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
성 경: [행 21:17-26]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니
20) 저희가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
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저희가 들었도다
22) 그러면 어찌할꼬 저희가 필연 그대의 온 것을 들으리니
23) 우리의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24) 저희를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저희를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게 대하여 들은 것이 헛된 것이고 그대로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저희와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의 만기 된 것을 고하니라.
[행 21: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
가이사랴에서 함께 한 성도들을 포함한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그들을 기꺼이 환영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본문의 '형제들'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형제들'을 예루살렘의 기독교 공동체와 관련시켜서 바울이 예루살렘 공동체 전체로부터 환영을 받았다는 견해는(Overbeck)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18, 22절에 의하면 실제적으로 예루살렘 교회는 아직까지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온 것을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22 그러면 어찌할꼬 저희가 필연 그대의 온 것을 들으리니)
이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1) 예루살렘 교회의 비공식적인 접대였다(Lake).
2) 바울의 동료들과 친구들로 이루어진 사적인 모임을 말하고 있다(Jacquire).
3) 예루살렘 공동체 전체가 아니라 일부분의 성도들이 베푼 환대였다(Beyer).
4) 이들은 헬라적 기독교인들이었다(Knopf).
2)와 3)의 견해가 비교적 무난하다.
[행 21: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 바울이 우리와 함께 - 여기서는 '우리'와 바울이 구분되어 표현된다. 이는 아마 바울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기 위함인 듯하다.
▶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먼저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하고 할 수 있는 야고보를 방문하였다.
(12:17 베드로가 저희에게 손짓하여 종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그런데 여기에 베드로나 요한, 그 밖의 다른 사도들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이는 그들이 전도나 다른 일을 위해서 출타 중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Bruce, Lenski, Zahn).
야고보는 예루살렘 공동체의 수장(首長)으로서 교회 공동체를 지혜롭게 잘 지도했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의 일반 유대인들로부터도 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일반 유대인들은 그에게 '의인 야고보'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다고 한다.
▶ 장로들 - 이 표현에 대해서도 학자들 간에 해석이 다양하다.
1) 문자 그대로 예루살렘 교회의 모든 장로들이 다 모인 것이라고 본다(Lenski).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단에 대해, 브루스(Bruce)는 야고보가 그의 행정적 책임을 수행함에 있어서 일단의 동료 장로들과 함께 일했는데,
20절에서 나타나는 바 교인의 수가 수만 명(공동 번역에서는 '대단히 많습니다'로 표현되어 있다)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예루살렘에는 야고보를 의장으로 하고 70인의 장로로 구성된 일종의 나사렛 산헤드린(Nazarene Sanhedrin)이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2) 야고보는 수석 장로이며 다른 장로들은 바울을 환영하는 자리에 초청된 야고보의 손님들이라고 본다(Robertson).
3)야고보를 제외한 사람들은 단지 입회인에 불과하다고 본다(Beg, Zahn).
자료들이 불충분하여 정확한 설명을 제시하는 것은 어려우며 단지 잠정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뿐인데, 아직 바울이 예루살렘에 온 것을 모르는 교인들이 상당히 있었다는 점을(22절) 감안할 때 1)의 견해보다는 2)나 3)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22절 그러면 어찌할꼬 저희가 필연 그대의 온 것을 들으리니)
[행 21: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니 -
'봉사'(디아코니아)는 '종', '일꾼'을 뜻하는 '디아코노스'에서 파생된 말로 '사명'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또는 '직분'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롬 11: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것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뿐만 아니라 교회와 사람들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하였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그의 역할 가운데는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헌금 전달도 포함되었을 것인데, 본문에서 그 사항에 관해 언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성금 전달은 누구나 다 아는 당연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따로 언급할 만한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Bauernfeind).
성금을 전달한 것에 대한 효과가 생각한 것보다 미미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예루살렘의 교인들이 후에 바울을 위하여 유대인들에게나 로마 당국에 대해 한마디의 변호도 하지 않았다는 것과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오랫동안 투옥되었을 때 그에게 동정을 표시한 기록이 없다는 것을 제시한다(Furneaux).
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하다고 본다.
한편 바울은 자기가 이방 가운데서 사역한 일들을 세세히 증언하고 있는데, 그는 그 모든 일들의 주체(主體)가 하나님이라고 고백함으로써 겸손한 신앙의 자세를 나타낸다.
[행 21:20] 저희가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 이 문구는 야고보 및 장로들이 바울의 증언을 매우 호의적으로 들었음을 보여준다. 바울이 자기의 봉사 배후에는 하나님이 주체로 있었다고 증언했으므로
(19절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니)
이들이 이야기를 경청한 후 바울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 - 누가는 야고보의 무리들이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기쁨에 넘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울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눈길들이 많음을 주지시키고 있다.
(22절 그러면 어찌할꼬 저희가 필연 그대의 온 것을 들으리니).
그런데 '수만 명'이라는 표현은 학자들 간에는 이 표현을 문자적으로 취하여 이해하기도 하고(Lenski),
불특정한 다수를 과장적으로 서술하는 표현 양식이라고 이해하는 입장도 있다.(Haenchen, Robertson).
아무튼 야고보의 이야기는 교인들의 수가 많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일에 관심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즉 이들은 소위 유대적 그리스도인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왔던 모세의 율법을 비롯한 각종 규례들을 소중히 여겨 지킨다는 것이다.
이들은 바울이 깨달은 바, 복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율법을 폐기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율법의 매임으로부터 자유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따라서 다음 절에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것처럼 율법에 매이지 않는 바울의 행위를 용납하지 못했다.
[행 21: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저희가 들었도다
▶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 - 바울을 비방(誹謗)하는 소문이 어떻게 떠돌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열거된다.
이러한 소문의 진원지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을 것이고 그 중에서도 유대교적 전통에 철저한 자들이었을 것이다.
모세를 배반한다는 것은 모세가 전해준 율법을 무시한다는 말이고 이는 곧 하나님에 대한 배반을 뜻한다고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율법을 배반했다는 것은 악의에 찬 허위 사실이었다. 바울은 율법 자체를 부정한 바 없으며 오히려 그는 율법을 신령한 것으로 보았고
(롬 7: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율법의 긍정적인 역할도 인정하였다.
(갈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다만 바울은 사람들이 율법 자체에 얽매여 스스로 의롭게 되려는 행위들을 배격(排擊)하였던 것이다.
(롬 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율법이 지향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고 형식주의 또는 완고한 유대주의에 매여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율법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엡 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한 바울이 할례를 금하였다는 것도 전혀 터무니 없는 허위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바울은 할례 그 자체에 대해서 어떤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았으나 하는 것도, 안하는 것도 무방하다고 했으며
(고전 7:18-19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갈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디모데에는 할례를 받도록 하기까지 하였기 때문이다.
진실이 이렇다 하더라도 예루살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들은 바대로 오해를 하고 있었음에 분명하며 이 오해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다.
[행 21:22] 그러면 어찌할꼬 저희가 필연 그대의 온 것을 들으리니
▶ 어찌할꼬 - 야고보 및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바울의 신변에 대한 문제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사실은 이제 곧 다른 교인들에게 알려질 것이며 바울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자들이 거센 공격조로 나올 것은 불을 보듯 환한 일이었다.
[행 21:23] 우리의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 서원한 네 사람 -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무엇을 하기 원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단순한 소원을 넘어 하나님께 대한 일종의 서약이기 때문에 매우 엄숙한 것이다.
서원에 관한 자료는 구약성경에 많이 있으나, 그 기원은 알 수 없다.
서원은 주로 나실인의 서원과 관계되는데,
부모에 의한 서원이나,
(삼상 1:11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본인의 자유의사에 의한 서원이 있으며
서원의 기간은 영구적인 것이 있고
(삿 13:7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죽을 날까지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삼상 1:11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일정한 기간 동안만 하는 것이 있다.
(민 6:8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12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일 년 된 수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로 드릴지니라 자기 몸을 구별한 때에 그 몸을 더렵혔은즉 지나간 날은 무효니라).
서원자는 서원한 것에 대해 반드시 신속하게 행해야 하며,
(신 23:23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
시 15:4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전 5:4-5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5)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남용하거나 경솔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잠 20:25 함부로 이 물건을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물이 되느니라;
마 15:4-6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5)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또한 서원한 기간 동안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으로는 독주를 마시지 말고 머리를 깎지 말며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
본문에 나오는 네 명의 서원은 본인의 자유의사에 의해 일정한 기간 동안만 하는 서원이라 여겨진다.
[행 21:24] 저희를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저희를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게 대하여 들은 것이 헛된 것이고 그대로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 결례를 행하고 저희를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 결례를 행하라는 것은 서원한 자들처럼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서원기간 동안 지켜야 할 규범(23절)을 지키라는 의미이며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는 것은,
결례 기간이 끝나는 날에 머리를 깎고 희생 예물을 드리는 때에 드는 경비(經費)를 부담하라는 말로 이해된다.
여기에 드려지는 희생 제물로는,
번제물로 일년 된 수양 하나, 속죄 제물로 일 년된 어린 암양 하나, 화목제로 수양 하나, 그 외에 무교병 과자 등이었으므로 그 비용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민 6:1-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
3)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의 초나 독주의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4)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5)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도무지 그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6)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7) 그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인하여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 머리에 있음이라
8)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9) 누가 홀연히 그 곁에서 죽어서 스스로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히거든 그 몸을 정결케 하는 날에 머리를 밀 것이니 곧 제칠일에 밀 것이며
10) 제팔일에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지고 회막문에 와서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11) 제사장은 그 하나를 속죄 제물로, 하나를 번제물로 드려서 그의 시체로 인하여 얻은 죄를 속하고 또 그는 당일에 그의 머리를 성결케 할 것이며
12)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일 년 된 수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로 드릴지니라 자기 몸을 구별한 때에 그 몸을 더렵혔은즉 지나간 날은 무효니라
13) 나실인의 법은 이러하니라 자기 몸을 구별한 날이 차면 그 사람을 회막문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14) 그는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되 번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수양 하나와 속죄 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하나와 화목 제물로 흠 없는 수양 하나와
15) 무교병 한 광주리와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과자들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들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드릴 것이요
16) 제사장은 그것들을 여호와 앞에 가져다가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고
17) 화목 제물로 수양에 무교병 한 광주리를 아울러 여호와께 드리고 그 소제와 전제를 드릴 것이요
18) 자기 몸을 구별한 나실인은 회막문에서 그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 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둘지며
19) 자기 몸을 구별한 나실인이 그 머리털을 민 후에 제사장이 삶은 수양의 어깨와 광주리 가운데 무교병 하나와 무교전병 하나를 취하여 나실인의 두 손에 두고
20)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들 것이며 그것과 흔든 가슴과 든 넓적다리는 성물이라 다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니라 그 후에는 나실인이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느니라
21) 이는 곧 서원한 나실인이 자기 몸을 구별한 일로 인하여 여호와께 예물을 드림과 행할 법이며 이 외에도 힘이 미치는 대로 하려니와 그 서원한 대로 자기 몸을 구별하는 법을 따라 할 것이니라)
이 비용을 바울에게 부담하라고 한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난한 서원자를 위하여 비용을 대신 부담하는 것은 매우 경건한 행위로 여겨졌다.
실제로 기록에 의하면 아그립바 I세가 가난한 나실인을 위해 이런 비용을 제공했다는 이야기가 있다.(Jos, Ant., XIX, 6:1).
바울에게 이런 일을 하라는 것은 그의 재력으로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환심을 사라는 말이 아니라 그가 율법을 부정하지 않고 지키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어 그들의 오해와 노여움을 풀기 위함이었다.
[행 21: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 이 내용은 일찍이 예루살렘 회의에서 이방인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위한 지침으로 결의되었던 것인데
(15: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여기서 다시 한번 반복하여 상기(想起)시키고 있다.
[행 21: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저희와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의 만기 된 것을 고하니라.
▶ 결례의 만기된 것을 고하니라 - 바울은 야고보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대로 행하였다. 본문의 상황은 바울 일행이 서원의 절차법에 따라 희생 제물을 바친 후 머리를 깎아 제단 불에 던져 태운 다음
(민 6:13-18 나실인의 법은 이러하니라 자기 몸을 구별한 날이 차면 그 사람을 회막문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14) 그는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되 번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수양 하나와 속죄 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하나와 화목 제물로 흠 없는 수양 하나와
15) 무교병 한 광주리와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과자들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들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드릴 것이요
16) 제사장은 그것들을 여호와 앞에 가져다가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고
17) 화목 제물로 수양에 무교병 한 광주리를 아울러 여호와께 드리고 그 소제와 전제를 드릴 것이요
18) 자기 몸을 구별한 나실인은 회막문에서 그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 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둘지며)
제사장에게 서원 기간이 끝났음을 공식적으로 보고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그의 설교 전략 즉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의 지배 아래 있는 자에게는, 자신은 율법의 지배 아래 있지 아니하지만, 율법의 지배 아래 있는 자같이 된다는 원칙을 따라 행동한 것이라고 본다.
(고전 9:20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바울은 일찍이 예루살렘에 올 때, 고난이 있을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10-14절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20: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바울은 죽음까지도 각오하고 있었다.
(13절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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