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의 연설과 순교
사도행전 6장 8절-7장 60절
다음에 싣는 본문은 개역이라고 일컬을 만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곳곳에 해석을 덧붙이고, 자구의 배열을 고쳐, 그리하여 독자가 이것을 통독하여 그 대의를 오해하여 틀리지 않도록 하는데 힘썼다.
〔행 6장 8절-7장 60절〕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백성가운데서 큰 기적과 표적을 행했다. 9 그런데 리베르티논이라 부르는 회당, 구레네 사람의 회당, 알렉산드리아 사람의 회당, 길리기아 사람 및 아시아 사람의 회당의 사람들이 일어니, 스데반과 논쟁했다. 10 그러나 그들은 그의 지혜와 그가 힘입어 말하는 성령에 대적할 수 없었다. 11 그들이 마침내 사람들로 하여금 위증케 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그가 모세에 대해 또는 하나님께 대해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고,
12 그들이 또 백성 및 장로 또는 학자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갑자기 와서 그를 잡아가지고, 집의 소로 끌고 왔다. 13 거짓 증인을 세워 말하게 하기를, ‘이 자는 이 성소와 율법에 대하여 모독의 말을 발하여 마지않는다. 14 우리는 그가 나사렛 예수라는 자, 이를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준 바의 관례를 바꿀 것이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고.
15 이에 집의소(의회)에 앉아 있던자 모두 눈을 그에게 쏟았는데, 그의 얼굴이 마치 천사의 얼굴같이 됨을 보았다.
7:1 때에 제사장이 말하기를, ‘이것 사실 그런가’고,
그가 말하기를 형제 및 아버지들이여, 들으소서, 영광의 하나님, 우리들의 선조 아브라함이 아직 하란에 살기 전, 그가 아직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3 ‘네 나라를 나와, 네 친족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4 그래서 그는,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아버지 죽은 후, 하나님은 그를 그곳(하란)에서 이 땅으로 옮기셨습니다. 이는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땅입니다. 5 하지만 하나님은 이 땅에 있어서 그에게 아무런 기업도 주지 않으시고, 아니 발붙일 만한 땅도 주시 않으셨습니다. 또 그에게 아직 자식이 없었는데, 이 땅을 소유로서 그와 그의 후에 태어날 자손에게 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6 하나님은 또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즉, ‘그의 후손은 타국에 거할 것이다. 그리고 그 나라의 백성은 그들을 노예로 하고, 400년 동안 그들을 괴롭힐 것이다’라고.
7 하나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후에, ‘그들이 그 나라를 떠나 이곳에서 나를 섬길 것이라’고. 8 하나님은 또 그에게 할례의 계약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 이삭을 낳고, 제8일에 이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리고 이삭, 야곱을 낳고, 야곱 12선조들을 낳았습니다.
9 그리고 선조들, 요셉에 대하여 질투로서 불타, 그를 애굽에 팔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와 함께 계셔서, 10 모든 환난에서 그를 구출하시고, 애굽왕 바로 앞에 있어서 은혜와 지혜를 주시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바로)는 그로 하여금 애굽과 그의 온 집을 맡아 관리케 했습니다. 11 이때 애굽과 가나안의 온 땅에 기근 있어서 큰 곤란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선조는 식물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12 그런데 야곱, 애굽에 곡물 있음을 듣고, 먼저 우리들의 선조를 보냈습니다. 13 다시 그들을 보낸 때, 요셉, 그 형제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혈족은 바로에게 분명히 되었습니다. 14 여기서 요셉, 사람을 보내어, 그 아버지 및 그의 온 집 75인을 자기에게로 청하여 오게 했습니다. 15 그래서 야곱, 에집트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죽고, 우리들의 선조들도 또 죽었습니다.
16 그들은 멀리 세겜으로 운반되어, 그곳에서 아브라함이 세검에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서 사둔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17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신 약속의 때 가까워짐을 따라, 백성은 번식하여 애굽에 증가되었습니다. 18 그 때 요셉을 모르는 다른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19 그는, 흉계로서 우리들의 혈족을 대하고, 우리들의 선조들을 괴롭히고, 그 갓난아기들을 살아남지 못하도록 이것을 버릴 것을 명했습니다.
20 그때 모세 태어났습니다. 그는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그는 그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양육되었습니다. 21 그리고 그는, 버려진 때, 바로의 딸, 그를 가져다가, 자기의 아들로 그를 길렀습니다. 22 모세는 애굽인의 모든 지식을 배웠습니다. 그는 또 말과 행하는데 있어서 어른이었습니다. 23 그런데 그 40세가 되었을 때, 그의 마음에 그 형제인 이스라엘의 아들들을 살펴볼 생각이 났습니다. 24 때에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모욕당하는 것을 보고, 이것을 편들어 애굽인을 쳐서, 학대받는 자의 원수를 갚아 주었습니다. 25 그는 은근히 생각하기를, 그의 형제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손으로 그들에게 조력하고 있음을 깨달았으리라고, 하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26 이튿날, 그들 서로 싸우고 있으므로,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서로 화해시키려고 말하기를 ‘사람들아 너희는 형제인데 어찌하여 서로 해치는가’고27 그 이웃을 해친자, 그를 물리치면서 말하기를 ‘누가 너를 세워 우리들의 유사 또는 판관으로 했는가? 28 당신, 어제 애굽인을 죽인 것처럼, 또 나도 죽이려는가’고.
29 모세 이 말로 인하여 도망쳐,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로 되고, 거기서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30 이로부터 사십년을 지난 후, 천사, 시내산 황야에 있어서 가시나무 속 불꽃 가운데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31 모세 이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다시 잘 보려 가까이하는 때 주의 음성 있었습니다. 이르시기를
32 ‘나는 네 선조들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모세 두려워 감히 잘보지 못했습니다. 33 주 다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지금 선 곳은 성지이다. 34 내가 분명히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난을 보고, 그 신음소리를 들었다. 그리하여 이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왔다. 자 오라,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낼 것이다’라고.
35 대저 그들이 거절한 이 모세, 누가 당신을 세워 유사 또는 판관을 삼았느냐고 하고서 거절한 이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속에 나타난 천사의 손으로서, 유사 또는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36 이 사람, 그들을 인도해 내어, 애굽 및 홍해 및 황야에서 사십년간, 지적과 표적을 행했습니다. 37 이스라엘 아들들에게 말하여 ‘하나님은 너희 중에서, 나와 같은 한 예언자를 너희 위해 세운 것이다’라고 한 것은 이 모세입니다.
38 황야의 집회 중에 있었고, 시내 산에서 그에게 말한 천사와 함께 있었고, 또 우라 선조들과 함께 있으면서 우리에게 전해주기 위해 산 말씀을 받은 이는 이 사람입니다.
39 이 사람에게 우리의 선조는 따르기를 원치 않고, 도리어 우리들 사이에서 그를 물리치고, 그 마음이 이미 애굽으로 돌아가, 40 아론에게 말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위해 만들라. 그것은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낸 저 모세는, 우리가 그의 어찌됨을 알지 못함에서 이다’라고요.
41 그리고 그들은 그 때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에게 희생제물을 바치고, 자기들의 손으로 만든 것을(섬기며)기뻐했습니다. 42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그 얼굴을 돌리시어, 그들이 하늘의 별을 섬기게 버려두셨습니다. 즉 예언자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입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황야에 있어서 희생물과 제물을 내게 바친 일이 있느냐’
43 너희는 몰록의 신당을 지녔도다. 롭바의 신의 벌을 지녔도다. 너희가 예배하기 위해 만든 그들의 상(형상)을 지녔도다. 그래 내가, 너를 바벨론 저편으로 옮기리라.
44 우리들의 선조들은 황야에서 증거의 장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모세에게 일려주신 분(하나님)이 모세에게 본 모형방식 따라 이것을 만들라고 명한대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45 우리의 선조들은 이것을 받아 그들이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이 우리들의 선조들 앞에서 쫓아내주신 이방인 땅에 들어왔을 때 이것을 가지고 와서, 다윗의 때에 이르렀습니다.
46 저 다윗,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어 야곱의 하나님 위해 전을 마련하기를 원했습니다. 47 솔로몬은 그 위해 성전을 세웠습니다. 48 하지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언자의 말한 대로 입니다. 49 주 말씀하시기를,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내 발판이다. 너희가, 나 위해 어떤 집을 세우려는가? 또 내가 쉴 곳 어디랴? 50 내 손은 이 모든 것을 만든 것 아닌가?
51 완강하여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아. 여러분은 언제나 성령에 거스르고, 여러 선조들 같이 행합니다. 52 어느 예언자를, 여러분 선조들은 박해하지 않았던가요? 그들은 의자(의인)의 오실 것을 미리 말하고, 여러분은 지금 그 의자를 넘겨주고, 이를 죽이는 자로 되었습니다. 53 여러분은 천사에 의해 율법을 받으면서, 더구나 이것을 지키지 않습니다.
54 그들, 이런 말을 듣고 마음을 찔림 받아, 이를 갈면서 그에게 향했다. 55 그런데 그는 성령에 충만 되어 하늘을 우러러 보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오른편에 서 계시는 예수를 보았다. 그가 말하기를
56 ‘보라, 나는 하늘이 열려 하나님의 오른 편에 인자가 서 계신 것을 본다’고.
57 그러자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단이 되어 그에게 향하여 돌진하고, 58 그를 성에서 쫓아내어, 돌로서 그를 쳤다. 그리고 증인들은 그 의복을 사울이라 하는 젊은이의 발아래 두었다.
59 그들이 돌로서 스데반을 치는 때, 그는 주를 불러 아뢰기를
‘주 예수여, 내 영을 받으시옵소서’라고. 60 또 무릎 끓고 큰 소리로 부르짖기를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이렇게 말하고 그는 잠들었다.
이것은 유명한 스데반의 대연설이다.
이에 의해 그리스도교는 공공연하게 유대교에서 떠났던 것이다.
이것은 특히 바울의 자유복음의 선구이다.
이방전도의 새벽종의 음향이다.
모세를 변호하고 모세의 율법을 타파한 철추이다.
무교회주의의 최초의 외침이다.
인류의 신앙사상, 신기원을 만든 지요(지극중요)한 말이다.
대연설이다.
하지만 대웅변은 아니다.
스데반은 아볼로 같은 솜씨 있는 말의 사용자는 아니었다.
능변술의 표준에서 평하여, 이 연설에 많은 비난해야 할 점이 있다.
그 중에 많은 불필요한 말이 있다. 또 사상의 연결이 아주 막연하다.
모세에 대해 말을 마치고 다윗에 이르는 부근은 매우 애매하다.
(7:45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저희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사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간결은 능변의 비결인데, 스데반은 잘 알려져 있는 유대 역사의 사실을 부연하여,
그의 청중에게 적지 않은 권태감을 일으키게 했으리라.
후의 성서의 주해자가 이 연설의 해석에 고심한 이유의 하나는, 확실히 그 수사상의 흠점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성(聖).스데반의 말이라 해도, 흠점은 확실히 흠점이다.
그의 특기는 능변술 이외에 다른데 있었던 것이다.
그는 여기서 좋은 연설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힘 찬 연설을 했다.
그의 말은 조잡했다.
그의 사상은 빈약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열력했다.
그의 신앙은 불타고 있었다.
이 연설이 시도된 때와 경우는 6장8절 이하 말절(末節)에 이르기까지에 있어서 분명하다.
스데반의 신신앙에 대하여 구신앙의 격렬한 반대가 생겨난 것이다.
그 당시에, 예루살렘에 많은 유대교의 교회가 있었다.
리베르티논 교회라 칭하여,
유대인으로서 한 때 이방에 노예 되었던 자가 다시 자유를 얻어 구도에 돌아온 자가 시로 모여 조직한 교회가 있었다.
에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생의 유대인으로서 에루살렘 재주자의 조직한 교회가 있었다.
기타 모두 이 비슷한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서로 교의를 싸우고 교세를 다투었지만, 여기서 그들 공통의 적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일치단결하여 이에 대했던 것이다.
그들이 스데반의 죄상으로서 들어 말한 것은, 주로 다음 2개 조였다.
제1, 에루살렘 성전에 대한 모독
제2, 모세와 그의 율법에 대한 모독
그들은 이상의 2개조를 내걸어,
모독죄로서 그를 당시의 고등법원인 집의소 ‘산헤드린’에 고소했던 것이다.
이에 스데반은 홀로 백성 및 제사장, 장로 및 학자들 앞에 섰다.
그는 그의 주예수가 재판 받듯 재판 받았던 것이다.
이자의 좌상도 한가지이다. 심판인도 한 가지이다.(마태복음 26장) 제자는 그 스승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스데반은 예수처럼 재판 받아,
그가 참으로 예수의 제자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실로 바울이 말한 바
‘그리스도의 죽으신 모양대로 그의 고난에 참여하는’(빌립보서 3:10) 일로서, 스데반에게 명예 이 이상 없는 일이다.
여기서 심판은 열리었다.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 같았다.
그는 물론 그가 방면(放免)되지 못할 것을 알았다.
그는 그의 앞에 수적을 대기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예수의 제자였다.
그러므로 적인(敵人) 앞에 끌려가,
그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서,
도리어 그들을 사랑했다.
사랑은 이때 그를 떠나지 않았다.
그의 말은 은근했다.
그의 태도는 평정했다.
이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같이 된 그는 삼가서 광포한 말을 발하지 않았다.
‘형제 및 아버지들이여’(7:1)하고 그는 입을 열어 말했다.
그의 생명을 노리는(빼앗으려는) 적도 그에게 있어서는 적은 아니다.
형제이다. 부모이다.
입을 열어 첫마디. 그의 입술에서 새어나온 이 일언에 만곡의 정이 없지 않다.
연설은 말은 아니다. 진정이다.
친애에 가득한 이 모두(시초)의 일언에 스데반은 이미 청중의 심사를 빼앗은 것이다.
적인의 고소에 대하여,
스데반은 자기를 변호하지 않고서,
이에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했던 것이다.
이것은 아주 기태의 변호법이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는 가장 유력한 변호법이었다.
그는 성전과 율법을 욕되게 하는 자로서 고소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성전과 율법은 이스라엘 역사의 진수이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이자가 무엇인지를 말하여,
가장 유효적으로 자기의 입장을 변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기의 변명을 의론에 취하지 않고서 역사에 취한 그의 지혜는, 이는 이때 위에서 그에게 주신 지혜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참조 : (마가복음 13: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그는 먼저 아브라함의 역사로서 시작했다.
그 배울 바는 무언가?
아브라함은 물론 모세의 율법에 아무 관련은 없다.
그러므로 스데반은 그의 죄상에 대하여 자기를 변명하는데 있어서 아브라함을 인용함의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성전 모독의 무고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의 시조 아브라함의 사적에,
이것을 변명하기에 족한 많은 것이 있었다.
성전 당초 무언가?
성전의 존귀는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는데 있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은 그 존재를 예루살렘의 성전에 한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은 종종 성전 이외에 있어서 사람과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이 아직 하란에 거주하기 전,
또 아직 이방 메소포타미아에 있던 때,
하나님은 그것에 나타나,
그의 갈 곳을 넓다는 것을 하나님 계시고,
또 이 성전이란, 세계의 넓음 같이 넓다는 것을.
하나님 계시고,
또 이에 응답하는 신앙 있을 때,
세계 어느 곳이 성전 아니랴!
보라, 하나님 아브라함과 함께 하셔서,
그가 가는 곳마다 그에게 나타나 그에게 말씀하신 것을,
아브라함의 역사는 신인교통(神人交通)을 그 친구라고 부르셨다.
(역대 하 20:7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거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으로 주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영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리고 아브라함은 일찍이 일회도 에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한 일은 없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성전과 조금도 관계가 없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자손 번영의 약속을 향하심에 있어서
(행 7:5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그를 성전으로 부르시지 않고,
그를 들 밖으로 불러내어 하늘의 별을 가리켜 맹서하여 이르셨다.
‘네 자손은 이같이 될 것이다’(창세기15:15)라고,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그의 발자취가 암기는 것이 모두 성전이었다.
모래 상수리나무
(창 12:6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박벨라의 굴
(창 23:9 그로 그 밭머리에 있는 막벨라 굴을 내게 주게 하되 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서 당신들 중에 내 소유 매장지가 되게하기를 원하노라),
그에게 있어서는 모두 성소였다.
그러므로 만약 에루살렘 성전 이외 하나님을 구하고 이에 섬기는(예배하는) 것이 모독죄라면,
제1로 이 죄에 해당되어야 할 분은 이스라엘의 시조 아브라함이다.
그리고 스데반은 그 스승 예수 따라, 예루살렘 성전 이외,
세계 이르는 곳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인정하여
(요 4: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시조 아브라함의 자취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제사장, 장로, 학자들은 먼저 아브라함을 죄로 정하고,
그런 후에 스데반을 벌해야 할 것이라고.
이는 아브라함의 역사가 스데반의 변호로 된 이유이다.
(행 7:2-8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5)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6)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7) 또 가라사대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저희가 나와서 이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8)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두 조상을 낳으니)
스데반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및 이삭의 아들 야곱의 역사에 대해 말하는 바 없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 요셉의 경력에 대하여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셉의 11형제들(이스라엘의 12지파의 선조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요셉의 11인 형제들은 그에게 대하여 질투로서 불타, 아버지에게 숨기고서 그를 애굽에 팔았다.
그런데 그들이 버린 것을 하나님은 주우셨다.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시어,
모든 환난에서 그를 구출하시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크게 그를 복주시어,
그로 하여금 애굽과 바로의 집을 관리(주관)케 하시고,
또 드디어 그로 하여금 그 아버지 야곱과 그의 전가를 기아에서 구하셨다.
요셉의 경우에도 역시 ‘건축가의 버린 돌은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옛 속담이 사실로 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스데반과 그의 주이신 예수를 심판하려하는 제사장, 장로, 학자들은 재고해야 할 것이다.
그들도 역시 그들의 선조들을 따라,
여기서 무고를 심판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들이 이단시하는 것은 또 요셉처럼 하나님 앞에 특수한 은혜를 입는 자 아닌가?
그들은 요셉의 경력에 비추어보고서 크게 삼가야 할 것 아닌가고.
스데반은 여기서 그의 국인이 숙지하는 요셉의 사적을 반복하여,
암암리에 자기를 심판하는 자를 심판했던 것이다.
(7:9-16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
10)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저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느니라
11)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 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12) 야곱이 애굽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13) 또 재차 보내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
14) 요셉이 보내어 그 부친 야곱과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
15)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16) 세겜으로 옮기워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
다음은 모세이다.
앞에 진술한 대로, 스데반은 2개의 죄목으로서 고소되었던 것이다.
그 제1은 성전에 대한 죄었다.
제2는 모세와 그 율법에 대한 죄었다.
그리고 그는 아브라함의 경력을 말하여,
죄상 제1에 대한 자기변호를 말했다.
제2에 대하여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스데반은 여기서 자기를 변호함에 있어서 모세의 경력을 말하면 족한 것이다.
그는 말했던 것이다.
‘너희는 내가 모세를 거스르고, 그 율법을 범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세 자신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그 모세는 나의 변호자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나를 면소하고 도리어 너희를 고소하리라’고.
당초 모세에 등져 배반한 자는 누구인가?
그가 아직 바로의 딸에게 양육되며 애굽에 있던 때,
그는 그의 골육의 형제 인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려 생각하고 나섰다.
그런데 백성은 도리어 그를 물리치고, 그로 하여금 애굽 땅을 피하지 않을 수 없게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모세에 대한 반역은 스데반으로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지금 그를 심판하고 있는 자의 조상들로서 시작된 것이다.
옳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모세에 대한 반역으로서 시작한 것이다.
기이하다. 이스라엘의 제사장과 학자들이 모세에 대한 반역을 이유로서 타인을 심판하려 한다는 것은 반역인이, 반역의 죄를 심판할 수 있는가?
(7:17-25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19) 그가 우리 족속에게 궤계를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
20)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 부친의 집에서 석 달을 길리우더니
21) 버리운 후에 바로의 딸이 가져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23)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24) 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25)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쫓아버렸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지켜,
그의 유찬지인 미디안 땅에서 그에게 평화의 가정을 주셨다.
그리고 선민구출의 시기가 도래하자,
하나님은 황야의 가시 나무속에서 그에게 나타나,
그를 애굽에 보내셨다.
모세에 있어서도, 아브라함의 경우에 있어서와 같이,
하나님은 성전이 아니라 시내의 황야에서 그에게 나타나 보이셨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 친구에게 말하듯, 모세와 얼굴을 맞대고 말씀하셨다’(출애굽기 33:11)
하나님이 모세에게 향하여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선 땅은 성지이다’라고 하신 그 땅은,
예루살렘의 성소가 아니라, 시내 반도 황야의 일점이었다.
성전 이외의 또 성전이 있는 것이다.
모세 자신이 성전 이외에 있어서 하나님을 예배했다.
모세 본받아 지상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의 자현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어찌 이것을 일컬어 성전 모독이랄 수 있으랴.
(7:33-34 주께서 가라사대 네 발에 신을 벗으라 너 섰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34)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정녕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저희를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시방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의 백성이 거부한 이 모세,
하나님은 이 모세로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이다.
이 모세가 그들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고,
40년간 황야에서 그들을 가르쳐 인도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은인,
그들의 교도자인 모세에 대해 결코 충실하지 않았다.
아니, 그 정반대가 사실이었다.
그들은 몇 번인가 그에게 거역했다.
몇 번인가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때로는 그로 하여금
‘아아 이 백성의 죄는 크도소이다. 그들은 자신 위해 금의 신을 만들었나이다. 하지만, 만약 뜻에 합하시면, 그들의 죄를 사하소서. 그렇게 않으시려면, 원하옵기는 당신의 생명책에서 내 이름을 삭제하옵소서’(출애굽기 32:31-32)라는 비탄의 소리를 발하게 했다.
이스라엘의 역사야 말로, 모세에 대한 반역의 역사인 것이다.
모세에 반역하고 그 율법을 깨뜨린 것은, 예수와 그 제자들이 아니라,
불충(不忠), 불건(不虔)의 연고로서 그들을 박해하고 그들을 죽인 이스라엘 백성 그들 자신이다.
기이하다, 반역인의 자손에 의해 반역의 이유로서 심판된다는 것은
(7:35-43 저희 말이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을 의탁하여 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보내셨으니
36)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37) 이스라엘 자손을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39)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치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행하여
40)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41) 그 때에 저희가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42) 하나님이 돌이키사 저희를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사십 년을 광야에서 너희가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43)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에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다시 성전에 대해 말할 것인가,
성전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여 만들게 하신 것은,
성전이라 칭할 만한 장엄한 대건물은 아니었다.
그저 단지 ‘증명(증거)의 장막’이었다. 여호와가 백성사이에 계셔서 그들을 가르치신 곳이었다.
그리고 모세 잠들고 여호수아가 그에 대신하여 백성의 교도자로 되자,
그는 이 성막을 가지고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
거기서 다시 이것을 치고,
그 스승 모세에 준하여 따르고,
단순한 황야의 예배를 계속하여 다윗에 때가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리고 신은(神恩) 풍성히 다윗의 몸에 더해지자,
그는 보은의 기념으로서,
야곱의 하나님이 영구히 계시는 영구한 성전을 만들고,
그리하여 일시적인 성막을 대신하려 했다.
그런데 그는 주저하여 이 일을 결행하기 전 잠들었다.
그리고 솔로몬에 이르러 그 아버지의 이 하심이 대규모로 실행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셨는가 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았다.
그는 말씀하셨다.
‘하늘은 나의 보좌이다. 땅은 내 발등상이다. 너희가 나 위해 어떤 집을 세우려하는가? 또 내가 쉴 곳은 어딘가? 너희가 알지 못하는가? 내손은 이 모든 것을 지었음을’(이사야66:1-이하참조). 이라고.
그리하여 하나님은 솔로몬의 이 대성전을 가납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그 후의 솔로몬의 경력에 의해 분명하다.
모세가 정한 단순한 천막예배를 폐하고,
이에 대신하는데 장엄한 성전 제사로서 한 솔로몬은,
타락에서 타락으로 빠져,
마침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을 섬기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리고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떠나셨다.
솔로몬 이후의 이스라엘의 역사는 배신, 분리, 멸망의 그것이었다.
솔로몬은 장엄한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을 이스라엘 가운데 초청하지 않고서, 도리어 이를 멀리했던 것이다.
(7:44-50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저가 본 그 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45)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저희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사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
49)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완강하여,
몸에 할례를 받은 까닭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자랑해도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아,
너희야 말로 참된 반역인이다.
너희는 모세와 그 율법에 따른다고 하면서 항상 성령에 거슬리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의 선조가 행한 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예언자로서 너희 선조들의 박해를 받지 않은 자 있던가!
아들은 잘 그 아버지를 닮는다.
너희는 조선의 행위 따라, 예언자들이 그 출현을 예언한 대 예언자 예수를 죽였다.
너희야 말로 율법의 파괴자이다.
너희는 천사의 손에서 받았다고 자랑하는 그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7:51-53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스데반의 변호 연설은 여기서 끝났다.
심판 받아야 할 자는 심판 받지 않고, 도리어 심판하는 이를 심판했다.
알려져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새로운 의미로서 백성과 제사장과 학자들의 앞에 제시되었다.
그리고 예수의 복음은 역사적으로 가장 유력하게 변호되었다.
심판의 자리에 앉은 자는 이제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들은 다만 위력으로서 답변에 대신할 뿐이었다.
그들은 노했다. 이를 갈았다. 외쳤다.
드디어 일동 돌을 가지고서 무원의 스데반을 목표로 하여 진격했다.
일제히 그를 쳤다.
그리고 그가 저항하는 가고 생각했는데,
그는 다만 하늘을 우러러보며 앉았다.
그의 고요한 눈에는 분노에 찬 적은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예수가 보였다.
불행한 것은 지금 돌에 맞아 죽으려는 그가 아니다.
그를 죽이려하는 그들이다.
여기서 그는 금생의 최후의 기도로서 소리 높여 말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지우지 마옵소서’라고.
그리고 이 한마디를 하고서 숨졌다.
그리고 이 폭행의 선동자를 다소의 사울이라 했다.
그는 스데반의 이 사상과 최후의 일언을 들었다.
그는 마음 편치 않게 귀가 했다.
여기서 저 사울의 마음속에 대번민이 시작되었다.
이 사울을 후에 바울이라고 했다.
그는 복음의 대전도자로 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세계와 인류는 일변했다.
그리고 그의 감화는 지금도 그치지 않는다.
스데반은 바울로서 세계에 예수의 복음을 전한 것이다.
(7:54-60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내촌(內村)의 1915년 4월 ‘성서지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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