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거듭난 삶 2018. 4. 30.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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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으로 인한 분열

 

: [ 12:49-53]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50) 나는 받을 침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52) 후부터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53)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 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 본문에서 해석상의 쟁점이 되는 것은 '' 의미에 관한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1) 성령, 또는 성령의 능력(Grundmann, Ellis).

(2) 영적 활동(Bengel,Vincent).

(3) 심판 (Schlatter,Grasser).

(4) 로마의 침략(Clark).

 

가운데 어떤 견해가 정확한 것인지를 판별하기란 어렵지만

앞의 비유와의 연관성을 고려하건대 (3)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 문구에 대한 해석 역시 다양하다.

 

(1) 내가 어찌 불이 이미 붙었으면 하고 바라리오(Bleek,Wette).

(2) 내가 무엇을 하리요? 불이 이미 붙었으면(Alford,Meyer,Stier).

(3) 불이 붙었으면 바랄 것이 무엇이뇨(Plummer).

(4) 불이 이제 붙어지기를 내가 얼마나 바랐는가?(Marshall).

 

가운데 " 불이 이제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번역하고 있는 공동번역 성서에 따라 (3) (4) 견해가 타당하다고 있다.

 

이렇게 구절 전체의 의미는

예수께서 궁극적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는 심판을 내리러 오셨는데

불이 결정적인 의미에서는 아직 타오르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 12:50] 나는 받을 침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나는 받을 침례가 있으니 - 여기서 '침례'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의미하며,

 

( 10: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침례를 받을 있느냐),

 

바울도 사실을 재차 확언하고 있다.

 

(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루기까지 - 이는 '완성하다' 의미이며 이는 예수가 인식하고 있고

맞아들이려고 하는 그의 죽음이 '우연' 의한 것이 아니라

성취해야 사명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Kline).

 

답답함이 -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완성되어야 사명으로 인식하고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그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일은 결코 일시적 결단이나

가벼운 노력에 의해 성취될 성질이 아니라 실로 고통스러운 도전이었다.

 

골고다 언덕이 점점 가까와 옴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닥치는 인간으로서의

고뇌 또한 이루 말할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 12: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화평을 주려고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 예수의 오심이 궁극적으로는 평화를 위한 것이지만,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9:6 이는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것임이라),

 

평화는 선과 악을 분리하는 심판을 선행 요건으로 하는 것이다.

 

(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따라서 예수의 오심은 선과 , 참과 거짓, 진리와 진리간의

갈등과 분열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화평이 아니라 () 주기 위해 오신 것이다.

 

(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 12:52] 후부터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 이는 앞에서 언급한 '분쟁' 성격을 밝혀주는 것으로 비극의 심각성과 비참성을 보여준다.

이것이 최악의 상태인 까닭은 분쟁이 가족 안에서까지 일어나며

결과는 천륜이라 있는 혈연관계마저 깨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씀은 10:21 13:12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이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의해 당하게 고난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이해될 있는데,

 

(10:21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13:12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이러한 상황은 단순히 신자와 비신자라는 형식 때문에가 아니라

신자의 진리성과 비신자의 진리성의 충돌로 인해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 12:53]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

 

절에서 언급한 '다섯 사람' 구체적으로 열거되고 있다.

집은 아버지, 어머니, 결혼한 아들내외, 그리고 아직 출가(出嫁)하지 않은 딸로 이루어진 5 가족이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글들은 7:6 에서 것으로,

가족의 비극적 분열을 강조하기 위하여 서술된 표현이다.

 

( 7:6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를 따르는 성도들은 예수와 가족들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있음을 각오해야 하며

그것은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 것이다.

 

( 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18: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