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을 훈계하심
(눅 22:21-38)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22)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23) 그들이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35)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36)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38) 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이제 식사 후 그리스도와 제자들 사이에 오고 간 대화의 내용을 읽게 된다.
많은 내용이 여기에 새롭게 기록되어 있다.
요한복음에서는 또 다른 내용이 첨가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를 통하여 식탁에서 이렇게 가족과 친구들에게 훈계하고 권면하는 대화가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목회자들은 이점을 명심해 교인들에게 시도해 보도록 할 것이다. 특히 주의 만찬에
참석한 후 기독교 회의를 소집하면 서로 원만히 결속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여기에서 나누신 대화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그 목적이 다 있었다.
Ⅰ. 그는 지금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자들 중의 한 사람에게 배반당하실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1. 그는 그들 가운데, 그들 중에 그를 팔아넘길 자가 있음을 암시하였다.
(21절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에서는 만찬 이전에 이 말씀을 하셨지만, 여기에선 만찬 후에 이 말씀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유다도 주의 만찬에 참석하였고 "그 떡을 먹고 그 잔을 마셨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왜냐하면 엄숙한 장면이 끝난 뒤, 그리스도께서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위에 있도다." 그리스도와 함께 식사한 자들 가운데 그를 배반할 자가 있었다.
2. 그는 그 음모대로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22절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가 배반당할 그곳으로 갈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미리 세워놓으신 계획에 따라 올라 갈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유다라도 그를 그곳으로 올라가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쫓겨서 고통을 받은 것이 아니라 몸소
"고통을 받으러 나가셨다."
"보라. 내가 가리라"고 말씀하셨다.
3. 그는 배반자에게 경고하셨다.
"그를 파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고통 중에도 성도들이 잘 참으며 그 고통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그 고통을 주는 일에 관련되었거나 그들을 박해하는 자들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배반당하시도록 "예정하셨고" 그리스도께서도 기쁜 마음으로 그 고통을 받으셨다 해서 유다의 죄와 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4. 그가 그 배반자가 그들 가운데 있다고만 말씀하시고 이름을 대시지 않으심으로 제자들은 서로 놀라 의심하게 되었다.
(23절 그들이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저희가 서로 묻되" 서로 질문하되, 서로 물어보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
이처럼 선한 주님을 배반할 자가 "누구일까?" 하였다.
그들의 질문은 "너냐?" 혹은 "그가 아닐까?"가 아니라 "저입니까?"였다.
Ⅱ. 제자들 가운데 우선권과 우열에 대한 분쟁이 일어남.
1. 논쟁의 내용. "그 중 누가 크냐." 성령이 그들에게 강림하기 "전에" 이와 같은 권위와 지위에 대한 많은 다툼이 있었는데 이는 성령이 오셔서 그런 문제들을 버리라고 하신 이후라도 교회에서 자리다툼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안타까운 현상이다.
바로 전에 했던 일과 이처럼 모순되는 일이 또 있을까!
바로 전에 그들은 누가 배반자가 될 것인가 서로 묻더니 지금은 누가 왕이 될 것인가 하고 묻고 있다.
이처럼 가깝게 지내는 똑같은 사람들 입에서 자만과 허영심에 불타 우둔한 자의 소치를 들어낼 수가 있었을까?
이것은 마치 한 샘에서 동시에 "맑은" 물과 "썩은" 물이 솟아나는 것과 같다.
인간의 간교한 마음이 가지는 자기모순이 아니고 무엇인가!
2. 이런 논쟁에 대한 그리스도의 말씀. 그들을 호되게 꾸짖으실 것 같았는데(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그는 날카롭게 책망하시곤 하셨다) 오히려 부드럽게 그 논쟁의 죄와 잘못을 깨우쳐 주셨다.
(1) 이런 논쟁은 그들을 세상 권력, 세상 명예를 탐하는 "이방인의 임금들"처럼 만들 것이다.
(2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그들은 자기 백성들을 "주관하며" 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제왕들도," 그들이 아무리 "선하다" 할지라도 자기보다 강하지 않다고 여겨지면 여지없이 그들을 주관하려 한다.
이 "주관"이란 말은 그리스도의 목회자들보다는 "이방인의 임금들"에게 더 어울리는 말임을 명심하자.
그러나 또 명심할 것은 권력을 멋대로 행사하며, 법을 만드는 그 Euverge,taj - 즉 집권자들이 은인이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그들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아첨배들은 그들을 은인이라 부르며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그들을 섬기게 된다. 그들이 "은인이었다"는 것처럼 꾸며지고 그런 이유로 그에게 "법도 소유하도록" 일임해야 한다고 떠들어댄다.
사실은 그게 아니라 집권하면서 은인이 되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그들은 진실로 그들을 섬기게 될 것이며 그들은 "자기 나라를 위하여" 일하고 있다고 생각될 것이다.
프톨레미(Ptolemy; 기원 전 3, 4세기의 이집트 왕조; 역주) 왕조 중에도 Euergetes - 즉 은인이란 이름으로 불려진 왕이 있다.
이제 우리 구세주께선 이것을 아시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다.
[1] "큰 것을 구하는 것"보다 "선을 행함"이 더없이 큰 영광이다.
"힘센 자의 두려움"이었던 임금들은 영광을 얻지 못했지만 오히려 "없는 자의 은인"은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 자신의 고백에 따른다면 자기 나라의 통치자보다는 자기 나라의 은인이 더 귀하게 여겨지게 된다.
[2] "선을 행함"이 크게 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그밖에 달리 통치자가 되려는 자들이 "은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최선을 다해 선을 행하는 것만이 최고의 영광을 얻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세상에 복음을 줌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 세상의 "은인"이 되어야만 하였다.
그와 같은 명칭에 어울리는 행위를 하여라. 그들이 진정 그 "명칭에 합당한" 자들이 되면 누가 가장 크냐는 등의 논쟁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보다 큰 자," 세상에 집권하는 제왕들보다 더 큰 축복을 인류에게 가져다 준 자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분명하게 "더 큰" 명예, 은인 되는 명예를 소유하였다면 이보다 적은 명예, 통치자가 되려는 욕심은 버리게 될 것이다.
(2) 이런 논쟁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겐 어울리지 않은 일이며 그리스도 자신에게도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26-27절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진리와 은혜의 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지배하도록 부탁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느냐? 오히려 너희는 섬겨야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교회 지도자들이 세속적인 유익과 영향을 받아 외적인 권력을 쥐고 행사하는 것은 자기의 직분을 남용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주위에 있는 나라들처럼 임금을 세우려고 했던 불경스런 잘못과 같은 예이다.
여기에서 다음 사실들을 주의해야 한다.
[1]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통치권.
"너희 중에 큰 자, 즉 나이가 많은 자"는 그 나이 때문에 당연히 우선권이 있겠지만,
일이나 "행실"에서 뿐 아니라 "지위"에 있어서도 "젊은 자"와 같아야 한다(그런 자는 젊은 자와 함께 앉아 자신을 낮추며 젊은 자들과 허물없이 친하게 지내야 한다).
Juniores ad labores seniores ad honores - 즉 젊은 자는 일하게 하고 나이 든 자는 그들의 영광을 받도록 하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이든 자도 젊은 자와 마찬가지로 수고하여야 한다. 그들의 나이와 관록은 비록 이젠 쉬어도 된다고 보증하고 있지만 오히려 힘을 배로 내라고 독려하고 있다.
그리고 o` h`gou,menoj - 즉 두목 학교나 공회의 대표자는 섬기는 자,
w,j o` diakonw/n - 즉 직원처럼 되어야 한다.
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공의 유익을 위하여 천하고 고된 봉사를 서슴치 말아야 한다.
[2] 그 예.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모시는 자가 더 크냐? 모심을 당하는 자가 더 크냐?“
지금 그리스도는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서 시중드는 자처럼 하시고 있다. 그는 지금 거기 참석한 자들에게 시중들라고 명령하시며 "자리를 잡고 앉아 편히" 계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섬기기 위해 어떤 일이든 기꺼이 할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으로 계셨다.
그들의 발을 "씻어드리는 것"이 그 증거이다.
자기들 스스로 따른다고 하는 그 주인이 "종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들이 임금의 모습을 취할 수 있을 것인가?
(3) 그들은 세상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 논쟁해서는 안 되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이런 것과는 반대되는,
전혀 다른 성격의 더 나은 영광,
즉 하나님의 "나라," "만찬," "보좌"의 영광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이 모든 영광을 공유(公有)하게 된 제자들은 앞에 말한 것과 같은 것을 가지고 논쟁을 벌여서는 안 되었다.
(28-30절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1]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당부.
이 믿음만으로도 그들에겐 큰 영광이었으므로 누가 더 크냐와 같은 것으로 다툴 필요는 없었다.
약간 칭찬하는 기분으로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이다. 너희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버리고 내게서 등을 돌릴 때에도 내 옆에 서서 내게 의지한 자들이다"라고 하셨다.
그리스도도 시험을 받으셨다.
그는 사람들부터로 무시당하고 배척 당하였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계속 그와 함께 머물렀으며 그가 받은 고통을 함께 받았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줄 수 있는 도움이나 봉사는 비록 보잘 것 없는 것이었지만, 그리스도는 그들이 계속 "그와 함께 있게 된 것"도 결국 그의 은총에 의한 것일지라도 그들의 행동을 고맙게 받아들이셨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기들의 의무를 충실히 감당하지 못하였다. 그들이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강하지 못했다는 것을 여러군데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들은 대단히 둔하고 잊기를 잘했으며 때로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래도 그들의 선생은 모든 잘못을 용서하고 잊어버리셨다. 그는 그들의 부족함을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이처럼 기념비적인 찬사를 하셨다.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자들이다.“
이처럼 그는 헤어지는 마당에서도 칭찬하셨다.
이는 그가 그와 함께 굳게 설 수 있는 자들의 마음을 위해 최선을 다해 얼마나 애쓰고 계시는가 보여 주고 있다.
[2] 충성된 자를 위해 마련된 보상.
"나도 너희에게 나라를 맡기겠다. diati,qemai - 즉 남기겠다."
혹은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이 말씀의 뜻은.
첫째, 이 세상에서 그들을 위해 무엇을 알려 주고 있다.
하나님께선 그의 아들에게 "사람들 가운데 한 나라," 복음의 교회를 주셔서 그로 교회를 살리며, 용기를 주며, 통치할 머리로 삼으셨다.
이 "나라"를 그가 그의 제자들과 복음의 후계자들에게 "맡기셨으므로" 그들은 복음의 평안과 특권을 누리며, 복음의 성례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도 함께 나누어주며, 교회의 조직적인 훈련과 관용과 사랑을 베풀어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아직도 믿지 않으려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하고, 복음의 이스라엘, 영적인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교회의 참된 관리로써 보좌에 앉아야만 할 것이다. 이것이 너희를 위해 마련된 영광이다.
둘째, 하늘나라에 너희를 위해 마련한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이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섬기는 일을 다 하여라. 그 보상을 하늘에서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선 그들에게 나라를 주셨다. 그들이 그 나라에서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은,
a. 진수성찬.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그들은 "그의 나라에 있어 그리스도의 상에서 먹고 마실" 것이기 때문이다.
(16, 18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7)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그들은 그의 섬김과 고통의 보상으로 얻은 기쁨과 즐거움에 동참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쁜 모습을 보며 영혼의 만족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들은 만찬과 같이 사랑이 완전히 성취된 최상의 나라를 얻게 될 것이다.
b. "최고의 영광.“
"므비보셋이 다윗의 상에 앉았던 것처럼 너희도 거룩한 상에 앉을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너희에게 거룩한 보좌가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내 보좌에 함께 앉게 될 것이다.
(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그 날에 너희는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아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실 때 찬미하며 함께 할 것이다.“
"성도가 세상을 심판할" 것이라면
(고전 6: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교회는 더 할 수 있을 것이다.
Ⅲ. 베드로가 부인할 것에 대하여. 이 부분을 읽으며 다음 사실들을 고찰해 보자.
1.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미칠 사단의 궤휼에 대해 일러주신다.
(31절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시몬아 시몬아 보라." 내가 하려는 말을 명심하라.
"사단이 밀까브르듯이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너희 모두를 손에 쥐고 흔들고자 하였으나, 다른 제자들의 입노릇을 하던 베드로가 여기서는 다른 제자들의 귀 노릇을 하고 있다.
제자들 모두에게 경고하실 말씀을(나로 인하여 너희 모두가 배척을 받으리라) 베드로에게 하고 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흥분을 잘하는 특별난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주로 그에게 관련된 말씀이기 때문이었다.
"사탄이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아마도 사탄은 이 세상에서 자기의 영토를 넓히고 세력을 키울 목적으로 욥을 비난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을 하나님께 "비난"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다, 그들은 정직한 자들이며 순결한 자들이다" 하셨고,
사탄은 "그들을 시험하게 해주시오, 특히 베드로를" 하였을 것이다.
그는 그들을 청구해 "밀 까부르듯 까불어" 그들이 알곡이 아닌 쭉정이들인 것을 보여 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제 그들은 "까불림"이란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들 속에 무엇이 있나 시험 당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탄은 시험을 통해 그들을 까부를 뿐 아니라 이러한 고통을 통하여 그들로 죄를 짓게 만들도록 애를 쓸 것이다.
옥수수를 까부를 때 쭉정이들이 제일 위에 모여지듯, 아니면 알곡을 모두 골라내고 쭉정이만 남겨두듯 그들을 이런 식으로 정신 못 차리게 하여 떨어져 나가게 할 것이다.
사탄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그들을 까부를 수 없다는 것을 유의하라.
사탄은 욥을 시험하고 유혹하기 위해 하나님께 허락을 구했듯이
VExuvth,sato - 즉 그들을 청구하였다.
"그가 너희에게 도전하였다. 너희가 위선자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너희에게, 특히 너희 중에 제일 앞장 선 베드로에게 도전하였다.“
어떤 주석가는 그들이 누가 가장 큰 자냐 하는 다툼 때문에 그 벌로써 그들을 까불릴 허락을 사탄이 받았다고 해석하고 있다.
아마 베드로가 그 논쟁에 제일 열을 올렸을 것이다.
"그 때문에 그들을 까부르시겠다면 그 일을 제게 맡겨 주십시요"라고 사탄이 요구했을 것이다.
2. 이런 시험에 대비하여 베드로에게 베푼 특별한 배려.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노니, 왜냐하면 사탄은 너희 모두를 넘어뜨리고자 원하고 있으나 다만 네게만 그의 수단을 다해 시험하도록 허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너는 가장 강한 공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네 믿음이 송두리째 남김없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다."
다음 사실들을 유의하자.
(1) 시험에 넘어갈지라도 한 시간이라도 우리 믿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완전히 굴복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은 사탄의 불화살도 끌 것이다.
(2) 진실된 믿음의 사람들도 수차 믿음이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그들의 믿음이 완전히 떨어지는 일은 없다.
믿음은 그들 속에 씨앗으로, 뿌리로 남아 있다.
(3) 제자들의 믿음이 때로는 안타까울 정도로 위태롭지만 그대로 무너지지 않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와 간섭 때문이다.
만약 그들끼리만 버려 둔다면 그들은 넘어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과 그리스도의 기도로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중재는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일반적인 것일 뿐 아니라 어느 "특정한 "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노니”.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도 위하여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3. 베드로에게 그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원한다면 다른 형제들을 도우라고 분부하신다.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들 굳게 하라. 너는 하나님의 은혜로 돌이켜 회개한 다음에 다른 형제들을 위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 너는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았음을 발견한 후에 다른 형제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하라. 너는 하나님의 자비가 너와 함께 있음을 발견한 후에 다른 형제들에게도 그들 역시 자비를 발견할 수 있도록 희망을 주어라."
다음 사실들을 고찰해 보자.
(1) 죄를 지은 자들은 "죄에서 돌이켜야만" 한다.
샛길로 나간 자들은 "돌아와야만" 한다. 처음 사랑을 버린 자들은 처음 행실을 행해야만 한다.
(2) 은혜를 통하여 죄에서 돌이킨 자들은 자기의 형제들이 굳게 서서 떨어지지 않게 되도록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 참조 (시 51:11-13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3)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딤전 1: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4. 베드로는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그리스도를 놓치지 않겠다고 장담하였다.
(33절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이 말은 참으로 위대한 말이었다. 당시 그가 의미했던 뜻과 어떻게 하든 "잘해 보려"는 생각 외에 달리 생각할 수는 없다.
유다는 종종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부인하리라는 경고를 들었지만 베드로처럼 이렇게 완강히 항의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마음은 악한 것에 대하여 거부하고 있었지만 유다는 완전히 악한 것에 마음을 쏟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면 누구나 "그리스도를 따라 그가 어느 곳으로 가든지,“
또 그가 어느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든지, 감옥으로든, 죽으로든 따라 갈 준비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5.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그를 부인할 것을 예언하신다.
(34절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너는 네 자신의 마음조차도 모르고 있다. 그럼에도 당분간이나마 네게 맡기는 것은 네가 네 마음을 알게 되어 다시는 네 마음을 신뢰하지 말기를 바람이다),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자신보다 더 우리를 잘 아시며, 우리 안에 있는 악한 것이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들에 의해 나타나게 되리라는 사실도 잘 알고 계심을 명심하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보다도 우리의 약한 점을 더 잘 아셔서 충만한 은혜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인도해 주시는 것은 우리로서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시험에 들게 될 것인가 아시고
"이 정도까지 될 것인데 그 이상은 안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니 다행스런 일이다.
Ⅳ. 모든 제자들의 준비 사항.
1. 그는 제자들에게 과거의 형편에 대하여 물으셨다.
(35절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그는 제자들이 그에게 충성된 종의 역할을 다하였다고 인정하셨다.
(28절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이제 그들과 헤어지면서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과연 그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른 이후 그들의 친절하고 다정한 주인이 되었는지 알고자 하신다.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1) 그는 제자들을 보낼 때 맨발로, 전대에는 돈도 없는 대단히 궁핍하고 어려운 형편으로 보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먼 곳으로 가거나 오래 동안 나가 있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섭리만을 의존하고 그 섭리 안에서 그들의 친구들의 도움에만 의존하도록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형편으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실 때 우리는 우리가 시작했던 보잘 것 없는 형편에서 더 나아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2)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족한 것이 없었음"을 인정하도록 해 주실 것이다.
그때도 그들은 여전히 풍족하게, 평안하게 살았으며, 그들도 그것을 기꺼이 인정하도록 해 주실 것이다.
"없었나이다. 부족한 것 없이 풍족하였나이다.“
다음 사실들을 명심하자.
[1] 우리도 때때로 우리의 지나온 생애를 돌아보며 우리에게 내려 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재고해 보며, 우리가 당했던 고란과 시련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가 생각해 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2] 그리스도는 선한 주인이시며 그의 보살핌은 부족함 없는 보살핌이다.
그의 종들이 때로는 낮은 곳으로 끌어내려 갈지라도 그를 도울 것이며, 그들을 "시험"할지라도 그들을 버리시지 않으실 것이다. "여호와 이레"이다.
[3] 우리에게 충분한 양식의 여유가 없을지라도,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살 처지라 할지라도, 다른 친구들의 도움으로 살아간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일용한 재물만 있다면 다행으로 여기고 불평하기보다는 감사해야 한다.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헌물에 의존해 살았으나 자신들의 형편이 말도 못할 정도라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께 감사드리며 풍족했노라고 부족한 것이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2. 그는 제자들에게 이제부터 다가올 그들의 형편의 대변화에 대해 말해 주고 있다.
(1) 왜냐하면 그들의 주님되신 그리스도는 전에도 누차 말한바와 같이 이제부터 수난 받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37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기록된 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감이니라. 그리고 이 일은 남아 있는 자들 가운데서도 이루어지리라. 그는 범죄자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리라. 또한 흉악한 범죄자들과 함께 죽으리라. 이 일은 아직 이루지 못한 일로써 이 일이 이루어짐으로 내게 관한 일이, 내게 관하여 기록된 일들이 끝을 맺으리라. 그때에 나는 다 이루었다고 말하리라."
고난받는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고난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그들의 고난이 예언된 것으로 하늘의 섭리에 이미 "결정되어 있는" 사실을 잠시 후 하늘에서 기쁨을 누리도록 "마련되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통해 위로를 받게 된다.
그들의 고통은 그들에 관하여 "기록된" 것이며, "끝을 맺게 될" 것이며, 유종의 미를 거두어 영원히 남게 되리라.
(2) 그러므로 그들은 고난을 예상하고 지금까지와 같이 편하고 즐거운 생활을 계속하리라는 생각을 버려야만 하였다.
그게 아니라, 이제는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은 그들의 선생과 "함께" 있으면서 약간의 고난을 받으나, 그가 가면 그들도 선생과 "같은" 고난을 받을 예상을 하고 있어야만 되었다. 종이 그 주인보다 낫지 못한 것이다.
[1] 친구들이 예전처럼 그들을 그렇게 친절하고 관대하게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그러므로 "전대있는 자는 가질 것이다." 왜냐하면 전대가 필요한 경우가 있을 것이며 될 수 있는 한 검약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들의 적들이 이제는 전보다 더 지독하게 그들을 못살게 굴 것을 예상해야 한다.
강도와 자객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검이 없는 자"는 검이 대단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것이며 언제라도 자기 옷을 팔아 검을 살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고후 11: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이 말은 단지 누구나 옆에 검을 지니고 다니지 않으면 목숨을 지키기 힘든 대단히 위험스런 시기가 올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지녀야 할 검은 "성령의 검"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으니"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아야" 한다.
(벧전 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우리는 다가올 고난을 예비하여 "갑옷을 입고" 고난이 닥치더라도 놀라지 말며, 고난 중에 배척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의 겉옷을 팔아 검을 사는 것보다 더 안전한 준비를 갖추게 된다. 이에 제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가 어떤 것인가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검 둘"을 발견하였다. 그 중 하나는 베드로의 것이었다.
갈릴리 사람들은 평소에도 검을 가지고 다닌다. 그리스도는 검을 가지고 다니지 않으셨지만 그의 제자들이 검을 지니고 다니는 것을 금하시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가 "족하다"고 말씀하셨을 때에 우리는 그가 검에 의존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주석가는 이 말씀을 냉소적인 말씀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열둘 중에 검이 두 개 뿐이라! 너희 적들은 지금 수없이 몰려오는데, 그것도 한 사람이 검 하나씩 들고 달려오는데 고작 이것이라니, 참으로 대담무쌍하구나.“
그러나 검이 필요없는 자들에겐 두 개라도 족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손수 "그들은 돕는 방패시오 그들의 영광의 칼"이시기 때문이다.
(신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메튜헨리의 주석을 참조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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