 국가 경제에 전해졌다. 게다가 오일 머니로 호황기를 누릴 당시 농업을 소홀히 하며 수입에만 의존해 온 터였다. 현금이 사라지니 곧바로 식량난이 찾아왔다.
굶주리고 고통받는 베네수엘라 국민의 모습은 포퓰리즘 정치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그런데도 차베스의 포퓰리즘 기조를 그대로 따르는 마두로 대통령은 '올림픽 출전 선수들에게 집 한 채 주기' 같은 또 다른 선심성 정책으로 성난 민심을 달래려 하고 있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정치인의 사명이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희망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거짓 희망이라면 그것은 독 묻은 사과일 뿐이다.
지금 베네수엘라 정부에 필요한 것은 실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로잡으려는 노력이다. 훗날 풍요를 누리기 위해 지금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정부가 호소할 때 비로소 국민은 진정한 희망을 품을 수 있다. 비단 베네수엘라에만 해당하는 문제이겠는가. 선거 때만 되면 무책임한 복지 잔치를 벌이는 우리 정치권도 경계해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