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성 경: [요 15:9-2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25)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요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
이 구절부터 15절 까지는, 신자들끼리의 연합의 배경을 말해 준다.
곧, 신자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서로 사랑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하여금 속죄 사업을 담당하시게 하신 것을 말함이다.
* 참조 (5:20-21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므로 이루실 속죄 사업을 가리킨다.
사람들이 이런 사랑에 거하는 것은 기쁜 일이요, 괴로운 일이 아니다.
사랑은 그들의 갈망하는 보금자리인데 그들은 왜 거기서 떠날 것인가? 거기 거하는 방법은, 예수님의 계명(신자들끼리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킴이다.
[요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시되 땅 위에서나 어디서든지 완전히 하신다.
(10:17-18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12:43-50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44)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45)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14:31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그것이 그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시는 방법이다.
그와 같이 신자도 예수님의 계명을 순종하므로 그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된다.
크로솨이데(Grosheide)는 말하기를,
"신자가 주님의 사랑에 거하는 방법은, 신비주의자들처럼 그의 사랑의 취미에 집중하여 즐기는 것이 아니고, 그의 계명을 지킴, 곧, 생활로 그 사랑을 나타냄이다"라고 하였다.
(Jezus vraagt niet een mystick zwelgen in liefdegenot, Maar activiteit, liefd toonen. - Het Heillige Evangelie Volgens Johannes, Kommentaar , 1950, p. 346).
[요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
여기 이른 바 "이것"이란 말은, 윗절에서 가르친 내용을 가리킨다.
곧,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므로 그리스도와 사랑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 사랑을 받으면 그들에게 기쁨이 넘친다.
"내 기쁨"이란 말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기뻐하시는 기쁨을 가리킨다.
신자들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서 그렇게 기뻐할 수 있다.
그것은, 물론 살아 계신 주님을 증거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다.
(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기쁨을 가져야만
(1) 원망, 불평, 의심을 이기며,
(2) 담력, 용기, 인내를 가지고 이 세상 모든 난관과 환란을 이기며,
(3) 모든 수고로운 사랑의 책임들을 꾸준히 이행(履行)하게 되며,
(4)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요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
여기서는, 10절에 말한 바 그리스도의 "계명"이 무엇임을 밝힌다.
바리새인들이 계명을 지키는 동기는 남을 사랑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자기 자신을 남들에게 종교가로 나타내려는데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계명을 오해한 것이다. 계명의 목적은 사랑이다.
사랑만 이루면 그것은 완성된다.
* 참조 (롬 13:8-10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서로 사랑하라" 하신 계명은 새로운 계명이면서도 실상은 옛 계명이다.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일 2:7-8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사랑은 이렇게 영원토록 변치 않는 진리이다.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F.Godet는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15:1-11 까지는, 계명의 첫 부분(하나님과 연합해야 될 것)을 가르치시고, 12-17절까지는, 그 둘째 부분(사람을 사랑해야 될 것)을 가르치신다"고 하였다.
성경은, 신앙 사상이 같은 형제들끼리의 분리(分離)를 정당하게 여기지 않고 연합을 고조한다.
예를 들면,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 외에,
"몸과 지체"의 비유,
(엡 1:22-23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3: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4:15-16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성전과 돌들"의 비유 같은 것이다.
(벧전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하나님은 인간에게서 반응을 부족하게 받으시더라도 사랑을 계속하실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은 상대방에게서 반응(서로 사랑함)이 있으므로 계속된다.
사랑을 받는 자도 같은 사랑을 행할 수 있는 인격이니 사랑을 행해야 된다.
여기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의 실행은,
신자가 그 속사람의 영적 충동으로만 취할 행동인가?
그에게도 외부적 성질이 있는 계율들의 제재가 필요한가?
그렇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 만큼,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됐으므로, 무엇에게 얽매인 바 없어도 자발적으로 선을 힘쓸 자요 자유자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부터 감심으로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주님의 뜻을 자세히 알아야,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외부적 표준으로 있는 율법을 상세히 알야야 되며, 지켜야 된다.
그는, 이 율법을 폭군의 엄한 명령과 같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 율법은 실상 은혜에서 분리시킬 수 없는, 사랑하는 목자의 음성이다. 그것은 은혜의 한 방면이다.
그러므로 기독자가 신앙생활에 있어서 율법이나 계명을 지키게 되어 있는 사실은, 은혜의 원칙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은혜의 부요를 가져오는 거룩한 생활을 위한 것이다.
여기서 요한은, 계명의 목적과 정신이 사랑하는 의미에서 "계명"이란 말을 단수(單數)로 썼다. 그러나 그것은, 객관적인 복수적 율례들이 이제부터 신자와 관계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그의 시선에서 계명이란 말을 복수로도 사용하였다.
(요일 3:2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5: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신비가들은, 내적 생명에 흥미를 가지고 외부적인 율법 조문들을 무시한다.
그러므로 그들 중에는 반율법주의 경향이 많다.
(H.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 p. 499).
그들은 외부적인 신앙 규율, 곧, 성경도 사실상 무시한다.
16세기의 자유 형제파(Brethren of free Spirit)나 17세기의 란텔과(Ranters)는 그렇게 잘못 움직였다(R.A. Knox, Enthusiasm, p. 173).
이렇게 신비가들은, 외부적 계율들보다 자기 마음에 온다는 영적 감동을 표준으로 삼기 때문에 도덕상 오착이 많다.
그들은 옳지 않은 일을 해 놓고라도 그것을 계시 받아서 하였다고 하면서 통과하려 하였다.
[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
이것은, 예수님께서 신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큰 사랑으로 희생하실 것을 가리킨 말씀이다.
그는, 자기의 사랑이 얼마나 큰 사실을 설명하여, 윗절(12절)의 내용과 같이 신자들로 하여금 남들을 사랑하게 하려 하신다.
그리스도의 무한히 큰 사랑을 받은 우리들로서, 어찌 남들을 사랑할 마음이 없으랴?
* 참조 (요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예수님께서 신자들을 "친구"라고 하신 것은, 그 앞에 죄인이요 원수 되었던 자들을 속죄의 사망으로 사랑해 주신다는 뜻이다.
* 참조 (롬 5:6-10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우리를 사랑하심은, 다만 우리의 보통 유익을 위한 일반적인 적선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여 죽기까지 하셨으니, 다시 사신 뒤에 우리에게 대한 그의 사랑은 또 얼마나 클 것이가?
이렇게 신자들은 예수님의 친구 되는 큰 축복을 받았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친구였다.
(사 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요 15: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
여기 이른바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함"은, 그가 그 제자들더러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계명을 순종함이다.
믿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랑을 받은 증표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고는, 믿는 형제를 참으로 사랑할 수 없다.
(요일 4:7-21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이 구절의 뜻은, 그리스도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가 그리스도의 친구 된 자격, 곧, 그 속죄의 사랑을 받은 자격을 발휘한다는 의미이다.
[요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 그리스도께서, 이때까지 구속에 관한 모든 진리를 그 제자들에게 전하여 주셨다.
그것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 아버지에게 깊이 감취었던 오묘한 진리였다.
(벧전 1:10-11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
그들이 사도로 세움 받은 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된 것인 만큼, 그들의 일은 유력해진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배경이기 때문에 그들은 영적 과실을 맺고, 그들이 과실을 맺기 때문에 그들의 기도가 응답된다.
하나님께서는 열매 없는 외식자의 기도를 응답하지 않는다.
(마 3:7-8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침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6: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이 말씀(16절)은, 주님과 신자가 연합하게 되는 것(1절 이하에 있는 말씀)이 전연 주님으로 말미암아서만 성립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요 15: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 위에 있는 15-16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내막을 보여 준다.
그가 이 내막을 신자들에게 알려 주시는 이유는, 신자들로 하여금 서로끼리 사랑하게 하려는 것이다.
인간은,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사랑을 근거하여서만 남을 사랑할 수 있다.
18-27 이 부분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핍박 받을 사도들(신자들)들에 대하여, 몇 가지 위로의 말씀을 주신다.
(1) 그 핍박은 결국 예수님을 미워하는 일이니(18 절). 그들로서는 주님께서 받으시는 미움에 동참함이 영광이다(행 5:41).
(2) 그들이 핍박 받는 것은 세상에 속하지 않는 증표이니(19절),
핍박 받음은 그들이 선택을 받아 구원 얻은 증표이다(빌 1:28),
(3) 주인이 핍박을 받으셨으니 종 된 자로서 그것을 면할 수 없다(20절).
(4) 핍박자들의 악행은 하나님에게 대한 그들의 무지를 드러내는 행동이며 따라서 무서운 죄악이니, 불쌍히 여길 대상이다(21-22). 눅 23:24 참조.
(5) 신자를 핍박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미워하는 두려운 일이다(23-24).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지식적 과오가 아니고 윤리적 죄악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부패한 인간성을 원인으로 한 것이다.
(6) 그것은 율법에 기록된대로 되는 일이니, 핍박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작정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줄 믿고 안심할 따름이다(25 절).
(7) 그리스도에게 대한 성령님의 증거가 사도들과 함께 하실 것이므로, 그들은 핍박을 이길 수 있다.
벧전 4:14에 말하기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하였다.
[요 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 예수님은,
이때까지 그 사도들의 받을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이제 그는 그들의 받을 미움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들이(일반 신자들도) 예수님에게서는 사랑을 받으나 세상에서는 미움을 받는다.
그들이 핍박을 받으면, 예수님은 그 사건에 있어서 그들보다 먼저 영적으로 박해를 받으시는 셈이 된다.
그 만큼 그들과 예수님과의 관계는 밀접하다.
[요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
세상이 그들을 사랑할 경우는 한 가지 조건 밖에 없다.
그것은, 그들의 근원이 그냥 세상에 속하고, 따라서 그들의 생활은 세상의 소유물이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과 반대되는 조건이 있는 까닭이다.
곧,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택하신 까닭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세상에게서 미움 받는 것은 그리스도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세상 죄악은 이처럼 서로 반대된다.
(7: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요 15: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
이 말씀은,
(1) 기독 신자가 핍박 받을 것이 필연적이니 피할 수 없다는 것과, 또한
(2) 도덕적 처지에서도 그것을 받음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 여기 "지킨다"는 말은 트집 잡는다는 뜻이다.
[요 15:21-22]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
하나님에게 대한 핍박자들의 무지가 사도들을 핍박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무지는 무죄가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들에게 증거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불신앙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좋을 번 하였다. (Bengel).
[요 15:23-24]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참 신자들을 미워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미워함이고(18 절),
그리스도를 미워함은, 하나님 아버지를 미워하는 큰 죄라는 의미에서 이 구절들은 말씀한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서도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자는 스스로 속은 자이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는 일체이시다.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이 점에 있어서 Bengel은, 미움과 불신앙과의 관련성을 지적하여 말하기를, "그리스도에게 대한 사랑은 신앙과 동반하나 증오는 불신앙과 동반 한다"라고 하였다.
▶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 여기 이른바,
"아무도 못한 일"이란 것은, 예수님의 행하신 이적들을 가리킨다.
.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이적들)은 너무도 위대하며, 그 일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완전히 계시한다.
(5: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3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그러므로 그것을 보고도 믿지 않는 것은, 다만 지식적 과오가 아니고 도덕적 반역이다.
[요 15:25]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 이 말씀은 시 35:149의 인용이거나, 혹은 시 69:4의 인용이다.
시편을 "율법"이란 이름 아래 넣어 말하는 것은 그 때의 풍속이었다.
(10: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는 사람들이 구약 초두의 부분 곧, 율법으로써 구약 전체의 명칭을 삼았던 것이다.
[요 15:26-27]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
이 세상 사람들이 사도들(신자들)을 미워해도(18-25).
그들은 성령님의 능력을 받으므로 세상에서 물러서지 않고 도리어 세상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된다.
여기 그리스도에 대한 성령의 증거와 사도들의 증거가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이 두 증거는 실상 일체이다. 성령은 사도들을 통하여 역사하시며 증거하실 것이다. (Wikenhauser, Schlatter).
▶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친히 목도한 사실을 가리키는데, 그것이 사도의 자격이다.
(고전 9:1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행 10: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그러나 그들이 이와 같은 자격으로만 증인이 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성령의 권능을 받아서 그리스도를 참으로 증거하게 되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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