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귀신 들린 자가 예수를 만나니

거듭난 삶 2018. 3. 2.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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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라사의 광인(狂人)

 

: [ 8:26-29]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27) 예수께서 육지에 내리시매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 들린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28)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앞에 엎드려 소리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하니

29)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사람을 붙잡으므로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지켰으되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 8:26]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거라사인의 - 지명의 장소가 어디인지 정확히 밝히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첫째 마가와 누가의 기록상으로는 지명이 일치하지만 마태는 '가다라'(가다레논)라고 기록함으로써 불일치를 보이기 때문이다.

 

둘째, 거라사는 갈릴리 호수까지 거리가 무려 40km이상 떨어져 있어서 예수께서 육지에 내린 직후 귀신들린 자를 만났다고 기록한 27절과 부조화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가다라' 호수에서 9km정도 떨어져 있어 거리상 거라사 보다는 타당한 것으로 보이나 9km 거리가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역시 지지 받기 힘들다.

 

한편 이러한 이유로 해서 3 견해가 대두되기도 했는데 가운데 하나는 오리겐(Origen) 주장한 것으로 본래의 지명은 게르게사(Gergesa)라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복음서 기자들이 지명을 몰랐기 때문에 자기들이 알고 있는 부근의 마을 이름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다른 견해는 가다라 지방의 가파른 동쪽 제방에 위치한 '게르사'라는 지명이 바로 복음서 기자들이 전해주는 곳이라는 주장이다.

 

하나의 견해는 예수께서 귀신들린 자를 만난 곳이 갈릴리 호수 근처인데 그곳을 '거라사' 지방 또는 '가다라' 표현한 것은 그곳이 지명들의 지배권(支配權)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열거한 여러 견해들 가운데 어느 하나가 정확하다고 단정할 있는 증서는 없으며 단지 추측할 있을 뿐이다.

 

다만 성서의 본문에 충실해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해서 생각할 마지막 견해를 지지할 있다.

 

 

[ 8:27] 예수께서 육지에 내리시매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 들린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귀신들린 하나 - 누가와 마가는 귀신들린 사람만을 언급하고 있으나,

 

( 5:2 배에서 나오시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마태에 의하면 둘이었다.

 

( 8:28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길로 지나갈 없을 지경이더라).

 

여기서 누가의 관심은 귀신들린 자의 수가 아니라, 이방 거라사에서 귀신들린 자를 치유하신 사실 자체였다.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 귀신들린 자는 집을 나가 자신을 정상 생활로부터 격리하였으며,

인간으로서의 인격을 모두 잃어버린 벌거벗고 이미 오래되었다.

 

표면적인 증상으로 미루어 때는 악성 정신질환을 앓은 같으나

누가는 그가 분명히 귀신에 들려있다고 확증한다.

 

귀신들린 자는 자기 몸을 상하게 하는 일도 하였다.

 

( 5: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인간에게 있어서 최악의 상태를 보는 듯한 모습은

죄인의 영적인 상태를 형상화(刑狀化) 것인지도 모른다.

 

무덤 사이에 - 무덤이 귀신들린 자의 거처로 묘사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있다.

 

참고로 팔레스틴에는 바위에 동굴이 많아 사회에서 추방당한 자들이 은거하는 거처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무덤이 죽음을 의미한다면 귀신들린 자의 모습은 영적인 죽음 상태에 있는 죄인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일 있다.

 

 

[ 8:28]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앞에 엎드려 소리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하니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 귀신들린 자가 엎드려 절한 것은,

 

( 5: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결코 경배의 행위가 아닌 예수의 능력에 굴복한 표현이다.

 

4:33-37에서나 밖의 귀신 축출 이야기에서처럼, 더러운 귀신들은 예수가 초자연적 능력을 가진 분이라고 고백한다.

 

( 4:33-37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3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3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36)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37)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그러나 이러한 귀신의 고백은 예수와 화해를 하기 위한것도 아니고

예수께 대한 복종과 신앙 고백을 것도 아니다.

 

단지 예수의 마음을 약하게 하여 적절한 타협을 얻어내려는 본능적 자기방어의 술책(intrigue)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귀신의 고백은 정확한 사실을 말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제자들은 예수의 정체를 아직 알지 못하고 있으며, '저가 뉘기에'라는 의문만을 제기했었다.

 

(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결국 귀신의 고백은 제자들과 복음서 독자들의 의문에 대한 대답으로 주어질 있다.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 히브리인들의 관용어로 '나를 버려두고 일에나 신경쓰라' 뜻이다.

 

귀신은 예수의 명령을 들었으며,

 

(29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사람을 붙잡으므로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지켰으되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그리하여 그는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는 고백을 하고 앞에 엎드려 굴복(屈服) 표시를 하여 예수의 마음을 누그려 뜨려 보려고 하였던 것이다.

 

귀신은 예수께서 자기를 멸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그리하여 귀신은 예수에게 피차에 상관말자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둘은 결코 공존할 없는 적대 관계에 있다.

 

왜냐하면 마귀는 사람들이 구원을 얻지 못하게 방해하는 일을 하고,

예수는 세상을 구원하려 하시기 때문이다.

 

(8:12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괴롭게 마옵소서 - 마태에 의하면 귀신은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라고 말했다.

 

( 8: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귀신의 최후가 괴로움과 멸망으로 끝나버리고 만다는 점을 암시한다.

 

( 20:1-3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2) 용을 잡으니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동안 결박하여

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위에 인봉하여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 8:29]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사람을 붙잡으므로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지켰으되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귀신이 가끔 사람을 붙잡으므로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지켰으되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 귀신이 사람을 완전히 정복하고 있는 모습이다.

 

귀신들린 자는 늘상 정신 이상의 상태로 있었고,

 

(27 예수께서 육지에 내리시매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 들린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때로 귀신의 특별한 작용에 의해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여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 8:28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길로 지나갈 없을 지경이더라).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를 쇠사슬로 매어 두곤 했지만 귀신들린 자는 번번히 그것을 끊고 광야로 나갔다.

 

( 5:4 이는 여러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이처럼 마귀는 사람의 주체적 의지를 파괴하고 마귀의 의지대로 통제하고 조종함으로써 사람을 파멸로 이끌고 간다.

 

( 8:28-34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길로 지나갈 없을 지경이더라

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30)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32)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33)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9:32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12:22 때에 귀신 들려 멀고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1:23-26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16:9 [예수께서 안식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그러나 이처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귀신이 예수 앞에서는 순한 양같이 꼼짝 못하는 것은 예수가 누구인가를 가히 짐작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