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거듭난 삶 2018. 6. 25.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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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과 그의 종들

 

( 19:11-27) 그들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나라로 때에

13) 열을 불러 은화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4) 그런데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사람이 우리의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15)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16)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므나로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20)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두었었나이다

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23) 그러면 어찌하여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이자와 함께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므나를 빼앗아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므나가 있나이다

26)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27) 그리고 내가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 경우에 주님을 따르는 자들의 기대는 어떠하였을까.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했다.

(11 그들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바리새인들도 이때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리라고 기대했다.

( 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그리고 주님의 제자들까지도 그러했던 같다. 그러나 이들은 착각했다.

바리새인들은 왕국이 예수 이외의 어떤 다른 속세의 왕자나 권력자에 의하여 이루어질 줄로 생각했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선생님이 왕국을 이룩하시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주님의 세속적인 화려함과 권세로써 감행하시되 전에 이적을 행하시던 권능으로 하시리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주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잠깐 사이에 왕이 되실 있을 것으로 알았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은 바로 주님의 왕의 권좌가 것이라 결론짓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주님께서 직접 그곳으로 가고 계시니 얼마 있으면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서 왕좌에 오르실 것을 의심치 않았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선하고 믿음이 있는 사람들도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하여 착각할 위험성이 있으며, 왕국을 잘못 이해하고, 이때까지 보류되었던 왕국이 당장에 나타나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 어떻게 그들의 기대는 좌절되었으며 착오를 근본적으로 어떻게 바로잡았을까.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가지 방법으로 이를 바로잡으셨다.

 

1. 그들은 주님께서 지금 당장 영광중에 나타나시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아직은 오랫동안 당신의 나라를 공공연하게 세우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귀인(고상한 사람) - 가문이 좋은 집안사람(하몬드 박사가 표현한 ) 같았다.

주님은 하늘로부터 오셨고, 나면서부터 하늘나라에 속해 있으시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 자신을 위한 왕국을 받으시려고 나라로 가셨다.

그리스도는 마땅히 하늘로 올라가셔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아버지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으실 분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성령이 오셔서 주님의 왕국이 위에 세워지고, 전에 주님을 위한 교회가 이방인 세계에 세워져야 했다.

주님은 마땅히 위에 세우신 왕국을 받아 가지고 하늘나라로 돌아가셔야 한다. 주님은 성령이 오셨을 , 예루살렘이 멸망하였을 때에 돌아오셨다.

때에는 친구들과 원수들이 서로 대화하던 세대들이다. 사망에 의하여 없어지고 그들의 가치를 단념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주님의 돌아오심의 주요한 뜻은 우리가 아직도 기대하고 있는 날인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 당장 오리라고 기대하는 왕국에 대하여 그리스도는 말씀하시기를

"하늘로 올려지신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그대로 오시리라" 하셨다.

(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2. 이들은 기대하기를 주님의 사도들과 수행원(종자)들은 권위와 존귀를 나보다 먼저 받아서 왕자와 귀족들, 추밀 고문관과 법관들이 되어 법정과 도시의 화려함과 우선권을 누릴 것이라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되기보다는 주님께서 경륜하시는 바는 그들(사도들과 수행자들) 직업인들이 되게 하셔서 세상에서의 어떤 우선권을 기대하기보다는 세상에서의 일을 충실히 하게 하며, 그들이 일거리를 주어 그들 자신이 이를 이용하여 주님을 섬기며 세상에 주님의 왕국을 세우는데 유일한 일을 하도록 하셨다.

이것이 그리스도인과 전도자의 참된 명예로써, 우리가 진정으로 이렇게 되기를 열망한다면, 성인다운 경멸하는 태도로 모든 세속적인 명예를 남의 일처럼 생각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도들은 현재는 자기들이 수고를 하고 남에게 경멸함을 받지만, 후에는 주님의 왕국에서 주님의 우편에 앉아서 편안하게 즐기게 되리라고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도들이 주님의 경륜하심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면 자기들은 머리에 차있는 열망에 부풀기보다도 걱정과 근심과 심각한 사려에 잠길 것이라 말씀하셨다.

 

(1) 사도들은 이제 해야 일이 있다.

그들의 주님은 왕국을 받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신다. 떠나시면서 사도들에게 각기 한파운드(므나) 주신다. 성경의 난외에는 므나가 파운드 남짓 하다고 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받은 모든 은사와 세상에서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사업을 봉사할 있게 장점과 자격, 또한 어느 정도 낮기는 하지만 사도들과 같은 사명과 자격을 가진 전도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비유에서와 같이 차이가 있게 표현된 것은 사도들로 하여금 보다 겸손하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세상에서의 사도들의 영예는 상인의 그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장사를 하기에 많은 재고량을 가지고 있는 일류상인도 아니고 넉넉지 못한 상인의 자격을 가졌을 뿐이다.

그러므로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장사를 하려면 조심도 많이 하고 고통도 많이 받지 않으며 된다.

주님이 므나를 당신의 종들에게 주신 것은 예복(禮服)보다는 훨씬 못한 화려한 정복(正服) 사거나 훌륭한 마차를 사서 그들이 바라는 대로 자기들을 돋보이게 하려하심이 아니다.

다음과 같은 책임을 지우시기 위함이었다.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이것은 바쁜 일이다. 장사한다는 말은 표현된 말이다.

"너희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떠난다. 세상에 그리스도를 위한 교회를 세워야 하며, 모든 국가들이 믿고 그리스도를 순종하도록 하며 모든 국가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세워지도록 하라. 너희는 그렇게 있는 능력을 받으리라. 이는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1:8).

그리스도께서 제자를 향하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하시며 그들에게 므나를 주셨다.

주님은

" 이제 너희는 너희들의 일을 명심하라. 일을 열심히 시작하고 꾸준히 계속하라. 너희 자신들이 계획하되 사람들의 영혼들을 위하여 너희들의 가능한 모든 선을 행하고, 그들을 모두 그리스도께로 모이게 하라" 말씀하신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이 있다. 전도자들이 특히 그렇다.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침례를 받지 않았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전도자들도 게으르게도 침례를 받지 않았었다.

 

[2] 그리스도를 위한 일을 사람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임무에 필요한 은사를 주님께서 주시고, 반면에 당신께서 능력을 주시는 자들로부터 봉사함을 받기를 기대하신다.

주님께서는 므나를 주시는 동시에 가서 일하라, 가서 장사하라는 책임을 주신다.

"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다"(고전 12:7).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3] 우리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우리의 일을 계속하여 명심해야 한다.

어떠한 어려움이나 반대가 있더라도 그것을 감당할 것이며, 끝까지 견디는 자만이 구원받을 것이다.

 

(2) 종들에게는 머지 않아 청산해야 회계가 있다.

종들은 주님께로 불리운다. 그것으로 위엄을 갖추었던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사를 어떻게 이용했는가를 보여드려야 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봉사한 일이 무엇이며, 사람들의 영혼을 위하여 무슨 선한 일을 하였으며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부르시는 것이다.

 

[1]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하여 부지런히 또한 충실히 장사한 사람은 상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사업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없다. 열심히 장사하지만 손해를 보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장사하는 사람들은 이를 본다. 이스라엘이 모이지 않더라도 저들을 영광되게 하시리라.

 

[2] 영혼의 회개는 영혼의 승리이다. 진정한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시 결백해짐이다.

전도자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대리자이며, 주님께 복음의 그물로 에워싸인 물고기가 무엇이라는 것을 여쭈어야 한다.

어떠한 손님을 주님의 혼인 잔치에 오도록 설득했는지 말해야 한다. 이들은 바로 전도자들이 장사하여 얻은 이익이다.

여기서 알아두어야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람의 종이 말한 좋은 보고와 저들에 대한 주님의 칭찬이다.

이러한 좋은 보고를 사람이 둘이 있다.

(16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므나로 므나를 남겼나이다,

18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a. 이들은 둘이 상당한 이를 남겼다. 그러나 둘이 같은 것은 아니다.

하나는 장사를 하여 10므나를 얻었고 다른 종은 5므나의 이를 남겼다.

그리스도를 섬김에 있어서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들은 보통 그들이 사는 곳에서 복되게 하는 축복을 받고 있다.

이들은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게 것이며, 수고가 헛되지 않을 "이다.

그러나 똑같이 충실하다고 해서 똑같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아마 종들이 충실했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고통을 받고, 다른 종보다 자기 직무에 밀접하게 정력을 쏟을 있으며, 따라서 일이 빨리 진척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축복 받은 사도 바울은 분명히 10므나의 이익 다른 나머지 종의 이익의 배나 남긴 종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노력하였으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충분히 전했기 때문이다.

 

b. 종은 자기들의 주님에 대한 의무를 알고 있었다.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주님을 섬길 능력과 기회와 아울러 일을 맡기셨던 것이다. 주여 제가 10므나의 이익을 남긴 것은 제가 일이 아니고 주님의 은사의 므나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소득의 모든 영예를 받으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영예를 돌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리되 찬송을 돌려야 한다.

( 65:1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10므나의 이익을 바울은

"나의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다" 것을 깨달았다(고전 15:10).

사도 바울은 자기가 일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시켜서 하신 일을 말한다.

( 15: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c. 종은 충성과 근면으로 일할 것을 명령받았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주님은 다른 종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였다.

(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것은 선을 행한 사람은 이와 같은 칭찬을 받는다는 것이다.

잘하자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잘하였다"하고 말씀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잘하였다" 말씀하시면 달리 무엇이라도 이상 가는 것이 없다.

*참조 (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d. 종들은 그들이 선행에 비례하여 우선권을 받았다.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므나을 가지고 장사하러 감이 가만히 앉아 있는 것과 같으니 이렇게 적은 밑천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는가? 하고 말씀하지 않고 겸손하고 정직하게 밑천을 () 남기기 위하여 힘을 썼으니,

"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말씀하셨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일어나기를 순조롭게 하는 사람들은 낮게 시작하기를 기꺼이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를 얻는다"(딤전 3:13).

여기에서 사도들은 가지 언약을 받았다.

 

(a) 사도들이 많은 교회를 세우느라고 고통을 받을 때에는 그들에게 통할하는 만족함과 존귀함을 받을 것이며 교회를 다스릴 것이며, 교회들에게 존경을 받을 것이고 선한 그리스도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중에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과실을 먹고,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은 배나 존경을 받으리라.

 

(b)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자기들의 세대를 위하여 봉사할 때는 비록 세상에서 경멸함을 받고 짓밟히며 혹시는 사도들이 당했던 것처럼 치욕과 핍박을 당할지도 모르지만 세상에 가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왕과 같이 나라를 다스릴 것이며 주님과 함께 왕좌에 앉아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얻게 것이다.

( 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하늘나라의 즐거움은 선한 전도자나 그리스도인에 대해서는 훨씬 것으로써 가난한 장사가 많은 수고를 하여 10 므나를 얻게 되어 10 도성(都城) 장관이 되는 것보다도 즐거움이다.

5 므나의 이를 사람도 다섯 성을 통치하게 되었다. 이것은 하늘나라에서는 영광의 등급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릇마다 같이 찼다고 해서 크기도 똑같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영광의 등급이 이용도의 정도에 따라서 다르다.

둘째, 므나를 받은 좋지 못한 결산 보고를 사람은 그의 나태함과 불성실로 인하여 저주의 판결을 받았다.

(20 이하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두었었나이다).

 

a. 그는 자기에게 위임된 므나를 가지고 장사하지 않았음을 시인했다.

"주여 보소서, 주의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사실입니다. 나는 이것을 가지고 이를 남기지도 않고 손해를 보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수건으로 싸두었었나이다.

말은 은사를 받고도 그것을 가지고 선을 행하려고 계획하지 않는 부주의한 사람을 표현한다.

태도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한 사업이 잠겨져 버리느냐 헤엄쳐 나가느냐, 뒤로 물러가느냐 앞으로 나아가느냐가 달려 있다.

이런 조심성 없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왕국 사업에 관심도 없어서 고통도 받지 않고, 손해를 것도 없으며 위험성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세상에서 선행은 못하더라도 해로운 일은 안했다고 말할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므나를 수건에 두는 종들이다.

 

b. 나쁜 종은 나쁜 일도 안하고 선한 일도 않았다는 것을 변명 삼아서 자기의 잘못을 스스로

정당화했다.

(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헬라어로 "아우스테레" 말은 날카로운 사람이란 뜻이다.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나이다.

그는 자기의 주인이 므나를 주면서 이를 남기기를 요구하고 기대할 때에 자기에게 어려움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심지 않는 것을 거두나이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상은 심은 데서 거두고 주인이 기대한 대로 그가 심은 것에 비례하여 거두는 것이다.

그는 주인의 준엄함을 두려워하거나 그의 기대를 책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의 말은 속이는 것뿐이었고 달리 변명할 없는 그의 게으름을 하찮게 근거없이 변명하려는 것뿐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것은, 검사를 받게 되었을 때에 게으른, 자칭 신앙인의 변명은 자기들의 입장을 정당화하기보다는 수치를 드러내게 뿐이라는 사실이다.

 

c. 그의 변명은 그에게로 되돌아갔다.

"내가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악한 종아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는 범죄로 인하여 정죄 받을 운명에 처해 있다. 그러나 그는 변명하므로 죄를 더욱 악화시켰다. (장사만 했다면 틀림없이 이익은 남았을 것이다)

"만일 네가 장사를 하여 이익을 보는 것은 어렵게 여기었다면 나의 이를 중하게 생각하여 나의 돈을 은행에 예금을 하였더라면 나의 아니라 이자가 있을 것이니 비록 적긴 하더라도 얼마간의 이익을 있을 것이라"라고 말했다.

그가 원금을 잃고 주인에게 변명을 하는 것이 두려워 장사를 감히 없었다는 그의 말이 옳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변명은 이익이 확실히 보장되는 장사를 하지 않은데 대한 변명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것은 게으른 신앙 고백자의 꾸밈이 그의 게으름을 변명하기 위하여 어떠한 말이나 모양으로 나타나더라도 진정한 이유는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무관심하고 그에 대하여 냉담한 것이다.

이들은 종교에 대하여 기초가 잡혀 있느냐 기초가 없느냐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안이하게 살아나갈 수밖에 없다.

 

d. 게으른 종의 므나는 빼앗겼다.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므나를 빼앗아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은사를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은사를 잃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은사를 잘못 다루는 사람은 이상 신임 받을 없는 것도 당연하다.

자기들의 주님께서 맡겨 주신 것으로 주님을 섬기지 않은 사람들이 받은 것을 가지고 자신을 섬기는데 고통을 당해야 될까?

"그에게서 므나를 빼앗으라.

빼앗은 므나는 10 므나를 가졌던 사람에게 주었다. 이미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주느냐고 옆에 있던 사람이 반대했을 때에 (주여 저에게 이미 10므나가 있나이다. 25) 주님은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26).

이것은 정당한 법이다.

 

(a) 가장 부지런한 사람과 선행을 하는데 헌신한 사람은 보다 선행을 많이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보다 높은 범위가 일을 지위에 놓여져야 한다.

이익을 사람, 이익을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에게는 주어진다.

 

(b) 은사를 받아서 갖고 있는데도 마치 은사를 갖지 않고 있는 것처럼 아무 목적도 없어서 은사를 가지고 선행을 하지 않은 사람은 은사를 빼앗을 수밖에 없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은사를 늘이려고 힘쓰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시고, 은사를 경멸히 여기는 사람들과 은사를 못쓰게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실 것을 기대할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요긴한 경계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셔서 그들이 지상에서의 명예를 탐냄으로써 자기들이 일을 경시하다가 하늘나라에서의 행복을 받지 못하게 되지 않도록 하셨다.

 

(c) 주님의 제자들이 가지 기대했던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유대인의 국가는 즉시 나라와 하나가 되고, 나라에 순복되어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사상과 주님의 복음을 싫어하는 일이 없어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주님께서 떠나신 뒤에는 완고함과 패역함으로 유대인의 대부분이 빠져 들어가 결국은 멸망하고 말리라고 하셨다.

사실로 다음의 기사로 있다.

 

(d) "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었다"(14).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어려운 처지에 계실 때에 주님을 반대할 아니라, 당신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시려고 영광의 자리로 들어가신 뒤에도 유대인이 계속하여 주님을 적대시하고 주님의 주권을 반대하며 말하기를

" 사람이 우리의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하였다.

 

[a] 이러한 일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뒤에 유대인들의 심한 배신행위와 복음 왕국의 건설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그들의 목을 주님의 멍에에 복중하지 않고, 주님의 주권에도 순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말했다.

"우리가 것을 끊고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도다".

( 2:1-3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3) 우리가 그들의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b] 사실은 모든 ()신앙자들이 하는 말이다.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을 구원할 것을 흡족히 여길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자기들을 다스리시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들의 유일한 왕이시며 그들의 구주이시고 그들이 마땅히 순종해야 분이시다.

 

(3) 주인은 돌아와서 종들에서 선언을 내렸다.

"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27 그리고 내가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주인의 신실한 종들이 칭찬 받고 상급을 받을 때에, 주인의 원수들에게는 앙갚음을 하고 특히 유대 국민에게는 멸망이 것을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복음의 나라를 세우시고 복음 사업의 명성이 드날릴 때에는 주님께서 오셔서 유대인들과 회계하시고, 그들이 특히 주님의 왕권을 부정하고 반항한데 대하여 기억하실 것이다.

이때에 그들은

"우리에게는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으며 그리스도를 왕으로 삼기를 원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들은 가이사에게 호소했으며, 가이사에게로 것이다. 가이사는 그들의 멸망을 것뿐이다.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대하여 조화될 없는 원수들에게 복수가 취해진 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나고, 그들을 끌어다가 주님 앞에서 죽임을 당할 것이다.

유대인들의 싸움에서 처럼 많은 죽음을 당하는 일은 어느 전쟁에서도 일찍이 없었다. 주님의 복음과 나라에 대하여 적대시하고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이방 세계에서 그리스도교의 승리적 번영을 있도록 남아 있는 나라는 때에는 쓰레기처럼 버림을 받게 된다.

(살전 2:15-16 유대인은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그리고 그들의 멸망은 그리스도의 영예와 교회의 평화에 매우 도움이 된다. 사건은 완악함을 고집하는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되어 틀림없이 이로 인하여 멸망될 것이다.

 

알아 ,

 

[1] 그리스도의 원수들은 틀림없이 전부에게 멸망이 임할 것이며, 앙갚음하는 날에는 그들은 모두 끌어다가 주님 앞에서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들을 주님 앞으로 끌어다가 성인들과 천사들 앞에서 구경거리가 되게 것이다.

* 참조 ( 10:22 때에 여호수아가 이르되 어귀를 열고 굴에서 다섯 왕들을 내게로 끌어내라 하매,

24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하매 그들이 가까이 가서 그들의 목을 밟으매).

그들은 주님 앞으로 끌어다가 그들이 미워하고 핍박하던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자들의 영광과 즐거워함을 보도록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쓰잘 없이 변명했던 것이 뒤집히고 자기들이 짓에 따라서 선고를 받는 것을 보게 것이다.

아각이 사무엘 앞에서 당한 것처럼 그들을 끌어다가 주님 앞에서 죽이게 된다. 그들이 경멸히 여겼던 구주께서는 옆에 서서 그들이 죽는 것을 보시면서도 본체 만체하실 것이다.

 

[2]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지 못할 사람들은 주님의 원수로 여겨지고 다루어질 것이다.

우리들은 생각하기를 우리는 하나도 그리스도의 원수이거나 그리스도교의 핍박자도 아니고, 적어도 냉소자도 아니라고 하기 쉽다.

그러나 구원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멍에를 지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의 길을 가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것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은사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진노에 의하여 불가불 멸망당하고 것이라는 사실이다.

*메튜헨리의 주석을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