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말씀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거듭난 삶 2017. 4. 24.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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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을 행하는 바울

 

: [ 19:11-22]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19)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값을 계산한즉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21) 일이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간 있으니라.

 

 

[ 19: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기적을 일으키시기 시작하셨는데 기적들은 제자들에게조차도 익숙지 않은 특별한 것들이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기적뿐만 아니라 기적도 행하실 있는 분이다. 미신과 주술이 범람(氾濫)하는 도시에서 바울의 선교 사역은 이러한 특별한 기적 행사가 필요했을 것이다.(Whitelaw).

 

 

 

[ 19: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 학자들 간에는 이러한 일들이 정말로 일어났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손수건이나 앞치마에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본절에 언급된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바울은 마술과 미신의 본거지에서 사역했으며 무당들 가운데서 말씀을 전파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신비한 능력을 행하시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손수건이나 앞치마 자체에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과 능력을 받아들인 믿음을 통해서 기적들이 일어난 것이다.

 

기적을 일으키는데 사용된 '수건'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이 땀을 닦기 위해 머리에 드루고 있던 헝겊 조각이며 '앞치마' 장막 짓는 작업을 위해 허리에 둘렀던 것이다.(F.F. Bruce).

 

 

 

[ 19: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 고대 세계에서 악령을 내쫓기 위해 주문을 외울 주술적(呪術的) 이름들을 사용하는 것은 보편적인 경향이었고, 특히 이러한 관습은 에베소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었다.

 

그런데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 또는 성도들 외에 비기독교인들도 귀신 축출을 위해 예수 이름을 마술적으로 사용했다.

 

(14-16 유대의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9:38-39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그리고 실제로 파리의 마술 문서인 574 파피루스 3018행에서는 무당들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한 실례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내가 히브리인들의 하나님 예수의 이름으로 네게 엄히 명하노니.

 

본문에서도 바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과 능력을 행하는 것을 목격한 유대인 주술사들도 바울의 행동을 모방해 예수의 이름을 그들의 주술에 이용하려고 했다.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라고 굳이 바울의 이름까지 언급한 것은 바울이 행하는 능력이 압도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주술사들이 악령을 쫓아내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마술적 주문과 정확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Haenchen, Longenecker).

 

 

 

[ 19:14] 유대의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일을 행하더니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일을 행하더니 - 헬라어 본문에는 스게와가 대제사장이었다고 언급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영역 성경도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KJV, RSV, NASB, MB, NIV).

 

대제사장이 이방인의 땅에 살고 있는 사실은 다음 가지로 추측해 있다.

 

아마도 이들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가문에 속한 자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영업 수단으로 고객 유치를 위해 자신들이 대제사장 가문에 속해 있다는 것을 빙자하였는지도 모른다.

 

정말로 이들이 대제사장 가문에 속한 자들이라면 예루살렘과 멀리 떨어져 이방 도시에서 귀신 쫓는 일이나 하는 것을 미루어 몰락한 가정형편을 보여 주는 것이고

아울러 에베소의 유대교는 그곳의 미신과 혼합, 변질되어 그곳 사람들로부터 형편없는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학설은 몇몇 학자들이 지지하지만(Mastin, Marshall) 별로 타당성이 없다.

만약 이들이 대제사장의 가문을 빙자하고 있다면 그들은 대제사장의 권위와 명성을 빌어 자신들의 야심을 채우고자 하는 간교한 술책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문헌에는 스게와라는 대제사장의 이름은 나타나 있지 않다.

 

누가는 사실에 대해서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으나 아마도 여기서 그들이 충분히 대제사장의 가문을 빙자할 있는 인물들임을 암시하려고 했는 듯하다.

 

이전 맥락에서 그들은 바울의 설교를 듣고 앞에서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믿는다고 까지 증언했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이런 교활한 행동은 마치 사마리아인 시몬의 태도와도 유사하다.

 

(8:9-24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자라 하니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청종하여 가로되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 오랫동안 마술에 놀랐으므로 저희가 청종하더니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침례를 받으니

13) 시몬도 믿고 침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나타나는 표적과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만 받을 뿐이러라

17) 이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가로되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주고 줄로 생각하였으니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되었도다

24)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

 

이들은 자신들의 사악한 행동들을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의 능력을 힘입어 자신들이 지금까지 행하던 사악한 일들을 계속해서 하고자 했던 것이다.

 

 

 

[ 19:15]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 유대의 주술사들은 영적인 침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귀신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먼저 하나님의 사람들을 알아보고 그들의 믿음과 능력들을 먼저 파악한다.

 

그들 자신들이 하는 일을 멸하러 오신 예수를 이미 이전부터 알고 있었으며

 

( 1: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34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5:7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4: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앎이러라;

 

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없이 하시며;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나아가 바울이 예수의 사도이며 믿음과 능력의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귀신들이 스게와의 아들들에게 '너희는 누구냐'라고 것은 귀신들이 스게와의 아들들이 예수의 이름을 빙자함을 먼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믿음도 전혀 없이 사악한 동기에서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려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사단의 세력이 징벌(懲罰) 도구가 것이다.

 

 

 

[ 19:16] 악귀 들린 사람이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

 

사기성을 가지고 예수의 이름과 또한 귀신들을 동시에 시험해 보려고 사악한 유대인 주술사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없는 세력 앞에서 봉변을 당하고 쫓겨가야만 했다.

 

그들이 마귀에게 당했다는 소문이 퍼져나감으로써 이들의 신의와 위엄은 땅에 떨어졌을 것이며 반면에 바울의 권위는 더욱 올라가게 되었다.

 

 

 

 

[ 19:17]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 미신과 주술이 난무하는 에베소의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일곱 주술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엄청난 파문을 던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주술사들처럼 미신과 주술이라는 악습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귀신의 봉변이 자신들에게 임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곤경을 치르게 될까 염려했을 것이다.

 

아울러 그들은 바울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때는 귀신이 쫓겨나고 주술사들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때는 주술사들이 오히려 귀신에게 쫓기는 원인을 몰랐다.

단지 그들은 예수의 이름이 모든 귀신을 압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름을 높이게 되었을 것이다.

 

 

 

[ 19: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

 

일은 에베소 주민들에게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보지 못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예수의 이름이 지닌 신비한 능력 앞에서 자신들이 지금까지 은밀하게 범하던 잘못들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에베소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예수를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생활 습성을 청산하지 못하고 은밀한 가운데 미신과 주술을 쫓거나 같은 일들을 직접 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예수의 능력을 확실히 목격하고 체험하게 되자 자신들의 은밀한 범죄를 회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기독교가 비기독교 지역에 전파되면 문화적 혼합(混合) 현상이 나타나 자칫 잘못된 악습으로 인해 교회가 부패될 위험이 있음을 있다.

 

 

 

[ 19:19]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값을 계산한즉 오만이나 되더라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 '마술' 뜻하는 헬라어 '페리에르가' 문자적으로 '주변 ' 이라는 의미로서 주된 일을 제외한 '쓸데없는 ' 가리키거나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누가가 '마술' '쓸데없는 ' 표현한 것은 공허한 것을 섬기는 우상 숭배와 같은 차원에서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에베소에 많았다고 하는 것은 도시 자체가 영적인 기갈 상태에 있음을 나타내며 이들 많은 사람이 회개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에베소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악된 행동을 회개하고, 자신들의 변화된 삶을 공개적으로 증거하기 위해 마술에 관계된 모든 서적들을 불살랐다.

 

책들은 주문이나 부적 미신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서 파피루스나 양피지(parchment) 기록된 것들이 많았는데 이러한 책들은 '에베소의 책들'(Ephesia Grammata) 추정된다(Zahn).

 

한편 공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책을 불태우는 것은 내용을 공식적으로 배격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 36:23 여후디가 삼편 사편을 낭독하면 왕이 소도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태웠더라)

 

따라서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공중 앞에서 공식적으로 과거 자신들의 죄악된 삶을 청산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음을 선포하였다.

 

오만 - 에베소에는 대부분 헬라인들이 살았기 때문에 ' 오만' 대한 화폐 단위는

아마도 '드라크마'(Drachma)이었거나

아니면 로마의 화폐 단위인 '데나리온'(Denarius)이었을 것이다.

 

화폐의 가치는 거의 같은 것으로서 당시 일용 노동자의 하루 품삯 정도에 해당되었다.

 

따라서 이를 오늘날 액수로 환산(換算)한다면 800만원 정도에 해당한다. 이러한 사실 하나만 본다 하더라도 당시 에베소에 미신이나 마술이 얼마나 극심했던가를 있다.

 

 

 

[ 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 헬라어 본문에서 구절의 동사는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어 주의 말씀이 에베소에서 지속적으로 흥왕하여 모든 거짓되고 미신적인 마술들을 물리치며 많은 사람을 회개시켰음을 나타낸다.

 

 

 

[ 19:21] 일이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일이 - 바울이 에베소에서 행한 총체적 일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며(Haenchen)

어떤 학자들은 말이 10절에서 언급한 2년의 기간에 있었던 사역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Wendt, Loisy, Lenski, Bruce, Neil).

 

견해대로라면 구절 '에베소에서 머물기로 작정된 날이 '라는 의미를 지닌다. 문맥상 해석이 무난하리라 본다.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 본문에서 전혀 언급이 없지만 당시 팔레스틴은 기근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11:27-30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28) 중에 아가보라 하는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 제자들이 각각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그래서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들러 연보를 모아 기근으로 고생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고자 했을 것이다.

 

( 15:31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2:8-10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여기서 '경영하여' 직역하면 '성령 안에서 결정하였다' 의미를 지닌다.

바울이 그러한 지방으로 가고자 것은 성령의 지시에 의해서 결정된 것임을 시사한다.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 바울이 로마에 가고자 결심한 것은 로마 교회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자하는 의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유럽을 복음화하기 위해 로마를 전초 기지로 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는 세상의 중심이라고 만큼 번성했을 아니라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기에 선교 효과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도나 전도자들이 복음을 전한 곳에는 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 15:20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그래서 그는 이미 다른 전도자들이 교회를 세우지 않은 유럽으로 시선을 돌려 로마로 가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얼마 아가야와 마게도냐 성도들의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들에게 전달한

 

( 15: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죄수의 몸으로서 로마를 방문해 그가 계획했던 바를 이루게 된다.

 

(28: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 19: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간 있으니라.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 저자 누가는 디모데가 마게도냐에서 돌아와 고린도에서 합류한 이후

 

(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디모데에 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라는 언급을 보면 그는 분명 에베소에서 바울과 함께 머물러 있었음을 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사역하고 있는 동안 디모데를 고린도로 파송하여 봉사하게 하였다.

 

(고전 4:17 이를 인하여 내가 안에서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내가 각처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6:10-11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저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니라

11)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저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한편 '에라스도'라는 이름은 본서에서는 여기서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딤후 4:20에서 그는 고린도 교회에 특별한 관심을 바울의 친숙한 동료로서 소개된다.

 

(딤후 4:20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렀고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

 

아마도 그는 16 :23 언급된 고린도의 재무 담당자인 에라스도와 동일인일 것이다. 이유는 고린도 교회에서 사역했던 디모데와 함께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 16 :23 나와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아시아에 얼마간 있으니라 - 벤트(Wendt) 여기서 바울이 에베소가 아닌 아시아의 다른 곳에서 얼마간 머물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쟈안(Zahn) 26절을 근거로 바울이 그의 조력자들을 마게도냐에 보낸 에베소에서 가까운 다른 도시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혹자는 23절을 근거로 바울이 에베소에 계속 체류했다고 반박했다. (Haenchen).

 

그러나 본절에서 누가는 바울이 어떤 지역에 머물렀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먼저 보낸 좀더 아시아 지역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의 어느 견해가 옳은지 결정하기 힘들다. 다만 데메드리오가 사람들을 선동할 '에베소' 말을 계속 강조적으로 사용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바울이 에베소에 계속 머문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