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당신은 어찌하여 나를 이같이 만들었는가고 할 수 있겠는가?

거듭난 삶 2019. 2. 21. 00:35
728x90

로마서 9 19-33절의 해석과 이해

 

 

 

19. 그러면 너는, 내게 말하리라, 하나님이 어찌하여 사람을 책망하시는가?

누가 뜻에 거슬리는가고.

20. 아니라오, ,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하나님께 말대꾸하는가?

지음 받은 자는 지은 이에게 향하여,

당신은 어찌하여 나를 이같이 만들었는가고 있겠는가?

21. 토기장이가 같은 흙덩이를 가지고서,

그릇을 귀하게 그릇을 보잘 없게 만드는 권리가 있지 않는가!

22. 하지만,

만약 하나님께서 노를 나타내시고 (권능) 보이려 하시면서도(알게 하시려면서도),

멸망 받도록 되어 있는 그릇을 오래 참아 견디어 주시는데 있어서는,

23. 영광으로 미리 예비하신 자비의 그릇에

영광의 풍성함을 보이시련다면(우리들은 무슨 말이 있으랴!).

24. 자비의 그릇이란,

유대인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그가 불러내신 우리들이다.

25. 호세아서에 있어서 말씀하신 대로이다.

나는 백성 아닌 자를 백성이라 부르고 사랑 않던 자를 사랑하는 자라 부를 것이다.

26. 너희는 백성 아니라고 불리던 곳에서 그곳서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27. 이사야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외쳐 말했다.

이스라엘의 수는 바다의 모래 같이 되더라도,

다만 소수만이 구원 얻을 것이다,

28. 그것은 주께서는 위에 말씀을 충분히,

또는 신속히 행하실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29.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이다.

만약 만군의 우리에게 후손을 남겨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소돔 같이 되었을 것이다, 소돔 사람처럼 되었을 것이다.

30. 그러면 우리는 무엇이라 할까?

의를 추구하지 않던 이방인은 의를 얻었다. 신앙에 의한 바의 의를 얻었다.

31. 하지만 의의 율법을 추구한 이스라엘은 율법에 달하지 못했다.

32. 무슨 까닭인가?

그들은 신앙에 의하지 않고, 행함에 의해 달할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33. 그들은 거침돌에 걸려 넘어졌도다.

성서에 기록된 것과 같다.

보라, 내가 시온에 거침돌, 방해의 바위를 둔다.

그리고 모두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의해(義解)

 

19) 선인의 선이거나 악인의 악이거나 하나님의 성지에 의한다고 내가 말한 때문에,

반문자는 내게 물어서 말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슨 까닭에 사람의 죄를 책망하시는가,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거슬이는 어디 있는가,

선인도 악인도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바의 것이라면,

하나님께 사람을 책망함의 권리 없는 아니냐고.

 

20) 아니라오, 사람인 반문자여, 반문에 이유 없도다.

너는 사람에 대하여 그러한 반문을 일으킬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하여 이것을 일으킬 없다.

지으신바 사람은 지으신 하나님께 향하여,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가고 없다.

(바울), 하나님은 특히 악인을 만드셨다고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께 있어서 그러한 있다 해도,

사람의 유한한 지로서 하나님의 무한한 지를 헤아릴 없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전지하시다, 그는 절대적으로 신성하시며 범할 없는 분이시다.

일국의 군주가 어떠한 일을 한다 해도 법률적인 죄로 되지 않듯,

우주의 주재이신 하나님은 어떠한 일을 하신대도,

우리는 그에게 돌리는데 있어서 죄과로 없다.

우리들은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 논하지 않으면 된다.

하나님께 사람에 대한 책임 없으시다.

책임 있는 자는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

 

(21) 이것을 토기장이에 대하여 생각하라.

, 토기장이는 같은 흙덩어리로서,

개의 그릇은 이것을 귀하게 만들고 다른 그릇은

이것을 보잘 없이 만들 권리 있는 아니랴.

하나님도 역시 그러하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만드셨다 해도, 사람은 하나님께 향하여 불평할 수가 없다.

 

그릇의 파편에 지나지 않는데

지으신 주와 다투는 자는 화있을찐저

흙덩어리는 토기장이에 향하여 당신은 무엇 만드는가 하는가?

너의 만든 , 네게 향하여 당신의 손으로 되지 않았다 하는가

아버지에게 향하여 당신은 낳았는가 하는 자는 화있을진저

여자에 향하여

당신은 어찌하여 해산의 고통을 했는가 하는 자는 있을진저(이사야 45:9-10)

 

먼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알라. 그런 , 하나님에 대하여 논쟁하지 말라.

 

 

(22) 하나님의 주권은 범하지 말라.

하나님은 하고자 하시는 대로 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포학하신 하나님이 아니시라, 자비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은혜 베푸시는 신속하다.

, 나의 반문자는, 하나님은 자기본위라고 하고 싶어하는 같다.

하지만 하나님의 하시는 바를 보라.

그는 노를 나타내어 악인 위에 힘을 보이시려 하심에도 불구하고,

쉽게 형벌을 행하시지 않고,

멸망으로 마련되어 있는 그릇인 그들 악인을 오래 참고 견디시는 아닌가!

하나님께서 만약 임이시라면, 포학적인 임의가 아니라, 자비적인 임의이다.

그는 절대적 주권을 쓰심에 있어서 언제나 관용유서로서 이것을 행하신다.

이것을 바로의 경우에 있어서 보라.

기타 모두 마음을 완악히 하여 하나님을 거스린 자의 경우에 있어서 보라.

그들은 쉽게 죄의 보응을 받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이 괴롭히는 자로 하여금

주여 이렇게 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나이까 하는 소리를 발하게 하였다.

하나님은 어떤 때는 악인에 대하여 관대하시고 선인에 대하여 엄한 듯이 보이신다.

사실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관대함에 지나친 하나님이시고,

엄격에 지나친 하나님은 아니시다.

 

 

(23) 악인에 대하여 너그러우신 하나님은 선인에 대하여서도 은혜 풍성하시다.

그가 마침내 악인을 벌하는 것도,

이는 그의 은혜가 더욱 선인에게 미치지 하시렴에서 이다.

그가 하시는 모든 일의 목적은,

그가 세상의 기초를 놓으시기 전부터 미리 영광으로 예비하신

그의 자비를 받아야 그릇에게, 그의 영광을 풍성히 나타내시기 위해서이다.

만사만물의 목적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 은혜를 더하시기 위해서이다.

세상에 은혜가 더해지는 것이 조화와 역사의 목적이다.

나는 후에 이르러 자세히 이것을 논하려 한다(11장에 있어서).

여기서는 다만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너희가 오해하지 않기 위해 이렇게 일언해 둔다.

 

 

(24) 자비의 그릇이란 무엇이랴!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미리 마련하신 , 조화와 역사와의 목적물,

땅의 최후의 소유자여야 , 가장 은혜 입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택하신 선민이란 누구랴!

이것을 이종으로 나눌 수가 있다.

유대인 중에서 선택된 자와 이방인 중에서 택함 받은 자와 이것이다.

나는 지금 성서(구약) 말씀에 비추어 이것을 논하련다.

나는 먼저 이방인에 대하여 말하련다.

 

 

(25) 예언자 호세아의 글에 이르기를,

나는 백성 아닌 ……(호세아서 2:23)라고.

따라서 것이다,

이방인이 부르심을 입어 하나님의 선민으로 것은,

일찍 이미 하나님께서 예언자로서 말씀하신 바임을.

백성 아닌 , 백성이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 사랑할 것이라고. ,

동에서 서에서 남에서 북에서, 아브라함의 아들 아닌 자가

부르심을 입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라고.

 

 

(26) 같은 호세아서에 말한 있다.

너희들, 백성 아니라고 하던 곳에 있어서……(1:10)라고.

이방인은 그들이 태어난 이방 땅에 있어서,

유대인이 약속의 땅이라고 팔레스티나의 성지로 예배하려 가는 일없이,

그곳에서, 이방 땅에 있으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거룩한 것은 유대인과 유대국에만 한하지 않고,

모든 백성과 모든 나라가 거룩해질 것이다.

찬미할 아니랴.

 

 

(27) 성서가 이방인에 대하여 말하는 바는 이러하다.

그러면 이스라엘인에 대해 말하는 바는 어떤가?

예언자 이사야는 외쳐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수는 바다의 모래같이 되었다 해도,

다만 소수자만이 구원될 것이다……(이사야서 10:22)라고.

이스라엘도 구원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구원될 아니라,

중의 소수자만이 구원될 것이라고.

이것은 앞에서도 말한 대로,

하나님의 약속이,

혈통에 의하지 않고서 성지(聖旨) 따라 사람에게 임하시렴에서이다(7-13).

 

(22), (28) 이사야는 말했다.

주는 위에 말씀을 충분히 신속히 행하시는도다(이사야서 55:10-11)라고.

주의 말씀은 행해지지 않고서는 마지않으신다.

이스라엘 사람의 선택은 충분히 신속히 행해질 것이다.

심판은 그들 위에 임하고 있다.

양과 산양은 드디어 나뉠 것이다.

예루살렘의 함락, 유다국의 멸망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그들 중의 소수자가 구원되기 위해서이다.

내가 앞서 말한 대로이다.

 

 

(29) 이사야 예언하여 이르기를,

만약 만군의 , 우리에게 후손() 남기시지 않는다면……이라고.

실로 그러하다.

만약 이스라엘인 구원되어야 소수자 없다면,

예루살렘은 함락과 함께 소돔 같이 것이다.

유다국은 멸망과 함께 고모라 같이 것이다.

없어져 자취 없게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약속의 백성을 끊지 않으실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후손(후예)이란,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될 중의 소수자이다.

그들에 의해 진정한 이스라엘 민족은 계속될 것이다.

 

 

(30-31) 우리들은 이들 예언자에 대하여 무엇이라 하랴!

이것을 약언하면 어떤 것일까!

이것이다.

의인을 쫓아 구하지 않은 이방인은 의를 얻었다.

더구나 그들이 얻은 것은 특종의 의요, 신앙에 의한 의이다.

이에 반하여, 의를 목적으로 하는 율법을 좇아 구한 이스라엘은

추구한 율법에 달하지 못했다고.

 

 

(32) 어찌하여서 그런가?

무슨 까닭에 이방인이 달한 의에 이스라엘은 없었던가?

이유는 찾아 알기에 어렵지 않다.

그들 이스라엘은,

신앙에 의하지 않고, 행함에 의해 이에 달할 있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그들은 의에 달하는 길을 잘못했다.

그들은 스스로 의인 되어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사이다. 사람은 힘써서 의인될 있는 아니다.

그들은 자기에 의뢰하고, 하나님께 의뢰하지 않는 까닭에,

하나님의 의인될 수가 없었다.

 

 

(33) 그들 이스라엘 인은 거침돌에 걸려 넘어졌다.

이사야서 8 14절에 있는 대로이다. 동서(同書) 28 16절에 이르기를,

보라, 내가 시온에 거침돌 방해의 바위를 것이다라고.

거침돌, 방해의 바위란, 십자가에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유대인에게는 거치는 , 그리스(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다.

신앙의 방해물이다.

분노를 빚어내고 반항을 환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 바위(반석) 의지하는 자는 구원될 것이다.

치욕의 죽음을 그를 믿는 자는 치욕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만,

최후의 재판 날에 밖의 어두운데 쫓아낸 되어

거기서 슬퍼하며 이를 가는 일이 없을 것이다.

 

*내촌감삼의 로마서 주석에서 발췌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