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거듭난 삶 2018. 6. 13.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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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에 관한 교훈

 

: [ 18:24-30]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있나이까

27)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 18:24]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어려운지 - 이는 굉장히 힘들다고 하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며 나아가 일이 본래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함을 암시한다.

 

성경은 부자가 영생을 얻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다.

 

부자가 영생을 얻기 힘든 이유는

 

(1)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재물을 의지함으로

 

( 52:1-6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에돔인 도엑이 사울에게 이르러 다윗이 아히멜렉의 집에 왔다고 그에게 말하던 때에]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2)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3)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셀라)

4) 간사한 혀여 너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5) 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장막에서 뽑아 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뿌리를 빼시리로다 (셀라)

6)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그를 비웃어 말하기를;

 

18:11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

 

딤전 6:17 네가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2) 부의축적을 위해 가난한 자들을 돌보지 않고 그들을 압제함으로

 

( 18:23 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

 

22:13-19 불의로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있을진저

14)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15)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있겠느냐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16)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7) 그러나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뿐이니라

18)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형제여, 슬프다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19) 그가 끌려 예루살렘 밖에 던져지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딤전 6:17-19 네가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요일 3:17 누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속에 거하겠느냐),

 

(3) 치부하고자 하는 탐심 때문에 ,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12:15-21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부자가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곳간을 헐고 크게 짓고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내가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16:13-31 하인이 주인을 섬길 없나니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없느니라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17) 그러나 율법의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18) 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19)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21)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하나님은 재물 뿐만이 아니라 천하 만물을 관리하고 다스리도록 우리에게 맡기셨다.

따라서 우리는 재물을 소유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관리의 개념으로 받아들여 하나님의 일을 위해 관리하고,

이웃과 함께 나누고 그들을 섬기는 일에 사용해야 것이다.

 

 

[ 18: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 흔히 랍비들은 불가능한 어떤 일을 가리킬 코끼리가 바늘귀로 들어가려고 한다는 말을 했다.

 

본절에서 '낙타' '바늘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도 예수께서 의도하신 비유의 의미는 분명해진다.

 

다만 어떤 학자들은 단어를 다음과 같이 이해하기도 한다.

 

첫째,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대문 옆에는 사람이 겨우 지나다니기에 알맞은 넓이와 높이를 가진 작은 문이 있었다고 한다.

작은 문은 바늘귀 문이라고 불렸는데 여기서 말하는 표현은, 약대가 작은 문을 억지로 들어가려 하는 모습에서 생긴 것이라 한다.

 

하나는 '약대' 나타내는 헬라어는 '카멜로스'인데 발음이 이와 비슷하게 들리는 '카밀로스' 단어는 선박용 밧줄을 의미한다.

따라서 '밧줄' 바늘귀에 꿰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보다는 쉽다는 비유로 이해한다.

 

따라서 여기서 예수께서 의도하는 바는 부자가 자신의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려 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인간이 소유하여 즐기는 재물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를 가르쳐 주려는 것이다.

 

( 19: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10:23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 18:26]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있나이까

 

누가 구원을 얻을 있나이까 - 여기서 '구원받다' 말은 '영생을 얻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물음은 '그렇다면 구원을 얻기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라는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리빙 바이블(Living Bible)

'그토록 어렵다면 어느 누가 어떻게 구원받을 있겠습니까?'

(If it that hard, how can anyone be saved?)라고 옮겼다.

 

예수와 부자 관원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주위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개념상 부귀는 하나님의 축복 하나로 여겨졌으며,

 

( 1: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당시 종교적 관행상으로 볼때 관원의 행실은 거의 완벽할 정도로 율법에 충실한 듯이 여겨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 18:27]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있느니라

 

하나님은 하실 있느니라 - 이는 부자 관원과 나누신 대화의 결론이다.

영생을 얻기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 관원에게 예수께서 십계명 일부를 제시하신 것은 사실상 계명을 스스로의 힘으로 지킬 없음을 고백케 하시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온전한 의미에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설령 율법의 부분을 지켰다고 하더라도 다른 부분을 범하고 마는 것이 인생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원은 ' 지켰노라' 자신 있게 대답했다.

따라서 예수는 관원이 부자이고 그의 마음이 물욕을 떨쳐버릴 없음을 알고 허를 찌르는 요구를 하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번째 요구 말씀도 실천을 요청하신 것이라고 보다는 '인간으로서는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있음' 알게 하시려는 의도를 시사한다.

 

왜냐하면 관원이 설령 예수의 말씀을 좇아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구제하였다고 해도 행위만으로 구원을 얻을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게 진정 필요했던 것은 오직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믿고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이었다.

 

 

[ 18:28]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 일시적으로 두려움과 절망에 빠졌던 제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에 관한 예수의 대답을 듣고 확신을 갖게 되었고,

 

(27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있느니라)

 

관원이 하지 못한 일을 자신들은 해왔다고 하는 정열적 고백과 확인 요구의 말씀을 한다.

 

19:27 의하면 베드로는 뒤에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말을 덧붙인다.

 

부자 관원과는 틀리다고 하는 자부심을 은근히 비춰주는 베드로의 말은 처음 그가 예수를 만나 따라 나설 때의 극적인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 4:20 그들이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의 부름을 받았을 그가 헌신적인 결단을 감행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은 결과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축복에 이르게는 되었지만 예수의 공생애 당시만 하더라도 메시야관이나 천국관에 있어 많은 오해를 지니고 있었고 인간적 나약함이나 무지로 말미암은 시행착오를 무수히 겪어야 했던 것이다.

 

( 14:66-72 베드로는 아랫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와서

67) 베드로가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68)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69) 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사람은 도당이라 하되

70)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도당이니라

71)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72) 닭이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구절의 경우는 은근히 자신의 공적을 내세우려는 과시욕과 예수의 말씀에 담긴 속뜻을 헤아리지 못한 아둔함을 드러내 보인 경우라 있다.

 

아마 제자들은 부자 관원에게 하신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예수의 말씀에 귀가 솔깃해졌을 것이다.

 

(22 예수께서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 18: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 19:29 의하면 ' 이름을 위하여'이며

10:29 의하면 '나와 복음을 위하여'이다.

 

따라서 예수와 그의 복음과 하나님 나라는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됨을 의미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계신다. 하나님 나라의 선포가 바로 복음이다.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 누가가 포기의 대상(물건, 사람)으로 삼은 것은 마가가 명시한 것과 다르다.

 

누가는 마가가 기록한 '전토'(田土) 생략하고 대신 '아내' 포함시켰는데,

이는 그가 버려야 대상을 주로 인간관계에 집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수도 있다(Marshall).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예수를 따르기 위해 그들의 가정과 직업까지도 포기함으로써 많은 대가를 지불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무엇인가 포기해야 했던 사람들은 누구든지 금생과 내생에서 충분히 넘치도록 다시 보상을 받을 것이다.

 

예를 들면, 만일 사람이 안정된 직업을 포기해야만 한다면 사람은 하나님께서 금생과 내생에서 자신과 안전된 영원한 관계를 갖도록 하실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만일 사람이 가족의 친성(親性) 포기해야만 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가족의 사랑을 얻을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를 따르는데 수반되는 희생 대가를 지불했다. 아울러 예수께서도 그들이 모든 것을 보상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미 포기한 것에 대해 미련을 두고 집착해서는 된다.

아울러 우리가 포기한 것에 대한 대가로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서도 된다.

 

이러한 불가피한 포기나 헌신은 구원을 위한 담보물로서가 아니라 구원에의 확신에 따른 자발적 순종의 표시로서 이해되어야 하며,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 만큼은 잃을 없다는 것이다.

 

 

[ 18:30]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 누가와 마태는 단지 '여러 '(many times, NIV) 받는다고 기록한 반면 마가는 ' '라고 하여 최상의 보상을 강조하고 있다.

 

( 19:29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하리라 어떤 사본에는, '부모나' 아래에 '아내나' 있음;

 

10: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또한 마가는 '핍박을 겸하여' 받게 됨을 지적하고 마태는 굳이 현세와 내세를 구분하지 않고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축복을 시사하지만, 누가는 현세의 보상에 비교적 강조점을 많이 두었다.

 

구절을 이해함에 있어 우리는 단지 물량적이고 세속적인 의미에서 보상의 기준을 삼아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의 뜻이 함께 하면 성도들이 물질적 축복을 많이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주의로 살아가면 단지 일용할 양식만으로도 만족할 있지만 세속적 탐욕의 노예가 되면 백만장자가 되어도 불만과 번민에 시달릴 있는 것이다.

 

요컨대, 문제는 누림의 질에 있는 것이지 양에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현실에는 핍박과 고통이 함께 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물질적 어려움을 당하는 일이 허다하지만,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소망으로 말미암아

 

'아무 것도 없는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라고 하는 역설적 충족감을 맛보며 있는 것이다.

 

(고후 6:10 근심하는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