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거듭난 삶 2019. 2. 24.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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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얻는 구원 2

 

 

: [ 10:8-12]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입에 있으며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 10: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입에 있으며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 앞에서 부정적인 진술을 계속하였지만,

이제는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바울이 언급하고자 하는 주제로 돌아온다.

 

 

말씀이 네게 가까와 입에 있으며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 30:14 인용인데, 70인역에는 '심히' 해당하는 '스포드라' 있으나 본문에서는 생략하였다.

 

( 30:14 오직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입에 있으며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있느니라)

 

구약의 문맥에서는 율법을 통해 드러난(reveal) 은혜로운 면이 기록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그의 백성과 함께 계시며 이스라엘 백성은

신명기의 말씀대로 그들의 입과 마음에 두어 율법을 암송하며 묵상하였던 것이다.

 

(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여기서 '말씀이 가깝다' 것은 신약에 와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마음에 선물로서 그리스도의 영이 계신다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와 율법은 상대적 위치인 것이 아니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울은 신명기를 인용하여 말씀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입과 마음에 있다는 표현으로 하늘에 올라가거나 음부에 내려가는

불가능성과 대조하면서 구원받는 것이 매우 쉬운 일이 되었음을 제시하고 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얻을 있음을 밝히 드러낸다.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 부분은 인용구에 바울이 첨가시킨 삽입구이다.

'전파하는' 헬라어 본문 '케륏소멘' '가르치다', '설교하다', '선포하다' 뜻이다.

따라서 본문은 사도들이 가르치고 설교하는 복음의 말씀을 뜻한다.

 

'우리가 전파하는'이라는 한정구는 '말씀이 멀리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

견해에 있어서 바울이 모세와 같다는 것을 나타낸다.

 

전파된 말씀은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은혜의 말씀으로

구약에 계시된 약속의 말씀, 믿음의 말씀이다.

 

여기서 '믿음의 말씀' 복음의 내용 자체이다(Calvin, Cranfield).

그리고 말씀은 믿음을 요구하는 말씀임을 뜻한다(Cranfield).

 

바울이 30:14 나오는 '말씀' 칭의(justification) 같게 것은

그리스도가 말씀의 실체이며 실제적 의미이기 때문이다.

 

( 30:14 오직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입에 있으며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있느니라)

 

 

 

[ 10:9] 네가 만일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네가 만일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 ' 입으로', ' 마음으로' 8절의 ' 입에', ' 마음에' 병행을 이룬다.

 

 

예수를 주로 - 이는 '예수는 주이시다'(Jesus in Lord) 말이다.

'' 해당하는 헬라어 '퀴리오스' 헬라 세계에 있어서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나 노예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호칭이었다.

 

또한 신비 종교(Mystery Religion) 신들이었던

이시스(Isis) 오시리스(Osiris)에게도 사용되었다.

 

정치적으로는 통치자에게 명칭을 붙였다.

특히, 하나님의 칭호 '야웨' 칠십인역에서 항상 '퀴리오스' 번역했다.

 

'퀴리오스'라는 칭호는 초대 교회에서 하나님에 해당하는 절대적 의미의 칭호로서

하나님에 해당하는 절대적 의미의 칭호로서 사용되었다.

 

따라서 '예수가 '라는 고백은 교회 최초의 신앙 고백의 형태로서,

 

( 2:36 그런즉 이스라엘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없느니라)

 

예수의 주권(lordship) 인정하는 것이다.

고백에는 경배의 대상이며 승천하신 구주의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 '살리신' 헬라어 '에게이렌' '일으키다'라는 말로서 이는 예수께서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잠자는 자들의 열매(아파르케) 되셨다는 뜻이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열매가 되셨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은 신자들로 하여금 부활을 소망케하는

종말론적 의미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만유의 주로 높이심으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의 주되심을 시인케 것을 의미한다.

 

이런 뜻에서 초대 교회에서는 예수의 다시 사심을 고백했고 믿었던 것이다.

 

( 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마음에 믿으면 - 입으로 시인하는 것과 마음에 믿는 것은 불가분리의 관계이다.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마음에서 믿는 만큼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진정한 신앙 고백을 전제한 것으로서 외식적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구원을 얻으리니 - 따라서 믿음은 의에 이르게 뿐만 아니라 결국 입으로 시인하게 하며 구원에 이르게 한다.

 

 

 

[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

 

'마음' - '', '믿는 ' - '시인하는 ' 문장에 있어서 균형을 유지한다.

 

또한 '의에 이르는 ' '구원에 이르는 ' 본문에서 역으로 사용해도 하등의 문제가 없다.

 

본절은 본서의 주제가 되는 1:16, 17 구절을 기억시키는 내용으로서 믿고 시인함이 구원의 열매를 맺는 것을 뜻한다.

 

(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믿어' '시인하여' 해당하는 헬라어 '피스튜에타이' '호몰로게이타이'

수동태로서 믿는 것과 고백하는 것이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게 하는 근본적인 능력이 있음을 나타낸다.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사람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시인에 이르게 됨을 나타낸 것이다.

 

(고후 5: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의에 이르는 '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얻어지는 '', , '칭의'(稱義) 말한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믿는 ' '입으로 시인하는 '

신앙의 기초이며 전부라고도 말할 있다.

 

사람 앞에서 예수를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자기의 신앙을 아무 두려움 없이 공언하는 것이다.

 

( 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8:38 누구든지 음란하고 많은 세대에서 나와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때에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12: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특히, 시인(是認) 지적인 확인을 넘어 생활의 차원에서 삶으로 고백되어져야 한다.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부인하도록 강요당하고 핍박받을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런 시인은 개인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갈 직면하게 되는

구체적 탄압과 고난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과 구원을 정직하게 표명(表明)하는 차원까지도 의미한다.

 

 

 

[ 10: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 9:33 같이 28:16 부터 인용된 구절이다.

 

(9:33 기록된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 28:1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그런데 이번에는 강조된 형태로 인용되었다.

'저를 믿는자' 앞에 '누구든지' 말이 첨가되어 있다(Hendriksen).

 

이렇게 강조된 것은 앞에 언급된 4-10절의 말씀을 마디로 요약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4-10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입에 있으며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바울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여 구원이 유대 민족에게만 독점되어지고

또한 이방인에게 있어서는 모세의 율법에 의하여 할례를 받은 자에게만

국한시켰던 것을 확장시켜 이제는 복음을 받아들인 모든 자에게

허락되어졌음을 선포하고 있다(Godet).

 

 

 

[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문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 어떤 종족이든지 차별을 받지 않고 똑같이 적용되어진다.

 

설사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어떤 면에 있어서는 '차별' 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구원에 있어서는 차별이 없다.

 

(3:22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그런데 바울은 실제로 그의 서신서에서 유대인의 우선권에 강조점을 두고 있었고,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2:9-10 악을 행하는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특별히 하나님의 '언약'(Covenant) 아래서는 이스라엘이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언급하였다.

 

(3:1-2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2)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9:4-5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그러나 이는 구원 경륜의 순서에 있어서 이스라엘이 특권을 받은 것을 나타낼 뿐이다.

구원에 있어서는 유대인과 헬라인, 기타 이방인 사이에 어떠한 차별도 없다(Dunn).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 바울은 구원이 유대인과 헬라인 그외 모든 이방 민족에게 차별이 없는 분명한 이유를 ' 주께서'(the same Lord) 모든 사람의 주님이시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Lenski).

 

여기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의 '( Lord of all) 묘사하고 있는데,

만일 유대인이 하나님을 주님(Lord)으로 믿고 있다면

하나님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주님이 되어야만 한다.

 

(3:29-30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뿐이시뇨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분이시니라).

 

이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구세주(救世主)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동일하다.

그는 유대인과 헬라인 기타 이방인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의 ' 되신다(Dunn).

 

더구나 주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부르는 모든 자를 부요하게 하신다.

이는 주님의 부요함을 말하는 것일 아니라 그의 보편적이고 동일한 은혜가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는 의미이다(Godet).

 

여기서 '부요하시도다' 능동적인 개념으로 '자비하다' '은혜롭다' 뜻을 가지고 있다(Calvin).

이것은 주님의 구원의 은혜와 능력은 무한하여 그가 부르는 모든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려는 선한 뜻은 결코 약화되거나 다함이 없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부요하신 하나님께

 

( 50:10-12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것이며

11)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것임이로다;

 

2:8 은도 것이요 금도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작은 나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5:12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속하여 항상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됨으로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2:4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9: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하리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고후 8:9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