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도에 관한 교훈
성 경: [눅 14:25-30]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눅 14: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 바리새인의 집에서 떠나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고 있으며 수많은 무리들은 그의 뒤를 따르고 있다.
여기서 '수많은 무리'는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이 상당히 많았음을 시사하며 아울러 예수의 인기가 대단하였음을 뜻한다.
하지만 그들 대다수는 예수께 현세적 축복을 갈구하는 무리들이었다.
혹자는 이 무리가 절기를 지키기 위해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순레자들 이었고(Farrar),
이들은 예수께서 메시야로서 예루살렘에서 왕위에 등극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따랐던 것이라고 한다(Plummer).
▶ 돌이키사 - 예수의 가르침이 시작될 때 많이 사용되는 용법이다.
(7:9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9: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10: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2: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예수께서 이 시점에서 진행을 정지시키신 것은 무리들의 빗나간 기대에 제동을 걸어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눅 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 미워하지 아니하면 - 예수에게 나아오는 것이 그의 부르심에 대한 일차적인 응답이라면 본 구절은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 보여야 할 이차적인 응답에 해당한다.
일차적인 응답으로부터 이차적인 응답으로 발전하기 의해서는,
수행해야 할 하나의 과제가 있는데 그것은 자기의 모든 혈육과 심지어는
자기 자신까지도 미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미워한다는 것은 문자적인 의미에서 심리적으로 미워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미워하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미세이'가
'조금사랑하다', '덜 사랑하다'의 뜻으로,
상대적로 다른 것보다 덜 귀히 여기는 것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마 19: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어떤 사본에는, '부모나' 아래에 '아내나'가 있음).
결국 예수의 말씀은 무리들이 당신을 따름에 있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예수의 뜻을 추종하려는 것인지를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즉 세상의 일과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 중,
후자의 것에 궁극적(窮極的) 가치를 두지 않고 있다면
예수를 따르는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한편 누가는 마태가 기록하지 않고 있는 '형제자매' 및 '아내'와의 단절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 중 특히 '아내'에 관한 부분은 20절과의 관계에서
누가가 특별히 기록한 것이라고 본다(Marshall).
[눅 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 자기 십자가를 지고 - 본 구절의 문구는 9:23에 표현된 진리를 부정적 형식으로 바꾼 것이다.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기서 부정적인 형식으로 말씀하시는 까닭은 지금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이
십자가를 지는 것과는 거리가 먼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예수를 따르려는 자는 자기의 십자가를 져야 하는데
여기서 '지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바스타조'는 요19:17에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표현 할 때 사용된 단어이다.
(요 19:17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예수께서 십자가지신 것처럼, 그를 따르려는 자는 '누구나' 십자가를 져야 하며
당시에 죄수들이 자기의 십자가를 자신이 져야 했듯이
예수를 따르는 자도 자기의 십자가를 자기가 몸소 져야 하는 것이다.
[눅 14: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 망대 - 이는 13:4에도 언급되는데 그와 달리 여기서는 '농장 건물'을 뜻한다고 본다(A.G.Marshall).
(13: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이러한 건물을 지을 때는 기초 공사만 놓는데도 상당한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 먼저 앉아 - '앉아'(카디사스)는 정밀한 계산을 위해서 정좌하여 앉는 것을 묘사하는 말이다.
건축을 시작하기 전에 거기에 소요(所要)되는 비용을 철저히 계산하여
자기가 확보한 돈으로 건축을 시작해도 될지 잘 판단해야 하는 것처럼
예수를 따름에 있어서도 그 길은 결코 부귀영화를 누리는 길이 아니라,
자기의 목숨까지도 희생해야 하는 길임을 알아
냉철한 판단에 의해 따르기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때 주께로 향한 뜨거운 열정을 보이던 사람이 얼마가지 않아
작은 시험조차 이기지 못해 쓰러지는 경우가 많음을 생각할 때,
이 말씀은 더욱 깊이 상고되어야 할 것이다.
[눅 14: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 아마 당시에는 치밀하고 완벽한 준비 없이 건축을 시작하여 기초만 쌓고 건축을 중단 하거나 또는 건축 중간에 비용이 없어 중단하는 미련한 사람들이 더러 있었던 듯하다.
일설에 의하면 빌라도가 수도 공사를 진행시키던 중 공사비 부족으로
중도에 공사를 중단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 비웃어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엠피이제인'은 '놀림감'을 만들다', '조롱하다', '우습게 보다'의 뜻으로 어리석은 건축자가 당하게 될 부끄러움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따르겠다고 하고 신앙인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일에 있어서 실패가의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은 애초에 따르겠다고 나서지 않은 것만 못한 상태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망신을 당할 뿐만 아니라 예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죄악조차 범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눅 14: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 이 사람 - 이는 경멸적 또는 풍자적 용법으로서 '이 친구' 라는 뜻이다.
예수를 따르려는 자는 일시적인 충동이나 잘못된 비전(Vision)을 가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시작될 경우 마지막까지 십자가를 지는
참다운 제자가 될 것이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작의 귀중함은 결과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히 6: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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