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모친과 형제들
성 경: [눅 8:19-21] 예수의 어머니와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로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20) 어떤 이가 알리되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눅 8:19] 예수의 어머니와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로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 마태와 마가도 기록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마 12:46-50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47)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48)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막 3:31-35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또는 형제들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그러나 마태와 마가는 이 이야기를 바알세불 논쟁의 결론 부분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본문과 다르다.
마태와 누가에서는 분명하지 않으나 마가에 의하면 이들이 찾아온 이유는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걱정되어 예수를 데려가기 위함이었다.
(막 3:2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그러나 오늘의 본문, 19-21절의 말씀은 예수께 대한 친속들의
무지를 드러내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그들의 방문을 또 다른 차원의 교훈(敎訓)을 위한 동기로
활용하셨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한편 예수의 친속들이 예수를 만나려 하였으나 무리로 인하여
접근할 수 없었다는 데서 우리는 당시에 얼마나 많은 무리들이
몰려들었는지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무리들은 예수께서 일으키는 갖가지 이적들에만
관심을 가졌지 그의 가르침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다.
(마 13: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눅 8:20] 어떤 이가 알리되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 알리되 - 막 3:31,32은 이 장면을 보다 상세하게 묘사한다.
(막 3:31-32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즉 먼저 마리아 일행이 한 특별한 전달자를 보내어 면회를 신청하고,
그 사람은 예수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면회를 요청하였으며
그리고 주변에 있던 무리들이 예수에게 친속들이 왔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으로 되어 있다.
[눅 8: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 마태(마 12:48)와 마가(막 3:33)는 이 부분에 대해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하는 예수의 반문을 기록하고 있으나
누가는 이를 생략한 채 바로 교훈적 답변을 기록한다.
먼저 우리는 '내 모친과 내 형제'(메테르 무카이 아델포이 무)라는 표현이 관사없이 쓰여져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죄를 나눈 실제의 모친과 형제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모친과 같은 사람, 형제와 같은 사람의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Plummer).
이는 피를 나눈 육신의 혈육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공동체의 보편성을 암시한 말이라 볼 수 있다.
(요 19:26-27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즉 예수께서 제시하시는 새로운 가족의 개념은 '피를 나눔'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기준이 되어
얼마든지 보편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혈통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요 1:13의 말씀은 이것을 밑받침 해 준다.
(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대로 행하는 것,
즉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이며
(마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막 3: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이것에 의해서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수의 가족,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한편 본문의 '이 사람들'은 누구인지 불분명한데,‘
마태에 의하면 ‘제자들’을 가리키고,
(마 12: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마가에 의하면 '둘러앉은 자들'을 가리킨다.
(막 3: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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